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생님, 15호실 선생님이 들어가세요?"
백현이 때문에 꼼짝없이 스테이션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있었는데 백현이가 내 옆에 있던 선생님한테 오더니 저런 말을 건넸어. 15호실이면 저 선생님이 맞긴 한데..
"네, 쌤. 15호실 저 맞아요."
"죄송한데, 김쌤 들어가는 13호실이랑 체인지 가능할까요?"
"13호실이요? 왜요?"
백현이의 말에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백현이를 올려다봤어. 얘가 지금 뭐라는거야..
"13호실에 인플루엔자 환아 들어와서요. 계속 약물 처방하고 있긴한데..거기에 폐렴환자까지 있어서 아무래도.."
"아-13호실이 김쌤..그 생각을 못했네. 알았어요."
강쌤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이 상황이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내가 백현이를 향해 황당하다는 눈빛을 보냈어.
"선생님, 무슨 소리세요?"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감사해요."
"야, 변백..아니, 쌤. 13병동이랑 15병동이랑 환자 수가 달라요. 그걸 어떻게 체인지를 해요?"
"인플루엔자 환아 퇴원 때까지만 그렇게 갈게요."
15호실은 환자 감염 예방을 위해서 전염성 바이러스가 없는 환자들만 모아놓은 호실이었고 13호실은 백현이 말대로 인플루엔자 보균자에 폐렴환자까지 보유하고 있는 호실이었어. 백현이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애초에 15호실보다 13호실이 환자가 2배나 많은데 이렇게 되면 강선생님한테 일이 더 옮겨지는 거잖아. 심지어 나보다 2년이나 더 높은 쌤인데.
"아니요, 제가 들어갈게요. 13호실 환자 많아서 인계도 힘들어요."
"인계 자료 제가 정리해서 보낼게요. 강선생님, 부탁드려요."
"그래요. 인계야 지금 하면 되고, 지금 바짝 몸조심해야 될 땐데. 괜찮아요. 변쌤 일 보세요."
"아니, 쌤.."
변백현이 감사하다며 웃으며 스테이션을 떠났고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변백현을 쫓아갔어. 의국으로 들어가려하는 변백현 옷깃을 잡아챘어.
"변백현,"
"왜? 안돼. 15호실 들어가."
"나 이때까지 인플루엔자 감염된 적 없어. 나 그거 면역 돼있다니까?"
"임신하면 면역력 떨어지는 거 알잖아."
"아니, 그래도 그렇지. 너 저 쌤 지금도 환자 많은 거 몰라서 그래? 안 그래도 우리보다 삼십분은 라운딩 더 도시는데 거기에 13호실을 보내면 어떡해?"
"그러면 계속 폐렴균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드글거리는 곳을 왔다갔다 하겠다고?"
"나한테 미리 말이라도 해주든가!"
"미리 말하면 지금처럼 난리 칠거 뻔한데?"
결국 나는 할말이 없어져서 입술을 꼬옥 깨물었어. 백현이는 슬쩍 웃으며 의국 문을 열고 들어가버렸지. 나도 그렇게 스테이션으로 돌아가 라운딩 돌 준비를 했어. 속으로는 변백현을 수백번 곱씹으면서.
"쌤, 죄송해요. 13호실 환자 많은데..."
"환자가 많아도 그렇지, 인플루엔자 득실거리는 곳에 임산부를 어떻게 보내. 변쌤 보기 전에 얼른 마스크나 해요. 그러고 라운딩 돌다가 들키면 병동 난리난다."
나는 정말 죄인이 된 기분으로 나보다 2년이나 높은 선생님한테 인계를 내려 받았어.
ㅡ
"야아~도경수!"
오늘은 백현이가 너무 바빠서 나 홀로 병원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향하는데 식당 문 앞에서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포착됐어. 년차가 올라갈 때마다 힘든 건 소아병동도 마찬가지인지 도경수의 얼굴도 백현이 못지않게 상해있었어. 그래도 소아병동은 밥 먹을 시간은 주나보네, 백현이는 밥도 못 먹는데.
"오랜만이네, 변백현은 어제 응급실에서 봤는데."
"너도 어제 응급실에서 밤 샜어?"
"응, 당직."
"우리 백현이는 당직도 아니었는데 응급실에서 꼴딱 샜대!"
"... 여자친구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어?"
도경수가 피곤한 듯 안경을 치켜올리며 옅게 웃었어. 오랜만에 봐도 경수 얼굴은 정말, 국보급이다 생각하며 식당으로 들어섰어.
"야, 너도 밥 많이 먹어. 한 번 먹을 때 많이 먹어야지. 변백현은 밥도 못 먹고 있어."
"그럼 현모양처처럼 도시락이라도 싸줘야 되는 거 아니야?"
"도시락은 무슨 도시락이야, 미워 죽겠는데."
내가 툴툴거리며 내 식판을 집어들고 도경수 뒤를 따랐어. 나도 밥 많이 먹어야지, 이제 2인분씩 먹어도 되니까.
"욱,"
많이 먹겠다는 포부로 배식대 가득 담겨있는 미역 무침을 집게로 한가득 들어올려 내 식판에 가져오려는데 순간 미역 비린내가 진동을 하며 코를 찔러왔어. 동시에 도경수가 뒤를 돌아 나를 쳐다봤지.
"미역, 좋아하지 않아?"
"..어, 나 미역 킬런데."
해산물을 유독 좋아했던 나를 알았던 도경수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고 나 또한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으며 생애 처음으로 미역반찬을 뛰어 넘었어. 미역 비린내를 맡고 나서 식욕이 훅 감퇴된 나는 그 다음 반찬들도 집는 둥 마는 둥 했고 결국 식판에는 반찬이 묻어있는 수준으로 담겨있었어. 수북히 담겨있는 도경수 식판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지.
"속이 안 좋아? 체한 건 아니고?"
결국 경수가 미지근한 물을 한 컵 떠 와 내 옆에 놓았고 나는 물을 꼴깍 꼴깍 마시며 목을 축였어.
"너 얼른 먹어, 바로 올라가야 하지 않아?"
"너 먹는 거 보고."
울렁거리는 속에 쉽사리 수저를 들지 못하고 있는데 내 앞에 있는 도경수도 수저를 들지 않고 있었어. 괜히 시간을 뺏는 것 같은 느낌에 얼른 먹으라고 말했지만 경수는 내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었지.
"..경수야, 나 먼저 올라갈게."
음식 냄새가 폴폴 풍기는 식판 앞에서 나는 밥을 한 술도 뜨지 못했고 이러다간 도경수까지 괜히 밥을 먹지 못할 것 같아 수저를 내려놓았어.
"못 먹겠어?"
다정하게 묻는 경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어. 내가 일어남과 동시에 경수도 수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어.
"야, 너는 먹어. 밥 먹을 시간도 없는 게..먹고 올라와."
"체한거면 약이라도 먹어."
"괜찮아. 나 원래 시간지나면 괜찮아져."
"변백현한테 이야기하기 전에, 내 말 들어."
고집불통 도경수는 결국 내 손을 이끌고 식당을 빠져나갔어. 그렇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도경수에게 팔목을 붙들려 소아 병동으로 향했어.
"아아, 나 바쁘다니까? 내 병동 갈래-,"
"내가 더 바빠. 나 데려다 주고 가."
"내가 널 왜 데려다 줘? 나 약 안 먹는다고, 안 먹어!"
"자꾸 칭얼거리면 주사 꽝 할거야."
뭐? 주사 꽝? 내가 애냐!? 내가 애냐고! 발악하는 나를 싸그리 무시한 채 도경수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스테이션에 도착해 처치실로 기어이 나를 끌고 들어갔어.
"너 맨날 애들한테도 주사 꽝 할거라고 협박하지!? 그러니까 애들이 그렇게 울지!"
"무슨 소리야, 손 펴봐."
"왜? 약도 애들한테 주듯이 줘보지!?"
"쪽쪽이에 넣어서 줄까?"
"미쳤어, 도경수."
"얼른 꿀꺽해."
도경수는 꿀꺽이라는 모션까지 하며 내게 물이 든 컵을 건넸어.
"싫어, 나 약 먹으면 속 더 안 좋아져."
"임산부가 먹어도 되는 약이야. 먹어."
"정말?..이 아니라, 너 어떻게,"
허를 찔러오는 도경수의 말에 내가 어버버하며 뒤로 두발짝 정도 물러났어. 나 아무 말도 한 적 없는데?!
"넘겨 짚어 봤는데, 맞나보네."
도경수는 흥미롭다는 듯 싱글싱글 웃었고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어. 예전부터 도경수 눈치는 백단이네.
"그 바쁜 와중에..몇 주나 됐,"
도경수의 장난스러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경수 가운 주머니에서 삐비빅-하는 수신기 알림음이 울렸고 빠르게 수신기를 꺼내서 화면을 확인한 도경수는 직접 내 손에 들린 컵을 가져다가 반 강제로 내 입에 넣었고 내 손바닥에 놓여져 있던 약도 입에 쑤셔넣다시피 넣어버렸어. 무의식 중에 꼴깍 삼켰더니 그제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처치실 문을 열었어.
"가자."
"어딜? 너 콜 온 거 아니야?"
"GS 콜이야, 너랑 나랑 가면 변백현 뒤집어지겠다."
우리 병동에서 온 콜이구나. 며칠 전에 장 폐색 수술한 아기가 우리 병동에 있는데 아마 그 아기 때문에 울린 콜일거야. 엘레베이터를 탈 시간도 없이 계단으로 빠르게 내려가서 우리 병동 스테이션에 도착했는데,
"도경수?"
막 처치실에서 장갑을 벗으며 나온 변백현이 나와 도경수의 투샷을 보고 심기 불편하단 표정을 지었어.
"백현아, 오랜만이네. 우리 애 잘 있어?"
"너네 애가 누군데요?"
"이틀 전에 폐색 수술한 아기. 그 애 콜인 것 같은데."
"아, 그 인플루엔자 아기?"
백현이는 제 입으로 인플루엔자라는 단어를 내뱉자마자 나와 도경수 앞으로 빠르게 다가와 나를 도경수에게서 떨어트려 놓았어.
"어디 남의 집 애한테 인플루엔자 옮기려고, 요즘 소아병동 인플루엔자 득실거린다던데."
"야, 백현아..좀."
"소아과 레지던트는 당분간 우리 애랑 거리 좀 유지해주세요."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백현이가 조용히 읊조렸어. 스테이션 간호사들이 들을까 나는 괜히 심장을 조렸고, 도경수는 재밌다는 듯 웃었어.
"너네 집 애, 맛난 것 좀 사다 먹여야겠더라."
그렇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진 채 도경수는 자기 애 병동을 향해 사라졌고, 백현이는 주머니에서 새 마스크를 꺼냈어. 얘는 무슨 주머니에 마스크가 대체 몇개나 들어있는거야.
"됐어, 나 퇴근할 때까지 라운딩 없어. 오늘은 집에 올거야?"
"아니, 오늘 응급실 당직이야."
"어제 밤 샜는데?"
"그건 환자 밀려서 그런거고, 오늘은 당직."
"애를 잡네, 잡아."
"집에 가서 밥 챙겨먹고, 들어갈 때 먹고 싶은 거 사서 가. 내일은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가자."
미안함이 잔뜩 묻어있는 백현이의 말에 알았다며 괜히 더 씩씩하게 웃었어.
ㅡ
오늘도 무사 퇴근을 하고, 백현이 말대로 집에 오는 길에 먹고 싶은 딸기도 사서 집으로 돌아와 내일 백현이와 같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갈 장소를 탐색하고 있었어. 백현이가 항상 바쁘다보니 이렇게 간만에 오프가 겹치는 날 데이트 코스 짜는 것도 모두 내 몫이었지만 이 마저도 항상 행복했지.
나른하게 침대에 누워 괜히 백현이가 없는 옆자리를 팔로 슥슥 쓸어내리다 포근한 이불에 파묻혀 졸음에 감기는 눈을 그대로 감았어. 평생 이 시간이 안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어.
"..아,"
얼마 자지도 못한 것 같은데 지끈거리는 머리와 쑤셔오는 아랫배에 잠에서 확 깨버렸어. 사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던 것보다 살살 아파오는 배에 정신이 확 들었지. 머리를 손으로 짚었더니 식은땀이 손에 잔뜩 묻어나왔고 침대 머리 맡에 있는 휴대폰을 집어들었어. 예전같았으면 조금 참아보다가 백현이나 김종대에게 전화했을테지만 이번은 상황이 달랐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에 바로 액정에 일일구를 찍어버렸어.
전화를 건 지 오랜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있었어. 실려오는 길에 백현이가 오늘 응급실 당직이란 걸 떠올린 내가 이 병원 말고 다른 병원으로 가달라며 요청했지만, 임산부에다가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의 말은 하나도 먹히지 않았지. 더 말을 할 힘도 없었던 나는 그저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익숙한 응급실로 들어가 이동식 침대에 옮겨졌어.
"어, 변백현 선생님 가족이세요!"
"가족이요?"
"아내분이요! 변쌤 어디계세요?! 오늘 당직이신데!"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고 변백현을 찾지 말아달라고 속으로 무수히 외치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나가지는 못했어.
"쌤, 여기요! 체온 39.8도까지 올랐어요, 혈압은 정상이고 맥박 조금 빨라요!"
힘겹게 뜬 눈 사이로 목에 두른 청진기를 빼들며 달려오는 백현이가 보였고 곧이어 내 머리 위로 커다란 손이 놓여졌어. 응급실에서 불과 몇 초 전에 간호사가 정확한 체온을 이야기 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머리를 손으로 짚어보는 의사라니, 항상 내가 열이 날 때마다 내 이마를 짚어보던 백현이의 습관이 그대로 나온거지.
"혈액검사 준비해주시고 복부 초음파 바로 찍을게요."
"네, 쌤이 채혈하세요?"
"네, 제가 할게요. 아세트아미노펜 믹스해서 준비해주세요."
"부인과 쌤 콜 할까요?"
"괜찮아요. 열성 복통 같은데, 초음파 보고 콜 할게요."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내 팔을 빼내어 백현이가 옷을 걷어 올렸어.
"마스크 잘 하고 다니라했지, 말을 하면 좀 들,"
"나, 배아파.."
"열 나서 그래. 머리는 어때? 지끈거려?"
"배가, 아파.."
"열 때문에 그런거야. 괜찮아. 약 언제 오는거야,.. 기다려봐."
결국 답답했던 건지 백현이가 커튼을 박차고 나가 트레이 한 가득 약과 주사기를 싣고 나타났어. 그거 그만큼 필요 없는데, 평소에 주사 처치를 잘 하지 않는 백현이라 뭣도 모르고 잡히는 대로 챙겨 온 것 같았어.
그 때, 백현이가 들어온 커텐이 제대로 자리잡지도 않았는데, 앞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간호사가 다시 커텐을 젖히고 나타났어.
"쌤! 2번 베드 씨피알이요!"
ㅡ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올 때마다 석고대죄를 하지만 정말 죄송합니다..ㅠ_ㅜ..
여름방학이 되어야 연재 텀이 조금 짧아질까요..? 다들 이 글 연재중단이냐고 물어보시는데.......거의 중단수준....ㅋ....
저 요즘 백현이가 어떻게 사는지 이그조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잘 모르고 살아요..혹시 누구 열애설 나고 그런거 ..아니져..?
ㅠㅠ진심 간호학과는 헬임 헬 헬게이트도 아니고 그냥 헬이에요! 게이트 따위는 없어요 시작부터 헬이니까! 님들 막 댓글로 간호학과 가고싶어요~하는데 오지마세요! 오지!마!
나중에 3,4학년 되어서 제 원망 하지마시구여 ㅎ저는 분명 오지말라고 했음! 그리고 합격했는 분들..이제 신입생으로 들어가셨겠죠..? 화이팅하시길..!^^!
그래도 항상 잊지않고 저 언제 오냐고ㅜ_ㅠ 댓글 남겨주시던 분들..정말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