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새근새근- 그녀의 낮은 숨소리.
그 소리가 이상하게도 귓가에 울려 택운은 잠이 오지 않아.
간이침대가 불편한 것도 아니었고, 은성과 한 공간 안에 있다는 것이 어색한 것도 아니었어.
아니, 어색하기보단 뭐랄까... 조금 조금 마음이... 간지러웠어.
부드럽게 순리에 맞춰 뛰고 있는 이 심장의 움직임이 아주... 달큼하고 간지러웠어.
스탠드 불빛이 나른하게 은성이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을 택운은 가만히 바라봤어.
그녀의 숨소리가 가늘고 낮은 그 소리가 자꾸만 그의 뺨을 붉어지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택운은 알기나 할까?
택운은 한참 아이처럼 잠에 빠져든 은성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이내 눈을 슬며시 감으며 소파에 등을 묻었어.
한숨인지 탄식인지 신음인지 감탄인지 모르겠는 소리가 그의 수려한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고,
그 소리 틈으로 문득 찾아온 은성과의 입맞춤에 대한 기억이 문득 다시금 그의 얼굴을 붉혔어.
'뽀뽀뽀... 뽀뽀뽀?' 택운은 학연의 앞에서 부렸던 술 주정을 다시 되새기며 미간을 찌푸렸어. '미쳤네'
한참 고개를 젓히고 누워서 부끄러워 이불을 걷어차도 모자랄 생각들을 하던 택운은 문득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눈을 떠.
택운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액정에 반짝거리는 그 이름을 천천히 읽어내려가.
'문현아'
이상한 일이야.
그녀의 이름을 보고 이렇게 아무 생각도 안 드는 건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어.
현아의 이름이 그에게 얼마나 독하고 매력적이었는지 그 누구보다 택운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는데.
그런데 지금 제 곁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이 이상한 차은성이라는 여자의 곧은 콧대를 바라볼 때면,
마치 문현아라는 이름의 독기가 해소되는 듯 감히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 것만 같았어.
하지만 이미 오래된 습관처럼 마약의 주사해 온 사람에게 단 한 방의 해독제가 그리 잘 들리는 없겠지.
그래, 너무 오래 문현아와, 그녀의 매혹적임과,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와 유혹에 취해 살던 그가 그리 쉽게 그녀를 뿌리칠 수 없겠지.
이해할 수 있겠니? '-Holic' 그 단어를 너는 이해할 수 있겠니?
그리고 생각보다 확실히 정의할 수 없는 이 남자의 혼란스러움을 은성이는 이해해줄 수 있을까....?
자신도 적응이 되지 않아 파도치듯 매번 마음의 방파제를 넘어오는 이 혼란의 감정을?
택운은 자신의 전화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택운은 잠들어있는 은성을 흘끗 보더니 조용히 병실을 나서.
아무도 없는 복도를 지나 오직 그의 발자국 소리만 텅- 빈 로비에 울려 퍼져.
마치 메아리처럼, 끊임없는 흔적을 남기려는 듯.
아마 후회하게 될.
"여보세요"
"정택운"
"...응"
"정- 택운"
"너, 술 마셨어?"
"그래, 술 마셨어"
"......"
"여기로 와"
"...뭐?"
"나 데리러 오라고--"
"집에 가 문현아"
"....네가 어떻게 그래? 자기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시간을 가지자는 말이 가당키나 해? 너랑 나 사이에?"
"....."
"당장 와, 나 어떻게 되는 거 싫으면"
"현아야"
"네가 오라 그랬을 때 한 번도 안 온 적 없잖아"
"...."
"정택운 너 내 남자잖아"
"....."
"정택운 대답해-"
"....문현아"
문득 나지막하게 택운이 그녀의 이름을 불러.
시간을 가지자던 그 말이 잘 지켜지지 않을 걸 알고 있었어.
감히 뿌릴 칠 수 없는 관계라는 걸, 그러기엔 너무 짙은 밤을 지샌 사이라는걸.
택운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내 제 고개를 떨궈.
짜증 나-.
"어디야... 지금 갈게"
*
아침에 일어난 은성이는 텅 빈 병실을 둘러보다 이내 작은 한숨을 내뱉어.
그래, 어제는 이상한 밤이었어.
손을 잡아주던 그의 온기도,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던 설렘도.
그리고... 작은 소리로 진동하던 그의 전화기와 조용히 병실을 나서던 그 발소리도.
다... 이상하게 따뜻하고 다정하고 아팠지.
너무 아팠지.
그래, 차라리 그에게 무덤덤해지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이렇게 매번 혼자 상처받고 짐작하며 아파하느니 말이야.
은성이는 택운이 어디에 갔는지 딱히 확인해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서 대충 일어나 씻고 나왔어.
그에게 전화해 볼 마음도 들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또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겠지.
어제는 택운은 이상하리만치 다정했고, 은성이는 그게 꿈만 같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 단 꿈을 은성이는 제 손으로 부숴버리고 싶지 않았어.
그가 집에 갔다면 그건 그거대로 끝날 일이었지만,
그가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면 그것만 한 절망은 없을 테니까.
은성이는 어젯밤 택운이 앉아있던 텅 빈 소파를 바라보다가 괜히 입안이 씁쓸해지는 것 같아 한숨을 뱉어내.
아침을 먹을 입맛도 별로 없어서 그냥 깨작대다가 담당 의사의 내일 퇴원하라는 말에 차라리 잘 됐다며 안심해.
하루 종일 병실에 혼자 있는 것이 심심했는지 오후쯤 되자 은성이는 기지개를 켜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산책이나 할 겸 하고 병실 복도를 걸어가는데 시끌시끌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 거야.
은성이는 이 삭막한 병원 안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발소리와 웃음소리에 괜히 궁금한 얼굴을 하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소아병동까지 걸어왔던 것 같아.
사막에 피어난 예쁘고 작은 꽃처럼 이 삭막한 병원에서 한 줄기 햇살처럼 빛나는 웃음소리에 은성이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
은성이는 시끌벅적한 로비 한구석 소파에 앉아서 창가에서 스며드는 햇볕을 받으며 눈을 감았어.
비가 몰아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완연한 봄이 되어 내리쬐는 이 햇살이 얼마나 따뜻하던지.
그녀는 잠이 오지 않았음에도 그저 나른하게 벽에 머리를 기대고는 작은 웃음소리들을 듣고 있었어.
"이건 웬 봄날의 고양이래?"
문득 들리는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목소리에 은성이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어.
자신을 보고 얘기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서 은성이는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슬쩍- 눈을 떴어.
천천히 밝아지는 시야에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자 남자는 꽤나 즐거운 듯한 웃음소리를 흘려.
"귀엽게-"
은성이는 제 앞에 무릎을 굽히고 눈높이를 맞춰 서 있는 남자를 보고는 조금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떠.
남자는 한 번 더 재밌다는 듯 웃어 보이고, 은성이는 그런 그가 이상해서 슬쩍 몸을 뒤로 빼.
"아- 진짜 고양이 같아"
남자는 여전히고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은성을 바라봐.
은성이는 하얀 가운을 입은 그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그의 명찰로 눈을 돌려.
주머니에 꽂혀있는 파랑 분홍 뽀로로 펜이 눈에 띄어.
'소아과 의사 이재환'
"이재환...?" 은성이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려.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말이야.
"오늘은 뽀송뽀송하네요 고양이씨"
"네?"
"저번에 봤을 때에는 푹- 젖어있어서 집에 데려가고 싶었는데, 오늘은 뽀송뽀송한 게 한 번 안아보고 싶네"
"...저 아세요?"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는 그의 모습에 은성이는 조금 경계하며 그를 바라봐.
재환은 조금 실망스럽다는 듯 입술을 삐죽대더니 제 핸드폰을 꺼내서 기다란 손가락으로 톡- 톡- 문자를 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은성이의 핸드폰에서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 울려.
은성이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바라봐.
'섭섭하네- 내가 비 오는 날 우산도 씌워줬는데'
그제야 은성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바라봐.
어두운 저녁 후드를 쓰고 있어도 뚜렷했던 그의 콧대가 문득 겹쳐 보이자 은성이는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쳐.
"아 그 후드!"
"후드 아니고 이재환이요-" 그가 키득거리며 이내 허리를 똑바로 피며 일어나.
"아, 미안해요" 은성이 그를 보며 멋쩍게 대답해.
"그래서 오늘은 왜 환자복을 입고 계시나? 엄청 낯가리시는 아무개씨는?" 재환이 스스럼없이 그녀의 옆에 앉으며 물어.
"차은성이에요..." 은성이는 그런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해.
"알아요" 똑같이 작은 목소리를 흉내 내며 그가 씩- 웃어.
"네?"
"그래서 왜 입원했어요??"
"그, 감기 때문에 내일 퇴원할 거예요. 별거 아니라서. 근데 방금 제 이름 안다고 하지 않았어요?"
"내가 그랬나? 근데 입원할 정도면 많이 아팠나 봐요. 그날 비를 그렇게 쫄딱 맞으면서 가더니"
"이제는 괜찮아요. 그때는 고마웠어요"
"약속한 건 안 잊어버렸죠? 커피 사야지"
"지금요?"
"지금이면 더 좋고! 마침 쉬는 시간이니까-"
지금 은성이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병원 1층 로비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어.
남자는 쓴 건 질색이라며 달달한 스무디를 시켰고 은성이는 무얼 마실까 고민하다 그와 다른 맛의 스무디를 주문했어.
은성이는 의사라고 하기엔 탈색한 금발머리가 꽤나 이국적으로 보이는 재환을 가만히 바라보며 관찰하고 있어.
그런 은성이의 시선이 재밌었는지 재환은 빨대를 문 채로 씩- 웃어봐.
"뭘 그렇게 봐-"
"그... 머리 색이 엄청 밝네요"
"잘 어울리죠?"
"네, 외국인 같아요"
뻔뻔하게 묻는 재환에 은성이는 피식- 웃으며 대답해.
재환은 그런 그녀의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는 듯 눈썹을 쓱- 올렸다가 이내 다시 눈꼬리를 접어가며 예쁜 미소를 뽐내.
"애들이 외국인 같다 그래서 염색했어요. 쟈니라고 부르거든 쟈니 선생님- 하고"
"아기들이 귀엽네요"
"애들은 다 귀엽지, 순수하고, 사랑스럽고"
"아이들 좋아하시나 봐요?"
"그러니까 소아과 의사죠"
"마음 아프지 않아요? 아픈 아이들 보면"
그녀의 질문에 재환은 가만히 은성을 바라봐.
그러고는 나지막이 그녀에게 속삭여.
".....희한하네"
"네?"
"은근 말을 잘 하네, 낯 엄청 가리는 것 같았는데"
은성이는 그의 한 마디에 정말 자신이 그랬나 싶어서 천천히 눈을 끔뻑여.
재환은 은성이의 표정을 보며 '생각하는 게 다 드러나는 여자구나'싶어서 쿡- 쿡- 낮은 웃음을 삼켜.
왠지 처음에는 그냥 궁금해서 알겠다 그러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은성이의 행동을 하나하나 보고있자니 진짜 빠질 것만 같아.
되게, 뭐랄까, 비 오는 날은 그렇게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강해 보이더니,
오늘 앞에서 스무디를 마시고 있는 은성이는 꽤나 아이같이 순수해 보여 은근 귀엽다는 생각을 하게 돼.
단단하면서 부드러워 보인다는 것은 꽤나 매력적이라는 소리리까.
그리고 자신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까지도 말이야.
'어쩐지 답지 않게 경계하더라니, 밥그릇 뺏길까 꽤나 걱정했나 보네'
재환은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그런 생각을 해.
그러다가 문득 들려오는 은성이의 목소리에 다시 그녀를 바라봐.
"재환씨는 강한 사람인가 봐요. 좋은 사람이고"
"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프다는 생각만 해도 무섭던데, 재환씨는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그걸 다 견뎌내잖아요"
"......."
"난 무서워서 시도도 못 할 것 같은데"
재환은 스무디를 휘적거리며 나긋나긋 이야기하는 은성을 가만히 바라봐.
그러고는 호출을 알리듯 핸드폰이 진동하자 주머니를 뒤적거려 그걸 가만히 바라보더니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은성이는 일어나는 그를 따라 고개를 들어. 밖에는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지 예쁜 꽃잎이 흩날리고 있어.
"호출이 와서 일어나봐야겠네"
문득 차분해진 그의 목소리에 은성이는 그를 바라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재환은 찰랑거리는 금발머리를 한 번 쓸어넘기더니 장난스러운 윙크를 날려.
"전화 번호 꼭 저장해둬요 이번엔, 이재환으로"
"....?"
"우린 오늘부터 친구예요 알았죠? 나는 생각보다 당신한테 많이 연락할 것 같고 당신도 생각보다 나를 많이 보게 될 거야"
"네?"
"또 봐요 차은성! "
보기 좋은 웃음을 뽐내며 그렇게 말하곤 사라지는 재환의 뒷모습을 은성이는 멍-하니 쳐다봐.
요새 들어 왜 이리 알 수 없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게 되는 건지 그녀는 조금 의아해지기 시작해.
그러다 문득 그런 비정상적임에도, 그 틈에서도 찾아오는 택운의 생각에 괜히 센치해져서 턱을 괴곤 창밖을 바라봐.
그래, 눈송이 같은 꽃잎들이 너무 예쁘게 떨어져내리는 그 봄날의 풍경을.
*
은성이는 하릴없이 그렇게 병원 근처를 산책하다가 늦은 오후 노을이 질 때가 돼서야 병실로 돌아가.
병실 문을 스르륵- 열고 들어가는데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드니 언제 왔는지 택운이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어.
은성이는 문지방에 서서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택운도 이내 읽고 있던 책 사이에 손가락을 끼워 넣으며 그녀를 바라봐.
"어디 갔다 와"
그의 그 물음에 은성이는 그저 대답 없이 병실 안으로 들어서.
택운은 그런 그녀의 침묵이 문득 기시감이 든다 생각해.
그의 눈이 그녀를 쫓고 은성이는 그걸 알면서도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내 책이네요?"
창가에 걸터앉은 은성이 택운의 손에 들린 시집을 보며 말해.
택운은 가만히 그녀를 올려다보다가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여.
"그때 떨어뜨린 거"
"어때요, 읽을만해요?"
"뭐.. 그러네"
그 말 이후로 잠깐의 정적이 두 사람 사이를 채워.
은성이는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택운을 쳐다봐.
택운은 여전히 기다란 손가락의 책장 사이에 끼우고는 가만히 은성을 바라보고 있어.
마치 그녀의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이야.
은성이는 그게 낯설어서 괜히 마음이 갑갑해져.
너무 기대하게 만드는 그가, 그리고 매번 실망시키는 그가 미워서.
"어제 되게 좋은 꿈을 꾼 것 같아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은성이는 말해. "너무 달아서 깨고 싶지 않았어"
"....무슨 꿈이었길래"
"그냥" 은성이 눈을 슬며시 감으며 속삭여. "당신이 손을 잡아주는 꿈"
그녀의 한 마디에 택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그러다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움직여.
"꿈 아니야 그거"
"그냥 꿈이라고 해줘요"
"...."
"간 밤에 당신이 누굴 만나러 그렇게 나갔는지 그런 짐작하는 것도 다 부질없는 거라고 해줘"
은성이의 그 한 마디에 택운의 눈동자가 흔들려.
진짜... 학연에게 술 취해했던 말이 다 맞아.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 다 알고 있는 이 여자는.
차은성이는, 생각보다 더 어렵고 또 생각보다 더... 더...
택운은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나선 어느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은성이에게로 다가서.
그녀의 시집을 침대 위에 가볍게 올려놓고는 그가 천천히 몸을 움직여.
은성이는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택운은 그녀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는 그녀가 걸터앉은 창가에 은성을 가두듯 제 두 손을 짚어.
입술 사이의 간격이 채 10센티도 되지 않는 그 거리에서 택운은 아주 묘한 그 눈으로 그녀의 눈을 그리고 그녀의 입술을 바라봐.
그리고 아주 가볍게 은성이의 입술이 입을 맞춰.
은성이는 꽤나 담담한 표정으로 그런 택운을 바라봐.
사실 속은, 심장은 터질 듯 뛰고 있으면서 말이야.
택운은 다시 한 번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포개오고 은성이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떠.
따듯한 그 입술을 감각이, 부드러운 촉감이 매달리듯 얽혀서 기분이 묘해.
"자..." 슬며시 고개를 들며 택운이 은성이에게 속삭여. "입 맞춤 두 번, 이걸로 없던 일로 해줘"
은성이는 그의 그 어처구니없는 한 마디를 듣곤 슬며시 입꼬리를 올려.
그 웃음의 의미가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는 걸 그도 알고 있을 거야.
사실은 너무 아픈 웃음이었다는 걸 택운은 알고 있어야만 해.
"진짜 나쁜 남자네 당신"
은성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해.
"도대체 얼마나 나쁜 짓을 더 하려고...?"
"...."
"나중에는 뭐로 갚으려고 이래요"
"글쎄..." 그가 슬며시 몸을 일으키며 말해. "나중에는 더 센 거로 하면 되겠지"
"내가 이런 것들로 당신을 용서해줄 것 같아?"
택운은 그렇게 묻는 은성이의 손목을 잡고는 그녀를 자리에서 일으켜.
그러고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봐.
"응"
"왜요" 은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에게 물어.
택운은 그런 은성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거둬.
그러고는 그녀를 침대에 앉히고 자신은 다시 소파로 돌아가서 시집을 펼쳐.
그의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리고, 은성이는 문득 울고 싶어지는 것을 꾹- 참아내려.
택운의 마지막 한 마디가.
"너는 날 사랑하니까"
......
결국 겁쟁이는 너 잖아.
정택운.
네 귀는 왜 달아올랐데...?
*
때론 초라한 진실보다 환상적인 거짓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그것이 '사랑'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Big Fish, 2003]
암호닉♥ |
야생 구름 나이키 체리 라일락 민쵸 로즈골드 정택운택운 양재동넘버원 요랑이 난장이 택뷰 권표 엔진 다들 너무 고마워요! 질질끄는 이 답답함을 견뎌내줘서 ㅋㅋ 설마 누구 빼먹진 않았겠죠?...9ㅅ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