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9도."
전원우.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 멍청하게 왜 참아. 일어나. 병원가게
이번에 같이 일하는 사람이 깐깐해서. 이거 마저 하고. 오늘 까지..
탁.
순영은 원우가 작업하던 노트북을 닫아버리고, 그제야 자신의 얼굴을 보는 창백한 낯빛의 원우를 보고는 한숨을 내뱉었다.
"느려터져가지고. 니가 지금 니 몸이 얼마나 아픈지 인식을 못하지. 혹시 이게 네 인생 마지막 작품이냐?"
"어?"
혹시 이 작품 하고 인생 하직하고 싶냐고. 난 별로 내키지 않는데. 너 일찍 보내는 거.
오래 보고 싶은데.
.....
"뭘 멀뚱히 봐. 너 지금 내가 공주님 안기로 일으켜주길 바라냐? 뭐 네가 원한다면야..."
아픈 몸 때문인지,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게 있는 건지 원우는 멍하니 순영을 빤히 보다가,
공주님 안기라는 협박아닌 협박에 정신을 차리곤 급히 손사래를 쳤다.
...어? 아니!! 아니!!!
결국 순영을 따라 나온 원우는, 그래도 여전히 그 성질머리 사나운 디렉터와 두고온 일이 걱정됐다.
아 근데 그 사람 진짜 성격 더러운데.
누구.
이번에 같이 일하는 사람... 이지훈이라고. 왜, 방송에서 몇번 나왔었는데. 최연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 그 키 작은 남자? 괜찮아. 내가 이겨. 나 태권도 8단임ㅇㅇ
.....4단 이잖아.
#3.
얼음장같이 싸늘히 얼어붙은 회의실 안.
약 여덟 명 정도의 사람들의 시선이 그런 듯 안 그런 듯 하면서 한사람을 향해 있다.
일러스트 시안은. 왜 없어.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분위기에 다들 눈치를 보며 선뜻 대답이 없자.
대답.
결국 민규가 팔꿈치로 툭툭치고, 자신에게 보내오는 애절한 눈빛과 복화술에 떠밀려 대답했다.
아 그게, 아까 전화로... 아프시다고...
아파? 우리 계약서 쓸 때 분명, 어떤 이유. 변명. 핑계. 구실. 해명 없기로 타협 본걸로 기억하는데.
.....후.... 어디가 아프대?
분명 모두가 회의 전부터 그 문제의 일러스트레이터가 독감에 걸려 이 사단이 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절대로 독감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
손가락이 다쳤대? 그럼 시발 발가락으로라도 해와야지.
이 바닥 몰라? 미친 새끼 아냐. 프로가 시간관념이 없어.
한 직원이 원우가 병원에 가기 전 보내 놓은 미완본을 지훈에게 내밀었다.
"여기... 그래도 보니까 거의 다하신 것 같긴 한데."
다시.
"네?"
제대로 들은 것 같은데. 다시라고. 볼 필요 없어.
너 지금 나한테 미완본 내미는 거야?
지금 누구는 하루에 잠을 4시간도 못 자는데, 어이가 없네.
회의에도 빠져, 완성본도 없어. 완벽하네.
"...."
매장당하고 싶어 환장한거.
지훈의 웃음과 장난스러운 대사에 드러난 날선 진심에 회의실 내부의 직원들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 새끼랑 같이하자고 한거 누구야.
"....."
누구냐고.
"ㄷ렉터님.."
개미 기어가듯 작은 목소리에 지훈이 다시 소리쳤다.
뭐?
"디렉터님이요."
내가? 와 시발. 그럼 나 뒤통수 제대로 맞은 거네.
그래 일들 해. 내가 데려왔으니까 내가 직접 모시러 가야지.
이 분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
"전원우요."
전원우.. 제갈량급 일러스트레이터 나셨네.
박수들 쳐. 내가 참 대단한 분 모셔왔네.
지훈이 웃으며 박수치자, 하나 둘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치보며 박수치고.
웃으며 박수치던 지훈, 순간 표정 싹 바뀌며
회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