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검은 아이들 13
w. 태봄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남자가, 김남준이.
일단, 복도에서 뭘 할 수가 없어 남준을 데리고 방으로 왔다. 남준은 물 한 모금을 마시더니, 인제야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그 어떤 말도 묻지 않았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그의 눈빛이 마치 ‘아무 말도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에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가 규칙적인 숨을 내뱉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의자를 끌어 그의 앞에 앉았다. 그는 집요한 눈길로 나의 행동을 쫓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가 지나치게 흔들린다. 곧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는 무슨 말이라도 할 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지만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곧 그는 두 손을 마주 잡아 그 사이로 얼굴을 파묻더니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 한숨에 모든 것이 묻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그것이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그는 다 갈라진 목소리로 아슬아슬하게 대답했다. 곧 말이 끊어질 것 같은 그 불안감. 미안해. 이유를 알 수 없는 남준의 사과.
……뭐가요? 되묻는 나에게 남준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시에 주변 공기들이 얼어붙었다. 남준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응시했다. 두 눈에 부드럽게 힘을 주고 있는 나와 두 눈이 심하게 흔들리는 남준. 그를 타박할 생각은 없었고 다그칠 생각도 없었다. 똑 부러지는 그가 이렇게까지 행동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는 그 이유를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야.”
“야.”
“…”
“나는 네 편이야. 예전에도…… 지금도.”
“내가 네 편이란 사실 잊지 말고.”
남준은 조금 망설이더니 곧 알 수 없는 말만 남겼다. 점점 흐려지는 목소리에 ‘지금도’라는 말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아마 그의 말에 집중하지 않았더라면 못 들었을 게 뻔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뚜렷해진 발걸음으로 밖으로 향했다.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는 남준을 붙잡을 수 없었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
아, 그의 말에 스쳐 지나가는 지난날의 기억들. 그렇다. 나는 그에게 떳떳할 수 없었다. 내가 그의 사랑을 모른다 하면 그것은 거짓이다. 하지만 밤하늘에 해가 떠 있을 수는 없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지금까지 밤하늘에 해를 띄어놓지 않았다. 만약 밤하늘에 해가 떠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 어마한 파문을 몰고 올 예정일 테다. 그 사람은 밤에 왜 해를 끌어다 놓았냐고 사람들로부터 질타를 받을 것이고, 결국에는 모든 걸 다시 되돌려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나는 그 끝을 명확하게 예상했기에 숙연히 고개를 돌렸다.
남준은 알고 있었다. 그때 윤기의 가게로 가기 전, 내가 그의 마음을 모른 체하며 떠났다는 사실을. 서로의 감정을 이미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의 마음을 외면했고 그는 그 외면을 받아들였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속죄받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돌이키기엔 너무 지나쳤다. 오랜 시간 감정의 틈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하늘을 향해 나아갔고, 나는 땅을 향해 나아갔다. 우리는 다시 만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나란히 마주 보고 가는 평행선도 아니었다. 우리는 첫 시작 이후로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런 직선이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우리는 뒤를 돌아볼 수 있었을까, 지금은 아무리 뒤돌아보아도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중간중간 우리를 가로막는 안개들이 더욱이 짙어져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너무…… 늦어버렸다.
“앉아.”
석진은 표정을 굳히고 남준에게 말했다. 남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석진의 앞에 앉았다. 차가운 시선이 남준을 훑었다. 남준은 그 시선에 온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그 예상이 꼭 틀린 말은 아니라는 듯 남준은 석진과 눈이 마주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남준아.
“왜?”
석진은 손에 들린 컵의 윗부분을 매만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석진의 손끝에 머물렀다.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도 고요한 공간 속으로 먹혀들어갔다. 석진은 뭘 그리 생각하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남준은 불안해졌다. 남준의 이마에서 이따금 식은땀이 세어 나왔다. 방안 가득한 긴장감을 석진이 깨트렸다. 잔잔한 수면 위로 돌멩이가 던져졌다. 내가 말했잖아.
“그 여자애 만나지 말라고.”
절망적이었다. 남준에게 석진의 그 말 한마디가 마치 사형선고처럼 다가왔다. 석진이 알아버렸다. 남준이 그녀를 만나서 그의 속내를 비치고 왔다는 사실을 마침내 석진이 알아버렸다. 남준은 입술을 꽉 깨물고 두 주먹을 쥐었다. 석진은 탁상 위로 컵을 올려놓고 남준을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는 목소리가 남준에게 닿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갈한 목소리가 남준의 감정을 뒤흔들었다. 수면 위로 타원형의 물결이 퍼져나가며 가장자리가 넘실거렸다.
“너는 그 애 만나면 안 된다고, 내가 말했잖아.”
남준은 고개를 숙였다. 석진의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무중력의 공간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이 방안을 떠다녔다. 석진이 뒷말을 덧붙였으나 남준은 듣지 못했다. 말 그대로 무중력, 중력이 없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니. 잠깐이지만 그는 숨도 쉴 수 없었다, 아니 숨을 쉬지 않았다. 방안 가득한 공기들이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폐 속으로 파고들었다. 밀쳐낼 수 없는 입자들이 세포에 달라붙어 그 고통을 더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남준은 더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쨍그랑-.
석진은 책상에 있던 컵을 들어 그대로 놓았다. 석진의 손을 떠난 컵은 곧장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남준의 발끝으로 하얀 유리조각들이 흩어졌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유리조각들이 모순적으로 아름다웠다.
“나가.”
“……”
“다시는 그 여자 만나러 가지 마.”
남준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발가락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근근이 삼키고 문으로 향했다. 석진은 남준이 떠나간 자리를 응시했지만 끝끝내 남준을 보지 않았다. 그가 문을 완전히 닫고 나가자 석진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남준은 방문을 닫자마자 그 옆으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두 팔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그는 석진이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남준은 석진이 이제 그녀를 만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남준은 낙심했다. 그는 그녀를 보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곱게 접어 삼켰다.
만약 이번 일로 그녀가 정말 떠나버린다면, 자신의 행동으로 그녀가 떠나버린다면…… 남준은 그녀가 떠나는 상상을 해보았다. 볼 수는 없겠지만 그녀가 비행기에서 내려 타지의 땅을 밟는 상상을 해보았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낯선 언어를 듣고 잔뜩 긴장할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아렸다. 그게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아려왔다.
하지만 분명히 그가 그녀에게 해줄 일은 존재할 터였다. 남준은 어쩌면 없을지도 모르는 그 하나를 찾기 위해 깊은 생각으로 빠졌다. 만약 그녀가 떠난다 해도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만약 남준에게 선택지가 있었다면 무엇이 적혀 있을까? 애초에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는 누군가 선택하지 못하도록, 보지도 못하도록 화이트로 꽁꽁 가려놓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한 줌의 빛도 허용되지 않는 현실에 가슴이 아팠다.
그녀가 떠나는 건 남준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는 남준이 가엾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등진 채로 한참이나.
신이 있다면 왜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어야 했나.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때, 석진은 조금 분주히 움직였다. 바쁘게 움직이던 키보드를 잠시 내려놓고 목을 한바퀴 돌렸다. 중간중간 들리는 뼈 소리가 석진의 굳었던 목을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석진은 살짝 풀어졌던 넥타이를 다시 단단히 매고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석진은 근처 커피숍에 들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샀다. 구석 자리에 앉아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상상해보았다. 머릿속으로 한 편의 시나리오를 쓰며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석진은 조소를 품으며 눈을 감고 한 편의 드라마를 머릿속으로 훑었다.
상상의 즐거움을 계속 만끽하면 좋으련만 하루는 짧기에 석진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오렌지빛의 하늘이 남색으로 물들여갔다. 손목의 시계를 한번 쳐다본 석진은 조금 급히 차를 몰고 윤기에게 갔다. 담배 한 개비를 태우던 석진은 회색빛의 연기에 눈이 따가워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석진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상쾌한 공기에 기분이 좋아진 석진은 액셀을 더 깊숙이 밟았고 속도에 비례하며 들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걔한테는 내가 말할게.”
석진은 윤기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고 본론부터 얘기했다. 심지어 서론도 본론도 없는 터무니없는 주장이었다. 아니 어쩌면 석진에게 그런 부수적인 것들은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
윤기가 신경질적으로 눈을 치켜떴다. 오직 석진에게 이유만을 추구하는 윤기의 눈이 서늘했다. 윤기는 하던 일도 멈추고 석진을 응시했다. 그러던지 말든지 석진은 소파에 반쯤 누워 핸드폰만 만져댔다. 석진의 대답을 삼십 초쯤 기다린 윤기의 인내심이 거의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날이 선 윤기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핸드폰 내려.
석진은 오랜만에 윤기를 놀리고 싶어 윤기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정치에 관한 기사를 하나 훑어보던 석진은 곧 흥미가 떨어져 다른 기사를 클릭했다. 윤기의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갔지만 석진은 애써 무시하고 화면으로 집중했다. 핸드폰 내리라고.
윤기는 조금 화난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얘기했다. 석진은 요즘 유행하는 노래 중 생각나는 하나를 골라 흥얼거렸다. 발도 박자에 맞춰 흔드는 모습에 화난 윤기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 석진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뭐, 어차피 내가 보내는 거잖아.”
석진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다. 몸에 힘을 푼 윤기는 곧 중력에 이끌려 의자 위로 털썩 앉았다.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고 반대 손으로는 책상을 두드렸다. 유리로 덮인 책상과 하얀 손톱이 만나 규칙적인 소리를 만들어냈다. 윤기는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한번 쓸어 올렸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머리카락이 곧 제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너 걔한테 이상한 소리 하면, 죽여 진짜.”
윤기는 반쯤 체념한 듯 말했다. 자신이 안 된다고 해도 석진은 교묘한 수법으로 결국 자신이 원하는 성과를 거둬낼 것이었다. 일찌감치 포기한 일이 잘한 일인지 고민하던 윤기를 내버려두고 석진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일어섰다. 그래, 간다. 석진은 문고리를 잡으며 천진난만한 목소리만 남겨놓고 떠났다. 석진의 발걸음은 가벼워졌고 윤기의 마음은 왜인지 한없이 무거워졌다.
막내~ 누가 너 찾아왔어! 경리언니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문을 바라보았다. 거울을 보고 대충 머리를 빗은 후,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친 후, 그 존재를 알아차려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남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나를 쳐다보다 방안을 둘러보더니 곧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경리언니에게 잠시 나가달라고 부탁하고 나도 그 앞에 앉았다.
어색한 눈길로 땅바닥만 쳐다봤다. 내 앞의 남자에게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자꾸만 떨리는 다리를 가만히 놔두기 위해 애를 먹었다. 자꾸만 커다란 불안감이 나를 죄어왔다. 새까만 연기가 몸을 둘러싸 나를 더욱 괴롭혔다.
“일본 갈래?”
“……네?”
난데없는 남자의 말에 얼굴엔 당혹감이 번졌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외국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일본이란 가깝고도 먼 거리였고,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예상 밖으로 가장 처음 든 생각은 ‘가기 싫다.’였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기 싫었다. 이제 나에게 집은 당연히 이곳이었다. 내 가족들은 당연히 이곳의 사람들이었다. 그런 나에게 집과 가족을 떠나라 하니, 대답은 당연히 부정적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냥 육 개월 정도 여행 가는 거야.”
“……”
“싫어?”
남자의 물음에 차마 싫다고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마음속에선 싫다고 가면 안 된다고 소리쳤지만 입술은 풀을 먹은 듯 단단히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너한테 묻잖아. 남자는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나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얄쌍한 손가락으로 나의 턱을 훑으며 진득하게 시선을 맞췄다. 그 눈빛에 지레 겁을 먹어 머릿속이 두려움으로 지배당하기 시작했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비질 흘렀다. 그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 피해버리자 그는 느릿하게 입술을 떼었다.
“싫어?”
되묻는 남자의 말에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자 남자는 나의 턱을 강하게 쥐었다. 거센 압력에 입이 벌어졌고 곧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하얀 도화지에 묽은 물감이 번지듯 눈가에 눈물이 번졌다. 나도 모르는 새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나왔다. 동공이 쉴 틈 없이 흔들렸다. 가까이에, 바로 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에 목소리를 잃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남자는 몇 가지의 행동과 눈빛, 목소리로 나를 압도했다. 나는 근 몇 분간 그에게 완벽히 압도되었다.
“대답해.”
남자의 강압적인 말투에 이끌려 고개를 엷게 끄덕거렸다. 그조차도 힘들어 겨우겨우 행동을 이었다. 긴장감에 휩싸인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이 자꾸 흐려졌다. 머릿속에선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현실에서는 겨우 한번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네’라고 대답하려 했으나 목구멍에서 막힌 말은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눈에 힘을 주고 나를 바라보는 남자에게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입은 싫다고 소리 없이 말했고, 얼굴은 눈에 띄게 끄덕였다. 보통의 사람들은 당연히 소리보다 행동을 먼저 알아차렸을 테다. 누구든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들어줬다면, 알아차려 줬다면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해도 되었을까.
남자는 나의 대답을 듣고도 곧장 물러나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모습을 보고도 그는 나와 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마주치는 시선의 거리가 좁아졌다면 좁아졌지 절대 멀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잠깐이지만 그의 눈에서 작은 불꽃이 튀어 오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는 턱을 쥐고 있던 손을 살짝 내리더니 손끝으로 턱선을 훑었다. 온몸의 감각이 석진의 손끝으로 몰려들어 그 느낌이 더욱 생경하게 느껴졌다.
“네가 나에게 무릎 꿇고 빌었으면 좋겠어.”
그의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다못해 머리칼도 쭈뼛쭈뼛 서는 기분이 들었다. 나와 꼭 맞는 귀신이 나의 몸을 관통하여 지나간 느낌이었다. 극도에 달했던 긴장감과 두려움이 순식간에 공포감으로 변했다. 그 효과는 배로 다가왔다.
전깃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잘못 걸어서 감전되거나, 발을 헛디뎌서 아래로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는 현재 내가 사소한 행동이라도 잘못하면 나를 당장 악의 구렁텅이로 빠트릴 것 같았다. 어떠한 경우든 이 길의 끝엔 시커먼 암흑만이 존재했다.
“네가 그만하라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면 좋겠어.”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나에게 다가왔다. 곧 입가에 느껴지는 얼얼한 느낌에 거부감이 끼쳐 들어 그를 힘껏 밀어내보았지만 그는 몸에 힘을 주고 버텼다. 그의 혀가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살짝이 앞니를 건드렸다. 끝내 입을 열지 않자 그는 성을 내며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고통에 발악하며 입을 여니 그새를 참지 못하고 말캉한 혀로 입안을 가득히 채웠다. 비릿한 피 맛과 함께 그의 혀가 입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에게서 떨어지려 필사적으로 뻗대었지만 오히려 그를 자극할 뿐 별다른 성과를 얻진 못했다.
거의 체념하며 몸에 힘을 빼려는 순간 그가 입술을 떼었다. 말려 올라간 냉혈한 입꼬리에 소름이 끼쳤다. 석진은 나의 모습을 보더니 입가에 조소를 띠고는 유유히 방을 떠났다. 방 안에 홀로 남겨진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귓가엔 자꾸만 그의 말이 맴돌았다. 그의 마지막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몸도 마음도 지쳐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석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자판 위에서 통통 튀는 손끝이 오늘따라 더욱이 가벼워 보였다.
NAVER MAIL
RE: 석진이 형, 나 부탁 있어요.
보낸 사람: 김석진 〈jin@naver.com>〈/jin@naver.com>
여자 구했어. 곧 보내줄게. 조금만 기다려.
-----Original Message-----
From: "박지민"〈ki_iroibara@hotmail.co.jp>〈/ki_iroibara@hotmail.co.jp>
To: 〈jin@naver.com>〈/jin@naver.com>
Cc:
Sent: 2016-03-22 (금) 07:34:25
Subject: 석진이 형, 나 부탁 있어요.
저 너무 외로워서 그런데 여자 좀 보내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저 너무 외로워서 그런데 여자 좀 보내주세요.
윤기야 내일 그 여자애 나한테 보내
근데 비자 문제나 그런 건 어떡하고?
여행 비자 끊어놨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잠이나 자
석진은 윤기에게 답장을 보내고는 핸드폰을 곧장 침대 위로 던졌다. 그러고는 늘 그랬듯이 소파 위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따며 의미 없이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다. 똑똑-. 느닷없이 들리는 노크 소리에 석진은 문 쪽으로 시선을 기울였다. 곧이어 들려오는 목소리.
“형. 저 호석인데요.”
“들어와 그냥.”
호석은 동그란 머리통을 조심스럽게 내보이고 쭈뼛쭈뼛 방으로 들어왔다. 심각하게 긴장을 한 것 같은 호석의 모습이 각목처럼 뻣뻣했다. 호석은 석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여기 남준이 형 있어요?”
“아니 없는데? 왜?”
“아…… 그게 남준이 형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호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곧 그 행동의 의미를 알아차린 석진은 속으로 웃으며 호석에게 자신의 핸드폰으로 남준에게 연락해보라고 말하였다. 호석은 그의 말에 고맙다고 웃으며 핸드폰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핸드폰 침대 위에 있을 거야.”
“네 감사합니다.”
호석은 하얀 침대 위에 아무렇게 던져진 핸드폰을 덥석 집었다. 아무 잠금 없는 바탕화면을 밀어서 해제하니 보이는 카톡 창에 잠시 주의를 기울였다.
윤기야 내일 그 여자애 나한테 보내
근데 비자 문제나 그런 건 어떡하고?
여행 비자 끊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잠이나 자
…? 이게 뭐지? 호석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 연락처에서 남준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건 호석은 오랜 시간 동안 흘러나오는 통화 음에 한숨을 쉬고 통화를 종료했다.
“남준이 형 전화 안 받아요. 나중에 연락 오면 저한테 알려주세요.”
“그래.”
석진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 호석은 그대로 방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걸어 한 층 내려온 호석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무질서하게 벗어진 신발 한 켤레를 반듯하게 정리해놓고는 방안으로 들어왔다.
깊게 잠든 정국 위로 따스한 달빛이 쏟아졌다.
![[방탄소년단/정호석] 검은 아이들 13 | 인스티즈](//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3/26/1/3c7ccebbb201c268850bf7b243fdc7ac.jpg)
태봄이에요... :D 할 말은 많지만 이따가 뒷부분에 적을게요!
오늘 편 의문이 많으시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석진이는 여주한테 일본으로 여행가라고 거짓말, 저번 편에서 윤기한테도 일하러 간다고 거짓말! 진실은 중간 메일에 있죠 (나름 네이버 메일 따라해본다고 해봤는데 안닮아서 놀라셨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제목: 석진이 형, 나 부탁 있어요.
보낸 사람: 박지민 〈ki_iroibara@hotmail.co.jp>〈/ki_iroibara@hotmail.co.jp>
내용: 저 너무 외로워서 그런데 여자 좀 보내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답장(RE): 여자 구했어. 곧 보내줄게. 조금만 기다려.
쉽게 설명하면 메일은 이런 내용...?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저번에 석진이가 말했던 아는 사람 = 박지민 석진이가 윤기한테도 거짓말 친 이유는... 뭐 저런 이유를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잖아요?...ㅎㅎㅎㅎㅎ 지민이 엄청난 나쁜 사람으로 나올 예정이니 지민맘들 미리 째성해여...하트........하..트...사랑해요
중간에 남준이 대사 엇갈리는 건 5화였나...? 그쯤에 여주가 윤기 가게로 떠나기 전에 남준이가 여주한테 했던 말이에요!
저 왜 이렇게 늦게 오셨냐고 물으신다면...ㅠ^ㅠ 인스티즈 최근에 암호닉 공지 올리고 처음으로 들어와요... 사실 3월달 적응을 못해서...(울먹) 나름 글을 열심히 썼지만... 점점 재미 없어져...하 진짜 죄송해요 (머리박기) 저 오늘 정수리에서 피도 났어요ㅠㅠㅠ엉엉 아직 아픈거 같아ㅠㅠ!! 오랜만에 와서 찡얼거리기는 싫었지만... 째성해여ㅠㅠㅠ 단편으로 써놓은 글 많은데 언제 다 올리죠...? 하... 이번주 내로 다 올리고 싶은 마음ㅠ0ㅠ
글 이해 안 되시는 거 있으면 댓글 남겨주세요.. 작가 그런걸로 화 안내요 (오히려 좋아해요 찡긋)
:)
암호닉 곧 정리해서 올릴게요 기다려 주세요!~
(저 조만간 뜨거운 글 하나 멜링 할건데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