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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은 징계로 받은 교내 봉사 5일을 위해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부랴부랴 급식실로 뛰어 내려왔다. 

태연은 조리실로 쭈뼛대며 들어서서 우물거렸다. 

그러자 한 아주머니가 태연을 발견하고 태연에게 다가와 물었다. 

 

"왜, 필요한 거 있어요?" 

"아, 저, 교내, 교내봉사 때문에.." 

"아아. 저기 앞치마 대충 메고, 이리로 와요." 

 

습기로 가득 찬 조리실에서 태연은 반찬통과 국통을 옮기느라 진땀을 뺐다. 

뜨거운 열기와 증기로 가득찬 곳에서 태연은 아주머니들의 등쌀에까지 밀려야했다. 

 

"이거 여기로 옮겨놓으면 안되지. 저리로 놔야지." 

"저, 저기요?" 

"저쪽, 저기." 

 

그녀들의 설명은 충분히 불친절했고, 태연은 당연히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배식을 시작했다. 

태연은 그제서야 괜시리 마음이 울적해지기 시작했다. 

밀려오는 학생들을 보며 태연은 자신이 창피해졌다. 

어짜다 자신이 이러고 있는지,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좌절하기엔 배고픈 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아, 더 줘." 

 

채경이었다.  

태연은 제육볶음을 조금 더 얹어 주었다. 

 

"좀만 더. 나 밥 비벼먹을거라고." 

 

태연이 우물쭈물대자 뒷줄에 선 학생들이 태연에게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아, 안 돼." 

 

태연을 째려보던 채경이 태연에게서 식기를 강제로 뺏더니 제육볶음을 왕창 덜어갔다. 

그러고선 식판대 위에 식기를 큰소리가 나도록 집어던져놓고 지나갔다. 

그러자 뒤에 서있던 채경의 무리들도 식기를 자기들끼리 전달하며 제육볶음을 왕창 가져갔다. 

 

그리고 국을 배식하던 아주머니가 그런 그들의 식판을 보고 태연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저렇게 많이씩 주면 으뜩해! 뒷 사람들은, 엉?" 

"..." 

 

조금씩 제육볶음을 덜어주던 태연은 계속되는 아주머니의 고함소리에도 그저 묵묵히 할 일만 했다. 

 

그 때, 타이밍 좋게 태연의 앞에 미영이 섰다. 

미영은 그 아주머니를 쳐다보다가 태연을 쳐다보았다. 

태연은 모르는척 하고 조용히 제육볶음을 덜어주었다. 

 

"태연아, 너 뭐해?" 

"..." 

"야, 김태연." 

 

미영의 친구가 빨리 가라며 미영의 등을 떠밀자 미영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태연을 지나쳤다. 

태연은 속이 상하고 문드러지는 것만 같았다. 

 

태연의 앞에 올 것이 왔다. 

저 멀리서 점점 다가오는 유리와 윤아가 보이자 태연은 자꾸만 헛기침을 했다.  

유리가 식판을 들이밀고 앞에 섰다.  

유리는 배식하는 사람에겐 관심이 없는지 다른 반찬들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심코 태연의 눈을 쳐다보더니, 태연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쳤다. 

뒤이어 윤아도 식판을 들이밀었다. 

태연은 고개를 조금 더 숙인 채 제육볶음을 퍼 윤아의 식판에 옮기다가 그만, 윤아의 와이셔츠 깃에 조금 튀기고 말았다. 

 

"아이 씨, 진짜.." 

 

윤아가 그제서야 제육볶음을 배식해주는 애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마스크와 위생모를 쓴 애는 얼굴이 도통 보이지를 않았다. 

팔을 보니 와이셔츠가 있어 학생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야, 사과를 해야할 거 아냐." 

"..." 

 

뒷 학생이 뭐하나 싶어 기웃거리자 태연은 뒷 학생의 식판에 제육볶음을 올려주었다. 

윤아는 또 꼭지가 돌아 배식하던 애의 위생모를 퍽 하고 쳐올렸다. 

 

윤아는 눈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순간 윤아의 화는 겨울날 담뱃불의 불씨가 눈을 맞고 피시식, 꺼지는 것처럼 죽었다. 

이 아이는 윤아의 죄를 덮어 쓰고 묵묵히 일을 하던 중이었다. 

윤아는 뚫어져라 태연을 쳐다보다 정신을 차리고 그냥 조용히 태연을 지나쳐 주었다. 

뭐라 아는척을 하는 것 보다, 그렇게 하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웃기시네, 봉사활동?" 

"..." 

"똑바로 얘기해. 어째서 니가 밥을 퍼줘?" 

"밥 아니고 반찬, 인데.." 

"너 지금 나랑 장난해?" 

 

태연은 대답 대신에 미영을 올려다보며 살짝 웃었다. 

그냥 넘어가달라. 하는 나름 태연의 애교였다. 

 

태연은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난 뒤 조금 한산해진 급식실 구석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미영은 당연히 그런 태연을 좋게 볼 수 없었다. 

좋게 볼 수 없었다기 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외로워 보이기에 속이 조금 상했던 것이다. 

 

"야, 안 가?" 

"잠깐만. 야, 김태연." 

"..." 

 

미영은 잔뜩 짜증이 나 팔을 괴고 째려보는 자신의 친구들을 뒤로 한 채 태연의 이름을 불렀다. 

태연은 묵묵히 밥을 먹으며 듣고만 있었다. 

 

"너 진짜, 뭘 좀 얘기해주면 어디가 덧나?" 

"..." 

"나한테 사실대로 말하면 내가 뭐, 잡아먹냐? 어?" 

"잡아 먹네, 아주." 

 

미영이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자 윤아가 혼자 다가와 앞에 섰다. 

미영은 윤아의 얼굴을 보자마자 한증막 사우나안으로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체 넌 또 왜 나타났니, 하고 물어보기조차 싫어 윤아를 최대한 경멸스럽게 쳐다보았다. 

윤아는 그런 미영을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쳐 태연의 옆에 섰다. 

 

태연은 밥 먹던걸 그만 멈추고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급식실에 남아 있던 아이들이 윤아의 등장과 미영과 태연이 함께한 그 조합이 신선해 모두들 쳐다보았다. 

 

"학교 끝나고 뭐 해, 너." 

 

윤아가 태연의 팔을 툭 건드리며 묻자 미영은 슬슬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태연은 툭 건드려진 팔을 한 번 쳐다보고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앉아있었다. 

 

"놀자, 응? 지난번에 갔던 데 가자." 

 

미영은 뭔 일인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대충 임윤아라는 인간이 태연의 인생에 꼽사리해 난동을 피기 시작한 것이 대충 이 삼주 되었으니, 태연의 핸드폰이 윤아에게 있게 된 그 날 갔던 곳을 말하는 듯 했다. 

태연의 표정을 살펴보자 여간 불편해 보이는 게 아닌 것 같아 미영은 짜증이 났다. 

 

"야, 양아치." 

"내가 사줄.. 하, 내가 사줄게. 오늘 가자." 

 

윤아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화가 끌어오르는것을 참았다. 

태연은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먹던 식판을 윤아에게서 멀리 밀어두며 나갈 채비를 했다. 

 

윤아는 앞치마를 벗는 태연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보았다. 

윤아는 까드득, 소리가 날 만큼 이를 깨물었다. 

 

"너야말로 애 좀 잡지마, 윤아야." 

"..." 

"언제까지 그렇게 살거야? 대학가서도 그럴거니?" 

"뭐라고?" 

"풉, 존나 웃기긴 하겠다. 니같은 인성 쓰레기가 서울대 가면." 

 

윤아가 맘을 먹었다. 

미영의 머리채부터 일단 잡아야겠다고. 

맘을 먹고 행동으로 옮기려는 순간, 사람 하나가 툭 튀어나와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 그만. 가자." 

"거기 가서도 돈으로 총장 입 막고 애들 팰거니?" 

 

태연이 미영의 몸을 팍 돌리고 등을 떠밀었다. 

 

"아니면 총장도 불러다 때릴거니?" 

"..." 

"볼만 하겠다, 서울대 양아치 임윤아!" 

 

미영은 태연에게 등을 떠밀려 급식실을 나가면서도 윤아에게 소리를 질렀다. 

급식실에 혼자 남은 윤아에게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윤아는 눈을 치켜뜨고 돌아보며 한 명 한 명 쏘아봐주었다. 

아이들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밥 먹는데에 열중했다. 

 

 

 

 

등떠밀려 나오던 미영은 시야에서 윤아가 사라지자 마자 제 의지로 급식실에서 걸어나와버렸다. 

뒤따라 오던 태연의 발걸음은 느려지고 미영의 친구들이 태연을 지나쳐 미영에게로 왔다. 

 

"야, 뭐야? 니 미쳤어?" 

"뭐가." 

"니 좆됐어, 이제. 왜 임윤아한테 시비를 걸어?" 

"시비는 걔가 먼저 걸었어." 

"아, 아무튼.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 

"황쌈닭이 드디어 한 건 하는구나. 세상에." 

 

미영의 친구들 뒤로 태연이 가까이 다가오자 미영의 친구들은 슬그머니 눈치를 보더니 조금 자리를 피해 움직였다. 

미영은 태연을 쳐다보다가 그냥 돌아 교실로 가려했다. 

태연이 미영의 팔을 잡았다.  

미영은 팔이 잡힌 채 억지로 가던 길을 마저 갔다. 

태연은 어떡하지, 하다가 그냥 팔을 놓아주었다. 

미영이 앞으로 조금 가는듯 하더니 홱 하고 몸을 돌려 태연에게로 왔다. 

 

"애들이 나보고 미쳤대. 임윤아 말고 내가." 

"..." 

"임윤아는 너 괴롭히고 싶은대로 괴롭히고, 사과하고, 얘기하고." 

"..." 

"난 뭐야? 나는 너 친구가 될 수도 없고, 대체 난 뭐야?" 

 

태연이 처음보는 미영의 표정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처음 보는 자신을 향한 미영의 표정이었다. 

항상 곱게 휘어져 있던 눈꼬리도, 귀엽게 끄트머리가 축 내려와있던 눈썹도, 환한 웃음이 누구보다 시원했던 입가도. 

 

온통 처음 보는 것 투성이인 미영의 표정이었다. 

태연은 적잖게 당황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답답하게 눈만 꿈뻑거리지 말고 얘기를 해!" 

"치, 친구 맞아." 

"아니. 너 나 친구로 생각 안하잖아." 

"..." 

"너는 친구라는게 뭔지 모르지." 

 

태연은 순간 가슴이 시큰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게 같은 나이에게서 느끼는 속상한 마음이구나. 

가슴을 짓눌러 놓았던 커다란 애드벌룬이 퓨슈슈슉 하고 바람이 새어나가는 듯한 것이 이런 거였구나. 

 

"내가 없어도 넌 전처럼 잘 지낼거잖아." 

"..." 

"원래 없었던 것처럼 잘 살거잖아." 

"..." 

"그게 무슨 친구니." 

 

미영은 마지막 말을 끝으로 천천히 뒷걸음질 치다가 몸을 돌려 친구들에게로 달려갔다. 

태연의 양 어깨가 주욱 땅 쪽으로 꺼져 안그래도 움츠러든 어깨가 더욱 제 기를 펴지 못했다. 

태연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상당히 계산적이었던 것 같았다. 

왜 미영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지를 못했는지. 

 

임윤아의 허위 진술 때문에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었고, 임윤아를 위해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 

 

태연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스스로 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미영도 그것을 알고 이해했으나, 임윤아에게 미친 척 떠들어 놓고 나서 보니 왜 자신이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던 것이다. 

 

미영은 순간 후회가 밀려올라와 뒤를 돌아 보았지만 태연은 그곳에 없었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다시 교실로 마저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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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었쥬ㅠㅠㅠㅠㅠㅠㅠ 죄송해유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독자1
매일 들어와서 작가님 글 올라왔나 확인했어요ㅠㅠㅠ 오늘뭔가 올라올것 같아서 기대하면서 들어왔는데 역시나!! 오늘은 태연이도 윤아도 미영이도 다들 아련하네요ㅠㅠ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8년 전
독자2
태연이 너무 불쌍해ㅠㅠㅠㅠㅠ다들 아련아련.....작가님 역시 짱이시네용!!
8년 전
독자3
오셨다!진짜재미있어욬ㅋㅋㅋㅋㅋㅋ다음편 기대할게요!!
8년 전
비회원86.241
역시 오늘도 재미있어요!!! 작가님 꾸준히 연재해 주셔서 감사해요ㅠㅠ
8년 전
독자4
작가님 글 너무 잘쓰세요bb
8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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