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개의 귀걸이 」
# 3
손에 든 빈도시락통을 내밀면서 여기 온 목적을 말했다.
"여기. 도시락통 가져왔어요. 잘 먹었습니다."
"어? 성용이에게 전해주면 되는데 왜 직접 갖고 왔어?"
"아, 기선배는 축구경기하러 가서...그리고 제가 먹었는데 당연히 오는게 맞죠."
"그래? 이 애가 정말...축구나 하러 가고...아무튼 고마워."
"아, 아니요. 제가 고맙죠."
분명 점심용으로 가져온 도시락을 양보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런데 겨우 빈통을 갖다주었다고 고맙다고하는 태환 선배의 말에 당혹스러워 뒷통수를 긁적이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그런 나에게 태환 선배는 웃으며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며 화실 한쪽 테이블에 차지하고 있는 커피포트로 물을 끓였다.
"음~흐흠~음~흐음~"
빈자리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찻잔을 준비하는 태환 선배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얼기설기 짜인 베이지색 니트가 몸라인을 타고 흐르고 검은색 바지는 다리에 달라붙어 날씬함을 강조했다.
햇살에 은은히 빛나는 엷은 색의 머리카락은 어느샌가 길어서 목의 반쯤까지 내려온다.
입학 초에 처음 봤을 때는 짧았던 머리가 이제는 목덜미를 덮었다.
많이 길었다. 그 사이 나는 머리도 컷트도 하고 했는데 선배는 자르지도 않은걸까.
그렇다고 지저분한 것은 아니었다.
차분하게 정리되어서 오히려 예뻤다.
남자에게 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태환 선배에게는 예쁘다는 말이 잘 어울렸다.
어색함이 없어서 위화감마저 들 정도였다.
넓은 네크라인때문에 드러난 그의 곧은 목덜미는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곧은 목덜미를 보자 갑자기 성용 선배의 시집 드립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때 했던 야한 상상도 떠올랐다.
그 야한 상상에 뺨이 달아오르고 심장은 제멋대로 박동했다.
젠장. 내 머리는 AV 자동 재생 능력이라도 있나?
왜 이러냐. 이 머저리야. 쑨양아, 너 변태야?
태환 선배 모르게 변태같은 나를 자책하며 화를 했다. 선배가 앞에 없었다면 머리카락을 쥐어뜯었을지도 몰랐다.
"여기 받아."
"감사합니다."
찻물을 다 우렸는지 태환 선배는 양손에 든 두 개의 찻잔 중의 하나를 건네주며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받아든 하얀 찻잔 안에 뜨거운 붉은 찻물이 찰랑인다.
산뜻한 향기가 후각을 자극했다. 오렌지? 레몬?
진홍색 찻물을 보면 홍차 같아 보이는데.
"무슨 차에요?"
"홍차. 여러 과일을 블렌딩한 과일 홍차랄까. 괜찮지?"
"네."
"그리고 도시락 맛있었어?"
"아! 물론이죠! 그렇게 맛있는 건 처음이에요! 진짜 잘 먹었어요!"
"다행이다."
태환 선배의 눈꼬리가 휘어지며 접혔다. 그가 웃을 때면 내 심장도 함께 두근거림이 심해졌다.
사람이 너무 예쁘면 안되는 것 같다.
이토록 심장을 뛰게 만드니까. 나조차도 컨트롤이 안되게 만드니까.
정말 태환 선배의 웃음은 심장 건강에 좋지 않았다.
"양은 혼자 자취하지?"
"네."
"그럼 평소에는 어떻게 먹어? 직접 만들어 먹니?"
"아, 그냥 학생식당에서 먹거나 사먹죠. 뭐. 요리를 잘 못해서..."
"그러면 영양이 부족할텐데......그럼 내가 도시락 싸다줄까?"
"에??"
태환 선배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서 대꾸하는 목소리가 뒤집혀서 나왔다.
제법 큰 소리로 내질렀던 터라 태환 선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싫어하는 것처럼 들렸는지 미간에 주름을 세우며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싫으니?"
힘없이 말하는 태환 선배의 목소리에 난 당황스러워서 어쩔줄 몰랐다.
횡설수설하면서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변명을 했다. 식은땀마저 흘렀다.
"아, 아니, 아니에요! 제가 싫을리가! 진짜 아니에요."
"괜찮아?"
"그, 그게. 그러면 선배한테 실례가. 정말 괜찮아요. 선배를 고생스럽게 할 순 없어요. 지, 진짜 괜찮아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앞뒤 문맥이 전혀 맞지 않는 말들이 튀어나오는대로 지껄여졌다.
도시락을 싸준다는 게 고맙다는 뜻인지, 싫다는 것인지 말하는 나조차도 알아듣지 못하겠다.
{아, 미치겠다. 아니, 그게...아오. 나 왜 이래.} *{ }는 중국어 표기.
정신적으로 패닉이 오자 기껏 열심히 배운 한국어로 도저히 표현이 안되서 익숙한 모국어로 혼잣말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태환 선배는 커다란 눈동자를 굴리다가 눈을 몇번 깜빡깜빡하더니 입을 열었다.
"미치겠다?"
{에?}
중국어를 알아듣나? 태환 선배의 말에 더 당혹스러워졌다.
선배가 오해하면 어떡하지? 그러면 큰일인데!
나의 혼잣말에 그가 더 오해할까봐 한국어로 다급히 말했다. 변명의 연속이었다.
"중국어 알아요?"
"아니. 잘 몰라. 그냥 몇가지만..."
"아. 저기 그게...미치겠다가 아니고...그게..."
"......"
후아! 흡! 깊게 숨을 들이키고 흥분하고 있는 나를 진정시켰다.
이대로는 전혀 상황이 진척이 되지를 않았다.
먼저 나를 진정시킨 후에 설명해야지 지금 상태로는 오해만 가중시키는 꼴이 되게 생겼다.
"하아...제 말은 선배가 고생할까봐요. 정말 괜찮아요..."
말없이 내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태환 선배의 시선에 마주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숙였다.
난 왜 이렇게 바보인가.
혼자서 원맨쇼를 하고 지친 나에게 태환 선배가 말을 건낸다.
평소와 다름없는 조용하고 나긋한 목소리였다.
"알았어. 양의 뜻은."
"그래요?"
다행이다. 오해하지 않았구나 싶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어 태환 선배를 쳐다보았다.
웃고 있는 태환 선배가 보였다. 정말 예쁜 미소였다.
매혹적이다. 또다시 심장이 몹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태환 선배는 나의 심장에 정말 해로운 존재였다.
"그럼 도시락 싸줄게."
"엑?"
"부담 갖지마. 어차피 성용이꺼 싸주면서 싸는걸. 뭐 성용이는 아침에 미리 먹어버리기 일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후배니까 해주는거야. 후후."
태환 선배의 '좋아하는 후배'라는 말이 유독 귓가에 맴돌았다.
아무런 뜻도 없는데 왜 그 단어에 이토록 두근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가지는 알겠다. 기분이 좋아진다는 그것 하나는.
심장이 더 거칠게 뛰었다. 그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태환 선배한테 들릴까봐 걱정이 될만큼 뛰었다.
《삐비빅》
"어? 문자 왔다."
문자음이 들려왔다. 태환 선배의 휴대폰에 온 듯 하다.
태환 선배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빼어들며 메세지를 확인했다.
액정을 바라보며 턱을 주억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내려다본다.
"양. 나가자."
"네? 어디로요?"
"성용이한테 문자 왔어. 이제 축구 끝났다는데 점심 먹재. 기분이 좋은 것 같아."
"아, 이겼나봐요?"
"응. 2대0으로 상대팀 이겼대. 내기 걸고 했나봐."
다음 강의까지 1시간이나 남았고 시간도 점심때인터라 태환 선배의 말에 흔쾌히 응했다.
거기다 나도 함께 오라고 말했단다.
진쪽에서 거하게 점심을 쏜다고 한 모양이다.
아침에는 태환 선배한테 도시락을 얻어먹고 점심은 성용 선배한테 얻어먹는건가?
굳이 따지자면 다른 사람이 사주는 점심을 먹는 것이지만 성용 선배에 의해 생겨난 기회니까.
유학생활로 여윳돈이 얼마 없는 나에게는 금쪽같은 기회였다.
찻잔에 남아 있는 찻물을 한번에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정리하고 태환 선배와 함께 화실에서 나왔다.
"태환 오빠. 안녕하세요."
"응. 안녕. 점심 먹었니?"
"아니요. 아직~이제 친구랑 먹으러 가려구요. 오빠는요?"
"나도 지금 먹으러 가."
"그래요? 그럼 같이 먹으러 가실래요?"
학과 건물을 나오는 찰나 태환 선배 후배로 보이는 여학생과 만났다.
귀엽고 예쁘장한 얼굴에 여리여리해보였다.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법한 예쁜 아이였다.
태환 선배와 친한 사이인지 오빠라고 서슴없이 말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점이 <오빠>라는 호칭이었다.
중국에서는 아주 친한 사이거나 친남매 사이가 아니면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적 충격이 컸었다.
이제는 문화적 차이를 알고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저런 호칭을 들을 때면 이상했다.
그녀도 점심 먹으러 가는 중이었는지 점심을 같이 먹자고 말했다. 그녀의 눈빛이 꼭 그랬으면 한다는 듯이 반짝반짝 빛이 나서 거북하기까지 했다.
다행히도 태환 선배는 여학생의 요청을 부드럽게 거절했다.
그런데 왜 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거지?
"아, 미안해. 먼저 선약이 있어서."
"그래요? 아쉽네요. 그럼 오빠 다음에 함께 먹어요. 알았죠?"
"그래. 그럼 맛있게 먹어."
"네. 오빠도요."
손을 흔들며 떠나는 여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걸어가는 태환 선배를 뒤따라서 걸어갔다.
한국 남자들은 어린 여자들에게 <오빠>라는 호칭으로 불리면 무척 좋아한다던데 태환 선배도 그러할까?
단순한 호기심에 궁금해져서 그에게 물었다.
"선배."
"응?"
"선배도 오빠라고 불리면 좋아해요?"
"어?"
"아니 한국에서는 그걸 좋아한다고 하던데..."
"아! 중국에서는 안 그렇지?"
"네. 그래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니까요."
"뭐, 문화의 차이니까."
"선배는 어때요?"
"나? 난 보통? 그래도 남자니까 오빠라는 소리가 듣기 싫지는 않지. 양은 안그래?"
"저는 별로...익숙해지긴 했지만 중국 사람이라 그런지 이상해요."
<오빠>라는 호칭이 좋다고 하는 태환 선배의 말에 가슴이 쌔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예쁜 미소에도 심장은 두근거리지 않고 서늘해졌다.
가슴이 아릿했다. 왜 이러지?
태환 선배가 좋다고 한게 충격인걸까. 부정하지 않는 그의 말에 충격 받았나?
【암호닉】
ㅌ/흰구름/꽃게/유스포프후작/우구리/마린페어리/박쑨양/촹렐루야/잼/초코퍼지/쌀떡이/꾸워엉/탱귤탱귤/응가/햄돌이/토야/이율/아와레/허니레인/태꼬미/포스트잇/샤긋/딸기빼빼로/소띠/광대승천/태환찡/쥬노/빠삐코/초코퍼지/잼/렌/비둘기/박태쁘/아스/아마란스/뺑/피클로/하늬/양갱/화뉴/옥메와까/밧짱과국대들/탱귤/찰떡아이스/또윤/토야/응가/고무/사과담요/부레옥잠/소어/태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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