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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세상에서 가장 힘들었었던 입시 시험을 끝마치고 드디어 A대학교에 붙어 풋풋한 새내기가 되었다. 원래 가고 싶었던 B대학교는 날 광탈시켰지만 그래도 괜찮다. 고2때부터 가고 싶던 과에 진학을 성공한 데다가 고등학교 3년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붙어 다녔던 유나와 같은 대학교에 붙게 되었으니까. 물론 과는 다르긴 해도 말이다. 유나는 체육교육과에 진학을 하고, 난 영어교육과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같은 사범대인지라 건물이 같거나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혼밥 걱정은 덜었다는 생각을 막 하는 동안 교수님께서 여기서 끝내겠다는 말씀을 하시며, 문을 열고 나가셨다. 짐을 챙겨, 건물 밖으로 막 나왔을 때 누군가가 저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싸!!!"
수업을 막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최유나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면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고 저러다 넘어지겠네…그 생각을 끝마친지 몇 초 되지 않아 넘어지는 최유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여튼 쟤 저러는 건 알아줘야돼. 어떻게 작년 고3 내내 실기시험을 준비했는지 다시 한 번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동안 최유나는 넘어졌던 몸을 일으켜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좀 부르지 말라니깐. 쪽팔리다고. 다친 데는 없냐? 이렇게 맨날 넘어지는데 무슨 체대생이야."
"그 소리 지겹거든? 아야야..아파라. 넌 친구는 사겼냐?"
"…나도 그 소리 지겹거든?"
"에휴 우리 아싸 영지 어떡하냐. 선생님 되려면 사회성도 좋아야 되는 거 알지?"
최유나는 만날때마다 저 소리다. 그놈의 아싸 아싸. 원래 낯도 많이 가리고 먼저 친근하게 말도 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함께 밥을 먹을 친구도 사귀지 못하였다. 고등학교 때도 아무 말 없이 조용하게 앉아있던 나에게 유나가 먼저 말을 걸어준 덕분에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 과에도 유나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정말이지 헛된 희망이었다. 다들 제각각 자기 할 일을 하기 바빴고 어느새 무리를 지어 다니기 시작했으니까. 그 덕에 무리에 끼지 못하게 된 나는 충실히 수업을 들으며 복습을 꾸준히 하는 원치않는 모범생이 되었다.
"아 맞아 맞아. 영지 나 오늘은 같이 못가. 오늘 체교 뒷풀이있거든."
"아 그래? 술 적당히 마시고 제발 일찍 들어와라."
"알겠어 알겠어. 나 없는 동안 복습 열심히 하시고~ 아 그리고 집에 우리 엄마가 불고기 재놨다니까 배고프면 해서 먹어."
유나와 나는 학교 근처에서 집을 구해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그 덕에 최유나 싸돌아다니는 꼴을 챙겨줘야 했지만 뭐 나름 자취생활도 괜찮은 것 같았다.
***
할 짓이 없어 TV채널만 이리저리 돌리며 지루함을 없애려 노력중이었다. 최유나 이 년은 1시가 넘었는데 왜 안들어오는 거야. 괜히 걱정되게..전화를 해 볼까 했지만 술 마시는데 정신 팔려 안 받을걸 알고 있어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던 찰나에 벨소리가 울렸다. 혹시 최유나인가? 하지만 핸드폰 화면에는 모르는 번호가 찍혀 있었다. 뭐지. 잠깐 통화 거절을 누를까 생각을 했지만 우선은 받기로 했다.
'여보세요.'
'……저기 혹시 A대존못아싸 맞나요?'
'………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목소리는 분명 남자 목소리였지만 남자치곤 미성의 목소리였다. 아니 근데 갑자기 전화해서 아싸냐고 묻는 건 무슨 경우야.
'저기요. 무슨 미친소리세요. 장난전화 하실꺼면 끊어주세요. 기분 나쁘거든요?'
'혹시 최유나 친구예요?'
'네. 맞는데 왜요?'
'최유나가 그렇게 저장해놔서 이름을 몰랐어가지고 그렇게 불렀어요. 죄송해요.'
최유나 이 년을 죽인다. 내가.
'근데 왜요?'
'혹시 □□술집 알면 와 줄 수 있어요?'
'왜요???? 지금 유나 무슨 싸움났어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 지금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거든요. 최대한 빨리 좀 와주세요.'
***
전화가 끊어지고 상황파악을 할 겨를도 없었다. 무작적 아무 옷이나 걸쳐입고 자취방에서부터 숨 고를 틈도 없이 뛰어와 2층에 위치해 있는 □□술집을 향해 계단을 두 세 계단씩 올라갔다. 헥헥 거리며 가게 문을 열어보니 술냄새와 안주 냄새로 가득하고 시끄러운 사람들 소리에 벌써부터 머리가 울리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어딨는거지 최유나는. 각 술자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확인해보던 그때 익숙해보이는 뒷통수가 보였고 그 앞에는 내가 방금 전에 전화했던 남성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서 있었다.
엄청 차갑게 생겼다…무서워. 핸드폰에서 미성의 목소리였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차가운 인상에 먼저 말도 걸지 못하고 쭈뼛쭈뼛거리고 있었다. 그 사이, 날 발견한 건지 내 쪽으로 뚜벅뚜벅 다가오는데 키도 엄청 크다. 가뜩이나 내 키 작은데 더 비교되잖아. 잔뜩 쫄아있는 상태라 눈을 내리깐 상태로 있었는데 그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저기 혹시 A대존못아싸?"
"맞긴 맞는데 그렇게 안 부르셔도 되거든요."
"존못 아닌 거 같은데. 예쁘네."
뭐야 이 사람. 나 놀리는건가. 순간 짜증이 나서 째려보았지만 눈을 피하지 않는다. 내 눈을 빤히 쳐다보는 눈빛에 째려보던 것을 거두고 다시 눈을 깔아 시선을 아래로 향하였다. 뭔가 진 것 같아 자존심 상해. 근데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꼬리내리며 깨갱하고 있다가 다시 최유나를 떠올린 나는 다시 고개를 들고 최유나를 찾아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이동해가며 춤추고 있는 최유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발견한 사람이 진정 최유나가 맞는지 내 눈을 의심해보았다. 그 쪽 테이블 체교과 아니야. 병신아…괜시리 내가 다 쪽팔려져서 행동을 서둘렀다.
"죄송합니다. 얘 좀 데리고 갈게요."
역대급이야 최유나. 하…터져 나오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 발버둥치는 최유나의 팔을 익숙하게 붙잡아 제지시켜 데리고 나가려는데 그 이상한 남자가 옆에 스윽 오더니 말없이 최유나의 반대편 팔을 잡아주었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들어 빤히 쳐다보니 눈도 안 마주치고 "이 새벽에 위험해서."라는 말을 내뱉었다. 뭐 생각해보니까 그렇긴 하지. 빠른 수긍으로 쳐다보던 눈을 거두고 비틀거리는 최유나를 부축하기에 바빴다. 밖에는 보름달이 되다 만 반달이 예쁘게 떠 있었고, 아직 3월이라 그런지 차가운 새벽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와 괜시리 추워 몸이 움츠러들었다. 근데 이 남자는 원래 과묵한 성격인가? 밖에 나와서 말 한 마디도 없이 오로지 정면만 쳐다보며 걷는데 내가 다 어색해 죽을 것만 같았다. 이대로 있다간 어색한 공기에 눌려 죽을 것만 같아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말을 걸어보았다.
"유나랑 같은 체육교육과 동기인 거에요?"
"네"
"정말 죄송해요. 같이 부축해주시고."
"괜찮아요."
"……아, 혹시 이름이랑 나이는…? 제가 알아놔서 나중에 유나한테 밥이라도 사라고 제가 전할게요."
"22살 정택운. 안 해주셔도 돼요."
아…어색하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말을 걸었는데 되려 어색함이 곱해져 나를 숨막히게 만들었다. 뭐 저리 단답이야. 괜시리 나만 지치는 것 같아 그냥 대화하는 것을 포기하였고, 5분 정도 걷다보니 유나와 나의 자취집이 드디어 보였다. 살았다!! 이제 최유나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그동안 찬 바람을 맞아서인지 유나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날 보면서 헤실헤실 웃기 시작하였다.
"어? 영지다아."
"그래. 영지니깐 얼른 집 들어가자."
"싫어. 유나 더 술마시고 놀래애"
" 입 닫아라. 술 냄새 나니까."
입 닫으라는 말에 진짜 시무룩해져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유나의 모습이 조금은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얘 해장을 또 뭘로 해줘야 하나. 콩나물이 좀 남았으니깐 대충 콩나물국으로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집에 들어가려던 찰나 최유나가 갑자기 욱욱 거리기 시작했다. 야, 집이 코앞인데 이게 무슨… 좀만 참으라고 소리 지를 새도 없이 최유나가 일을 저질러 버렸다. 맙소사. 진짜 최고 미친년. 아까 귀여웠다고 한 거 취소다. 그렇게 최유나는 일을 저질러놓고는 비틀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정택운이라는 남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 당연히 그렇겠지. 내가 다 면목없네. 라는 심정으로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는데 맙소사. 그 남자의 코트소매에 최유나의 일부가… 묻어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져 남자의 눈치만 슬슬 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눈썹을 찡그리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 순간 수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르게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저 진짜 죄송해요. 아 그게 여기가 저희 집이니까 들어오셔서 샤워라도 하고 가실래요? 아니면 목욕이라도…저 바디워시 체리블러썸 향이거든요. 탈취제도 복숭아향으로 바꿔서 냄새 진짜 좋은데… 아 저기 그게요.."
"남자 집에 들여서 뭐할려고?"
""………"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적극적이네."
"저기요. 그쪽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 진짜 미치겠네."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르고 어리둥절해 있는 내 앞에서 '정택운'이라는 남자는 끅끅대며 웃기 시작했다. 저기, 지금 제가 더 미칠 것 같거든요? 근데 진짜 저거 어떡해. 윽. 내가 다 올라올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끅끅대며 웃더니 코트를 벗어 유나의 흔적이 묻어있는 소매만 다른 곳에 묻지 않게 주섬주섬 접는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목욕이나 샤워는 필요없고, 이 부분만 잘 빨아줘."
"아무튼 유나를 대신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 복숭아향 탈취제도 꼭 뿌려주고."
저거 분명 나 놀리는 거 맞지? 아오 짜증나. 쪽팔려져서 아무런 대꾸도 안 하고 있으니 정택운은 웃으면서 내 머리를 두어번 헝클이고는 말 없이 돌아서서 그 긴 다리로 휘적휘적 원룸 골목길 사이를 걸어갔다. 저 남자 뭐야. 22살이나 먹어서는 능글맞기나 하고. ……향수 냄새는 좋네… 향수 냄새가 코트에 연하게 베어있어 마치 그 남자가 바로 옆에 있는 것만 같았다.
***
"아 머리아파. 지금 몇시야."
"일어났냐? 일어 났으면 와서 콩나물국 먹어."
"영지야. 해장에는 냉면 육수가 그렇게 좋다더라. 담에는 그걸로 준비해봐."
"입 닫고 주는대로 먹어라. 너 어제 얼마나 개 진상을 떨었는지는 알고?"
"아니 모르지. 소맥 5잔 말아먹은 이후로는 몇 잔 먹었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그게 기억 나겠냐?"
…뻔뻔한거 봐.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에 순간 할 말을 잃고, 양손으로 그릇을 들고 콩나물국을 원샷하는 최유나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국그릇을 내려놓더니 콩나물을 젓가락으로 집어먹는 최유나가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어제 나 뭐했어? 살짝 궁금하긴 하다."
"정말 개 진상이었지. 막 생판 남인 사람들 있는 테이블가서 춤추고 노래부르고."
"나 또 그 짓 했냐… 다음부턴 자제할게."
"아 그리고, 정택운이랬나 그 사람한테 토해서 코트에 너 토 덕지덕지 묻고 그랬었어. 윽 얘기하는데 토할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영지야, 정녕 내가 그랬다고?"
"그래서 나 어제 밤새도록 코트 빨래하고 죽는 줄 알았어. 개더러워 최유나. 다음부터는 캐리 안 해줄꺼야."
"내가 미쳤지. 그 오빠 진짜 무섭게 생겼는데. 난 죽었다."
내 말을 듣고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표정이 아주 볼 만하다. 꼴 좋다. 최유나
"코트 빨고 저 쇼핑백에 넣어놨으니까 오늘 갖다줘."
"영지야. 부탁이 있다. 너가 정택운오빠한테 코트 좀 갖다줘. 3년 친구의 부탁이다."
"아 싫어 내가 왜."
"코트 갖다주면 치킨 사줄게 제발!!"
"…알았어. 지나가다가 마주치면 전해준다? 내가 직접 너네 체육관까지 안 찾아갈꺼야."
"알겠습니다. 영지님~"
난 절대 치킨에 흔들리는 게 아니다. 정말이다. 친구의 부탁이 너무나도 간절해서 들어주려는 것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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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처음 글을 써보게 되서 많이 어색하고 허접한 글인데 댓글이라도 달아서 포인트 반환해가세요 ㅠㅠ 제 경험+친구 경험+허구로 스토리 설정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