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 보이스 메일 추천해요)
제가 짝사랑하던 애가 있거든요. 그 애한테 할 말이 있는데 못 했어요.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는 서툴고 소심해요. 말 한번 걸어보고 싶은데 차마 그러질 못 했어요. 말 걸면 눈을 마주치잖아요. 눈을 마주쳤을 때 진정이 안 되는 거예요. 황당하죠. 눈만 봤을 뿐인데, 고작 그거 하나 못 다스리고 회피하는 꼴이요. 급하게 눈길을 돌리면, 저를 불러요. 왜 자길 불러 놓고 아무 말도 안 하냐고요. 저는 책상에 코 박을 것처럼 바보같이 굴어요. 그 아이가 물었으니까, 대답했죠. 다음 수업 시간 뭐야? 거창한 얘기를 할 것처럼 불러놓고, 한다는 얘기가 다음 수업 시간 묻는 거였어요.
그래도 그 친구는 착했어요. 아니 제 말은, 착하다고 느꼈어요. 다음 수업 시간을 물었는데, 친절히 답해주었거든요. 저도 사실은 더 말 붙이고 싶었어요. 학교 얘기 말고, 그 아이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싶었어요. 좋아하는 음식 하고 취미는 뭔지, 주말에는 무얼 하며 지내는 지요. 좋아하는 애니깐 궁금한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만약에 저만 그런 거라면 슬플 것 같았어요. 그 친구도 저에 대해 궁금해하면 좋겠고. 그게 다예요. 더 바랄 것도, 원하는 것도 없었어요.
아, 근데. 짝사랑 해서 그런지 사랑니가 아팠어요. 아, 왼쪽 위에 사랑니요. 병원에 가서 진찰받았거든요? 계속 아프거나 불편하면 뽑아야 된대요. 어렸을 때, 이빨 뽑던 기억이 생각났어요. 아버지가 반지 고리 실을 가져와선 이빨에 칭칭 감는 거예요. 흔들리는 이빨을 뽑겠다고요. 남들도 다 그렇게 뽑는다고 하길래, 수긍했죠.
실을 잡아당기면서 제 이마를 빡, 치더라고요. 뽑힌 이빨 보고 울었어요. 아파서 운 건 아니고요. 하나, 둘, 셋. 하면 뽑는다면서 둘, 할 때 뽑았거든요. 놀라서 운 거죠. 제 손바닥에 빠진 이가 올려졌어요. 신기해서 보니깐 나머지도 뽑을까? 하시더라고요. 싫다고 했어요. 하루에 이빨을 두 개나 뽑았으면 아마 새벽 내내 울다 잠들었을 거예요. 제가 막내아들이거든요? 아버지는 저를 씩씩하게 키우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도 타고난 성격은 무시 못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저는 천성이 순하대요. 제 입으로 말해서 좀 그렇긴 하지만요. 어쩌겠어요. 남들이 그래요. 얼굴에 다 드러난다고. 이렇게, 시옷입이요. 웃기죠. 저는 전해 들은 말을 전한 거예요. 어쨌든 제가, 어... 어디까지 말했죠? 아, 짝사랑. 짝사랑도 사랑니 뽑을 때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짝사랑도 사랑니랑 같아요. 아프잖아요. 나를 짓씹고, 아프게 만들고. 어느 때엔 신경 안 쓰게 덜 아프다가, 갑자기 아프고요. 저는 그 아이와 고등학교를 마지막으로 못 볼 줄 알았어요. 솔직히 같은 대학교 가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드문 경우의 수에 제가 들어갔답니다. 것도 같은 학과로요.
제가 동물을 좋아해요. 어렸을 때부터 키우던 강아지 한 마리가 있어요. 지금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 가끔은 저를 잘 못 알아봐요. 그래도 제 눈엔 늘 아기 같아요. 처음 데려왔을 때처럼요. 아, 학과요? 수의학과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요.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렇더라고요? 그 아이에 대한 마음이 작아질 줄 알았는데, 전혀요. 오히려 다른 동기, 선배가 그 애한테 관심을 주는데 거슬리는 거예요. 그래서 안 그런 척 은근히 막았어요. 그럴 때면 저를 유심히 봐요. 와, 이게... 미치겠더라고요? 그런 눈빛으로 보면 당해낼 제 간이 없거든요. 그런 거에 약해요. 그런 게 아니면, 유독 그 친구에게만 약한 걸 수도 있겠죠.
이때까지 제 사랑니는 그대로였답니다. 한 마디로, 그간 안 아팠던 거죠. 첫사랑도 그랬어요. 서로 대학 준비하는 동안에 바빠서 마주칠 시간이 없었거든요. 아뇨, 아니요. 제가 피하고 다닌 건 아니고요. 제 입으로 소심하다고 말하긴 했는데 너무 그러진 마세요. 나름 대학생 되고 미성년자 벗어난 시기잖아요. 미자를 벗어났다는 건, 술을 마실 수 있단 뜻도 있고요. 그 아이가 들떴나 봐요. 술을 자주 마시더라고요.
꼭 저한테 연락이 와요. 술 마시고 나서요. 연락처에 제가 있단 것도 신기한데... 아무튼, 매번 제가 데리러 갔어요. 이 년 동안 그 짓을 했어요. 그 짓이라고 하니까 비꼬는 거 같은데. 그런 거 아니고, 그만큼 제가 미련했다는 거죠. 한 번은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넌 내가 밉지 않아? 얘가 술이 많이 취했구나, 했죠? 근데 그다음 말이 철렁했어요.
미안해. 미안하단 말은 정말로 듣고 싶지 않던 말이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건, 뭐가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왜, 뭐가 미안해서 그런 건데. 겉으론 차분히 물었지만 속은 이미 뒤집어져 있는 거예요. 와 씨, 나 어떡하지. 얘가 나한테 미안하대. 근데 다음 말이 없어. 미칠 것 같은 거죠. 결국엔 이유는 못 들었어요. 왜냐면 잠들었거든요. 그대로 부모님 댁에 데려다주고 저는 자취방에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한밤중이라 온 동네가 컴컴한데 제 마음 같은 거예요. 뭔가 꽉 막혀서 답답한 기분이요. 뭐라도 어떻게 해서 풀고 싶은데 풀 방법이 없는 거죠.
그날 집 안 들어가고 동네를 계속 돌았어요. 놀이터도 가고, 공원도 잠깐 가고. 제가 진짜 겁이 많거든요? 그런 거 하나도 모르겠고 그냥 걔가 한 말만 맴도는 거예요. 그 정도로 그다음 말이 뭘까, 절실하게 생각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동틀 때까지 대답을 못 찾았어요. 어떤 지나가던 사람이 봤으면 미친놈처럼 봤을 거예요. 쟤는 뭔데 저렇게 돌고, 또 도는 건가. 배는 고프고 춥기도 해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걔한테 연락이 왔어요. 받을까, 말까 고민했어요. 옛날의 저였다면 바로 받았겠죠. 그러질 못하겠더라고요. 원래 첫사랑이 어렵고, 슬픈 건가? 그 통화가 울리는 사이에 잠깐 생각했어요.
전화를 받았어요. 받았는데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어요. 저도 말 안 했죠. 미안해,라는 말을 듣고 새벽 내내 그것만 생각했는데. 말을 꺼내고 싶겠어요? 전혀요. 한숨만 나오죠.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더 좋아하는 쪽이 져서 제가 말 꺼냈죠.
"응, 희주야."
- ... 호석아.
"내가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지."- ... 응.
"그래서 미안하다고 한 거야?"
- 아니.
"그러면?"
- 그동안 내가 너 이용한 거 같아서.
"희주야. 너만 나 이용한 거 아니야. 나도 너 이용했어."
- ......
"네 생각 하면서 혼자 설레고, 아파하고. 별 짓 다했어."
- ......
"나중에 돌아보면 추억으로 남을 거잖아. 추억 남겨줘서 고마워."
- 우리 예전처럼은 안 되겠지?
말이 되는 소릴 해야죠. 후회는 없었어요. 저는 최선을 다해서 좋아했고, 아파했고, 슬퍼했으니까요. 이 얘기를 제일 친한 친구 한 명한테 해줬거든요? 저보고 정말 미친 새끼래요. 그땐 훌훌 털어놓은 뒤라서 호탕하게 웃었어요. 남준이라고 말 끝내주게 잘 하는 애 있거든요. 걔가 저 고등학교 때부터 짝사랑하던 거 다 봤어요. 마지막까지 추억, 이딴 말 했다고 엄청 뭐라 했어요. 아니, 얼마나 좋아했으면 그러냐? 그래요. 짝사랑이 좋아하는 마음만 남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슬픈 감정도 좋아하는 마음 하나 때문에 생겼잖아요. 그 감정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는 게, 어련히 쉬울까요.
군대에 있을 때, 편지 한 통이 왔어요. 처음엔 누구지? 그랬죠. 마지막에 적힌 이름 보고 생각났어요. 아, 나랑 매번 같은 교무실 청소하던 친구, 김여주. 첫 문장은 평범했어요. 일상 얘기하면서 힘내라는 얘기 같은 거요. 근데 걔가 그 이후로 편지를 계속 보내는 거예요. 아니 일단 제가 있는 부대를 어떻게 알았는지가 의문이었는데 남준이랑 같은 대학 동기로 지내고 있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우연이라는 건 없나 봐요.
그 아이 편지가 제 사물함에 차곡차곡 쌓이는데, 편지가 쌓일 때마다 제 마음도 같이 쌓였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저를 좋아하는 마음이 고맙고 사랑스러웠어요. 그 편지에 자기감정 담아서 보내주는데 싫어할 사람이 있겠어요? 흔들리죠. 그래서 전역하고 고백했어요. 누가 고백했냐고요? 저요. 제가 했어요.
근데 이거 몇 시에 나가요? 여주가 들으면 안 되는데. 여주도 이미 알고 있긴 한데, 그래도요. 상처받으면 안 되니까. 어차피 제가 다 말하긴 했거든요? 자기는 다 알고 있었대요. 그럼에도 절 좋아해 준 거예요. 그래서 가끔은 여주한테 제 모습이 겹쳐 보여요. 어... 마지막으로 여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여주야, 나 좋아해 줘서 고마워. 말 나온 김에, 네가 입고 싶어 했던 웨딩드레스 보러 갈까?"
조각글 임다 냅다 딴글 지르기^^;;; 윤기글 재업이랑 정구기 글도 얼른 올려야 되는데 말이져...?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