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ㄴ,누구세요?! "
" 어, 너 내가 보여? "
" ... 네? "
" 잘 찾아왔구나. "
오, 나의 귀신님!
1
작년 봄이였던가 김한빈을 처음 만났다. 수두룩히 쌓인 과제에 실성하듯 바닥에 누워 선잠을 청했다.
눈을 떴을 땐 웬 남자가 나의 눈 높이에 맞춰 누워있었고 잠결에 바라 본 모습은 하얗고 초췌하며 눈은 탁한것이 꼭 나와 같은 존재임은 아닌 듯 했다.
.. 그냥 평생 잘 걸 그랬다.
" 아, 언제까지 붙어 살 건데? "
" 뭐래. 나 죽었는데? "
" 너랑 무슨 말을 하겠냐 내가.. "
귀신이면 곱게 천국이나 가지, 친히도 내 인생에 시어머니가 되셨다.
2
이번 학기에 같은 수업을 듣게 된 선배와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왔다. 이 사람 잘 생기기만 하면 됬지 성격까지 좋은게 안 좋아하고는 못 배기겠어.
" 네 선배, 저 지금 들어왔어요! "
" ... "
" 오늘 집 앞까지 바래다 주시고 진짜 고마ㅇ.. "
내가 꼭 쥐고 있던 핸드폰이 바닥으로 큰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 어이쿠, 떨어졌네. "
" ... 미,친 김한빈 "
3
" 오늘 우리집에 손님 오니까 얌전히 있어라? "
" 누가 와. 너 친구 없잖아 "
" 많거든? 아는 선배 올거야, 진심 조용히 있어 "
" 핸드폰 떨궜을때 전화하던 놈이야? "
" 어. 덕분에 힘들었다 "
" 데려오지 마 "
쇼파에 앉아 나를 무섭게 쏘아 본다. 싫어, 넌 그냥 조용히만 있으면 된다니까?
자기만 무서운 줄 알아, 나도 그 눈빛에 받아치듯 누가 들어도 짜증이 날 법한 말투로 대꾸했다.
우리 사이의 신경전에 부엌 쪽에서 쨍그랑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퍼졌다.
" 여기 난장판되는 거 보고싶어? "
미,친 김한빈. 도움이 안 돼
4
악몽을 꿨다. 어쩐지 오늘 따라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았다. 시야도 흐리고 일어날 때 마다 세상이 흔들리는 광경을 보곤 했는데
자다 일어나 다시 겪은 그 고통들은 열 배는 더 힘들었다.
감기 인가? 아니 그러기에는 너무 아파. 꿈에서 본 어두운 것들이 눈 앞에 떠오른다. 아파 무서워 자고싶어
" 왜 이래 "
" ... 나 아파 "
" 감기야? 내가 있는 곳은 춥다고 했잖아 "
노크도 없이 언제부터인지 김한빈은 침대위에 걸쳐 앉아 내 머리 맡에서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럴 땐 귀신같이 알아가지고.. 아니 귀신이지. 그런데 한빈아, 나 너무 무서워.
" 넌 귀신이랑 같이 살면서 뭐가 무섭다는거야? "
가슴께를 간신히 덮던 이불이 나의 목 위를 덮었다.
" 여기 있을게. 이제 자. "
말을 마치고는 내 눈 위에 손을 올렸다.
미,친 김한빈이 이렇게 따뜻했었나.
5
현실적인 꿈을 꿔 본 적은 몇 없다. 내 몸이 개미만 해 진다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동물이 되는 꿈 들이 대부분이였다.
포근한 이불 속에서 꾼 오늘의 꿈은 조금 달랐다.
익숙한 기분에, 바람은 차지 않았으며 내 손가락 사이를 간질이며 지나갔다. 바람과 함께 흔들리던 내 옷깃을 잡는 손이 보였다. 입을 열고 싶어도 난 많은 것을 머금고 있었고, 뱉을 수 없었다.
6
아련한 꿈이였다. 몽롱한 이 기분을 오늘 하루 붙잡고 살거야. 부엌은 엉망진창 이라는 네 글자로 형용하기 충분했다. 가스레인지 위의 냄비는 제가 담던 것을 다 비워내지 못 한 채 쓰러져있었고 찻장 안의 접시들은 정리 하느라 애 쓴 내 수고를 무시한 듯 제 각각 어질러져있었다. 김한빈은 웃으며 식탁 위의 접시를 가르켰다.
7
요리할 때 마다 전쟁터 만드는 게 취미냐?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쪽 입고리를 들어 보였다. 김한빈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배고프다는 감정은 없어졌다나 뭐라나, 내가 수저를 들 때는 항상 내 맞은 편에 앉아 특유의 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는다. ..재수 없기로는 세계 최강일텐데.
8
김한빈의 뒷 수습을 하느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쇼파에 쓰러지듯 기댔다. 아프지 말라고 한 행동이지만 덕분에 몇 십배는 더 머리가 지끈거렸다. " 왜, 영화보면 귀신들은 다 한이 있어서 여기에 있고 그러잖아 " 치, 좀 기분좋게 얘기해주면 어디 덧나? 내가 귀신에 대해 공부 할 일이 뭐 있다고 김한빈이 세상에 온 이유는 뭘까. 하늘에 가지 못 하는 이유가 뭘까. " 나 같은게 여기에 있으면 죄다 한 때문이라고 하더라 " " 왜 내 존재의 이유를, 한이라고 표현하는거야 " 꽤나 진지한 표정 이였다. 그러게, 나도 궁금해. 등받이의 곡선에 맞춰 기대어진 나를 조용히 바라보다 온기가 없는 손으로 내 볼을 두어번 두드렸다. " 넌 알게 될거야 "
9
그 날 이후로 아프던 몸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현관 문 앞에서 몸을 숙여 컨버스를 신었다. 그제서야 주황색의 빛이 떨어졌다.
" 응. "
제가 귀신임을 증명하듯 언제부턴가 소리 없이 와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 아, 알겠어 "
" 너 내가 볼거야 걔 말고도 남자는 다 피해라 " 언성이 높아지기 전에 급히 문을 열고 나왔다. 내 층에 서 있는 엘레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일 층을 눌렀다. 내 모든 기관이 반응 할 만큼 높은 소리는 소름돋는 광경을 만들어냈다. 엘레베이터 버튼들이 모두 눌려있어 빨간 빛을 띄고 있었고, 그마저도 놀라기 전에 엘레베이터는 바로 밑 층에 멈추었다. 901호 앞의 자전거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제 기분이 나쁘면 항상 이런 식으로 티를 냈다. " ..미,친 김한빈. 저승 갔으면 좋겠다. "
10
나는 요즘들어 내가 느낄 수 있을 만큼, 예민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나리의 최강자, 장난 치기의 최강자. 김한빈과의 마찰이 잦아졌다. 김한빈은 질투심이 많았다. 내가 많은 사람과 엮이기 전 부터 조금이라도 남자와 가까이 있는 꼴을 못 봤다. 전화 통화 중, 핸드폰을 떨어트리거나 모든 신호를 끊어버리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서 집 주변 골목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으면 가로등 불빛을 꺼버린다던가, 김한빈이 이 집에 오고 얼마 안되서 친한 남자 친구를 집에 들였을 때는 난장판을 금치 못했다. 난 그런 김한빈을 이해했고 남자와 멀어진 삶을 사는 것은 익숙했다. 과 선배부터 시작하여 내가 남자랑 있으면 생기는 특이한 현상들에 나는 우리 학교에서 이상한 여자로 낙인 찍혀버렸다. " 사람들이 나를 피해. 내가 지나가면 수근거리는게 다 보이고 다 들려 " 그런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한들.
김한빈은 말이 없었고 너는 온갖 짜증을 늘여놓다 제 화에 못이겨 방에 들어갔다.
사실 적으로는 네게 큰 피해가 없는데도 김한빈에게 화 부터 내게 되는 모습이, 너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너 자신을 이해하려 애쓰다가, 울다가, 화를 내다가. " 미안해 "
네 머리 위로 핏기 없는 손이 가볍게 올려졌다.
커튼 틈 사이로 흐르는 달 빛에 비춰져 반짝이는 네 머리를 쓸었다.
독방에서만 쓰려고 했는데 글잡 가는 걸 원하는 콘들이 많을 줄 이야.. 8ㅅ8
이제 다시는 안 오려고 했는데 덕분에 자주 올거야... 소재 준 콘 싸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