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
자정을 훌쩍 넘겨 시계의 짧은 바늘이 3을 향해 달려가던 시간, 순영이 평소와 다르게 어두운 목소리로 날 불렀다. 고개를 돌려 본 너의 모습은 남들이 봤을 때 추하다 해도 뭐라 못할 모습이었다. 땀에 절은 머리카락들과 목이 늘어나 어깨 선이 보일듯 말듯 한 반팔 티, 무릎 쪽 색이 다 바래진 바지를 입고 밑창이 전부 헤진 신발을 신은 채로 벽에 기대 앉아 있는 너의 모습. 잘생긴 얼굴과 상반된 공허한 네 표정엔 무언가 화난 감정이 섞인 듯 했다.
"응, 왜?"
"우리 언제 데뷔할 수 있어?"
가슴이 턱 막혔다. 열 댓명의 데뷔조 아이들을 모아 세븐틴이라는 이름으로 팀이 꾸려진 지도 어언 2년째, 가끔 기획사에서 먼저 데뷔한 선배님들의 네임밸류를 얻어 몇몇 행사 오프닝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관중들의 관심과 무대에 섰을 때의 짜릿함을 얻을 수 있던 건 그 잠시뿐, 우린 또 다시 지하 연습실에 들어가 빛을 보기만을 기다리며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대표님의 지시 하에 한 소절을 수백 번 부르고, 한 동작을 수 천번 연습했으며 한 동선을 수 만번 맞춰봤다. 같은 곳만을 보고 달려가는 아이들 중 가장 먼저 출발선상에 섰던 나는 '리더'라는 막중한 자리를 맡게 되었고 아마 순영이가 내게 저 질문을 하는 것도 내가 리더라는 이유로 저에 비해 아는 게 많다고 생각해서 일거다. 미안하다 순영아. 형도 아직은 같은 연습생이야. 데뷔하지 않으면 리더라는 자리가 무슨 상관일까.
"곧 할 수 있을거야. 우리 팀 만들어진지도 2년 다 되어가잖아. 해체 안되고 그대로인 거 보면 데뷔는 시켜주실 거,"
"언제까지 그런 소리만 할거야? 형 리더잖아. 희망고문만 하지 말고, 확실하게 얘기를 해줘. 우리 대체 뭐 믿고 이렇게 죽도록 연습해야돼? 목이 터지도록 노래 부르면 데뷔할 수 있는거야? 지금보다 더 팔다리 으스러지도록 안무랑 동선 만들고 춤 추면 데뷔가 확실해져? 그런거야?"
내게 소리를 지르며 이야기하던 순영이가 울기 시작한다. 그것도 존나 서럽게. 누군가 트레이너님께 혼나 분위기가 침체되었을 때도 가장 먼저 나서서 아이들 얼굴에 다시 웃음꽃을 피게 하던 넌데 왜 갑자기 자기 악에 받쳐 저렇게 서글프게 우는 걸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혀엉, 나 진짜, 흡, 더이상, 못하겠어. 데뷔, 못하면, 아무것도, 얻는게, 없잖아. 이렇게, 연습해봤자, 다, 안될것, 같아, 이제는."
.....뭐라 맞받아칠 말이 없었다. 순영이 했던 말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내가 했어야하는 행동은, 순영이 옆에 앉아 네 마음을 전부 이해할 수 있겠다며 힘듦을 공유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리더라는 자리에 누를 끼친다고 생각한 나란 쓸모없는 놈이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순영이의 마음을 다시 잘 달래고 구슬려 연습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꼴에 리더라고 벌써 뇌가 받아들인 듯 했다. 울 때는 그냥 울게 놔두고 설득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순영이가 울음을 스스로 그칠 때까지 말없이 쳐다보고만 있다 이내 순영이의 말처럼 노력하는 것에 비해 아직 얻은 게 없는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남들은 다 즐긴다는 학창시절과 10대의 청춘, 난 버린지 오래였다. 아직 무언가를 얻기에는 연습량이 모자랐던 걸까. 반짝거리는 꿈에 비해 한없이 비참한 현실에 대해 자괴감이 들기 시작할 무렵, 일단 순영이를 안정시켜야 된다 생각했다. 춤을 추는 아이기 때문에 우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면 내일 연습이 힘들어질 것이다.
"순영아, 일단 오늘은 이정도까지 하고 숙소가서 쉬자. 형이 마지막 동선 체크하고 갈게. 지금 애들 다 숙소에서 쉬고 있으니까 들어가서 애들이랑 얘기해봐. 형이 진짜..... 해줄 말이 없어. 미안해."
한참을 울고 있던 순영이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숙였던 고개를 들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소리쳤다. 조금 전 내게 화냈던 목소리보다 더한 분노를 담은 말투였다.
"하, 해줄말이 없어?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형은 존나 무책임한 사람이야. 우리한테 남은건 데뷔밖에 없다면서 기약없는 말들로 괜한 기대만 하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근데 지금 와서 뭐? 해줄말이 없다고?.... 동선은 내일 아침에 내가 직접 체크할거야. 형은 그냥 남아서 형 자신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고 와. 리더 주제에 왜 그렇게 무책임한 말로 죄없는 애들 희망고문을 했었는지!"
물기에 젖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유하지만은 않은 눈으로 날 째려보며 얘기한 순영이는 자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길로 몸을 틀어 연습실을 박차고 나갔다. 멍하니 있던 나에게서 이유모를 눈물이 삐질삐질 나오기 시작했다. 스스로 그만 울고 빨리 페이스를 되찾자며 마음속으로 되새기고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텅빈 연습실에서 마저 감정조절을 하려 하던 내 자신이 너무 싫어서,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나는 이 소속사에서 가장 먼저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선배였고, 나이도 가장 많은-그래봤자 고등학생이지만- 연장자였으며, 데뷔조 세븐틴의 리더기도 했다. 여기서 난 누구보다 성숙한 연습생이었다. 정확하게는, 성숙한 척 해야만 했다.
아직 나도 날 잘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최승철이란 친구들이랑 축구하는 걸 좋아하고, 노는 걸 좋아하는 열여덟살의 남들과 다르지 않은 고등학생이었다. 다른 또래친구들은 학교나 학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후 이따금 진로를 고민하는 시기를 겪고 있었지만 나는 이미 데뷔라는 성공을 위해 소속사라는 사회에서 살아남으려 경쟁하는 일개 연습생 중 하나였다. 더 이상 남들처럼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할 필요도 없고, 진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힘든건 왜일까.
항상 수정체에 서리가 낀것만 같았다.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고, 가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손에 잡히지 않는 나의 목표. 내가 연습생 신분으로 소속사에 남아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내 경쟁자들은 끊임없이 생겨났고 그에 따른 나의 불안함도 비례했다.
꽉 막힌 연습실에 혼자 남아있다가는 정말 숨막혀 죽을 것만 같아 연습실을 나와 정처없이 걷기 시작했다. 멤버들끼리 정해놓은 규칙 상 연습이 끝나는 즉시 숙소로 돌아오기로 하였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어떤 사람도 만날 수 없다. 어차피 이렇게 밖에 나와있어도 지금은 아무도 모를텐데, 라 생각하며 길을 걷다 또 다시 연습실 안에서 생각했던 미래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이 다시 머리속에 떠오르자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있다, 나만의 별. 눈에 띈 후에야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내가 힘들 때마다 바라보았던, 인공위성인지 뭔지 모를 저 반짝이는 점. 저것이 인공위성이라 할 지라도, 나에게는 별로 다가온 존재였다. 항상 내 미래가 될 거라 생각하고 봤던 점이 오늘따라 멀어보인다.
내가 정말, 별이 될 수 있을까.
저 위에 올라가 내가 흘렸던 눅눅한 땀들과 혼자 어두운 연습실에서 웅크려 울고 있던 내 모습을 회상하며 웃을 수 있을 날이 조만간 찾아올 수 있기를 빈다.
난 최승철,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의 데뷔조 연습생 팀 '세븐틴'의 리더다.
***
"네, 5월 첫째 주, 챔피언송! 과연 그 트로피의 주인공은 누가 될지,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꿈만 같다. 첫 정규앨범으로 컴백한지 아직 두 주 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 데뷔한지 1년도 안된 우리팀은 지금 음악방송 1위후보에 올라와있다. 후보에 올라와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대기실에서 멤버들끼리 흘러가는 말로 1위를 하면 좋겠다라는 말은 주고받았지만 후보에 함께 올라와있던 엄청난 대선배님들과 대형 기획사 소속 가수들의 명단을 보자 우린 암묵적으로 눈빛을 주고 받았다. 그냥 1위후보에 올라와있는 것만으로 만족하자,고. 음, 누가 오늘 1위일까? 지난 주에 1위하셨던 선배님? 아, 아니다. 얼마전 신곡을 낸 후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한 후 대중성까지 잡은 선배님들이 1위를 하실지도 모르겠다.
[3]
[2]
[1]
"세븐틴, 예쁘다! 축하드립니다!"
"헐, 우리 진짜 1등이야...?"
"혀엉... 우리 1등이래요!"
"와 대박! 와!"
"승철이 형, 말 좀 해봐요. 우리 1등이래요!"
아, 얘들아.
우리 1위했니?
그렇구나, 1위했구나.
.....수고했어 얘들아. 세븐틴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고 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동안 나를 믿어줘서 고마워.
탄탄대로도 아니었고 제대로 된 길을 안내해주지 못한 나로 인해 조금은 힘들게 길을 찾아갈 때도 있었지만 그럴때마다 날 믿어줘서 고마워.
우리 이제, 날아오를 날만 남았어.
나는 에스쿱스,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의 첫 1위 가수팀 '세븐틴'의 리더다.
-------------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죠죠라는 필명으로 활동할 예정인 작가입니다.
글을 처음 써보는 거라... 많이 미숙해요. 읽을 때는 마냥 재밌게 느껴졌는데, 확실히 글을 써보니 창작의 고통이라는 걸 느낄 수가 있네요. :)
오래전부터 세븐틴을 아끼고 좋아해왔던 터라 이번 1위가 정말 의미있다는 걸 몸소 느꼈고 그런 내용을 총괄리더 시점으로 써내려갔어요.
원래 리더 자리는 셉프 시작하기 전에 정해진 거라서.... 실제 내용과는 연관짓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냥 승철이가 느끼는 막중한 부담감을 리더라는 자리로 더 강조해서 표현하고 싶어서 사용했어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로 글에 대한 평 남겨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싶어서 남들이 제 글을 어떻게 보는 지에 따라 고쳐나갈 생각입니다.
다시한번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두들 평안한 밤 되세요.
세븐틴 1위 축하해 고생했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