뻬빼로1+1
(원더걸스- 이바보 노래 추천해용)
집에 들어갔는데 깔끔했어. 소파에 티셔츠 깔 별로 늘어져 있는데 정국이가 얼른 정리하곤 바구니에 넣어버림. 내가 머뭇거리니깐 들어 오래. 발목 아파서 잘 못 걷겠다고 했지. 얘 성격이 좀 무뚝뚝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깜짝 놀란 게 갑자기 나한테 걸어오는거. 주춤거리는데 가만히 있으래. 자기가 좀 들겠대.
"야,야...! 나 무거워!"
"발목 아프다며."
공주님 처럼 번쩍 안아드는 거야. 와씨. 심장아. 소파에 앉혀주더니 가벼운데. 한 마디 툭 던지고 방으로 들어가버림. 설레서 심장 뛰는데 정상 아닌 줄 알았어. 나 왜이럼. 암튼 발목 만지는데 부어있더라. 병원 가봐야되나 생각했는데 정국이 구급상자 가지고 오더라고. 내 앞에 한쪽 무릎 꿇고 나 다친 발 자기 무릎 위로 올려버리길래 다급하게 내림. 아니 이 상황에 막 발 냄새 나면 어쩌나, 걱정 되는 거임. 현실 와장창인데. 정국이는 아무 생각 없는 지 괜찮다고 발 올리래.
"내가 안 괜찮아."
"나도 안 괜찮아. 양말 벗긴다?"
한숨 짧게 쉬더니 양말 벗겨주고 발목 살짝 잡아서 다시 올림. 그리고 발목 유심히 보더니 파스 뿌려주고 돌 돌 붕대 감아줌. 묶는 것도 야무지게 해주더라. 얘는 치료해주는 것만 생각하고 있는데 나는 계속 발 냄새만 생각나는 거야. 이런 나한테 환멸 났음. 뭔가 배도 간지럽고. 발가락 꼼지락하니깐 그거 봤는지 가볍게 웃어. 계속 부으면 병원 가라고 해서 알겠다고 했지.
확실히 처음 보단 덜 아팠어. 내가 양말 벗은 거 집으니깐 걍 놔두래. 자기가 빨아줄 테니깐 나머지도 벗으라는 거야. 너무 어이없이 웃겼지. 다른 사람 양말을 왜 빨아줘.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니깐 걍 빨래하는 걸 좋아한대. 좀 고민하다가 나머지도 벗어줬어. 근데 정말 너무 아무렇지 않아 하길래 그게 더 신기한 거야. 의외로 반전인 모습도 있고. 집에 가려고 소파에서 일어나니깐 어디가? 물어보더라.
"어? 집에 가야지."
집에 가야지. 했는데 배에서 꼬르륵 울리는 거임. 아 창피해. 순간 정적... 배 부여잡고 어색하게 배 고프니깐 얼른 집에 가겠다고 짐 챙김. 얘가 아쉬운지 눈이 축 늘어져 있는 거야. 물론 내 시점에서 그렇게 보인 걸 수도 있는데. 현관문 까지 좀만 걸으면 되는 건데 그사이에 또 나 부축해줘서 문 앞까지 데려다줬음. 오늘 학원에서 집까지 같이 오고, 여러모로 고마운 게 많아서 가방 뒤졌는데 빼빼로 아몬드 있길래 잘 됐다, 싶어서 손에 쥐어줬어.
"여러가지로 고마워서. 맛있게 먹어라?"
"어, 고맙다."
또 웃어. 아니 왜 자꾸 웃어. 사람 설레게. 암튼 손 흔들면서 인사하고 나왔음. 집에 들어가니깐 엄마가 발은 왜 그러냐고 물음. 계단에서 삐끗했다고 했지. 글고 옆집 정국이 얘기도 해주면서 응급치료도 해줬다고 막 떠 들음. 엄마가 김치 볶음밥 해줘서 식탁에 앉았는데 정국이도 데려오라는 거야. 걔도 지금 집에 혼자 있는 거 아니냐면서. 입에 숟가락 물고 있다가 툭 떨어뜨림.
"지금?"
"싫으냐?"
"아니 싫은 건 아닌데, 걔가 불편해 할 수도 있잖아."
"너 자기 집에 들인 애가 뭘 불편해 하겠어. 기다려 봐, 엄마가 데리고 올게."
엄마 말리기도 전에 쏜살 같이 옆집으로 가심. 먼저 먹기 좀 그러니까 기다리는데 괜히 문 한번 쳐다보면서 기다렸어. 그러다가 너무 배고파서 한 숟가락 먼저 먹음. 좀 이따 현관문 쪽에서 엄마 목소리랑 정국이 목소리도 들리는 거야. 안 먹은 척 숟가락 내려놓고 입에 씹고 있던 거 얼른 넘김. 내가 고개 뒤로 쭉 빼니까 문 열리고 정국이랑 눈 마주침.
내 앞엔 엄마가 앉고, 내 옆엔 정국이가 앉았어. 엄마가 살갑게 정국이한테 말 붙이면서 계란 후라이 까지 주는 거야. 그거 내 후라이였는데. 아쉬워하면서 쩝, 거리니깐 젓가락으로 반 잘라서 내 김치 볶음밥 위에 올려주는거. 내가 옆모습 빤하게 보니깐 엄마한테 잘 먹겠습니다. 하면서 열심히 먹기만 해. 운동하는 애라 그런지 엄청 잘 먹어. 엄마가 엄청 흐뭇해 하면서 더 먹을래? 하니깐 네, 그러면서 넙죽 받아먹고.
"배고프면 언제든지 와. 아줌마가 밥 해줄게. 좋아하는 반찬 있니?"
"주시는 거 다 잘 먹어요. 감사합니다."
"인사성도 밝네. 우리 여주랑 같은 반이라며?"
"네. 짝꿍이에요."
"그래? 잘 됐네. 우리 여주가 좀 칠칠 맞아. 대신 잘 좀 부탁해."
엄마랑 정국이 아주 쿵짝 잘 맞았음. 내가 오물 거리면서 둘이 대화 나누는 거 듣는데 얘가 곁눈질로 힐끗 보더라. 배불러서 한 숟가락 남겼는데 나보고 다 먹었냐고 물어. 고개 끄덕이니깐 군말 없이 내 밥까지 싹 긁어 먹는 거야. 아까부터 별거 아닌 걸로 설레게 하는 거 있지. 아니 내가 잘 먹는 사람이 이상형이거든. 웃긴 게 걔 입술에 밥풀이 묻은 거야. 나는 뭐 붙어있는 꼴 잘 못 봐서, 말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타입이라 손부터 뻗어서 밥풀 떼줬지. 잘만 씹던 애가 토끼 같은 눈 뜨고 나 휘둥그레 쳐다봄. 내가 뭐 잡아먹니...
"이, 입에 밥풀 묻었어."
"정국아. 아줌마가 반찬 몇 가지 싸봤거든? 가서 형이랑 먹어."
마침 타이밍 좋게 엄마가 보자기에 반찬통 싸서 정국이한테 주는 거야. 고개 돌려서 안도의 한숨을 막 쉬었지. 정국이가 감사하면서 벌떡 일어나서 인사함. 글고 설거지도 자기가 하고 간다면서 말렸는데도 싹싹 다하고 감. 엄마가 엄청 좋아하시면서 정국이 가고 나서도 귀 청 떨어지도록 칭찬을 그렇게 함.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발목 그나마 가라앉아서 다행이다 싶었어. 학교 갈 준비 마치고 현관문 열었는데 자기 집 앞에 서있는 정국이 발견함. 오늘 교복 안에 티셔츠는 여전히 검정색. 고개 갸웃거림. 오늘은 누구 기다리는 거지? 형? 생각하는데 걔가 나보고 가자, 그러는 거야.
"어디를?"
"어디긴, 학교지."
"나 기다린 거야?"
"... 어, 너 발목 아프잖아. 그 상태로 언제 학교 가냐."
머쓱한지 눈썹 긁적 거림. 걔가 내 곁에 가까이 오는 거야. 고마워서 나보다 훨씬 큰애한테 발꿈치 펄쩍 뛰어서 어깨동무 함.
"아, 뭐해."
"나 붙잡아 주는 거 아냐?"
"쪼그만 애가. 이러고 어떻게 가."
어깨동무 손 내리더니 갑자기 손잡는 거야. 나 손에 땀 많은데 것도 상관 없는지 자기 손바닥으로 내 손 다 감싸서 천천히 이끌더라. 근데 사실 얘 때문에 다친 것도 아닌데 날 너무 위해주니까 궁금한 거야. 왜 이렇게 까지 하는지. 사실 묻고 싶었는데 물으면 이 관계가 깨질 것 같아서 안 물어봤어. 나는 지금이 좋았거든. 발목으로 정국이한테 기대는 것도, 같이 학교 가는 것도 전부 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면서 종종 절뚝거렸어. 발목에 힘을 주니까 아픈 거. 얘가 고민하더니 손 풀고 어깰 감싸는 거야. 자기한테 더 기대고 허리 잡으래. 우리가 일찍 나와서 그런지 버스 정류장에 애들 별로 없었어. 버스 정류장 다 오면 놔도 되잖아. 근데 얘가 안 놔주고 계속 기대게 하는 거임. 나보다 키가 커서 올려보니까 막, 얼굴에 홍조 오른 거야. 여름인데.
"너 더워?"
"아니..."
"얼굴에 열나는 거 같은데?"
이마에 손 뻗어서 열 재봄. 안 덥다고 하면서 옷 자락 잡고 펄럭이더라. 버스 오길래 나 먼저 앞에 세우고 뒤에서 봐줌. 자리가 딱 하나 남은 거야. 정국이가 도와줬으니까 앉으라고 했는데 나부터 앉히는거임. 그리고 내 앞에 손잡이 잡고 서더라고. 그럼 가방 줘. 안에 든 거 없는데. 그래도 줘, 내가 들고 있을게. 실랑이 하다가 정국이 가방 벗어서 내 무릎 위에 놔줌. 근데 정말 가방이 가벼운 거임. 안에 필통 하나 들었는지 필통 소리만 짤랑임. 가방도 무난한 검정색이라 내 가방에 달려있던 토끼 인형 고리 떼서 가방에 달아줬어. 신나서 보여줌.
"야, 귀엽지. 이 인형 너랑 닮았어."
"나 보단 너 닮았는데."
"나?"
나 가리키면서 물어보니까 그렇대. 털도 복실복실하고... 나 닮은 거 딱히 모르겠음. 눈이 전정국 닮은 토끼 인형이었거든. 인형 만지면서 장난치는데 어제 전정국 집에 양말 벗어놓고 간 거 생각남.
"야, 내 양말 언제 찾으러 갈까? 오늘 수업 끝나고?"
"아... 오늘은 형 공강이라 집에 있어서. 내일 가져다 줄게."
곤란해 하길래 알겠다고 했지. 학교 다 와서 가방 넘겨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나보고 애들 다 빠지면 내리자는 거야. 다 같이 내리면 위험하다고. 그래서 애들 다 빠지고 정국이랑 마지막에 내렸어. 바로 앞이 교문이라 정국이 옷 자락 잡고 걸음. 오늘도 선도부에 민윤기 있는지 살폈는데 없었음. 근데 교실 들어가면 민윤기가 바로 나한테 오는 거야. 건수 잡았다는 것 처럼.
"다리는 왜 그러냐."
"뭔 상관."
"야, 나 반장이야."
"어쩌라고."
"반장이면, 반 애들한테 관심 가질 의무가 있다고."
"거기서 나는 빼주시지?"
민윤기만 보면 자꾸 티격태격 거림. 정국이는 가방 책상에 내려놓고 엎드려서 자더라. 근데 민윤기한테 시끄러우니까 가래. 민윤기가 섭섭했는지 정국이말 얄밉게 따라하면서 가버림. 그리고 종례시간 지나고 체육 쌤이 정국이 불러서 밖으로 나감. 다시 들어와서 겉옷 훌러덩 벗는 거야. 그리고 나한테 맡겨줌. 잘 가지고 있으래. 종 치면 정국이는 나가고 나는 수업들었지. 창문 너머로 빼꼼 보니깐 정국이가 다 같이 운동장 돌고 있었어. 혼자 검정색이라 바로 보이더라. 아니면, 내 눈에 바로 들어온 걸지도.
점심시간에 밥 먹고 매점 들렸는데 마침 운동장에 운동부 애들 모여있는 거야. 아미 데리고 그쪽으로 갔음. 정국이 주려고 음료수 샀거든. 아미가 진작 눈치 채고 같이 정국이 찾아줌. 눈 굴리면서 열심히 찾아도 무리에선 없어. 다시 찾는데 저 끝에 운동장 끝에 음수대 쪽에 세수하고 있는 거야. 아미는 먼저 교실로 보내고 정국이한테 감.
"정국아!"
발목은 이제 어느 정도 뛰어도 괜찮길래 정국이한테 총총 달려갔지. 근데 그렇게 막 달린 건 아니었음. 정국이 고갤 들면서 소리 근원지를 찾더라. 내가 반가워서 손 흔들었지. 내가 인사하니까 정국이가 뛰지 말래. 알겠다고 했는데 발 꼬여서 정국이 앞으로 고꾸라지는데 얘가 온몸으로 받아주더라. 음료수 바닥에 떨어져서 입구 부분 깨지고, 새고 난리도 아니었음. 수도꼭지도 틀어져 있고... 정국이 턱 끝타고 물방울 떨어지는데 내 정수리에 똑똑 떨어지는 거야. 얘가 차분히 내 양쪽 팔 붙잡고 제자리에 세워줌. 그리고 떨어진 음료수 집어서 물에 대충 헹구고 수도꼭지 잠굼.
"미안..."
"이거 내가 먹어도 돼?"
"어? 어, 응. 그거 너 주려고 샀어."
내가 많이 미안해 함. 정국이 눈치 챘는지 말 돌려서 음료수 뚜껑 부분 딸깍 따서 벌컥벌컥 마심. 한번에 다 마시고 손등으로 입 닦더라. 얘는 땀도 잘 안 나는지 품에 안겼을 때 좋은 섬유 유연제 냄새 났어. 아까 상황이 민망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음.
정국이 밥 먹었냐고 물어봄. 아미랑 먹었다고 했지. 매점 가서 음료수 뭐 살지 고민했다고 쫑알쫑알 얘기하는데 내 어깨 너머로 손을 확 뻗더니 뭘 쳐버리는 거야. 놀라서 뒤돌아보면 바닥에 농구공 통통 튀기고 있었음. 차칫 하면 농구공 맞을 뻔. 정국이 기분 안 좋아보임. 농구공 잘 못 던진 애들이 와서 사과하는데 너무 숙이길래 나까지 허리 숙이고. 정국이 후배 애들인 것 같았어. 정국이 한테도 죄송합니다. 몇 번을 인사하고 가더라.
"운동장 위험하니까, 너무 자주 오진 마."
"너 보러 오는 건데도?"
"......"
너무 솔직하게 말했는지 정국이가 당황해함. 애꿎은 음료수만 구기는 거야. 손에 힘 잔뜩 들어가선. 그때 햇빛이 우리 비춰서 쨍 했음. 정국이가 한 발짝 다가옴. 그리고 내 얼굴에 손가림막을 해주는 거야. 씩 웃어.
"그건 돼. 대신 나만 보러 오는 걸로."
"......"
"음료수 잘 먹었어. 농구공으로 퉁 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