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하는 전정국 X 피아노 치는 너탄
ⓒ 보라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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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일상은 패턴처럼 반복되었고, 그 일상 안에서 나는 매일같이 무용과 2층 연습실 안에서 기계적으로 춤을 추었다. 10시간. 그 긴 시간동안 나는 거울 앞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손짓과 몸짓 하나 하나에 내 온 신경들을 집중시키며,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몇번이고 내 몸을 맡겼다. 이 좁은 연습실 안에 일년 365일을 함께하는 무용팀 선배님들과 후배들. 가족 같기는 한데… 매일 보는 얼굴도 지겹고, 매일 먹는 짜장면도 지겹고, 매일 반복되는 춤과 노래에 내 몸도 정신도 지친다, 지쳐…….
" 오늘 연습은 이것으로 마친다. "
" 수고하셨습니다!! "
" 대회가 바로 코 앞인거는 다들 알고있겠고, 앞으로 더 빡세게 연습할거야. 다들 편하게 쉬고. 이상. "
" 조심히 들어가십쇼! "
아……. 빡세게 연습한다라…. 얼마나 더 빡세게 연습해야 저 지랄맞은 선배의 바램대로 최고의 무용과가 되는건지…. 자기만 연습하면 이 대학 최고의 무용과는 물론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최고의 무용팀이 만들어질텐데. 꼴에 과대표라고 폼은 폼대로 잡으면서 클럽에서 여자나 끼고 노는거 애들이 모를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뻐근한 어깨와 목을 두어번 돌리고 나서 연습실 문 밖을 나서려고 하는데, 내 눈앞에 보이는 저 지랄맞은 과대표가 손가락을 까닥까닥이면서 지 쪽으로 오란다.
" 그래, 정국이. 춤 연습은 잘 돼가고 있고? "
" 네. "
" 이 선배가 정국이를 많이 아껴요~ 그건 알고 있지? "
" 그럼요. 모를리가요 "
니가 아끼는 인간이 한 둘이나 되면 말을 안한다 내가. 과에서 조금이라도 춤 좀 춘다 싶은 애들 있으면 바로 빌붙어서 빌빌거리는 놈. 애들 말로는 라인 하나 잘 타서 이름있는 댄스팀에 들어가서 대박이나 나는게 이 인간 소원이라던데……. 미안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줄은 썩은 동아줄뿐. 내가 건네주는 썩은 동아줄 잡고 하늘로 올라오다가 끊어져 바닥에나 떨어져라. 그게 너를 향한 인간적인 내 소원.
" 그래서 말인데……. 아니 내가 이번에 우리팀 대회 나갈 때 독무를 하나 맡게 돼버렸잖아~ 근데… 내가 연습할 시간이 별로 없거든? "
" 아…. "
" 그래서 우리 과에서 춤을 제~일 잘 추는 우리 정국이가 나 대신 독무를 맡아줬으면 하는데…. 어때, 할 수 있겠지? 보니까 시간은 널널~ 한거 같던데……. 응? "
" 노력해보겠습니다. "
" 아니, 노력만 하지말고! 아, 그리고 독무 추는 사람 이름은 나로 하고, 춤만 너가 춰주면 돼. 알았지? "
"……? 예? "
" 아무도 모를거야~ 너만 믿는다, 전정국? 너가 내 기세를 좀 드높혀봐라~ 이거지~ 나중에 술 한잔, 콜? 그럼 내일 보자~ "
자기 할말만 다 하고 뒤를 돌더니 유유히 걸어가는 저 개자식……. 과대표만 아니였어도 달려가서 뒤통수를 갈겨주는 건데……. 이럴때 생각나는건 매일 술. 술 뿐이다. 김태형은 또 클럽에서 죽이나 치고 앉아있으려나. 발걸음을 옮겨 건물을 나가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또 익숙한 멜로디가 내 귀를 감싸안았다. 저번과 비슷한 상황인거 같은데……. 이번에는 목적지도 알고, 이 피아노소리의 주인도 알고. 남자가 마음을 먹었으면 실행에 옮겨야지…. 한걸음, 두걸음 또 그때와 같이 그녀가 있을 피아노 연습실로 내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발걸음이 다다른곳에는 그녀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고, 저번과는 사뭇 다른 진지함에 연습실을 들어가진 못하고 또 연습실 문에 기대 그녀가 피아노를 치는는 모습을 구경했다. 잔잔한 멜로디로 시작하다, 경쾌해졌다가, 다시 잔잔해지고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곡으로 바뀌는데, 마치 피아노를 어린 아이 다루듯 조심스럽게 연주를 하는 그녀의 매력적인 모습에 다시한번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난 한참을 그렇게 그녀의 뒤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한참동안이나 자신만의 곡을 연주했다. 가만히 서서 곡에 집중을 하다가도, 클래식과 나는 영 거리가 먼 것인지, 금방 나의 시선은 피아노가 아닌 이름이에게로 옮겨갔고, 나는 이름이의 뒷모습을 하나하나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얗고 가는 목선을 따라 질끈 묶은 긴 머리, 짙은 남색 원피스. 그리고 양 옆에는 갸날픈 팔과 긴 손가락. 한참을 이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이름이는 짐짓 연주를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발견하고는 나를 향해 환하게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 왔으면 들어오지. 왜 저번부터 문 앞에 서 있어…. "
" 그냥, 예뻐서……. "
" …어? "
" 아니, 내 말은…음악이! 음악이 예쁘다고! "
" 아아…. 깜짝이야…. "
내가 자신을 꼬시는 건줄 알았던 건지, 이름이는 내 말실수에 깜짝 놀라며 예쁜 눈을 동그랗게 떠 보였다. 사실, 말실수는 아니지만 그렇게 이름이의 앞에서 내 뱉으려고 한 말은 아니였는데 ……. 전에부터 이름이의 앞에만 서면 자꾸 말도 더듬고, 하고싶지 않은 행동만 하고, 괜히 부끄러워지면서 양 귀가 새빨게진다. 화끈거려.
" 푸흐흐, 농담이야! 어랏, 너 귀 빨개졌어! "
" 아, 보지마. "
" 우와, 진짜 부끄러워지면 귀가 빨개지네? 만져봐도 돼? "
" ㅇ,안돼! 만지면 안……진짜 가시나가…. "
" ……어…. "
" 그니까 내가… 만지지 말라고……. "
호기심에 내 빨개진 귀를 만져본다던 이름이의 손을 낚아챈다는 것이 그만.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져 버린 우리 둘은 내가 이름이의 위에 올라가 있고, 이름이는 내게 양 손목을 잡힌채 내 밑에서 눈을 꼭 감고 얼굴이 홍당무처럼 발그레해져 있었다. 만약에 신이 존재하신다면 지금 이 시간을 멈춰주소서…. 이렇게 매력적인 그녀를 제가 감히 탐내봐도 되겠습니까…. 졸지에 내 밑에 깔려버리게 된 이름이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부딪혔고, 괜히 부끄러워 시선을 피해버리는 이름이의 이마에 감히 일을 저질러 버리고 말았다.
" 쪽 -. "
아까보다 놀란 그녀의 눈은 더 커져버리고……. 그녀와 나의 시선이 맞물리자, 나는 씨익하고 미소를 한번 지어준 다음 그녀의 말캉한 입술에 가볍에 입을 맞추었다. 꿀꺽-. 긴장감에 침을 삼키는 소리. 그녀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건 이제 신경은 안쓴다. 사나이가 한번 마음 먹은 것은 하는게 내 신념.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생각나는 건 술이 아닌, 성이름 너, 너의 입술, 그리고 두근대는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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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화부터 예상치도 못한 독자님들의 사랑스러운 댓글들에 감동을 먹었어요! T^T.. 많이 부족했을 첫글이였을텐데 모두모두 예쁜 말들만 적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사실 이번 주말에 꼭! 정국이와의 두번째만남을 주선하려고 했으나, 제 글을 다듬고 또 다듬다 보니 월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2화를 올려버렸네요. 에고, 죄송해요!
제 글이 그렇게 긴 편에 속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여러모로 정국이의 박력! 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제 뜻대로 아기고래들의 맘을 설레게 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
부족한 보라고래에게 어여쁜 관심과 사랑 다시한번 감사드리고 (아기고래=♡), 댓글 적고 포인트 다시 가져가세요! 그럼, 다음화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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