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생 부탁드려요 ~
" 오빠! 오늘 시간 돼요? "
" 어 민정아, 방금 같이 있던 사람은 누구야? "
" 네? 여주요? 김여주? "
" 김여주.. 그래, 고마운데 시간은 없네. 안녕. "
/
강의실에 앉아 발표를 앞두고 잡생각에 빠진 형원이 여주의 이름만 벌써 여러 번을 되뇌었다. 애꿎은 사람 한참을 기다리게 만들더니, 여기 있었구나.
복학 기념을 핑계로 먹자골목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때. 평소 술자리에는 더더욱 참석하지 않는 형원을 주인공이랍시고 억지로 앉혀놓곤 저들끼리 더 신나서 부어라 마셔라 하던 인간들을 지켜보다 지쳤을 때쯤 마주쳤다. 바람 좀 쐬겠다고 나온 가게 밖 흡연 구역에서, 상당히 취해 보이는데 일행도 없이 멀뚱히 시멘트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여주를.
형원 역시 담배 한 대 하려 나왔으니 좁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마주 섰는데, 초점 없어 보이던 여주의 시선이 먼저 제게로 와 닿았다. 주머니 어딘가에 쑤셔 넣어둔 라이터를 찾고, 입에 문 담배의 캡슐을 깰 때까지. 뚫어져라 대놓고 시선을 쏘아대던 여주가 대뜸 손을 뻗었다.
' ...담배 하나 드려요? '
' 씨이.. 팔.. '
' 예? '
다짜고짜 욕지거리를 해서 당황스럽기도 잠시 두서없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집중했다. 언뜻 들으면 뭐라는지 알아듣기 힘든 말들을 대충 끼워 맞춰보니 자신은 비흡연자라던가, 그게 전 남자친구가 피던 담배와 같은 거라던가. 그렇다고 욕할 것까지 있나 싶은 것들. 꼬이는 혀를 봐서 그러려니 싶기야 했다만.
아무튼 간에 여긴 흡연구역이고, 형원은 불을 붙이기 직전이었다지만. 코앞에 비흡연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입에 있던 담배를 도로 물렸다. 사실 담배 때문에 제 입술로 노골적이게 닿는 시선이 부담스러운 게 더 컸지만.
그렇다고 발길은 떨어지지가 않고, 하필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신경이 쓰여 물었다. 일행 어디 있어요? 웃기게도 담배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한층 누그러져 이번엔 눈을 마주친 여주가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인지 다시 한번 물으려는 찰나 여주에게 선수를 뺏겼는데, 하나같이 황당하기 그지없는 소리뿐이었다.
' 오... 그 새키..보다 훨씬 잘생겼어여, '
' ... '
' ..버노점. '
이쯤 했으면 그냥 무시하고 돌아갈 만도 했는데 돌이켜보니 더 웃긴 건 본인이었다. 거기다 대고 천천히 또박또박, 제 번호를 불러줬으니. 후에는 잘못 입력해서 연락을 못 하나, 역시 직접 찍어줄 걸 그랬나 하고 후회까지 했더란다.
/
" 형이 여주 누나는 왜요? "
혹시나 싶어 물어본 창균이 여주를 아는 듯이 말해 화색이 돈다. 덕분에 발표는 거의 망쳤지만, 시끄럽던 속이 조금이나마 정리됐다. 당장 뭐 때문에 여주를 만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으면서 기대감부터 앞선다. 아마 일주일 넘도록 여주의 연락만 기다린 형원을 알면 누구든 기함을 했을 테다. 학교에선 철벽은 둘째치고 무성욕자가 아닐까 하는 소문이 알게 모르게 돌던 중이라.
" 그냥 좀, 관심이 생겨서. 연락처 좀 알려줘. "
" 어.. 안 될 것 같은데. "
" 왜? 그런 거 안 좋아하려나.. "
내 번호는 홀라당 먹튀했으면서. 그치만 알 것도 같은 심정이라 조심스러워진다. 사실 진작 기대는 접어두고, 여주가 제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렸을 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상태여서 더더욱. 지금껏 연락도 아무것도 없는걸 보면 술김에 그렇게 당돌한 일을 벌였겠지. 그래서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들어 더 원망스럽기도 하고.
"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안 돼요. "
" 뭐야, 너한테 피해 안 가게 할 테니까 일단 줘봐. 뒷감당은 내가 할게. "
" 형 여주 누나랑 알아요? "
" 아니. 알고 싶어졌다니까. "
의미 없는 짓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치만 막상 다시 여주를 발견하고 보니 접고 싶지 않은 거다. 뭐 하나 기억하지 못한다면 다시 만들어내면 될 일이니까. 답지 않은 다짐에 스스로도 어색했지만 간만에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얼레리 꼴레리 채형원 감겨버렷대요~~ 이상 외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