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전원우
그녀를 사랑했다. 그게 죄라면 죄일지도. 나에게 남은 건 이제 아무것도 없다.
나의 인생의 절반, 혹은 전부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던 그녀는 이제 내 곁에 없다.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자기의 이름을 외쳐대는 나의 목소리에 답해줄 수 없는 처지가 돼 버렸다.
그래, 그녀는 그 날, 죽었다.
"신촌 살인 사건 알지."
"......네."
"시체에 빨간색 리본이 묶여 있었다고 해서 언론에서는 빨간 리본 살인사건인가. 아무튼 그렇게도 부르던데."
"......."
그냥 이 세상에서 은둔하고 싶었다. 사법고시 최연소 패스자, 천재 변호사. 이런 호칭들 따위 필요 없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잃고 난 다음, 난 갈 곳을 잃은 나그네마냥 허허벌판을 의미 없이 떠돌 뿐이었다.
그녀를 떠나보내고, 결국은 돌아올 곳이 직장 뿐이라는 씁쓸한 현실에 사무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어야 했다.
"sv기업이랑 연관된 일이야. 회장 손주가 벌린 일인 것 같은데, 처리를 잘 못 해서 언론에까지 올라간 모양이더군."
"......."
"널 담당 변호사로 고용하고 싶다고 했어. 그 사람들이."
"......그래서. 알겠다고 하셨습니까?"
"왜. 부담이라도 되는 거냐? 제 아무리 천재래도 이번 사건은 명백해서 부담스러운가 보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귓전을 때리는 말들이 너무나도 가혹했다. 담당 변호사라고.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목을 조르고, 숨통을 끊으려 한다. 이미 초점을 잃은 눈은 둘 데가 없다.
"......못 합니다."
"이미 다 계약까지 끝냈어. 몇 번이고 컨택했었는데 연락 안 받은 건 원우 너다."
"......못 합니다. 안 할 겁니다."
"너가 못 맡을 사건이 어디 있다고."
"......."
"이 바닥에서 발 빼고 싶으면 그렇게 하든지."
세상엔 도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인간은 그 틀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
정의는 늘 승리해야 한다. 그렇게 배웠다. 그리고 그것이 옳은 세상이다. 법조인의 세계, 내 눈에는 그랬다.
그러나 현실은 나의 이상을 무참히 짓밟는다. 결국 모든 것의 원동력과 원인은 '돈'이다.
물질적인 것을 쫓기 마련인 사람들은, 상식을 벗어나,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덕성을 간과한 채 자신만의 정의를 내세운다.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말해야 한다. 잘못이 없다고 말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차라리 발을 빼고 말지.
"이번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기 전까지는 발 못 빼."
"......."
"없었던 일로. 잘 처리해라. 그 인간들 요구에 못 미치면."
"......."
"너도 똑같이 되겠지."
*
'너가 김세봉 죽였지.'
'응. 내가 죽였어.'
'......죽였으면서. 지금 그걸 없었던 일로 만들어 달라는 거야?'
'돈만 주면 되잖아.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입 닥쳐, 새끼야.'
재판 날이다.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간 저 악마의 변호사는 전원우, 나다.
언론의 관심을 받은 사건이라 그런지 썰렁할 때가 많았던 재판장에는 사람들이 들끓었다.
원고석 주변에 울고 계시는 세봉이의 부모님이 보였다. 곧 쓰러지실 것만 같다.
나를 원망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재판 날, 나는 그냥 사라졌었어야만 했다.
"잘 할 수 있지?"
"......."
"원우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판사가 의사봉을 세 번 두드렸다. 둔탁한 소리가 재판장을 울렸다. 재판은 시작되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는 연기자가 되어야만 했다. 이미 짜여진 각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 김세봉 죽였어.'
'말했잖아. 너가 갖고 있는 건 다 뺏어 버리겠다고.'
'그래서, 그래서. 사람을 죽여?'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하지 마.'
'......김민규.'
'어차피 다 죽어.'
김민규는 김세봉을 죽인 것이 확실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부정하길 원한다.
그러나, 증거도, 물증도 없다. 다만 김세봉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김민규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사랑했던 사람의, 내 인생의 전부였던 사람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묵인시켜야 하는 사람이 나였다.
"사건 현장에서는 그 어떠한 흉기도,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부검 결과에 따르면 새벽 3시 경 목숨이 끊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고인 김민규는 새벽 한 시에서 네 시 경 압구정동의 술집에 있었고,
cctv 기록 역시 확보되었습니다."
"......."
"물증도,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최종 알리바이 하나만으로 사건을 단정짓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
"......피고는, 고 김세봉 씨 살인 사건이 타살이 아닌...."
"......."
"자...살, 임을 주장하는 바입니다."
*
재판이 끝났다. 피고인 김민규가 무죄임이 성립되었다. 모두 다 내 연극 하에 이뤄진 일이다.
조작된 부검 결과, 조작된 cctv 기록. 그러나 세상은 차갑게도 그 조작된 것을 사실이라 믿고, 진실을 은폐했다.
다리가 후덜거렸다.
장례식에서 처음 뵈었던 그녀의 부모님이 나를 바라보던 경멸의 눈빛,
흡족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악마같은 김민규의 눈빛. 이 순간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니, 죽어야만 했다.
"이번 건도 잘 했네. 괜히 너가 뜨는 게 아니야."
"......이제 후련하십니까?"
"......."
"김세봉. 제 여자친구였어요."
대표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전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장례식 다녀왔었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이제 나한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빈 껍데기. 인간 말종, 쓰레기. 나에게 어떠한 어구를 갖다 붙여도 모자라다.
결국 결론은 김민규의 개. 그게 나다.
"......사표 썼습니다."
"......."
"법대로 일을 한다고?"
"......."
"웃기지 마."
"......"
"돈의 개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냥 죽을까?
갈 곳 잃은 난파선, 그 잔해들 가운데서 아둥바둥 살기 위해 헤엄치는 선원.
무엇을 위해 달려온 건지, 이 길을 택한 건지.
난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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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갑자기 써보고 싶었던 원우 글입니다 허허허
사실 이거 떡밥이지롱....언제 연재될 지 모르는 원우 새 글의 떡밥입니다!
아 그리고 저 막콘 갑니다... 원래 첫콘 아니면 못 가는 거였는데 학원 시간표가 바뀌어서..^^..
양도 구해서 막콘 가기로 했습니다 나 찾아봐라~~~절대 못 찾을 걸
아마 유일하게 못생긴 사람이 저일 겁니다!ㅎㅎ 아주 찾기 쉽겠죠...봉들 예쁘던데..(울컥)
쿱데 포드레도 빨리 찔게요..ㅎㅎ...결말이 다가오니까 뭔가 꽁기꽁기 서운서운해서 찌는 걸 미루고 있는데..
늘 감사하구 사랑합니다~
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