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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살구꽃향기 

W.구슬나무 

  

  


"야, 남우현. 오늘은 무술 더 안하는 거야?" 

  


아, 응. 우현이 물어오는 성열을 향해 웃어 보였다. 성열은 웬일 로라는 말을 덧붙이며 고개를 돌렸다.
멀지않은 곳에서 활을 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열이 쟤는 아직도 하나봐.라는 말을 하며 발길을 돌렸다.
성열이 향한 곳을 가만히 바라보던 우현도 땅바닥에 이리저리 떨어진 볏짚단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이걸 언제 다 치우지. 몸종 하나 붙여달라 할까. 가만히 생각하던 우현이 떨어진 볏짚단을 들어 한쪽 구석으로 치우고 칼을 챙겼다.
터벅터벅 소리를 내며 걸어가던 우현이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성열의 목소리에 멈춰 섰다.
멈춰 선지 얼마 되지 않아 성열과 명수가 함께 걸어왔다. 명수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우현이 손을 흔들고는 다가갔다. 

  


"고개 숙여 인사할 필요없다니까"
"그래도 화랑이시잖아요"
"화랑이 뭐 대수라고, 그냥 성열이처럼 반말해"
"아니에요" 

  


우현과 명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성열이 명수의 뒤통수를 쳤다. 아픈 뒷머리를 잡고 성열을 샐쭉 노려본 명수가 큰소리로 말했다.
아이씨! 왜 때려!. 반말해! 내가 다 민망하다. 명수의 짜증에 성열이 더 당당하게 답했다. 명수는 그에 성열의 허리를 살짝 치고는 뒷머리를 정리했다.
그런 명수와 성열을 보던 우현이 푸하하하고 웃더니 성열과 명수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천천히 걸었다.
니 얼굴이면 금방 화랑되, 명수야. 우현의 말에 살짝 웃은 명수가 그럼요. 하고 대답했다.
성열이 우현의 팔을 찰싹 때리며 어깨동무를 풀고 난 언제 화랑 되는데라는 질문을 하며 집으로 향하는 길에 군사들과 노비 무리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다들 좋지 못한 표정으로 노비들을 바라봤다. 난 저런 거 싫어. 성열의 말에 옆에 있던 명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사람인데 왜 다르다는 거야. 성열이 짜증 난다는 식으로 말을 하다가 아무 말 하지 않는 우현을 보았다.
성열의 시선을 의식한 우현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우현은 아무 상관 없었다.
자신은 진골이기에 좋은 대우를 받고 살았다. 물론 왕족인 성골에게는 머리를 숙였지만 자신보다 낮은 계급에게는 빳빳했다.
그래도 나쁜 짓은 하지 않았다.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으니까. 

  

울며 소리를 지르는 노비, 곡소리를 내는 노비, 해탈한 듯 조용히 따라가는 노비.
여러 노비들이 손을 묶인 채 길게 이어졌다. 우현은 노비를 끌고 가는 말을 탄 군사를 보았다.
조금 살집이 있고 키도 꽤 커 보였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하고 중얼거리던 우현이 군사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인사를 했다.
군사도 우현을 보더니 무리를 멈춘 뒤 말에서 내려 우현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순간 당황스러워 고개를 드는 군사를 가만히 보던 우현이 그제야 기억났다는 듯이 아아하는 소리를 내었다. 

  


"덕수구나. 금관가야와의 전쟁에 나갔다더니 이겼나보지?"
"예, 화랑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별일 없지" 

  


많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안부를 주고받았다. 덕수는 낭도 중 자신을 잘 따르던 아이 중 하나였다.
금관가야와 전쟁 소식을 듣고 지원하여 갔던 아이였다. 우현도 나가는 게 맞는 것이었지만 자주 자잘한 전쟁에 나가는 우현은 이번만은 쉬고 싶었다.
덕수가 다시 말을 타고 무리를 움직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현이 노비들을 한번 돌아봤다. 아직도 울고 곡소리를 내기도 하는 노비들이 많이 보였다.
우현이 한숨을 쉬며 다시 성열과 명수에게 고개를 돌리는데 고개를 빳빳하게 새운 노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피부가 돋보였고 누더기를 입어도 풍겨오는 분위기는 고고했다.
가야의 귀족이었던 것인가 하고 생각하던 우현이 뚫어져라 쳐다보자 시선을 느꼈는지 돌아본 노비가 눈이 마주치자 놀라서 고개를 숙였다.
별건 아니었지만 그 노비의 행동은 조용하면서도 눈에 많이 띄었다. 아까 크지 않은 눈이 토끼눈이 되어 자신을 쳐다본 것이 생각나 우현이 살짝 웃어 보였다.
우현의 갑작스러운 웃음에 성열과 명수가 고개를 갸웃 거렸지만 뭐 오랜만에 덕수를 봐 서려니 하며 우현을 바라봤다.
우현의 웃음은 한지에 먹이 퍼지 듯이 얼굴 전체로 퍼져갔다. 결국 우현의 얼굴은 환한 웃음이 자리 잡았고 우현은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 

  

  


방 안에 앉아 책을 읽던 우현이 열어둔 창문으로 살살 불어오는 바람에 살구꽃의 향기가 섞여들어와 우현의 방안을 살구향으로 가득 채웠다.
살구 향이 가득한 방안은 연분홍색의 살구꽃이 눈앞에 보이는 듯이 아른 거렸다. 우현은 살구향에 얼굴에 작은 미소를 띠고 책을 읽어내려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늦은 아침이었던 시간이 이른 점심을 향해가고 있었다. 머리를 썼기 때문인지 점점 울려오는 뱃시계소리에 우현이 기지개를 폈다.
으하는 외마디의 소리를 흘리고는 책상에 팔을 기대어 얼굴을 받쳤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이틀 전 보았던 노비의 얼굴이 떠올랐다. 

  

남자치고 하얀 피부가 나쁘지 않았고 크지 않은 눈 마저 좋은 느낌을 주었다. 자신과 눈이 마주쳤을 때 놀라 토끼눈이 된 표정도 싫지는 않았다.
다시 한 번쯤은 보고 싶네. 살짝 중얼거린 우현이 밖에서 들려오는 큰소리에 움찔하며 눈을 떴다.
소리만 들어서는 홍주 아주머니의 목소리였다. 뭐라 하는 것인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화가 많이 난 느낌이었다.
창문을 닫아야 하나, 나가서 확인해 봐야 하나하고 고민하던 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정리했다.
하늘색과 흰색이 조화로운 화랑복과는 또 다른 느낌의 연분홍색의 한복이 우현과 정말로 잘 어울렸다. 

  

방 밖으로 나와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뭔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긴 우현이 홍주의 뒷모습을 보고 천천히 다가갔다.
홍주는 우현을 어렸을 때부터 키워주다시피한 유모와 다름없었다. 홍주는 항상 녹색빛과 살짝 누런 느낌의 노란 한복을 입었다.
머리 뒤쪽에 묶은 머리카락은 나무로 된 비녀를 꽂아 고정시켰다. 우현은 이런 홍주를 아주 잘 따랐다. 철없던 시절, 부모님보다 더 속이 상한 것이 홍주라 생각할 정도였다.
홍주에게 가까이 가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뒤돌아보며 고개를 숙이는 홍주를 보고 우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인사해요! 나보다 어른이면서 항상 저래"
"아니 도련님께 어떻게 반말을 합니까..."
"그보다 왜 소리 지른 거에요?"
"아, 어제 새로 들어온 아이가 일을 못해서 혼내고 있었어요" 

  


홍주가 눈짓으로 한 사내를 가르쳤다. 우현이 시선을 돌리자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서있는 남자가 보였다.
아버지께서 이번에 새로운 노비를 들이셨다 하셨지. 우현이 어제의 아버지의 말을 기억했다.
어떤 아이인지도 볼 겸 우현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자 움찔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우현이 앞에 서자 몸이 조금씩 떨려오는 것도 눈에 보였다. 아마 홍주 아줌마보다 높은 신분인게 눈에 보여서 그러겠지... 속으로 생각한 우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이 뭐야?. 우현의 물음에 답을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는 남자에 우현이 기다리자는 마음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김성규"
"좋은 이름이네" 

  


우현의 말에 긴장이 풀렸는지 떨림이 잦아드는 것이 보이자 우현이 고개를 들어도 된다는 말을 하자. 성규는 고개를 젓다가 우현이 부탁이라는 말을 하자 잠시 고민하는 가 싶더니 고개를 들었다.
하얀 피부와 크지 않지만 예쁜 눈, 그리고 이틀 전과 같은 토끼눈. 성규의 토끼눈을 보고 우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
성규는 다시 고개를 숙였고 우현은 홍주를 보며 물었다. 이 아이가 뭘 잘못했어요? 우현의 물음에 옆에 서 있던 홍주가 한심하다는 듯한 투로 말을 쏟아내었다.
장작으로 쓸 나무를 구해오라니까 젓은 나무를 가져오고 장작을 패라니까 도끼질도 못하고 물을 길어오라니까 오면서 다 쏟아버리고... 여러가지 이유가 쏟아져 나오자 이렇게 많을지 생각하지 못한 우현의 눈꼬리가 접혔다.
생각보다 못하는 게 많네. 우현의 말에 민망한지 귀가 복숭아꽃처럼 빨개진 성규에 우현이 홍주를 보며 말했다. 

  


"이 아이 제가 데려가도 되죠?"
"예? 몸종이 필요하시다면 더 좋은 아이로다가..."
"아니요. 이 아이면 되요" 

  


홍주의 말을 자르고 웃어 보인 우현이 놀라서 고개를 드는 성규의 손목을 잡고 방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우현에게 끌려가던 성규가 우뚝 멈춰 섰다.
성규가 멈추자 우현도 따라 멈춰 서며 성규의 얼굴을 바라봤다. 볼도 살짝 불그스름 한 것이 하얀 피부와 더욱 잘 어울렸다.
얘는 뭐 분이라도 칠했나. 속으로 생각한 말을 꺼내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우현에게 성규가 고개를 젓고는 다시 가자는 말을 했다.
성규의 행동에 살짝 의아하긴 했지만 우현은 웃어 보이며 다시 성규의 손목을 잡고 앞장섰다. 우현의 방에 들어가자 방을 한번 둘러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 성규에 우현이 다시 웃어 보였다.
우현의 방안은 정갈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방 안에서 느껴지는 살구꽃의 향기는 그대로 스며들려는 것처럼 성규의 몸을 감싸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우현은 성규에게서 더 진하게 풍겨오는 살구향에 취하는 것만 같은 느낌에 살짝 휘청거렸다. 그럴수록 성규의 향은 더 진해져 우현에게 다가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아까 읽던 책이 놓여있는 상 앞에 앉은 우현이 성규에게 앉으라며 웃어 보였다.
우현의 앞에 앉은 성규가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눈만 이리저리 굴리자 우현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치며 말했다. 

  


"나 봐야지. 어디봐" 

  


우현의 말에 눈을 도르륵 굴리던 성규가 우현에게 집중했다. 성규가 우현을 보자 우현이 기분이 좋다는 듯이 웃으며 성규를 가만히 바라봤다.
할 말이 뭘까. 우현을 보면서도 계속 눈치를 보던 성규가 읽을 수 없는 우현의 표정을 보면서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몸종이지만 막 고된 일을 시킨다던가. 보이는 것과 다르게 성격이 안 좋다던가.고민을 하며 눈살을 찌푸려 보인 성규가 입을 벌리는 우현에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뭐 특별히 할 일은 없고 그냥 나랑 같이 다니면서 조금한 일 하면 되는정도야. 그보다 성규야, 몇살이야?" 

  


몇 살이야라는 질문에 크게 당황한 성규가 네? 하며 놀란 눈을 하고 우현에게 되물었다. 그 모습에 또 웃으며 성규를 바라본 우현이 성규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우현의 끄덕거림에 성규가 생각하지도 못한 질문이었는지 음하며 작게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숙였다.  

  


"19살이요."
"아, 내가 조금 형이네. 난 23살" 

  


그리고 귀족이었어? 하고 물어보고 싶었던 우현이 뒤에 질문은 삼켜버렸다. 혹시나라도 상처가 될까 봐, 나라를 잃고 팔려온 마당에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말을 더 해야 할지 고민하던 우현이 대충 몇 시 몇 시 나가니까 그때 자신을 따라오면 된다는 말을 남기고 계속해서 풍겨오는 살구향에 열려있는 창문을 닫았다.
싫어하진 않지만 우현에게 너무 강하게 다가왔다. 성규는 왜 그러나 싶어 고개만 갸웃거렸다. 우현은 그런 성규를 보며 더욱 풍겨오는 살구향에 정신을 잃듯이 침상에 누웠다.
자고 싶어. 우현의 말에 성규가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았다. 성규가 나가고 나서도 방안에 가득 담긴 은은한 살구 향이 우현의 코를 자극했다.
우현는 팔을 들어 눈을 가리며 잠이 드는 순간까지도 몸을 감싸와 놓아주지 않는 살구 향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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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대박!!!완전잘르셨어요!!금손乃乃乃乃
8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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