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함께이고 싶은 날이 있다. 함부로 명명되지 않은 그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날이 있다. 유독 벚꽃이 피는 그 날이 그렇다. 올해는 벚꽃이 4월을 넘겨야 필 것이라 들어 기대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꽃봉우리가 닫혀 있는 허전한 나무를 바라보자니 마음까지 묘해졌다. 손을 뻗어 가장 먼저 닿는 붉은 꽃봉우리를 톡-하고 땄다. 아무런 의미 없이 한 행동이지만 문득 그 나무에게 사과하고싶었다. 나무가 이 봉우리를 맺기 위해 견뎌내야했을 시간들을 생각못한 잘못이었다. 굳게 닫힌 봉우리를 손아귀에 넣어 놓치지 않았다. 괜시리 꼭 쥔 손가락이 간지러웠다. "다녀왔습니다" 왜이렇게 늦었냐는 말을 듣기도 전에 방문을 닫고 들어왔다. 가방을 내려놓기도전에 가장먼저 한 일은 꽃봉우리를 화분에 심는 일이었다. 햇볕이 드는 창가 바로 밑에 키우는 민트 옆에 새끼손가락으로 동그랗게 구멍을 내어 조심조심 심어두었다. 꽃이 피기를 바라서가 아니었다. 나무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의 고통을 대신 감수하겠다는 뜻이었다. 그 이후, 버릇이 하나 생겼다. 꽃을 수시로 멍하니 바라보는, 변화가 있다면 앙 다물었던 봉우리가 간신히 틈을 보였다는 것이다. 언뜻언뜻 보이는 붉은 색이 나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꽃이 활짝 핀다면 화분에 새로 흙을 담아 그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줄 작정이었다.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었을까? 욕심이 있다면 누군가가 아닌 나였으면 한다. 봉우리가 입을 벌리고 피운 아름다움을 제일 처음 보는 일이 얼마나 짜릿할까냐는 것이다. 그 생각을 마치자마자 잠옷 바람으로 슬리퍼를 신은채 내달렸다. 현관문을 닫기전 뒤 따라온 엄마의 목소리가 다급했지만 신경쓰고싶지않았다. 날은 조금 어둑어둑했지만 깜깜하지 않았으므로, 문제될건 없었다. 멀리서부터 가로등에, 눈앞을 찌르는 석양에 비치는 붉은 꽃잎들은 가슴을 절로 벅차오르게했다. 나의 꽃은 아직 피지 않았건만 질투나게도 나무가 피워낸 성과는 이토록 아름다울수가 없을 정도였다. 내가 따낸 꽃봉우리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못했구나. 상처를 어루만지다가 바로 옆 잔가지에 핀 벚꽃을 살며시 만졌다. "어어, 멈춰요." 멈추란다고 정말 멈춰버렸다. 누군가 나를 부를리 없다는 뜻에서도 심장도 덜컹 멈춰버릴 것같았다.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고개만 살짝 돌려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한 남자가 나를 가만 보고 있다. 조금은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꽃나무를 따면 어떡해요." 오해다. 아니 맞는말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나무의 상처가 아물길 바랐으니까. 그저 꽃이 아름다워 손이 절로 간 것뿐 꽃을 꺾으려하진 않았다. "애도 아니고..." 당황스러워서 아무말도 않고 엉거주춤한 그자세로 가만히 있었더니 남자의 입에선 말이 끊이지 않고 나왔다. 애도 아니고 꽃나무를 따려던 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되는 거였는데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왜일까, 왜 남자의 모습 뒤로 가로등이, 내리쬐는 석양이 비쳐보인걸까 "꺾지마요. 나무도 아파해요." "이 나무, 많이 아플까요?" "네?" "이미 너무 많이 꺾여서 아플것같아서요" 일주일의 꽃을 피우기위해 1년의 더위와 추위를 견뎌낸 나무인데 다시 또 사람의 손안에서 무자비하게 꺾여버린 꽃과 가지들은 얼마나 아파할까 남자는 내 마지막말에 흠칫 웃었다. "벚꽃 좋아하세요?" "네, 벚꽃 좋아해요?" "내가 먼저 질문했는데" "네라고 대답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봄을 좋아하고." "저도 정확히 말하면 식물을 좋아해요." "아 진짜?" 노란 석양에 붉은 벚꽃나무가 만들어낸 색감은 더할 나위없이 아름다웠고 "왜 반말해요?" 그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한 당신 또한 아름답다. "안했는데요?" 오늘은 봉우리를 손에 담지도 않았건만 간지럽다. 벚꽃이 피는날 문득 누군가가 찾아와 노크를한다면 그게 당신이라면 사랑하고싶다. 그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마트에 들려 화분을 하나샀고 봉우리에게도 나에게도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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