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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YA!

우리 젊은 날의 사랑을 위하여

 

.

.

.

.

.

.

.

.

.

 

[1] 첫사랑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

 

 

그러니까, 김태형과 이야기를 나눈 후 알게 된 사실은 총 세 가지였다. 하나는 김태형은 내게 쪽지를 준 후 나를 계속 기다렸지만 오지 않는 내가 미웠다. 둘은 배우라는 꿈을 가지게 돼서 서울로 상경했다는 것. 셋은 내가 광고계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접한 후 우리 회사에서 진행하는 광고만을 기다렸다는 것. 그리고 내가 드는 의구심은 그럼 왜 그동안 연락을 안 했어? 라는 질문에 김태형은 너 미웠다니까? 라는 답변에 나는 아. 라는 탄성만 내뱉었다.

 

그나저나 김태형이 정말 뷔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야 당연히 어릴 적 김태형은 그냥놀리기나 좋아하는 까무잡잡한 애였을 뿐이었는데 ㅡ내 기억 속에서는 그렇다.ㅡ 이렇게 잘생기게 컸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 동네 친구들과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기에 더더욱 김태형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꽤 멋깔나게 큰 김태형에 나는 반가움을 숨기지 못했다. 미팅 후 김태형과 밥 한 끼 하고 싶었지만

 

너 나랑 열애설 뜨고 싶어?”

 

. 맞다. 얘 연예인이지. 방금 전까지 광고 미팅 해 놓고 금새 까먹었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주섬주섬 가방을 쌌고, 김태형은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번호. 이제 너 하나도 안 미워.”

 

바꾼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폰을 건네 받아서 번호를 꾹꾹 찍었다. 김태형은 곧장 내게 전화를 걸고 바로 끊었다. 꼭 저장해 놓으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 유유히 사라졌고 나는 부재중이 찍힌 휴대폰을 멍하니 서 있었다. 나 지금 연예인이랑 번호 교환 한 거야? 대박. 내 인생 첫 연예인 번호였다.

 

미팅은 잘 하고 왔냐는 회사 직원들의 물음에 알고 보니 초등학교 동창이어서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모든 직원의 부러움을 한 번에 샀고, 팀장님은 미팅 수고했으니 일찍 퇴근해도 좋다는 말씀에 부리나케 집으로 튀어왔다. 엄마!

 

미팅 한다더니 잘 했어?”

응 완전. 글쎄, 뷔가 나왔거든? 엄마 그 옛날에 우리 박달동 살 때 그 까무잡잡한 옆 집 김태형 기억해?”

기억하지.”

걔가 뷔다?”

정말? 잘 컸네. 너 기억은 하디?”

 

나 기억하고 이 광고 덥썩 물었대라고 대답하기에는 뭐 해서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점심을 준비하겠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방으로 들어가 구석에 치워뒀던 조그만 박스를 하나 꺼냈다. 먼지가 가득 내려 앉아 물티슈로 대충 닦아내고 열었을 때는 어릴 적의 추억들이 한 가득이었다. 그 중 가장 밑에 있는 쪽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많이 놀러와. 놀려서 미안해.]

 

세월은 알지 못한다. 흘러서 이렇게 큰 우리가 마주했다. 김태형이 이렇게 될 거라고 그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어? 음 그렇지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꼬깃꼬깃한 쪽지를 그대로 다시 접으니 카톡 소리와 함께 휴대폰 진동이 울렸고 발신자를 확인한 나는 입가에 미소를 금치 못했다.

 

김태형

연락하라니까 왜 안 해?    오후 13:04

 

미안 이제 집 왔어

그나저나 너 되게 멋있어졌더라 ㅋㅋㅋㅋㅋ

     오후 13:05     부끄러워서 차마 말을 못했어

김태형

넌 여전히 못생겼던데     오후 13:05

 

그래. 간과하고 있었다. 이 자식은 호랑말코 김태형이다. 추억을 미화하려해도 되질 않는다. 이마에 핏줄이 불끈 솟은 나는 바로 ㅗ이라는 욕을 하나 보내놓고는 휴대폰을 저 멀리 던져놓았다. 정말 예뻐할래야 예뻐할 수 없는 새끼다. 나이 먹어 철이 들었을 줄 알았는데 철이 들기는 개뿔이 더 유치해진 거 같다. 국민 남친? 웃기고 자빠졌네.

 

그 후로 근 이 주동안 김태형과 많은 카톡을 나눴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김태형은 여전히 나를 놀리기에 혈안을 쓰고 나는 그런 김태형에게 욕을 퍼붓기나 바빴다. 어른이 된 거 같은 우리는 여전히 그 때 그 시절처럼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이 외로운 서울 도심 속에서 찾은 옛 동네 친구는 반가움 그 자체였으니까.

 

시간이 지나고 광고 촬영 날,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나 구경을 하러 팀 사람들과 촬영장으로 향했고 제 본업에 충실한 김태형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배우는 역시 배우였다. 잠시 쉬었다 가자는 감독님의 말씀에 김태형은 나를 언제 발견한 건지 내게 다가왔다. 나는 김태형을 위해 준비한 아메리카노를 건넸고 김태형은 고맙다며 커피를 받아 들었다.

 

오빠 연기하는 거 어때. 죽이지?”

죽이고 싶은데.”

못하는 말이 없네.”

, 호랑말코 새끼야 머리 망가져.”

 

김태형은 내 머리를 헝클었고 나는 김태형의 손을 뿌리치며 등짝을 한 대 때렸다. 고통스러워하는 김태형을 보며 혀를 끌었다. 나는 손이 맵지도 않고, 그닥 세게 때리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오바쌈바를 떨 일인가 싶었다. 고개를 저었다.      

 

다음부터는 딸기라떼로 부탁해. 나는 쓴 거 못 먹어.”

지랄 내가 너 매니저냐?”

뷔 씨, 촬영 시작할게요.”

구경하고 있어.”

 

촬영을 하러 떠난 김태형을 바라봤고 멀리서 우리 둘을 지켜보던 회사 직원들이 내게 다가왔다. 눈빛이 예사롭지는 않았다. 다들 뭔가에 씌인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사회용 미소를 머금으며 커피를 마셨지만 곧 이어 들리는 팀장님의 말씀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뿜어낼 뻔 한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여주씨, 뷔 씨랑 연애해?”

? 아니요 절대요 미쳤어요 약 먹었어요 제가?”

분위기가 심상찮길래~”

전혀요, 전혀. 진짜 옛 동네 친구예요. 동네에서 저 놀려먹기 1등이었어요 쟤가.”

동네 친구인데 여주씨 회사라고 광고를 바로 물어? 말도 안 되지.”

이 참에 잘 해보는 건 어때, 여주씨?

 

선남선녀 커플이네! 유치한 말들과 함께 나를 툭 쳤고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연애는 안 할 거예요. 죽어도요.

 

/

 

촬영은 하루만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연기력 하나는 인정을 하는 꼴이 돼 버린 셈이다. 나쁘단 소리는 아니다. 촬영이 딜레이 돼 버려서 며칠을 찍는다 생각을 하면 연속되는 야근은 절대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말이 촬영장 내부에 가득했고 개막내는 개막내이기 때문에 카메라와 촬영 도구들을 치우는 것을 도와주고 있을 때, 수많은 인파 속에서 김태형이 내 앞에 우두커니 섰다. 내 손에 들려진 무거운 삼각대를 대신 들어주고는 가뜩이나 두꺼운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툴툴댔다.

 

왜 이렇게 무거운 걸 너 혼자 들어?”

개막내잖아.”

야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하지. 너 혼자만 치우냐?”

 

김태형의 목소리가 촬영장에 쩌렁쩌렁히 울려퍼졌다. 일순간 촬영장은 고요해졌다가 사람들이 내게 몰려와 주변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제 들이 들어서 치우기 시작했다. 회사 생활 중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개막내라고 다들 무시했었는데. 처음 받는 대우에 나는 돌연 김태형이 고마워지려 했다.

 

내 말 한 마디면 이렇게 돼. 나한테 고맙지?”

아니.”

 

하여튼 김태형은 저 입이 문제다. 가만히 있었으면 내가 좀 더 고마워 했을지도 모를텐데 말이다. 참 안타깝고, 안타깝다. 내가 고개를 내저었다. 떨떠름한 내 반응에 다시 입을 삐죽이다가 가까이 와 보라는 듯 손을 휘젓길래 몸을 가까이 대니 비밀이라도 말하는냥 귀에 손을 갖다대기에 얼굴을 더욱 들이댔다.

 

오늘 야식 같이 먹을래?”

 

진짜 별 거 없는 얘기네. 헛웃음을 치며 김태형에게서 멀어졌다.

 

전에는 너 연예인 어쩌구 하더니 오늘은 왜?”

내가 아는 곳 있어. 프라이빗 해.”

 

갈래? 김태형의 입 모양을 보고는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냥, 홀린 듯 그렇게 행동했다.

 

김태형이 데리고 간 가게는 룸의 형식으로 된 술집이었고, 아늑했다. 일본어가 가득 적힌 것을 보고는 이자카야인 것을 깨닫는 것은 금방이었고 주방에서 나오는 사장님은 친근하게 김태형을 맞이했다. 김태형과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듯 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고개 숙여 인사했고 김태형은 소꿉 친구라며 나를 소개했다. 사장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내민 손을 맞잡았다.

 

김석진이라고 합니다.”

“김여주예.”

, 그 분이시구나. 말씀 많이 들었어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의아한 눈빛으로 나는 맞잡은 손을 슬쩍 빼내니 김태형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룸으로 인도했다. 술집은 고요했고 꽤 안 쪽에 위치한 방에 착석했다. 주문을 한 후 노랫소리만 가득하기에 김태형에게 넌지시 물었다.

 

여기 원래 이렇게 손님이 없어, 아니면 오늘만 그런 거야?”

내가 하루 빌렸어. 편하게 먹으려고.”

? 아까는 프라이빗 하다며!”
그렇게 말 안 하면 너가 안 올까 봐 구라삥뽕 좀 쳤어.”

 

그래도 편하잖아. 안 그래? …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김태형과 조잘조잘 수다를 떨고 있으니 술과 안주가 나왔고 한 잔 두 잔 들어가니 어느새 3병 째였고 정신은 저 세상으로 혼미해져만 가고 있었다. 눈이 살짝 풀린 내 모습을 보더니 김태형은 헛웃음을 쳤다. 술 잘 먹는 줄 알았더니 완전 젬병이었네. 그런 김태형에게 나는 매서운 눈빛을 보내며 욕을 박았다. 아니야 시발. 아니면 말고. 그나저나 저 새끼는 술을 존나게 잘 먹는다. 나도 못 먹는 편은 아닌데 깐 술 병이 3병인데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술을 마시는 김태형의 모습은 그냥띠꺼움 그 자체였다.

 

근데 넌 진짜 잘생겨졌다.”

난 원래 잘생겼었어. 너가 친구 필터 끼고 나를 봐서 그래.”

그랬던가…. 아 너 그거 알아? 내가 맨날 너네한테 못생겼다 못생겼다 소리 듣고 살았었잖아. 근데 나 서울로 이사 가고나서는 애들이 예쁘다고 나 찬양을 했다? 막 애들이 내 얼굴 보려고 찾아오고 공고 오빠들한테도 고백 엄청 받았었어. 그래서 난 그 때 알았다. 나 예쁜 거.”

너 원래 예뻤어.”

“… ?”

넌 원래 예뻤다고.”

 

적어도 내 눈엔 너가 제일 예뻤어. 남사스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에 나는 박장대소를 하며 소파를 내리쳤다. 너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이상하다 야! 입이 귀에 걸릴 듯 웃어대는 내 모습에 김태형은 돌연 화부터 냈다. 왜 웃냐? 나는 입을 손으로 가리고는 미안하다며 웃음기를 서서히 감춰갔다. 그리고는 술을 먹는 김태형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니 문득 김태형이 미팅 때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제가 어릴 때 짝사랑했던 여자애가 저보고 맨날 호랑말코라 했었거든요.

 

짝사랑. 호랑말코. 김태형은 나를 좋아했던 건가? 급 궁금해져서 김태형에게 물으려고 입을 떼려는 순간 김태형이 선수를 쳤다.

 

그래서, 지금은 연애해?”

 

나는 쓴 웃음을 띄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해.

 

그리고 앞으로도 안 할 생각이야.”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더 이상의 아픔도 겪고 싶지 않고, 이별도 무서워.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 내 곁을 떠나더라. 무섭게. 그래서 안 하려고. 날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다 내 얼굴만 보고 만나더라.”

 

난 바보 같이 거기에 빠졌지. 그런 줄도 모르고. 날 사랑하는 사람은 없나봐. 마음이 허해져서 술을 털어 넣었다. 익숙해져도 쓰다. 인생도 이런 거지. 익숙해진 듯 해도 늘 데이고, 상처 받고, 쓴 거지.

 

내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김태형이 내 눈을 바라봤다.

 

널 사랑하는 사람은 많을 걸.”

없을 걸.”

일단 너 형들. 제일 극성이야. 그리고 아줌마도 너 엄청 예뻐하셨잖아. 너 친구들은? 여전히 곁에 남아 있는데?”

“… …”

그리고 나도 있잖아.”

“… 그렇네.”

 

저렇게 말해주는 김태형이 남달라 보였다. 갑자기 이상해진 분위기에 나는 화제전환이라도 하려고 김태형에게 역질문을 했다.

 

너가 미팅 때 나보고 짝사랑하는 사람이 호랑말코라고 했잖아. 너 나 짝사랑 했었어?”

 

내 질문에 김태형은 예상치도 못한 질문이라도 들은 듯 기침을 하였다. 나는 김태형을 바라봤고 김태형은 입가를 티슈로 닦고는 대답했다.

 

. 나 너 엄청 좋아했었다.”

와 대박. 근데 그렇게 행동했냐?”

원래 그 나이 대는 다 그렇게 행동해. 좋아하면 괴롭히고 막 그렇지 뭐.”

어이 없어 진짜. 그럼 내가 너 첫사랑?”

 

거의 그런 셈이지. 대박.

 

그리고 여전히 좋아하고.”

“… ?”

 

첫사랑은 유통기한이 길다고 들었다. 그 사람을 잊기까지의 걸리는 시간은 죽어서 무덤에까지 갖고 간다고 했다. 잔잔하게 음악의 배경은 내 머리는 물론이고 마음까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 자식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의 유통기한은 아직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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