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애인이 있나?
A. 훈련을 하느라 사람 만날 엄두를 못 낸다.
Q.. 훈련을 하지 않을 때 외롭지는 않나? 국가대표이기 이전에 20대 청춘 아닌가.
A. 그래서 내가 누나를 찾게 되나? (웃음)
Q.. 누나? 연상이 취향인가 보다. 그게 누구인지 더 스포츠에게만 살짝 힌트를 달라. 연예인? 같은 국가대표?
A. 연상도 아니고 국가대표도 아니다. 나의 누나이다.
[ 얼음 위의 스물 셋. 그 찬란한 감수성에 대하여.
이번 파리 동계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된 피겨스케이터 박성훈을 만나 보았다. 박성훈은 다른 스물셋과 같이 밝고 명랑함도 가지고 있었으나 다른 스물셋과는 다르게 우울함도 가지고 있었다. 그 우울함에 대해 더 뷰티는 탐미해 보았다. ]
사람들이 박성훈이 표지를 장신한 잡지를 한 번씩 읽어보고 갔다. 대부분은 얼굴이 잘생겼다는 칭찬이었다. 남자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게 생겼지. 진짜 신의 외모다. 혈육에 대한 원초적인 외모 칭찬을 듣고 있으니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뿌듯한 웃음은 아니고 비웃음도 더더욱 아니었다. 몇 년을 봐도 박성훈에 관한 사람들의 외모 칭찬은 적응되지 않는다. 내가 웃자 앞에 서있던 여자애들 둘이 나를 팩 쏘아 보았다. 이번엔 비웃음으로 들렸나 보다.
" ㅇㅇ야. 뭐 봐. "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희승이 옆에서 내가 보고 있는 잡지를 내려다 보았다. 끝까지 잠군 와이셔츠가 와인이 흠뻑 젖어있는 박성훈의 화보를 보자 이희승이 잡지를 덮었다. 내 손은 박성훈의 화보집 아래 위로 갇혔다.
" 저녁 안 먹었지? 배 안 고파? "
" 배고프지. 저녁 사서 들어갈까? 식사 차리기 귀찮다. "
" 그러자. "
겨울의 거리는 쌀쌀하고 아름답다. 크리스마스와 신년 혹은 설날 연휴가 걸쳐있는 겨울은 언제나 아름답지. 휴식은 아름다운 법이다. 언제나 쉴 수 있는 나와는 다르게 박성훈은 휴식이 독이다. 남들이 쉬는 날에도 빙상장을 가야 한다. 연휴에 침대에서 늘어지게 놀고 있는 나를 보고 조금 부러워 했던 얼굴을 한 것 같다. 불쌍한 박성훈.
" ...야! "
" 아, 깜짝아. 왜 소리를 질러. "
" 아까부터 딴 생각하는 거 같길래. "
뭐 포장할까. 내일 주말이니까 불족발? 이희승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족발집 안으로 들어서니 티비에선 박성훈이 광고하는 이온음료 광고가 나온다. 청량하고 아름답게. 남자의 아름다움을 앞세운다는 시놉시스의 광고라 돋보인다며 화제가 된 광고다. 대한민국은 박성훈을 너무 사랑한다. 그도 그럴게 박성훈은 대한민국이 사랑할 법한 서사를 가진 애니까.
" 성훈이 예쁘다. 무슨 남자애가 저렇게 생겼어. "
" 어...... 뭐 그렇네. "
내가 티비를 보고 잠깐 생각에 빠져있자 아예 이희승이 먼저 선수를 쳤다. 내가 떨떠름한 얼굴을 하자 이희승 역시 금방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봉투에 담긴 묵직한 배추김치, 무말랭이, 주먹밥, 계란찜, 불족발을 들고 희승과 택시를 탔다. 집에 가는 동안 우린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시시껄렁한 말을 붙였으나 이희승은 짤막하게만 대답했다.
집에 와서 내가 포장음식을 까는 동안 이희승은 소주를 깠다. 우리는 동거하는 커플이다. 스물이 되자마자 동거를 했으니 올해로 3년이 된다. 동거가 주는 매력은 항상 상대가 곁에 있다는 것. 상대가 편안해진다는 것. 상대가 당연해진다는 것. 단점은 상대가 나를 너무 잘 안 다는 것. 오늘은 수많은 장점 중에 단점 하나가 너무 크다.
" 불족발 개맛있겠다. 불향 나. "
" ㅇㅇㅇ. "
" 어? "
" 성훈이랑 조만간 밥 한 번 같이 먹자. 경기 언제 끝나지? "
" 걔 파리 갔어. "
" 그니까 곧 돌아올 거 아니야. "
이희승의 언성이 높아진다. 입맛은 떨어진지 오래다. 불족발과 소주를 두고 대치하는 이 상황이 너무 웃기다.
" 너희 남매, 진짜 꼴사납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