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osotis ; Pro.
w. 야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청아한 새 소리. 머리카락이 적당히 휘날리는 선선한 바람.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아담한 동네. 그 평화로움 속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와, 하나도 안 변했네…….”
여자는 마치 이 동네가 익숙한 듯 천진난만하게 가게들을 둘러보았다. 무심히 지나치려던 가게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이자 발길을 돌렸다.
“아저씨! 잘 지내셨어요? 진짜 오랜만이죠! 저 기억하세요?”
건너 동네 항구에서 막 들여온 싱싱한 생선들을 옮기던 형준은 여자를 발견하곤 환한 웃음을 보였다.
“이야, 너 하나구나? 얼마만이냐!”
형준의 호탕한 웃음에 하나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수도권으로 이사를 한 후 약 7년 만의 방문이었다. 7년이라는 시간동안 어릴 적 그대로인 동네에 반가움을 느꼈다.
“아, 마리 할아버지는 아직 정정하세요? 지금 꽃집에 가면 볼 수 있으려나…….”
마리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꽃집 ‘마리 가든’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의 별명이었다. 동네에서 할아버지의 성함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나가 태어나고 걸음마를 떼고 처음 꽃집을 방문하기 전부터 그는 ‘마리 할아버지’였다.
“아니, 몇 년 전에 떠나셨다. 한 3년 쯤 됐을 거야. 널 많이 보고 싶어 하셨는데…… 시간이 기다려주질 않더구나.”
마리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친절하신 분이었다. 하나는 그런 할아버지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태어나기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런지 마리 할아버지 곁에서 떨어지기를 싫어할 정도였다. 할아버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가실 나이가 되셨으니 이렇게 아쉬워 할 수밖에.
“그럼 꽃집은…….”
“사라졌지. 꽃도 다 시들고, 그 분 만큼 꽃을 부지런히 가꿀 사람도 없으니까. 몇 달 전에 다른 가게가 들어왔다.”
“다른 가게요?”
“그래. 이참에 한 번 가보는 게 어떠니? 꽤나 묘해.”
하나는 무언의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곤 발걸음을 옮겼다. 형준은 하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크게 소리쳤다.
“하나야! 다시 이 동네에서 지내는 거냐!”
“네! 당분간 여기에서 지낼 것 같아요!”
* * *
도대체 어디가 묘하다는 거지? 아저씨의 말과는 달리 가게 분위기는 ‘묘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하나의 눈에는 새로 차린 티가 나는 말끔하고 평범한 모자 가게일 뿐이었다. 딱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가게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가게 이름이었다.
‘ 매드 햇츠Mad Hats ’
유리창을 통해 가게 안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하나의 어깨를 누군가 붙잡았다. 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니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자 보러 오셨어요?”
“네? 아니…… 저 그게…….”
“들어오세요.”
딱히 들어갈 마음은 없었지만 이 상황에 거절하기도 애매해 남자를 따라 가게로 들어갔다. 밖에서 본 것처럼 가게는 여러 종류의 모자들로 심플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꽃집이었을 때의 느낌은 모두 사라진 듯했다.
“찾고 계시는 모자 있으세요?”
“아, 아뇨. 모자를 사러온 게 아니라…… 꽃집이 있던 자리에 모자 가게가 생겼다고 해서 구경만 하려고…….”
“아ㅡ. 그러시구나. 다음에 오실 땐 손님과 잘 어울리는 모자를 찾았으면 좋겠네요.”
한 쪽 입 꼬리를 슬쩍 올리자 생기는 주름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첫 인상은 평범했지만 계속 보다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쉽지 않은 사람 같았다. 함부로 가까워지려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나는 무안하고 어색한 기류를 벗어나고자 급하게 인사를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한 남자가 가게로 들어왔고 남자는 꽃병을 들고 있었다. 하나는 꽃병에 있는 꽃에 시선을 멈췄다. 마리 할아버지가 제일 아끼던 꽃. 물망초였다.
“또 꽃이야? 관리도 잘 못하면서…… 그렇게 꽃이 좋아?”
꽃병을 들고 있던 남자는 카운터 옆 책상 가운데에 꽃병을 올려놓았다. 남자의 옆모습을 보니 굉장히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더라?
“…….”
“……안녕하세요.”
눈이 마주치자 하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인사를 했다. 남자는 무심히 하나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아무 말 없이 고개 짓을 했다. 눈빛이 너무나 익숙했다. 어디선가 저런 눈빛을 자주 받아 본 적 있는 듯했다.골똘히 생각해봤지만 기억은 나지 않았다.
아저씨의 말대로, 이 가게는 뭔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 - -
평화로운 작은 마을. 그 곳엔 한 소녀가 살고 있었어요. 그녀의 이름은 ‘ 그레이스Grace ’였습니다.항상 해맑은 웃음으로 마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곤 했죠. 그레이스는 바다를 참 좋아했습니다.그래서 마을 아래에 있는 큰 바다에 자주 놀러가곤 했어요.
어느 날 부모님께 꾸중을 들은 그레이스는 바다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드넓은 바다를 보고 있어도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는 않았어요. 그레이스는 바다 위를 헤엄치는 물고기의 꼬리를 발견하곤 소리쳤습니다.
“왜 다들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야! 전부 다 싫어! 엄마도, 아빠도, 바다도, 물고기들도 다 싫어! 다 짜증나!”
그때 바다가 그레이스의 말을 들은 건지 세차게 요동쳤어요. 깜짝 놀란 그레이스는 도망쳤어요. 하지만 세찬 파도가 그레이스의 뒤를 빠르게 밟았습니다. 결국 파도는 그레이스를 덮쳤고, 그레이스는 온 몸이 홀딱 젖고 말았어요. 그레이스는 울음을 터트렸고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잠잠해졌습니다.
“이게 뭐야! 바다도 날 이해하지 못하나 봐. 바다 너 정말 싫어!”
“이유도 없이 무언가를 싫어하는 건 나쁜 거야. 인간 녀석.”
바다가 말을 한 걸까요? 앞에서 들리는 소년의 목소리에 그레이스는 눈물을 닦고 눈을 떴어요.그레이스의 앞엔 상체는 사람, 하체는 물고기의 모습을 한 소년이 있었어요.
소년의 이름은 ‘ 산San ’. 머맨Merman이었죠.
“아무런 이유 없이 바다를 미워한 것에 대해 내가 벌을 준 거야. 앞으론 이런 일로 만나지 말자고. 인간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