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러는거 정말 별로야”
“밥 먹어”
“입 맛 없다고 몇 번을 말해”
“너 며칠째 입맛없잖아”
밥이 안넘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내 팔목을 잡아오는 이재환의 눈에는 또 눈물이 고여있었다.
며칠 째, 몇 달 째보는 익숙하 눈망울인데 난 단한번도 너의 눈빛을 이긴적이 없다. 내 팔목을 잡고 있는 너의 팔을 밀어내고 식탁에 앉았다.
고소한 죽 냄새가 역하게만 느껴졌다. 너의 눈빛에 못이겨 숟가락을 반복적으로 움직이던 내가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직행한것 겨우 다섯 번 정도 죽을 떠 먹었을 때였다.
헛구역질을 한다고 해도 게워낸건 거의 없었다. 방금 떠먹은 죽과 허여멀건 보기싫은 위액들뿐이었다.
쿵쿵쿵 화장실 문을 부셔버릴 듯 두드리는 너도 익숙하고 화장실 번기에 얼굴을 쳐박고 있는 나도 지독히도 익숙했다.
문 좀 열어봐, 문 열어보라고!, 명치가 아려와 저절로 몸을 굽히게 되었다. 약... 약... 약을 먹어야 하는데 이 문을 열기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보일 때 마다 싫었다. 아픈 것보다 싫었다. 너에게 내가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이는게,
십이지장을 다 태워버리고 갈갈히 찢기는 듯한 아픔에 식은땀이 주욱- 흘렀다.
단 한번의 일격으로 나를 만싱창이로 만든 통증이 지나가자 온몸에 힘이 빠졌다. 차가운 타일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몸을 힘겹게 바로 새웠다.
의지하고 있는 세면대를 쥐고 있는 손이 하앴다. 두 손을 다 떼버리면 풀린 다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또 다시 주저 앉을까봐 두려워 겨우 한손을 떼어내서 수도꼭지를 들어올렸다.
쏟아지는 물소리에 내 울음소리가 묻히길 바라면서, 쏟아지는 물소리에 네가 두드리는 문소리가 들리지 않길 바라면서,
아픈 몸뚱아리가 싫었다. 겨우 얼마나 살았다고 벌써 제 기능 못하는 현실이 저주스러웠다. 다른 모든 것들은 포기할 수 있겠는데- 너 하나만은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이재환 너를 미워한다. 그렇지만 사랑한다. 그렇지만 너를 잊으려고 한다, 할 수 있는 한 밀어내려 한다.
인위적인 물소리가 멎고 이재환과 나를 가로 막고 있던 뭄을 열었다. 붉어진 이재환의 한 손이 애처로웠다.
네가 날 사랑하는 그 마음 모조리 내가 다 갖고 싶다. 내가 네 마음을 다 갖는 대신 넌 나를 깨끗하게 잊었으면 좋겠다.
나를 가로막고 있는 네 어깨를 밀어내고 꼴 사납게 넘어지지 않게,풀썩 주저앉지 않게 한걸음 한걸음 온 힘을 다해 걸어 침대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한 몸이었다.
“나 미워하는 힘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
“밀어내도 돼, 때려도 돼, 욕해도 돼 살아있다는 것만 알려줘....”
“........”
“....살아줘.... 내 옆에서”
달칵-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눈을 감았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너를 내 눈에 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울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어떻게든 살아달라고 애원하는 너는.... 도대체 너란 남자는..... 왜..... 왜 이렇게... 나를 견디기 힘들게 하는 것일까,
.....왜 해서는 안돼는 미련과 후회를 가지게 하는 것일까.... 왜.... 나를 이렇게 쥐고 흔드는 걸까, 왜.... 삶이라는 것에 집착하게 만들까-
왜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게 만들까,
*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의사인 너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다가오는 ‘죽음’이란 ‘운명’을, ‘숙명’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너를 동정한다. 나를 놓지 못하는 네가 걱정된다.
너의 모든 것을 내가 다 끌어안고 가고 싶다. 내 기도의 소원은 단 하나였다. 내가 없었던 너로 돌아가 살아아길-, 딱 이거 하나였다.
질척거리며 더 살고 싶다는 바람도 없었으며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아플 추억을 되돌아볼 시간 조차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이재환 하나만, 저 바보 등신 같은 이재환만 잘되길- 사고라도 나서 나에대한 기억이라도 잃길 바랬다.
“이재환”
“어 왜? 뭐 가져다 줄까?”
“....이리와봐”
차근차근 정리하고 짐들을 너는 웃는 얼굴로 채워넣었다. 나는 비우고 너는 채우고- 우스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나에게 헌신하는 사랑스러운 네가 밉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 하나만 보고 있는 네가... 이젠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네 이름 석자를 재수없을 만큼 딱딱하게 부르는 내 목소리에도 웃으면서 돌아보는 너를, 하나라도 해주고 싶어 안달난 너를, 나는 밀어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이제 오지마”
“어...?”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싫어”
싫어, 싫다는 말을 하는 너의 입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너를, 네가 내게 했던 것 처럼 팔목을 잡아 세웠다.
내 손길에 몸을 굳힌 이유가- 너를 잡은 내 손에 힘이라곤 들어가지 않아서- 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너도 확실히 느꼈을 것이다.
이게... 진짜.... , 너와 나의.... , 마지막이라고
“그만해도 돼”
“....”
“보다시피 나 죽어, 며칠.. 아니 몇 시간 남았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어”
“...그만해”
“그만 할 것도 없어 네가 안오면 끝이야. 시작한 것도 없는데 뭘 끝내-”
“......그만해...”
“오지마, 나가- 그리고 다시는 오지마 비밀번호 바꿀거야 오지마”
조용조용한 대화가 소름 돋게 싫었다. 너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려하자 너는... 이재환 너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잘게 떨리는 두 손으로 내 손이 생명줄이라도 된 것 마냥 잡아온다. 내 눈에 담기에도 벅찬 사랑스러운 너를... 오늘따라 눈에 담기 힘들다.
지독히도 힘들다,
“왜...왜 다 포기한 것 처럼 그래...”
“이거 놔”
“내가...내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이러지 마.. 너 화내는거 몸에 안좋아”
“그만 좀 해 이재환!”
“미안!.. 미안! 내가 다 미안해 소리지르지마 너 어지러워”
이 와중에도, 네가 싫다고 죽도록 너를 미워내는 내 걱정 뿐인 너는 나를 무너지게 만든다.
너를 밀어내야지 다시는 보지 말아야지 아픈말만 못된말만 골라하는 나를 진정시키지 바쁜 너를..... 난.... 너를..... 밀어내고 상처주는게 내가 할 수 있는 고작이다...
이재환 너는.... 내가 사랑하는 너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미련할 정도로 보는 사람이 다 눈물이 날 정도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제발 이재환 나 이렇게 빌게, 다시는 나 찾아오지마”
“....”
“나 좀... 잊어... 처음부터 없는 사람 셈치고 살아가줘....”
“........”
“마지막 부탁이야. 나 없는 것 처럼 살아- 너 살아야 할 거 아니야, 나 없어도 살아야지 그런데 왜 이렇게.... 왜....”
무릎꿇은 이재환 앞에 나도 무릎 꿇었다. 이재환에게 잡혀있던 손을 빼내 두 손을 모으고 빌었다. 고작 무릎꿇는 일도 노동을 한 것 처럼 숨이 가파왔다.
이런 몸으로 누굴 좋아하고 사랑해.... , 평소에는 외면하지 못했던 이재환의 눈빛을 온전하게 받아내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제발 잊어달라고 나 없는 듯이 살라고, 이재환 인생에 내가 있었던 것 보다 내가 없을 시간이 더 많은데 왜 이렇게 얽매어 사냐고,
네 일상의 중심이 왜 나인 것이냐고, 이젠 그만하라고 부탁한다고, 잔인한 부탁을 갈기갈기 찢어진 가슴으로 전했다.
*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머리도 하고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비싸다는 이유로 몇 번 입지 않았던 옷도 꺼내 입었다.
끝을 준비했다.
병원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운 집의 온갖 문을 열었다. 첫 번째로 이재환과 나의 체취를 없앴다.
쿵쿵쿵 미친듯이 뛰어오는 심장과 아릿한 명치를 부여잡고 나의 흔적을 모조리 지웠다.
옷도 칫솔도 향수도 그릇도 컵도 눈에 닥치는대로 쓰레기 봉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너의 흔적을 지웠다. 버릴 수 없는 너의 물건들은 캐리어에 차곡차곡 담아 문밖에 내 놓았다.
자잘한 것들이 남아있지만 더 이상 무엇을 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침대 위에 누웠다. 불어오는 바람이 시렸다.
이재환이 매일 누워서 자던 쇼파위로 가고 싶었지만 내 작은 욕심조차도 이재환 너를 잡는 발목이 될까봐 꾹 눌러 담았다.
너를 추억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야속하게도 내 기억밖에 없었다. 별거 없는 추억밖에 없는데- 우리 서로를 보고 웃었던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나는 그 추억을 떠올릴 때면 늘 웃음을 짓게됐다.
쇠꼬챙이로 명치를 후벼파는 것 같았다. 몸을 비틀고 침대커버에 얼굴을 묻고 싶었지만 내 알량한 자존심은 허락하지 않았다.
올곧게 누워 명치만 퍽퍽 내려쳤다. 추하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죽더라도 죽더라도.... 예전처럼... 당당하던 그 때의 모습으로 끝내고 싶었다.
두 눈을 감았다. 아니 저절로 감게 되었다. 눈을 감자 머릿속에 그려지는건 이재환 밖에 없었다.
내가 없는 너는 멀쩡할지... , 밥은 잘 챙겨먹고 다녀야 할 텐데, 잠시 그만뒀던 레지던트 생활도 다시 해야할텐데, 방황하지 않아야 할텐데... ,
살가운 말이든 잔소리든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내 글씨가, 내 편지가, 편지지 위해 남아있을 내 눈물흔적이 너를 아프게 할까봐 허공에다 말해다.
“아프지 말고....”
“...차 조심하고....”
“좋은 여자... 만나고....”
“나 같은거 잊고......”
“또..... 과자 많이 먹지말고.....”
“꼭.... 꼭..... 사랑해....”
나와 시작도 못한 사랑, 끝을 말하기엔 시작도 하지 못한 그 사랑, 나보다 더 좋은 여자 만나 시작해서 좋은 결실 맺길 바래
“미안해.....”
“미안해... 재환아....”
재환아..., 마지막에서야 재환이라고 불러줘서 미안해 재환아. 딱딱하게 이재환- 이라고 불러서 미안해,
내가 정성들여 끓인죽 먹지 못한거 미안해, 아픈말만 해서 미안해, 상처줘서 미안해,
나같은 여자 때문에 너 망가진것도 미안해..... , 내가 전부 미안해.... , 모든게..... 다 미안해....,
책상위 놓여져 있는 너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의 너도 웃고있었다. 하지만 난 사진 속의 너에게도 다가갈 수 없었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이 몸으론- 사진 속의 너를 안는 것도 불가능했다.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내 시선의 끝은 너이지만 내 시선의 끝이 너라는 사실을 알게하기도 싫어 천장을 바라보고 눈을 감았다.
그러다가 너에게 한번도 못한 말이 떠올라 다시 눈을 떠 사진 속의 너를 보았다.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재환아”
“너무 사랑해서,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사랑해 재환아....”
사랑해-, 한번도 너에게 하지 못했던 그 말을 이제야 한다. 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에게 영원히 닿지 못할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인다.
사랑한다 이재환, 너에대한 사랑이 나 조차도 감당이 안될만큼 그렇게 사랑했다.
그래서 이렇게 모질었나봐 재환아, 널 너무 사랑해서- 모질었던 거야.... 이 말도 너에게 닿지 않을 것을 안다.
.....됐다. 정말로 다 됐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지만 눈물이 계속 흘렀다. 손끝 발끝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차가움은 천천히 심장을 잠식했고 내 이성을 잠식했다.
안녕 내가 사랑하는 재환아,
이재환이 나에게 준 마음은, 시작도 못했으니 끝도 없는 사랑
이재환에 대한 나의 마음은, 그 크기를 알수 없는 끝없는 사랑
하지만 모두 끝, 어떠한 형태의 끝없는 사랑도
끝
쓰기 차단? 그런걸 당했었네요 제가 ㅠㅠ 그래서 글을 올리고 싶어도 올리지 못했어요 ㅠ 그리고 시험기간이라 비축분을 충분히 쌓아두지도 못했었고 ㅠㅠ 하지만 호오오오옥시나 기다렸을 분들이 계셨을까봐 예에에에에전에 썼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이 글 어디서 봤다 싶은 분들이 만약에 계시다면 모른척해주시기!!!) 우이 빅쮸 컴백도 했고 시험도 다음주면 끝나니 무조건 돌아올겠습니다아니 이게 뭐람? 하실 분들을 위한 짧은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