오늘은 아니겠지, 오늘은 아닐거야. 그렇게 바랬건만.
"미치겠네."
"....."
얜 오늘도 여기서 오지도 않을 그 애를 기다리고 있다. 몇 년 째야, 이게.
"야, 너."
"....."
"그만 거슬리게 해, 짜증나니까 이젠."
"....."
"대답이라도 하던가!"
답답하게 무슨 말을 해도 귓등으로 듣지도 않는다. 어언 3년 째. 이렇게 동상마냥 얘를 보고있는 나도, 하염없이 그 애를 기다리며 눈물이 맺히는 쟤도, 둘 다 멍청하게만 보일 뿐이다. 쏴아-. 타이밍 끝내주게 소나기까지 내려준다. 비가 오던 말던 상관도 없는지 쟤는 계속 멍하니 정류장에 앉아있다. 머리카락 끝에 빗물은 뚝뚝 흘리면서. 짜증나고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털다 가방 앞주머니에서 우산을 꺼내 펼쳐 그 애 위로 씌웠다. 감기 걸려, 멍청아.
"... 여러모로 귀찮게 한다, 너."
"..... 그냥 가."
"허, 웬일이냐. 너가 대답을 다하고."
"나 괜찮으니까 가."
"누가 너 괜찮으라고 이러는 줄 알아?"
그럼 뭔데? 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것에 그냥 눈길을 피해버렸다. 고개를 돌리자 저도 다시 고개를 돌리며 앞을 바라본다. 그 모습을 슬쩍 보다 속으로 되뇌었다. 걱정되니까, 내가 신경쓰이니까 그렇지. 이러고 계속 비맞고 서있기도 뭐하고, 들고 있던 우산을 아예 그 애 손을 가져다 잡게 했다. 이거 봐봐. 손 차갑네.
"오래 있기만 해봐. 죽어, 진짜."
"... 야, 야!"
***
쿠궁-. 집에 도착한지 한 두 시간 쯤 지났을까. 단순히 소나기에 그칠 것 같았던 비는 점점 더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천둥 번개의 환상의 케미스트리를 터뜨리면서. 흠뻑 젖고 온 몸을 시원하게 씻어내고는 살짝 피곤한 기운에 휩싸여 그대로 소파에 눕는데, 영 가슴 한 구석이 찜찜한게-.
"설마."
아직 거기에 그대로 있겠어.
"미친거지, 그럼. 이 날씨에."
미친거지, 그럼... 미친ㄱ...
.
.
.
.
.
"내가 미친 놈이지."
"......."
혹시나하고 갔지만 역시나였다. 여전히, 그 자리에. 그 표정으로 그 애는 앉아있었다. 그 와중에 내가 준 우산은 또 꼭 붙들고 있다. 어이가 없어 허, 하고 웃자,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본다. 진짜, 진짜.
"사람 신경쓰이게 하는데 뭐있다, 너."
미치게하는데 뭐있어.
"거기서 그러고 있으면 뭐가 달라지냐? 거기 그러고 있으면,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으면 뭐가 달라져?"
"....... 그만.."
"너가 마냥 기다린다고 죽은 애가 살아서 오냐고!!!"
"그만하라 했잖아!!!"
처음이였다. 걔도, 나도. 이렇게까지 언성을 높인 적은. 늘 투덜대는 나였고, 그에 말없이 대응하던 쟤였다. 눈물이 잔뜩 고인 채 날 보며 그만하라 외치는데, 왜 내가 더 미칠 것 같은지. 나도 덩달아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3년 전, 쟤가 그렇게 좋아하던 남자 애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날 부터였을까, 쟤가 저렇게 늘 걔와 같이 타던 그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 시작한게. 늘 지켜보고 있었다. 3년 내내. 늘, 뒤에서. 그 남자애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쟤를, 늘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짝사랑인줄은, 그런 줄은.
"... 그만 우는거 바라지도 않으니까."
"...... 혼자 울지라도 마."
"뒤에 있는 나 좀 보라고, 멍청아."
늘 너 뒤에 있는, 나도 좀 봐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