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빈이와 길거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한 부대찌개 집에 들어갔다. 딸랑. 문을 열자 종소리가 울린다. 종소리는 몇 번이고 가게 안에 울려 퍼졌다. 여기 하나도 안 변했구나.
안녕하세요. 나와 홍빈이는 고개를 꾸벅이며 주인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주인아주머니는 어서오세요-, 라며 인사를 하시다 홍빈과 나를 보고 눈이 커지셨다.
아주머니는 잠시 헛기침을 하시더니 얘들아, 오랜만이구나라며 우리를 반기셨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 눈을 접으시고 싱긋 웃으셨다. 고등학생 때 우리를 맞이하시던 그 모습 그대로.
따듯한 아주머니의 손이 내 손을 맞잡는다. …좋다. 나는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너희는 저기, 저 자리 맞지? 아주머니가 햇빛이 은은하게 드는 창가 자리를 가리키셨다.
기억하시네요? 놀란 눈으로 홍빈이 물어보자 아주머니는 그럼. 내가 기억력 하나는 아주 좋아. 라고 말씀하시고 호탕하게 웃으셨다.
…가게 안쪽, 창가 자리에 털썩 앉았다. 와, 부대찌개 집 진짜 오랜만이다. 그치? 나는 홍빈이를 바라보았다. 홍빈이는 잠시 입을 우물거리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 오랜만이다. 우리 고등학생 때 진짜 자주 왔었는데…."
"그때 항상 이 자리에 앉았었잖아. 우리 지정석이라고 하면서!"
홍빈은 나를 보며 피식 웃어 보인다. 나도 그를 따라 웃어 보였다. 성이름, 재밌냐? 홍빈은 저를 따라 하는 내가 어이없다는 듯 표정을 짓고 내게 물었다.
응. 너 반응 재밌어. 홍빈이 난 재미없는데. 라며 미간을 찌푸리고 내 팔을 가볍게 쳤다. 치, 알았어. 안 하면 되는 거잖아. 나는 입술을 내밀고 삐쭉였다.
으-, 성이름 못생겼어. 홍빈은 내 표정을 따라 하며 계속 날 놀려댔다. 나는 씩 웃으며 홍빈에게 툴툴댔다.
"우씨, 이홍빈 너 그거 하지 마."
"우씨, 성이름 너 그거 진짜 하지 마."
"야-! 하지 말랬지!"
"야! 하지 말랬지!"
계속 킥킥대며 나를 따라 하는 홍빈의 행동에 나는 혀를 내두르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내가 졌다, 내가 졌어. 어휴.
성이름, 삐졌어? 우리 삐순이. 좀 이따 내꺼 햄 줄게, 화 풀어. 홍빈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됐거든, 말 걸지 마. 나는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밖이 훤하게 보인다. 따스한 햇빛이 은은하게 자리를 비춰준다. 여기 있으니까 사람들이 뭐 하는지 다 보이네. 나는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홍빈이랑 있으니까 재밌다. 이렇게 시시껄렁하게 노는 거도, 고등학생 때 홍빈이랑 자주왔던 부대찌개 집에 다시 온 거도.
나 혼자였다면, 나 혼자였었다면 하지 못 했을 거 같은데….
나는 괜스레 고개를 푹 숙였다. 고개를 숙이자 눈에 들어온 건 검은색의 단화였다. 그리고 단화와 마주하고 있는 갈색의 구두.
나는 고개를 들었다. 홍빈이는 살짝 움찔하더니 무섭게 왜 그러냐며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도리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봤어.
홍빈은 몇 번 눈을 깜빡이다 아무 말없이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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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잘 먹을 게요!"
"감사합니다-."
부대찌개가 나왔다. 우리는 2인 세트를 시켰는데 이게 웬걸, 나온 건 거의 3인이 먹어도 넘칠 양이었다. 나와 홍빈은 부대찌개를 보고 동시에 놀라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오랜만에 왔으니까 많이 먹고 가라고. 이렇게 얼굴 보니까 좋네." 아주머니가 말하셨다.
나는 헤헤 웃으며 오늘 배 터지게 먹고 갈게요! 라며 숟가락을 집었다. 아주머니는 쿡쿡 웃으셨다.
홍빈은 얼른 먹기나 하라며 나를 거들었다. 안그래도 먹으려던 참이었거든? 나는 홍빈을 흘겨보고 얼른 입안에 숟가락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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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배부르다."
"성이름, 나 못 걸어갈 거 같아..."
장난치지 말고 얼른 오시기나 하시지? 나는 홍빈의 팔을 가볍게 치며 계산하는 곳으로 갔다. 홍빈은 앞장서 간 내 뒤에서 친구가 힘들다는데…, 진짜 치사해. 라며 불평했다.
아주머니께 나중에 다시 오겠다며 꾸벅 인사를 했다. 꼭, 꼭 올게요. 홍빈이 또한 뒤이어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문을 열자 종이 딸랑 하고 울린다.
핸드폰을 들어 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7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하늘이 붉다. 나는 손을 들어 이마에 갖다 댔다. 눈그늘을 만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유난히 붉은 것 같다. 콧잔등이 시리다.
"덕분에 밥 잘 먹었어."
"나도 오랜만에 너 만나서 밥 잘 먹은 거 같다. 오랜만에 부대찌개 집도 같이 가고.. 아, 아까 어디 가는 길이었어?" 홍빈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딱히 어딜 가려고 나온 건 아니었어. 그냥 바람 좀 쐬려고."
내 대답에 홍빈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 말도 없이 먼 곳을 응시하는 게 뭔가 생각하는 거 같았다. 뭐 해?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나는 홍빈이를 바라보다 홍빈이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따라갔다. 홍빈이가 보고 있던 건 거리의 사람들이었다. 거리에는 팔짱 낀 커플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학생들도 몇몇 보였다.
부럽다. 커플들은 서로 다정하게 팔짱을 끼며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상혁씨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지금쯤 상혁씨는 뭐하고 있으려나….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시고 계시겠지?
…무리하시면 안 되는데. 나는 닿지 않을 기도를 하늘에 대고 했다. 붉은색의 하늘은 어딘가 우중충했다.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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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힘들다."
일을 하다 말고 찌뿌둥한 몸으로 기지개를 쫙 폈다. 텅 빈 왼쪽손을 주물거리다 파르르 떨리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창문을 바라봤다. 아, 비가 오네.
이런 날엔 당신이 우산을 가져다줬는데…. 무의식적으로 내 입에서 튀어나온 당신의 이름이 나를 놀라게 만든다. 한상혁, 너가 미쳤구나.
켁켁. 벌써 몇 년이 지났는 데도 불구하고 당신의 이름은 아직도 내게 낯설다. 막혀오는 목을 가다듬고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가끔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유난히 당신이 더 보고 싶고 그리운 그런 날. 나는 입을 우물거리며 당신을 다시 되새겼다.
…그때의 나는 많이 어렸다. 생각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흔히들 말하는 말로 철이 없었다. 생각이 짧았다. 나는 어린애처럼 행동했고, 그런 나를 당신은 다 받아주었다.
제멋대로 사고뭉치에 장난꾸러기같이 행동했던 나는 당신을 내쳤었다. 아주 단호하고 무정하게.
그때 당신은 어땠을까, 나를 무어라 생각했을까. 감히 짐작이 되지 않는다. 나를 야속하다 생각하진 않았을까? 억울하다 생각하진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울적하다. 내 마음에서도 주륵주륵 비가 내리는 거 같다.
이 비에 답답한 내 마음도 같이 흘러갔으면 좋으련만. 나는 창문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앞을 봤다. 일하자, 한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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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게, 오늘 진짜 고마웠어. 조심해서 들어가고." 홍빈이의 차에 내리면서 말했다.
"응. 빨리 들어가, 춥다."
"너야말로 얼른 들어가. 코 빨개져서는." 나는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얼른 들어가라는 내 말에도 홍빈은 꿈쩍 않았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손을 흔들어 줄 뿐, 차에 타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나는 홍빈이를 따라 손을 흔들어주다 얼른 아파트로 쏙 들어갔다. 내가 들어간 후에도 홍빈은 계속해서 손을 흔들어줬다. 홍빈이의 코가 아까보다 빨개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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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의무적인 말을 하고 신발을 벗었다. 집에 들어오니 얼어있던 몸이 녹는 기분이다. 따듯하다. 얼른 씻어야지. 상혁씨는.. 아직 안 오셨겠지?
조심스럽게 방으로 가려다가 덜컥 열리는 화장실 문에 깜짝 놀라 얼어버렸다. 상혁씨였다. 좀 전에 머리를 감았는지 달콤한 향수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한다.
상혁씨의 향에 취해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당황한 상혁씨가 눈에 들어왔다. 아, 상혁씨가 위에 옷을 안 입고 있었다.
멍 때리고 있어서 옷을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니. 성이름, 진짜 바보 맞나 봐.
"…어, 음. 미안해요.."
"성이름…?"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툭 말을 하고 후다닥 방으로 뛰어왔다. 얼굴이 화끈화끈한 게 불타는 것만 같다. 아니,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이 다 뜨겁다.
나는 손으로 귀를 부여잡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부끄러워.. 발끝이 다 저릿저릿했다. 나를 뭐라고 생각하셨을지.
이번에 노골적으로 계속 봤다고 해서 날 더 싫어하시는 건 아니겠지. 내일 상혁씨 밥 차려줄때 어떡하지. 민망하다, 민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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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방문을 열어 상혁씨가 없는지 확인을 하고 화장실에 들어왔다. 문을 잠그고 차가운 물로 세수를 했다. 얼른 이 열이 내려가기를.
상혁씨가 방에 언제쯤 들어가시나 계속 기다리다 방금 문 닫히는 소리가 나 얼른 나왔다. 뭘 그렇게 밖에 오래 계셨는지, 하마터면 잠이 들뻔했다.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고, 폼클렌징으로 깨끗하게 얼굴을 씻었다. 보송보송한 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닦고 다시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가 로션을 발랐다.
…얼른 자야지. 나는 침대에 누웠다. 부드러운 이불을 덮었다. 침대가 넓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차가운 물로 세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 열은 내려가지 않는지.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건 화끈거리는 열도 있었지만, 붉어진 두 뺨과 귀였다. 이 꼴을 상혁씨가 봤다면.. 그건 생각하기도 싫다.
눈을 감고 빨리 잠들기를 빌었다. 하지만 쉽사리 잠은 오질 않는다. 아까 상혁씨가 계속 떠오른다. 나는 이불을 내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창문 틈 사이로 달빛이 새어 들어온다. 오늘 밤은 쉽사리 잠에 들지 않을 거 같다.
♡ 암호닉 ♡
라일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