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주장 정택운X양궁요정 차학연
01.
2012년 7월 25일. 런던 올림픽의 개막식을 이틀 앞둔 이 시간, 각국의 선수들이 모인 런던의 선수촌은 굉장히 어수선했다. 영국의 수도에서 열리게 되는 이번 하계 올림픽은 런던이라는 것 만으로 한국 국가대표들을 포함한 여러 아시아 선수들이 엄청난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함께 태릉에서 훈련하던 동계 선수들마저도 무지 부러워했으니.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음식.
선수촌에서 제공하는 저녁 급식이 다 끝난 이 시점, 초콜릿을 입에 잔뜩 물고 각종 브랜드의 감자칩을 여러 봉 든 채 걸어가는 뒷모습은 누가봐도 나 차학연이요하고 광고하는 것만 같았다. 에잉. 영국 음식 더럽게 맛업써. 투덜투덜 거리며 숙소로 향하는 학연의 뒤엔 훨씬 더 커다란 봉지를 든 상혁이 따라가고 있었다.
"형 우리 랭킹라운드가 낼모레예요. 과자 좀 그만 먹어요 제발."
"야 난 여기 밥 절대 못먹어."
"아 맛 없는 건 아는데 살쪄서 시위 당기다 두턱되면 그거 평생 따라다녀요?"
"내 팬들은 귀엽다고 난리날껄?"
"어휴 정말... 아 형 그나저나 택운이형 보러 안갈거예요? 원식이형도 벤치 아니라든데."
"정택운? 걔 뭐?"
"내일 축구 B조 예선 1경기던데 응원안해요?"
"그런건 문자 한 통이면 충분해. 랭킹라운드도 준비하러 가야지. 보러가려면 너 혼자가."
"헐. 재환이형이랑 홍빈이형도 같이 가는데요?"
"난 됐어. 공차는 게 뭐가 재밌다고. 야, 말 나온김에 이거 다 숙소에 갖다놔주라. 나 몇 번 쏘고가게. 부탁해!"
"아 형 진짜!"
"대신 프링글스 어니언 너 먹어!"
안그래도 넘쳐나는 상혁의 손에 자신의 커다란 과자봉지들을 꾸역꾸역 쥐어주며 양궁장으로 달려가는 학연에 어쩐지 초라해보이는 양궁팀 막내 상혁이었다.
-
이미 깜깜해져서 조준이 힘들기 때문일까. 아무도 없는 야외 양궁장에 오후 훈련이 끝나고 캐비닛에 넣어두었던 활을 꺼내들었다. 쯧쯧 다들 이렇게 게으르고 핑계가 많아서야 되겠어. 나 같이 꾸준해야지 사람이. 초콜릿을 꿀꺽 삼키고 화살을 하나 꺼내들었다. 후우 깊은 숨을 내쉰 후 가슴께까지 활 시위를 잡아당겼다.
슈웅하고 70m의 잔디밭을 시원하게 가른 화살은 가장 작은 노란 원에 둔탁한 소리를 내고 꽂혔다. 나이스 10점. 이윽고 날린 8발의 활도 9점 혹은 10점을 명중했다.
"잘하는데?"
"으왁! 깜짝아!"
깜짝 놀라 흐트러진 집중력에 마지막 한 발은 6점. 뒤를 돌아보니 땀을 뻘뻘 흘린 채로 유니폼을 입은 택운이 더러워진 축구공을 들고 서있었다.
"아 뭐야, 놀래라. 왜 왔어?"
"너 있을 거 같아서."
"뭐람. 진짜 왜 여깄어?"
"방금 상혁이 만났어."
"아아, 어쩐지..."
"너 내일 안올거야?"
"어?"
"멕시코랑 하는 경기."
"한상혁이 일렀냐?"
"안올거냐고."
"...아니! 갈거야 당연히! 내가 안갈까봐 걱정했어?"
"그럼 됐다."
제 할 말만 하고 시크하게 퇴장하는 택운에 살짝 당황스런 학연이었다. 사실 갈 생각은 없었다. 안간다고 하면 열흘은 삐쳐있을게 분명해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경기를 보러 오라고 한 건 드문 일이라 난감하긴 했으나 양궁에 있어서 랭킹라운드가 컨디션 조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 알기 때문에 쉽사리 가겠다고 단정지을 수 없었다.
ㅡ
랭킹라운드: 양궁 개인전을 치룰 64명의 선수를 뽑는 자리
6빅스 모두 모티브가 되는 선수들이 있어요:) 사건이나 선수의 업적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면서 현실감을 높여보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