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권번. 비운의 시대였던 1943년, 그 시절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단 하나의 경성 제일의 기생 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또 다른 기생 학교가 세워졌다. 2016년, 대성권번. 예술가들의 유토피아, 숱한 저명인사를 남긴 숨쉬는 전설. 예술가들은 그곳을 동경했다. 신문과 뉴스에서는 권번 출신의 A양부터 D양까지의 일화를 다루고 하루에 수백번도 넘게 권번의 이름이 오르락 내리락 했다. 감히 비교할 곳이 없었다. 그곳의 무대를 설 수 있다면, 그곳 벽 한 켠에 자신의 글을 남길 수 있다면, 내 그림을, 내 악보조각을, 내 이름을 남길 수 있다면. 예술에 눈 먼 이들이 대성권번에 눈을 멀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이름, 박지민.
지민은 태풍의 눈에 살아 숨쉬는 가련한 장미였다. 가시는 날카로웠지만 붉은 잎이 태풍 밖의 것들을 이끌었다. 태풍을 타고 온 것들은 온통 망신창이였다. 눈은 고요했지만 그 밖은 날이 선 바람이 부는 전쟁터였기에. 하지만, 그건 지민도 마찬가지였다. 태풍의 눈으로 향하기 위해서 삼켜낸 바람이 상처를 남겼다. 곪거나 아무는 것은 장미 스스로의 일이었다. 지민은 전자를 택했다. 곪아터진 흉터에서 눈물처럼 속이 흘러내렸다. 눈 밖에선 보이지 않을 흉들이 지민의 숨통을 막았다.
"대성권번 최고의 예인(藝人), 박지민!"
권번에서 사회를 보는 이의 입에서 지민의 이름이 불렸다. 지민이 무대로 향하기 위한 발걸음을 떼자 무대 뒤의 예인들이 수근댔다.
"박지민, 박지민, 박지민!"
걸음을 뗄 때마다 사람들의 눈이 빛났다. 나비처럼 우아한 걸음, 그를 보는 이들은 이미 매료가 되어 넋을 놓았다. 그의 손이 마이크에 닿고, 멜로디가 흘렀다. 권번은 어렵지 않게 정적을 찾았다.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찰나. 지민이 입술을 열었다.
*
"오늘 공연도 좋았다."
"최악이었어요."
남준의 눈썹이 꿈틀댔다. 건넨 장미가 무색할 정도로 차가운 말이었다. 지민이 거울 속 자신과 눈을 마주했다. 노려보는지, 다른 생각을 하는지, 초점이 빗나간 눈. 남준이 지민의 어깨를 가만히 쥐었다. "최고였어." 지민의 목덜미를 타고 손가락이 흘러내렸다.
"하지, 마세요."
"지민아."
"..."
"내가 왜 이름을 바꾸지 않았을까."
1943년, 손님을 맞이하던 방은 2000년대가 되어 대기실로 탈바꿈했다. 이제 따로 손님을 맞이하거나 할 일이 없었다. 예인들의 대기실은 먼지 대신 발자국이 쌓였다. 그렇게 하루종일 인산인해를 이루고 나면 남는 것은 없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고요한 난장판, 지민은 알았다. 대성권번은, 여전히 기생들의 장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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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써본 조각글!
국민인데 정국이가 안 나와서 [국민]이라고 달았던 앞머리 지웠다 8ㅅ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