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세레노 - 소년이 소녀에게 보내는 편지.
남준이가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현관에서부터 조용하고 조금 무거운 공기가 흘렀으면 좋겠다.
평소였으면 윤기가 제게 다녀왔냐면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거나
아니면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채로 손만 까닥이며 흔들었을텐데
어느 인기척도 들리거나 보이지 않았으면.
대신에
침대 위에서
색색대며 곤히 잠들어 있는 윤기만이 보였으면 좋겠다.
그제야 집 안을 부유하고 있던 공기가 잠에 취한 토끼가 가져온 특유의 나른한 것임을 눈치챘으면 좋겠다.
어제 그렇게 미드 보더니.
전날밤에 이 사건의 범인만 잡는 거 보고 자겠다면서 노트북 앞에 딱 붙어있던 윤기를 떠올린 남준이가
엄청 졸렸나보다, 싶어 조용히 걸음을 옮겨 얇은 외투를 벗고 챙겨간 가방을 풀어놨으면 좋겠다.
소리에 예민해서 평소에는 남준이가 들어오기만 해도 금방 잠에서 깨던 윤기가
내내 잠에 빠져있는 모습은 오랜만이라 남준이가 잠시 침대 옆에 서서 허리를 숙여 윤기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저녁은 조금 있다가 먹어야 겠다.
살짝 굶주린 배를 문지르면서 자연스럽게 식사 시간을 뒤로 물리는 남준이의 모습이 보고 싶다.
썩 혼자 먹을 마음이 들지 않아서.
그보다는,
사실
윤기가 혼자 밥을 먹게 만드는 게 싫어서 기다렸으면.
가만히 윤기를 내려보면서도 어느새 곤히 감겨있는 눈에,
적당한 혈색이 도는 하얀 뺨에,
살짝 벌려진 말랑해보이는 입술에
시선을 빼앗겼으면 좋겠다.
손을 뻗어 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한 번 윤기의 눈 앞에 손을 흔들어 깊게 잠든 것을 확인한 뒤에
고개를 내려 윤기의 이마에 조심히 입을 맞췄으면 좋겠다.
좋은 꿈 꾸길.
작게 윤기에게 속삭였으면 좋겠다.
한참 뒤에야 윤기가 비몽사몽 잠에서 일어났다가 왜 안 깨웠냐고 물어오면
남준이는 그저 씩 웃으면서 잠기운에 발갛게 물든 윤기의 볼을 한 번, 머리를 또 한 번 쓰다듬었으면 좋겠다.
잘 잤어요?
어, 응.
응. 잘 잤으면 됐죠.
그리고 남준이가 냉장고를 열면서 저녁을 준비하면 그 옆으로 쪼르르 다가가서는
같이 저녁을 준비하는 윤기의 모습이 보고 싶다.
미안하기도 한데,
뭔가 나 때문에 기다려줬다는 게
내심 기뻤으면 좋겠다.
남몰래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으면 좋겠다.
고마울 때는 뽀뽀하면 안 되는걸까.
내심 드는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괜히 남준이에게 묻기에는 가슴이 너무 심하게 간질거려서
결국 태형이에게 보낼 편지의 구석에 짧게 그 물음이 담겨졌으면 좋겠다.
형. 윤기 형. 이리 와봐요.
왜?
남준이가 어느 날 알바를 끝내고 오더니 오자마자 대뜸 윤기를 제 옆으로 불렀으면 좋겠다.
초콜릿?
아니, 그건 아닌데.
...
대놓고 실망한 표정 짓지 마요.
초콜릿이 아닌건가, 어쩐지 향도 안나더라 싶었던 윤기가 두 귀를 축 내리면서 왜 불렀냐며 또 와중에 순순히 남준이의 곁으로 다가왔으면.
남준이는 들고온 종이봉투를 뒤적이다가 그 안에서 작은 화관을 꺼내어 윤기의 머리 위에 톡 올려놨으면 좋겠다.
윤기가 손을 들어 조심히 화관을 톡톡 건들였다가
이게 뭐냐는 듯 표정으로 남준이에게 의문을 보였으면 좋겠다.
나랑 교대하는 전 파트의 알바생이 유교과거든요. 오늘 교구랬나, 뭐, 만들기 과제랬나. 그걸로 화관을 만들었는데 잔뜩 남아서 줄 사람 있으면 가져가라고 주길래 받아왔어요.
아... 내 거야?
어울릴 것 같아서요, 형이랑. 생화로 만든거라서 금방 시들겠지만요.
윤기는 어중간하게 귀가 눌린 모양새로 어쩔 줄 몰라 손을 움찔거리다가 남준이가 집 안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짐을 푸는 사이에
조심히 화관을 들어 그 사이로 제 귀를 쏙 넣어 쫑긋 세우고는
거울을 보면서 그제야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으면 좋겠다.
생화인데다가 윤기가 자꾸 이리저리 만져서 그런지 꽃잎 몇 개가 톡톡 흘러내리다가 윤기의 머리와 어깨에 그 움직임을 잠시 멈추고 머물렀으면 좋겠다.
자꾸 떨어지는 꽃잎에 혹여 제가 망가뜨리기라도 한건가 싶어 윤기가 다시 안절부절한 얼굴로 남준이를 뻣뻣하게 바라봤으면.
남준이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다가갔으면 좋겠다.
손을 뻗어서 어깨와 머리에 있는 꽃잎을 하나씩 떼어줬으면 좋겠다.
잘 어울리네요. 받아오길 잘 했어요.
어... 그, 고맙다고 말하는 게 맞는건가?
그냥 그런 마음이 들 때는 고맙다고 말하면 돼요.
응. 고마워.
어색한지 손 끝을 보이지 않게 꼼지락거리던 윤기가 애써 덤덤히 말을 했으면 좋겠다.
그럼 남준이는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올렸다가 화관을 건들일까 싶어서 다시 내리고 대신에 볼을 쓰다듬어줬으면 좋겠다.
예쁘네요.
남준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윤기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져 남준이의 손에 얼굴을 묻으면,
따라서 화관이 약간 기울어져 그 끝이 남준이의 손에 톡, 닿았으면 좋겠다.
꽃향기가 물씬 피어오르는
그런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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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
귀여운 그림과 글씨 모두 감사합니다. 하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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