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별을 해요. 나는 사랑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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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신사옥 오픈을 앞두고 사옥에 전시할 미술품을 고르고 있는데 아주 익숙한 작품이 눈에 들어 왔다.
"Rainy Day"
준희의 그림이었다.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미술관 한 쪽 작업실에서 준희와 재현만 볼 수 있던 두 사람만 알아 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 그 작품을 그리던 준희가 떠올랐다.
"준희씨 그림은 비 내리는 날이 많네요. 비오는 날이 좋아요?"
"비는 구름이 물기를 잔뜩 머금어서 더는 무거워 견딜 수 없을 때 내리잖아요. 울고싶은 날 비를 보면 나 대신 울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나는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니까."
"그랬구나"
"울고싶을때 마다 그렸어요. 나 대신 마음껏 울어 달라고, 그 집에서 사는 동안 마음대로 울어본 적 없거든요. 뭐 마음대로 웃어보지도 못했지만요..."
"나 때문이네, 이제 비 올때 마다 달려올게요. 비 올 때 마다 우산 없다는 말, 거짓말 인지 알면서도 속아줄게요."
"아 진짜"
"나때문이니까 이제 나한테 기대서 울어요."
"재현씨. 나 .. 그림 다시 그리게 해 줘서 고마워요. 그냥 꿈으로만 두지 말라는말, 나 한테는 제법 힘이 되는 응원 이었어요."
"준희씨는 준희씨 삶 살아야죠. 나는 못했지만 준희씨는 하게 해줄거에요."
울고 싶은 날 비를 보면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아서 비 오는 날의 그림을 많이 그린다고 했는데, 비 올 때 마다 곁에 있겠다고 약속했는데.
나는 못했지만 준희 씨는 준희씨 삶 살게 해주겠다는 말은 들어준 건가.
이제와 보면 그 두가지를 한번에 약속해 줄 수 없었네. 내 옆에 있으면 준희씨 삶은 없었을 테니까.
준희가 원하던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던 재현은 일부러 준희가 어디에서 지내고 있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찾지 않았다.
사람쓰고 돈쓰면 충분히 받아 볼 수 있는 정보였지만, 그렇게나 힘들어 했던 재경을 떠났으니 더 이상 감시받고 사람이 따라붙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잊어가려고 했는데, 준희의 작품이 눈에 띄었고, 작가의 말과 인터뷰를 찾아보게 되었다.
작가에 대한 정보는 예상과 같이 잘 알려지지 않아 있었고 작품에 대한 설명만 나와있었다.
저의 작품들을 "비오는 날" 이라는 컨셉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어요. 울 수도 없는 날들이 있었는데 비가오는 창밖을 보고 있으면 하늘이 저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았거든요.
그 이야기를 듣더니, 비가 올때마다 제 곁에 있어 주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 때문에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어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알려준 사람이에요.
제 삶에서 다시는 누군가를 만나서 그렇게 사랑 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해요. 다만, 그 사람의 세상이 저의 세상과는 너무 달라서 그 세상을 버텨내기가 버거 웠어요.
맞지 않은 자리에 저를 우겨넣고, 맞춰가려고 애써봤는데, 한계가 있었어요.
저는 계속 힘들어 하고, 그 사람은 그런 저를 보면서 힘들어 하고, 그게 반복이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저 때문에 힘들어 지는데 그걸 어떻게 옆에서 지켜봐요.
그 사람과의 저의 세상이 달랐을 뿐이에요.
사랑해서, 너무 아껴서 각자의 세상에서 살아가기로 한 거예요.
담담한 진심이 담겨있는 준희의 인터뷰 였다. 떨어져 있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같았다. 아직도 서로를 바라고 바라보지만 서로의 세상이 너무 달랐을 뿐이었다.
준희가 데뷔작으로 내 놓은 10개의 작품은 모두 재현과 함께 한 기억들이었다.
두 사람만 알고 있기에, 작가명으로 본명을 감추었기에 준희는 있는 그대로의 진심을 보여줬다.
"그 사람과의 저의 세상이 달랐을 뿐이에요.. 그 사람과의 저의 세상이 달랐을 뿐이에요."
준희의 인터뷰에 나와있던 말을 재현은 몇번이고 속으로 곱씹었다.
"한 작품 꽤 오랫동안 보시는 것 같던데, 그 작가님으로 컨택 해 볼까요?"
"아니요. 작가님 컨택은 하지 마시고 이 작품만 개인적으로 구입할게요. 신사옥 전시 작품은 좀 더 둘러보고 결정 하겠습니다."
작품을 오랫동안 보고, 작가가지 찾아봤으니 당연한 수순으로 재현이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하는 줄 알았던 기비서님의 질문에 재현은 좀 더 둘러보겠다고 한다.
내 세상을 그렇게 힘들어 했는데, 첫작품을 재경 신사옥에 거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겠지?
준희가 작가로 새로 시작한 삶에 다시 재경을 끼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첫 데뷔작이 재경 신사옥에 전시된다면 작가로서 유명세를 타게 될테고, 준희는 다시 세상의 관심과 간섭을 받으며 살아야 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개인적으로 구입해서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