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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맞았다. 그 애에게. 정재현이 좋아하는 그 애에게.
온몸이 욱신거린 만큼, 마음도 욱신거렸다.
자꾸만 제멋대로 흐려지려고 하는 동공에, 나는 힘겹게 팔을 들어 두 눈을 벅벅 문질렀다. 거친 소매에 문드러진 눈꺼풀이 찌릿하다. 나는 대체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렇게 멍청하게 당하며 사는 걸까. 누구든 태어났을 때에는 한 마디의 축하를 받기 마련인데, 나는 초라하게도 그 어디의 군중에도 끼지 못해서인가.
수없이 맞은 왼쪽 뺨이 얼얼하다. 무거운 몸을 애써 수그려 세상에서 날 제일 작은 몸으로 만들었을 때, 이윽고 나는 내 앞의 그림자를 보았다. 애증스러운 그 놈. 3학년 7반, 18번. ...씨팔놈.
정재현이었다.
-야.
-.......
-아프냐.
-....그래라. 말하기 싫으면 하지,
-예보현이 나 때렸어.
너랑 예보현 사귄다며.
네 여자친구가 나 때렸어. 그런데도 내 옆에 있고 싶어?
숙인 고개를 그대로 두고 눈동자만 그대로 정재현을 향해 부라렸다. 하지만 안일한 내 생각을, 역시 정재현은 완전히 빗겨나갔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순간, 사악 돋는 소름. 정재현은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나에게. 다른 사람도 아닌...
-...됐으니까 가.
-아니. 넌 나만 따라오면 돼. 내가 맞아.
-아니야, 정재현. 제발!
-...........
잠시 조용한 적막이 흐른다. 갔구나. 버렸구나.
오늘 아침에도 느꼈던 이질적이면서 친근한, 오묘한 그 느낌. 그 감정은 곧 빠르게 나에게 동화되어 얼굴 한 편을 타고 흘러내린다.
제멋대로 뒤섞인 감정에 떠밀려 결국 벼랑 끝에 선 나. 항상 철저하고 완벽하게 나를 포장하지만, 정재현에게는 모두 탄로나고 만다. 그래서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으나 또다시 센 척 해 보여야만 했다.
채 마르지도 않은 눈물을 닦으며 애써 고개를 쳐든다. 이제 갔겠지. 그런데 왜 아직도 내 앞엔.
-............
정재현이 있는 걸까.
마치 내가 한 말을 한 마디도 듣지 않았다는 듯이 정재현이 수그려 있는 내 고개를 들게 했다. 이윽고 내밀어진 커다랗고 하얀 손. 그러면 나는 다시 말없는 오묘한 감정에 휘말려 솟구친다.
너는 왜 다른 거니.
왜, 하필, 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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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름.
-.......
-기회 줄 때 일어나.
-하나, 둘, 셋.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정재현. 너는 나에게 그럴 자격이 없어.
너는 날 좋아하는 감정으로 봤을지 몰라도 난 아니었다. 내가 정재현이 죽고 못 사는 그 여자애에게 죽도록 맞았을 때 넌 그 여자애와 천년만년 가기라도 할 것 같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했다. 나를 향한 무차별적인 욕설과 상처를 주는 말들을 내뱉었던 틴트가 새빨갛게 발라진 그 입술을, 넌 야살스럽게 머금었단 말이다.
분명 난 너에게 SOS를 쳤었다. 그런데, 넌 아니었잖아. 넌 이런 나를 분명히 무시했었다. 온몸에 상처를 뒤집어쓴 채 애원하는 나를 아무런 감정도 없이 내려보던, 소름이 끼치도록 무심했던 그 두 눈을. 나는 그 눈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네가 고작 한 끼 먹고 사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 내가 너에게 피해를 준 적도, 이익을 준 적도 없는데도 넌 그랬다. 적어도 넌 죄없는 나에게 차가웠고, 무색했고, 나에게 한없이 냉담하고 무감정했던 사람이었다. 정재현과의 연관성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부정적이고도 음침한 단어들만을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
소년은 이 천박한 도시의 골목대장이었다. 대장, 그리고 우두머리. 사창가에서 평생을 바닥을 기며 살다가 죽은 엄마가 극도록 혐오하는 것들이었다. 폭력으로 더러워진 교복. 소녀의 온몸의 상처.
...아니다. 그게 아냐. 나를 해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정재현은 적어도 나에게.
-일어나.
-......
-라면 사줄까.
정재현은 교복 와이셔츠를 걷어붙였다. 그리고 걷어붙인 그 두 팔로 나를 안아들었다. 넥타이에 목이 조여 숨을 잘 쉬지 못하는 나를, 정재현이 입으로 개 목줄같이 우악스럽게 꽉 묶인 내 넥타이를 끌어내렸다.
고개를 들지 않고 그대로 내 눈앞으로 직행한 정재현의 두 눈.
그리고 그 입술.
나를 끝없이 찌르고 베었던 그 악랄한 입이, 나를 향해 다시 열린다.
-내가 너한테 무엇이 될 수 있냐고 했지.
-나는 너를 구원해줄 수 있어.
구원.
내가 그에게 죽도록 바라던, 그것.
정재현을 설명하라고 한다면, 나는 블랙홀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게 누구가 됐든,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빨려 들어가고 싶어지니까.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몸이 사정없이 갈기갈기 찢어발겨질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가고 싶은, 하고 싶은 사람의 심리. 나는 지금 이 문 앞에서 방황하고 있다.
투박한 손은 나를, 자꾸만 나락으로 이끈다. 그러나.
그 투박한 손이 너의 손이라서, 정재현의 손이라서.
-정재현.
-응.
-난 왜 지금 알았을까.
네가 나의 우주를 잠식했다는 것을. 그래서 너의 우주에 덮인 나의 우주가, 결국은 너에게 질식당했다는 것을.
-..........
-...........
-괜찮아. 별로 안 늦었어.
나는 잡는다. 피투성이의 그 손을.
나의 유니버스를.
The u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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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에서 글잡으로 꺼지라고 해주신 심들 계십니까(낰낰)
그거 사실 저에여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