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정비소
“우리 그만 헤어지자. 안 맞는 거 같아.
시발, 개 같은 박재호. 맞다. 나는 오늘 차였다. 그것도 아주 시원하게. 약 100일 정도의 아주 짧았던 연애는 정말 쓸모 없었고 허탈했다. 애초에 20살이랑 만나는 게 아니었어. 그래 너 어디 잘 사나 보자. 라고 꽤나 당차게 생각했지만…
“진짜 나쁜 놈이야, 박재호. 진짜 나쁜 놈이야.”
“알았으니까 그만 울어… 걔 나쁜 놈 맞아….”
이제 고작 18살인 나에게 첫 이별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그러게 곧 성인 되는 사람하고 만나서 좋을 거 뭐 있냐는 김남준 말을 들을 걸이라는 후회를 했다. 보란 듯이 카페에서 울어제꼈고 모든 이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에 충분했던지라 김남준은 크게 쪽팔렸는지 그만 좀 울으라며 타박을 했다. 방금 따끈따끈한 이별을 하고 온 친구에게 죽닥치라는 단어는 좀… 그렇지 않나…. 말 한 번 참 너무하다! 타피오카 펄이 잔뜩 들어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번 쭉 빨고 테이블에 고개를 박았다. 창 밖 사람들의 옷이 점점 짧아지는 것이 곧 여름을 뜻하나 싶었다. 계속 기분이 안 좋아보이는 내게 김남준은 이렇게 권했다.
“… 영화나 보러 갈래?”
“지금? 지금 가면 심야영화 아니야?”
“너 헤어졌는데 내가 한 번 사지 뭐. 기분 안 좋잖아.”
“커피도 너가 샀는데…?”
고작 아메리카노인데 뭘. 김남준의 말에 나는 입을 틀어 막았다. 이래서 친구는 돈 많은 놈으로 두라는 걸까? 당장 책가방을 들쳐 매었고, 빨리 가자는 손짓을 했다. 친구는 참 좋다. 영화관은 걸어서 가기엔 멀고 버스를 타기엔 꽤나 가까웠기에 둘은 결국 걷기로 했다. 무슨 영화 볼까? 재잘대며 걷다보니 영화관은 금방이었다. 개봉한 지 얼마 안 됐던 라이언킹을 보았고 팝콘을 사서 먹는 나를 향해 김남준이 물었다.
“넌 아무렇지도 않냐? 아까까지만 해도 울던 사람 맞아?”
“응? 아니 뭐… 헤어졌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냐…. 어차피 이제 학교에 없는 사람이고.”
나와 박재호는 동아리에서 만난 선후배 사이였다. 내가 1학년일 때 박재호는 3학년이었고 꽤 오랜 기간 썸을 탄 후 연애를 시작했지만 늘 싸우기 일쑤였고 20살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술 퍼마시며 놀더니 결국 헤어진 것이었다.
“그나저나 영화관 우리가 전세 낸 거 같다. 그치!”
해맑은 김남준은 고개를 저었다. 진짜 티 없이 해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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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으로도 접하지 못한 라이언킹은 나에게 큰 재미를 안겨주기에 적합했고, 영화가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영화관을 빠져나오면서도 영화에 대해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그 장면은 어땠고 이 장면은 어땠고… 라이언킹을 보면서 눈물을 살짝 훔쳤다는 건 나만이 아는 수치스러운 비밀이었다.
“그렇게 재밌었어? 난 진짜 별로였는데.”
“왜?”
“애니메이션 보다가 실사화 봐 봐. 너무 이질적이야.”
“난 애니메이션은 한 번도 안 봐서!”
“그래 너 잘났다.”
온갖 핑계로 티격태격대며 밖으로 나왔는데 아… 비가…. 어쩐지 영화관 올 때 냄새가 좀 축축하더라. 그 특유의 비 오기 전 냄새 있잖아. 그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시간은 2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택시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10분이었다. 당시 카카오택시는 흔치 않았기에… 겁 없는 고딩 둘은 그저 내리는 비만 쳐다봤다.
“아 진짜 어떡하지… 지하상가도 다 막혔는데….”
김남준도 꽤 당황하더니 곧 자신의 모자를 벗어서 내 머리에 씌워주었다. 뭐냐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나의 팔을 이끌고 횡단보도로 향했다.
“야 너 안 그래도 머리 밀어서 빡빡이인데 모자를 나 주면 어떡해! 너 탈모 와!”
“남자가 탈모면 보는 데에 지장 없지만 여자가 탈모면 좀 그렇잖냐.”
잔말 말고 써. 김남준의 배려 아닌 배려에 나는 다 컸다며 김남준의 팔을 툭 쳤다. 넓디 넓은 시내의 사거리는 아주 아주 컸고, 그만큼 신호가 바뀌는 건 늦는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는 두 개…. 기다리는 시간동안 김남준과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어, 야 뭐냐 이 시간에?”
“뭐야 김남준? 너 왜 여깄어?”
“얘랑 영화 봤지.”
“오~ 사귀냐?”
“꺼져 개새끼야.”
이 아주 늦은 시간에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나보다. 근데 동갑내기를 보니 또 신기하기도 하고. 김남준은 아는 사람인 듯 인사했고 사귀냐는 질문에 버럭 화를 냈다. 근데 되게 익숙하게 생겼는데…. 누구지?
“쟤가 전정국이야.”
“헐 쟤가 전정국이야?”
우리 동네에는 고등학교가 두 개가 있다. 안가고와 다리 건너 있는 충지고. 나는 안가고였고 전정국이라는 아이는 충지고 애였다. 충지고 애를 어떻게 아냐면 소문이 그닥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돼서 여자를 바로 사귀었는데 또 안 좋게 헤어졌다나 뭐라나…. 심지어 그 여자애는 내가 아는 여자애였다. 그렇게 뒷담을 해 대길래 내 머릿속에도 〈전정국은 나쁜 놈>이라는 이미지가 박혀있었다. 김남준과 개짱친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좀 많이 놀라긴 했었지만…. 어쨌든 전정국이 저렇게 생겼구나를 처음 알았다. 소문에 비해 생긴 건 좀… 멀쩡하게 생겼네…. 키는 좀 작다. 그것이 전정국과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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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종소리가 울리고 난 외쳤다. 드디어 방학이다! 전 날에 반 친구들끼리 했던 합숙 탓인지, 바닥에 쪼그려서 잠에 든 탓인지 어깨와 온 몸은 뻐근해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중이었다. 새벽 내내 김남준이 어찌나 밖으로 불러내서 운동장에서 수다를 떨게 하는지 자고 싶어도 못 자서 피로는 배로 쌓인 상태였다.
“피방 기?”
“닥 기;;”
김남준이 날 피방으로 꼬시기 전까지는. 그 당시 피시방 인기 게임은 리그오브레전드라는 롤이 인기가 제일 많았지만 난 늘 언제나 유행에 뒤처지던 사람이었으므로 옵치에 빠져있었을 때였다. 김남준은 무슨 옵치냐면서 늘 면박을 주어도 피방 가면 함께 해 주었기에…. 은근 츤데레다.
“아 시발 힐 달라고 힐!!”
“아 너만 피 없냐? 다 없어 병신아!”
“메르시 그럴 거면 왜 하냐?”
“뭐 이 개새끼야?”
그렇다 그렇다. 츤데레긴 하지만 늘 게임에 있어서는 다혈질인 우리 김남준 씨는 늘 그렇듯 나에게 욕을 뱉었다. 아니 그러게 경쟁전을 왜 해서는…. 안 한다며 마우스를 집어 던지는 김남준의 행동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
“어어? 마우스가 아파해. 당장 사과해.”
“… 미안하다 마우스야.”
와중에 사과하는 김남준이 꽤 웃겼지만 욕을 먹은 게 은근 분해서 옵치를 끄고 라테일이나 할까 싶은 생각에 ESC 키를 누르려고 했지만.
“김남준 너 오늘 방학했어?”
또 김남준을 아는 체 하는 녀석이 등장했다. 아니 이 놈은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
“너네도 방학했어?”
“충지고랑 안가고는 늘 겹치네.”
충지고? 고개를 돌리니 전정국이 서 있었다.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고, 순간의 정적이 흘렀다. 김남준은 둘 사이의 기류를 보며 눈치를 보고는 말했다.
“얘는 충지고 전정국. 얘는 알지?”
“어, 알지. 김여주. 너랑 맨날 붙어다니잖아. 안녕.”
“아… 어 안녕.”
그렇다 그렇다. 내 MBTI는 ENFP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낯을 가렸었다. 더군다나 남자라면 더욱 더. 사실 원래 싸가지 없긴 하지만…. 여하튼 전정국의 인사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니 눈썹을 올린 건 전정국이었고 당황한 기색을 보인 건 김남준이었다.
“얘가 원래 낯을 좀 가려!! 게임 하러 왔지? 얼른 가 봐!”
전정국은 이내 자리를 떴고 김남준은 내게 성격 좀 고치라며 한 소리를 했다. 그나저나 웃긴 놈이네 진짜. 내가 말 한 번 그렇게 했다고 표정을 띠껍게 굴어?
“쟤 왜 이렇게 싹퉁바가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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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알아”
“김남준이랑 같이 붙어다니는 애? 알지. 왜?”
“걔 원래 그렇게 싸가지가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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