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chio nero (검은 눈)
w. caramella
모든 걸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남아있질 않아.
떠날 거야. 아주 멀리…….
세 걸음. - 종인&백현의 과거
“너 하나만 보고 살아온 난, 네가 없어져 버리니까... 나에게 남은 게 없더라고.”
종인에게 백현은 전부였다.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
미국의 한 사립 대학.
다른 사립 대학과 비교하여 동양인 학생이 유독 없는 학교로 유명하였다. 학생들의 대부분이 유명 인사들의 아들, 딸이었고, 어릴 때부터 백인우월주의에 물들여졌던 학생들 때문에 학교 자체에서 동양인의 입학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학교의 안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한 동양인이 떡하니 벤치에 앉아있었다. 지나가며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은 그를 'Kai'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의 한국 이름은 김종인이다.
-야, 저기 쟤 귀엽게 생겼지?
벤치에 기대앉아 음악을 듣던 종인에게 파란 눈을 가진 한 남자가 다짜고짜 영어로 말을 했다. 종인은 그 남자가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 곳에는 자신과 같은 동양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손에는 책을 쥐고 머리는 단정하게 정리한 그는 수업을 늦었는지 뛰어가는 중이였다.
-Kai! 쟤도 너랑 같은 한국인이래. 이름은 백현. 나이는 너랑 동갑. 패션 디자인 학과라던데?
“... 귀엽네.”
-뭐라고? 야! 영어로 말해, 영어로! 너희 나라 말 나 모른단 말이야.
-귀엽다고.
종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곳은 디자인학과들이 모여 있는 한 건물 앞. 종인은 백현을 따라 간 것이었다. 그리고 종인은 건물 앞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백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음악을 50곡 쯤 들었을까, 그 때 건물 안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수업을 마친 모양이다. 그런데 30분을 기다려도 백현은 나오질 않았다. 종인은 백현이 이미 빠져나갔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때, 백현이 건물 안에서 나왔다. 여전히 책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헝클어진 머리와 비틀거리며 걷고 있다는 것. 종인은 쓰러질 듯 걸어가는 백현의 뒤를 조심스레 따라 걸었다.
백현은 바람에 날려 갈 것처럼 휘청거렸다. 그리고 결국 몇 발자국 가지고 못하고 백현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뒤에서 따라 걷던 종인은 깜짝 놀라 백현에게로 뛰어갔다. 백현이 정신을 잃은 것을 확인한 종인은, 백현을 들어 올려 안았다. 그리고 기숙사로 향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래도 남자라고 좀 통통해 보였는데 막상 안아보니 이곳의 여자아이들보다 가벼웠다. 기숙사에 들어와 자신의 침대에 백현을 눕히고 난 뒤, 종인은 백현을 한참 쳐다보았다. 백인들만큼은 아니지만 동양인치고는 하얀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얼굴만큼이나 하얀 목에 있는 키스마크까지. 종인이 그것을 발견한 순간 백현은 뒤척이더니 눈을 떴다.
-...누구세요...?”
“너 쓰러져 있는 거, 주워왔어. 그리고 나도 한국인이니까 한국말해.”
종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린 백현은 실례했다는 말을 남기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런 백현을 쳐다보던 종인은 자신을 지나쳐 나가려는 백현의 손목을 잡았다.
“고맙다는 말, 안 해?”
“... 실례했다고 했잖아요.”
“그거랑 그거랑 같냐?”
“... 감사합니다. 이제 놔주세요.”
잡혀있는 손목을 빼보려고 이리저리 꿈틀거리던 백현의 손목을 더 꽉 잡았다.
“아..! 아파요...”
“내 이름 김종인이야.”
“...”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니까, 기억해두라고.”
종인은 백현의 손목을 놔주었다. 그리고 백현은 종인의 말에 넋을 놓고 서있었다. 종인 역시 그런 백현을 가만히 내려 보았다. 백현은 종인을 보며... 설레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먼저 본인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백현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다 백현을 무시하며 백현을 범하려고만 하였다. 백현의 이름도, 고향도 그 어떤 것도 궁금해 하지 않았었다. 단지 백현의 몸만을 원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런 백현에게 종인은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내 이름은... 변백현이에요......”
“알아.”
“...갈게요. 고마웠어요.”
백현은 종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 뒤 방을 빠져나갔다. 백현이 떠난 방에 혼자 남은 종인은 궁금해졌다. 수줍은듯하면서 목에는 어울리지 않는 키스마크를 가진 백현이.
다음 날, 종인은 어제 백현이 수업마치고 나왔던 시간에 맞춰 백현의 학과 건물 앞에 서있었다. 때마침 백현이 건물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서려던 종인은 무언가를 보고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백현은 건물을 나오면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는 어제보다 더 헝클어져있었다. 종인은 백현이 건물 구석으로 가서 소리 죽이며 울고, 헛구역질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종인은 알 수 있었다. 백현이 누군가에게 억지로 범해지고 있다는 것을. 어제 키스마크를 보고 예상은 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그저 혼자서 울며 헛구역질하는 조그만 아이가 안쓰러웠다.
“울고 싶은 만큼 울어. 소리 안내려고 애쓰지 말고.”
백현은 누군가가 자신을 위로해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냥 서러웠다. 항상 백현은 혼자였다. 그런데 오늘은 누군가 자신의 곁에서 위로를 해준다. 참지 말라고. 종인은 그제야 소리 내어 우는 백현이 안쓰러웠다. 매일 이렇게 참아왔을 백현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저 말 한마디에 저렇게 아이같이 울어버리는 백현을 보며 종인은 깨달았다.
‘저 아이구나. 내 평생 딱 한 번 만날 수 있는 숙명이라던 사람.’
백현은 울음을 그쳐갈 때쯤에서야 자신에게 위로를 해준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종인이었다. 어제도 쓰러진 자신을 도와주었던 한국인.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아준 사람. 백현은 자신의 비밀이 들켰다는 것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다가와준 종인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백현 역시 종인에게 빠져들었다.
둘은 그 뒤로 항상 붙어 다녔다. 종인은 백현의 수업이 끝날 때 쯤 강의실 앞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백현이 나오자마자 백현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종인과 백현이 매일 붙어 다니자 아무도 더 이상 백현에게 몹쓸 짓을 하지 않았다. 백현은 그런 종인에게 고마웠고, 날이 갈수록 종인에 대한 마음은 더 커져만 갔다. 그러나 백현은 종인이 그저 자신이 불쌍해서 옆에 있어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을 티내지 않았다. 거기다 향수병까지 겹친 백현은 나날이 시들어가는 꽃 같았다.
여느 날처럼 종인은 백현을 데리러 왔고, 백현이 강의실을 나오자 백현을 데리고 휴게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휴게실 의자에 백현을 앉히고 종인 또한 맞은편에 앉았다.
“백현아.”
“응? 왜 종인아?”
“나... 한 달 뒤에 한국 가.”
“......”
종인의 갑작스런 통보에 백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가기 전에 너한테 해야 될 말 있어.”
“...뭔데...”
“변백현 나 봐봐.”
종인의 말에 백현은 애써 눈물을 참고 고개를 들어 종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백현아. 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해?”
“... 응.”
“그날 우연히 쓰러진 너를 발견한 거 아니야.”
“......”
“너 따라 갔었어. 한국인이라는 작고 하얀 너에게 관심이 가서.”
“......”
“너 건물 구석에서 울던 날. 뒤에서 지켜보려고만 했는데 내가 아파서 안 되겠더라.”
백현은 종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종인은 여전히 백현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처음부터였어. 네가 좋았던 거.”
백현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저 자신을 불쌍하게만 여기는 줄 알았던 종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처음부터 백현을 좋아했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백현은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매일 밤 종인이 고백하는 꿈을 꾸곤 했었다. 그렇지만 꿈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했다.
“이제야 이런 말해서 미안해. 그런데 꼭 해주고 싶었었어.”
“종인아...”
“나랑 같이 한국가자는 말 안 해. 넌 네 삶이 있는 거니까. 대신 나 너 보러 미국 자주 올 거야. 이젠 시작해보자, 백현아.”
백현은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기지 않았다. 종인은 아무런 말없이 우는 백현에게 부추기지 않았다. 그저 백현이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한 시간 동안 백현을 보고만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자 백현은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그리고 자신의 대답을 기다려준 종인에게 딱 한마디를 하며 웃어주었다.
“사랑해, 종인아."
-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연애. 가끔씩 미국으로 오는 종인을 만나며 두 사람은 사랑을 이어갔다. 백현은 종인이 없는 미국에서 더 악착같이 공부하였고, 그 결과 32살이 된 지금 세계에서 알아주는 유명 디자이너가 되었다. 종인 또한 한국으로 돌아와 공연 디렉터로서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고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백현이 변하기 시작했다. 디자이너 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백현 스스로가 자신을 버리고 있었다. 사랑 앞에 수줍어하던 소년은, 어느 새 스스로의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갇힌 남자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종인마저 자신의 울타리에서 빼내려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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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까 작가SAY에서 오늘 올리기로 약속드린 '세걸음'째 입니다. (저는 약속은 잘 지키는 작가입니다-_-*)
이번편은 종인이와 백현이가 처음 만나 연애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풀어봤어요.
사실 조금 더 뒤에 풀어놓을 생각이였는데... 제 소설에서는 백현이가 너무 못되게 나오는 것 같아서...
독자님들이 백현이 미워하실까봐ㅠㅠㅠ 미리 백현이의 상처를 조금 꺼내보았습니다.
백현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ㅠㅠ 제 소설 속 백현이는 상처가 많은 아이랍니다ㅠㅠ
그리고 작가SAY에서 말씀드렸던 대로 이번 작품은 단편으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구요,
다음 작품은 제 블로그에서 장편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갈겁니다.
혹시 원하시는 스토리나, 커플이 있다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전 독자님들을 사랑하고, 독자님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caramella이니까요!
독자님들, 행복한 일요일보내세요~^^*
저는 시간이 되는대로 좋은 스토리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참고로 다음편은 다시 현재로 돌아갈 예정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