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션 로즈
지민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지더니 바닥에 주저 앉으려 했다. 갑자기 무너지는 지민의 몸을 일으키기 위해 지민의 손목을 덥석 잡아 끌어올렸다.
그러자 지민이 소리를 지르며 팔을 뿌리치고 벽으로 몸을 뺐다. 태형에게서 떨어진 지민은 벌벌 떨며 태형을 째려보았다.
"지민아, 왜 그래."
"내 이름 부르지 마."
"...."
"미친 새끼."
"...."
"나랑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
"언젠 더럽다며, 더럽다며!"
지민이 태형을 보고 소리를 내지르다 실신을 해버렸다. 바닥에 쓰러져 버린 그는 아무래도 과거의 기억이 돌아온 듯 했다.
끓이던 냄비의 불을 끄고 지민을 안아 들었다. 지민의 로저가 거뭇거뭇하게 빨간빛이 돌았다. 무척 흥분한 상태였다. 태형이 지민을 들어 그의 방에 눕혀두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지민아. 내가 미안해. 다 미안해.
지민을 눕혀두고 방을 벗어난 태형이 할머니가 장을 보시고 집까지 올라오고 계신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뛰어가서 짐을 건네받고 할머니께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지민이가 좀 아파요. 어디가? 머리가 좀 아픈가 봐요. 병원은 됐고 푹 쉬면 될 것 같아요. 할머니가 집 쪽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할머니가 지민이 깨어난 것을 발견하고 흰 죽을 가져다 주셨다. 태형은 들어가보려고 애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 또한 없었다. 지민이 태형의 얼굴만 보면 경련을 일으킬 것 같이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을 때는 지민의 방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태형은 밖에서 들어가도 되냐, 내가 미안하다, 등 온갖 말을 했지만 대답은커녕 반응을 아예 보이지 않는 지민이였다.
태형이 계속 밖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던 할머니께서 지민의 방에 들어가 태형의 이야기를 간간히 하셨지만, 그의 이름만 나와도 지민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 주 내내 이런 생활이 반복되었고, 지민과 만나지 못하는 태형의 낮빛이 어둡기만 했다.
태형이 곰곰이 생각을 했다. 지민이도 예전에 내가 나쁘게 대했을 때 이거보다 괴로웠겠지. 내가 지금 벌을 받고 있구나.
태형이 옆에 보이는 메모지에 글자를 끄적였다. 그리고 짐을 모두 짐 가방에 넣었다. 태형은 할머니를 먼저 만나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할머니."
"태형아."
"저 이제 여길 떠나야 할 것 같아요."
"지민이는 어쩌고."
"만나주질 않으니..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
"그래도...좀 더..."
"아니에요. 대신 지민이한테 이 쪽지 꼭 전해주세요. 보지는 마시고요."
"그래. 알았다. 지금 가려고?"
"네. 최대한 빨리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고마웠다 지금까지. 태형이 너도 올라가서 잘 지내라."
"네, 할머니 건강하세요. 감사했어요."
그 곳을 떠나려고 했으나 발걸음이 쉽게 떨어질 리 없었다. 태형이 한 번 더 지민이 있는 방 쪽을 바라보더니 눈을 꾹 감고 힘겹게 그 곳을 떠나버렸다.
할머니가 접혀진 종이를 지민에게 쥐어주며 말했다.
태형이 갔다. 이거 전해주라고 하더라. 너도 얼른 기력 차리고 일어나야지, 아가.
할머니가 일어나셔서 방을 떠나자 지민이 조심스럽게 쪽지를 펴 글씨를 눈으로 훑었다.
[지민아. 이 곳에서 너에게 한 행동들은 한 치의 거짓도 없었어.
전에 너에게 한 행동들에 대해선 정말 미안해.
나를 용서해줄 마음이 생긴다면 서울로 찾아와줘. 몇십 년이 되어도 꼭 기다리고 있을게.
서울시 OO구 OO동 OO아파트 402호.]
태형은 전국을 돌기로 한 계획을 모두 접고 곧바로 서울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갔을 땐 먼지가 온통 쌓여있어 지저분했다.
놓아두고 간 휴대폰을 충전기에 꼽자 얼마 안되어 휴대폰이 켜졌다. 두달 정도 꺼져있던 휴대폰이 켜지자마자, 연락이 폭발적으로 왔지만 그는 확인하지 않았다. 그는 집의 모든 문을 열고 먼지를 털고, 집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그 날부터 열심히 다시 취업할 곳을 구했다. 하지만 할 만한 곳은 원래 다니던 회사밖에 없었다. 그 곳이 무척 좋은 곳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시 면접을 보러 갔을 땐 면접관들이 태형을 모두 알아보았다. 태형이 대답했다.
이런 회사는 다시 찾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그만 두었지만 염치 없게 다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태형이 있을 때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했었기에 태형이 나갔을 때 회사가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런 인재가 다시 제 발로 걸어 들어왔으니 당연히 합격이었다.
열심히 하겠다는 이름으로 다시 신입사원으로 들어간 태형이 열심히 생활을 했다. 지민이 돌아올 때를 대비해 돈을 악착같이 벌어 모았다.
그리고 밤마다 지민을 기다렸다. 과거의 자신에 행동에 항상 죄책감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하지만 지민은 오지 않았다.
태형이 기다린지도 일년이 되어갔다. 쌀쌀한 가을, 무척 추운 겨울. 그리고 따뜻한 봄. 다시 찾아온 여름에도 그는 오지 않았다.
그치, 평생 용서받지 못 할 행동이었지. 그가 이 곳을 못 찾아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봤지만, 기억을 찾은 그는 그럴리가 없었다.
점차 태형의 머릿속에서 지민이 잊혀져 가고 있었다. 예전의 지민처럼, 마음 한 켠에 담아두는 그런 사랑을 시작했다.
지민을 시골에서 처음 마주친 날은 4월 12일 이였다. 매년 4월 12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졸업사진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민이 유독 보고 싶은 날 이였다.
지민이 태형의 마음 안에 고요하게 자리잡은 지 3년이 되었을 때, 태형은 새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는 무척 청순한 외모와 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커플처럼 연애도 하고 싸우기도 하다가 헤어졌다.
그리고 반년 쯔음 뒤 다시 다른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는 기가 세고 매력이 넘치는 여자였다. 생각보다 화끈하게 연애를 했다. 하지만 이 연애도 좀처럼 이어지지는 않았다.
가끔 집에 들어가면 외로울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지민을 생각했다. 태형은 지민에게 조금 미안했다. 이렇게 소홀하게 가끔만 생각해서 미안했다.
이사 갈 돈이 충분히 모였고 태형의 집 옆에는 새로운 아파트가 분양 중이였지만, 이사를 가버리면 지민이 그 후에 찾아올까 싶어, 그리고 기다린다고 지민에게 약속을 했기에 이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다른 시람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한 가지가 달랐다. 그는 항상 지민을 기다려왔다.
주말이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나 머리를 쓱쓱 빗어 정리했다. 요즘 읽기 시작한 책은 꽤나 흥미로웠다. 시간을 뛰어넘어 사랑을 이루는 책 이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의지해 책을 읽고 있던 태형이 갑자기 울리는 초인종소리에 인터폰을 확인했다. 앞엔 아무도 없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아무리 외쳐도 아무 대답이 없는 수화기를 내려두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또 다시 울리는 초인종에 옆집 아이가 장난을 치나 보다 생각하고 혼쭐을 내주기 위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환한 지민의 미소였다. 예쁘게 눈을 휘어 웃고 있는 지민의 얼굴을 보자마자 태형이 제 품으로 지민을 세게 끌어안았다. 태형과 지민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태형이 어제 보고 헤어진 듯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몇 년만이야?"
"5년."
"왜 빨리 안 왔어."
"비밀이야."
둘은 현관에서 오랫동안 그리웠던 서로의 체취를 느끼며 꼭 끌어안았다.
"와 줘서 고마워."
“기다려줘서 고마워.”
"혹시 더 할 말 없어?"
"어..."
"난 있는데."
"뭐?"
"사랑해."
"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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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급전개, 그리고 드디어 완결이 났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웠나요 독자분들 8ㅅ8..
신알신으로 함께 달려주신 모든 독자분들에게 감사드리고,
또 암호닉 신청해주시고 항상 저 감동받게 댓글 달아주신 흥흥탄탄흥흥탄탄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
이렇게 엉망진창인 글을 읽어주셔서 또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다음엔 더 좋은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정말,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또한 하나의 공지를 여기에 쓰자면,
이렇게 엉망진창인 글을 텍스트파일로 보관하고 싶은 분이 혹시나 있을 것 같아 메일링을 하려고 합니다.
없으면 상관 없지만, 혹시나 있으실까 싶어 말씀드립니다. 필요하신 분은 댓글에 메일을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텍스트파일은 더욱 정교하게 수정되고, 또 번외가 추가 될 수 있기에 시간이 조금 걸릴 수 있습니다.
또한 꼭 이렇게 다시 재회한 후 끝나는 소설은 번외가 중요하죠.
번외가 보고싶으시다면 투표를 해주세요.
'와' 의 투표수가 평소 조회수의 반을 넘어간다면 번외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텍파에만 있을 수도 있구요!
또, 최근에 올린 부탁의 공지에 댓글이 별로 달리지 않았기에,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다음 글을 위해, 여러분들의 비평 한 마디가 정말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문체나 표현, 그리고 전개 등에 대해서
'이모션 로즈'를 읽으시며 느끼셨던 부분들을 꼭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독자분들 진짜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