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사는 고양이가 사람 같은데요. 04
21.
녀석의 목소리가 항상 들리는 것은 아니였다. 가끔, 들린다는 것을 잊을 즈음 툭툭 들리곤 했다. 소소하게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내가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 등의 말이였고 그 중에 제일 신경쓰이던 말은 고양이는 어디에 있는걸까, 동생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나는 지금 쯤 죽었을까 아니면 병원에 입원했을까 하는 것들이였다. 내가 녀석이 사람이라고 혹은 사람이 들어와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던 것에 확신을 주는 말들이였는데 그렇다고 녀석을 앞에 두고 너는 사람이냐? 왜 거기 들어가있냐? 하고 물을 수가 없었다. 그 말들 뒤에는 항상 ‘윤기가 알아채지 않았으면 좋겠다.’가 붙어서 녀석은 숨기는게 참 익숙한 사람이겠구나, 하고 쉽게 말을 열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탄아.”
“먀.”
“오늘은 주인이라고 해봐.”
“으야아.”
그래서 괜히 안하던 헛소리를 너한테 하는 것일지도 몰라.
22.
시간이 지났다. 네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변하기 시작했던 날이 벌써 멀어져 잡기 힘들 정도로. 나는 여전히 네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렸고 넌 어떤 사람일까 의문을 가졌다. 그러다 정국이에게 연락이 왔다. ‘형, 형이 지민이 형보다 작다며 귀여워하던 형 있잖아요.’ 하고 인사도 없이 물어왔고 평소같으면 왜? 하고 물었겠지만 목소리가 평소보다 무거웠기 때문에 ‘어, 내가 걔 꼬맹이라고 불렀잖아.’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럼 꼬맹이형 누나 사고당해서 쓰러진건 알고 계세요?’ 라고 생각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걸 내가 알 리가 있냐?’
‘형이 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내가 왜.’
‘음, 그게 사고 현장에서 꼬맹이 형 누나가 손에 쥐고있던게요.’
‘어.’
‘탄이가 평소에 하고 다니던 목걸이 같은데요.’
‘뭐?’
‘안 쪽에 지민이 형 글씨체로 민슈가천재짱짱맨이라고 작게 적혀있...’
‘아니 걔는 그걸 언제 써놨어?’
‘몰라요. 그 형 원래 그러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음, 형 만나서 이야기 할래요?’
‘우리 집 앞 카페로 와. 지금.’
‘알았어요. 허니브레드 사줘요.’
‘아야하고싶냐?’
‘남준이 형이 그거 아야 수준이 아니라던데.’
‘잔말말고 나와.’
23.
급하게 나갈 준비를 하고 현관에 섰다. 창가에 앉아 느리게 꼬리를 흔들며 다녀오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을 보고 다녀올게, 작게 인사하곤 집을 빠져나왔다.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은 두근거리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였다. 무거워지고 내가 들어도 괜찮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형, 여기예요.”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곤 재빨리 걸어 의자에 앉았다. ‘꼬맹이는?’, ‘병간호 때문에 못 왔어요. 형 나는 에이드.’ 자연스럽게 음료를 주문하는 것에 발로 정강이를 차버릴까 했지만 참았다. 어찌됐든 내가 꼭 들어야할 이야기를 해주러 온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비오는 날에 운전자가 신호위반을 했어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미쳤네.”
“그런데 갑자기 차 앞에 검은 고양이가 있더래요.”
“어.”
“브레이크를 밟긴 했는데 친 것 같아서 허둥지둥 내렸는데, 여자가 치여있더래.”
“블랙박스는? CCTV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라 CCTV도 없었고... 블랙박스에는 여자가 찍혀있었는데 중간에 갑자기 검은게 렌즈를 다 가린 장면은 있었다고 하던데요.”
“꼬맹이 누나 분은 괜찮으시냐.”
“코마 상태래요.”
“탄이 목걸이인걸 어떻게 알았지, 걔는.”
“이상한거 사려는거 꼬맹이 형이 말리고 말려서 산게 이거잖아요.”
“아, 맞아.”
테이블 위에 올려진 빨간 색의 목걸이는 가죽이여서 얼룩이라던가 그런 것은 없었지만 조금 까져있었고 버클 부분도 깨져있었다. 그래서 풀린건가. 찾았을 때 왜 목걸이가 없는 걸 몰랐지?
“형은 몰랐어요? 탄이가 목걸이 안한거?”
“박지민도 몰랐어.”
“그 형은 모를 수 있지.”
전정국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복잡했다. 여러 가지로
24.
봄과 여름 사이의 시간에서 갈팡질팡하는 구름은 뜬금없이 비를 내리곤 했다. 특히 윤기가 작업에 들어가기 전 미리 장을 보려고 하는 날일 때는 꼭 비가 심할 정도로 내렸다. 그는 비오는 날 혼자 나가는 것을 싫어했는데 서툰 일기장에서는 ‘비오는 날에는 더 외롭다고 했다. 주인은 가끔 보면 바보같다.’ 라고 적혀있었다. 그렇게 안보이는 윤기도 외로움은 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대충 옷을 입은 그는 현관에서 나를 기다렸다. 산책냥이였던 고양이는 해가 뜨는 날도 비가 오는 날도 같이 나갔기 때문에 나도 일기에서 본 것처럼 쪼르르 따라가 몸줄을 채워주길 기다렸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몸줄이 채워지자 윤기는 나를 품에 안았다.
일기에는 분명 ‘강아지들처럼 산책을 나간다.’ 라고 써져있었는데? 아기처럼 품에 안긴 상태로 윤기를 올려봤다. 한 손으론 나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론 우산을 잡는 것이 불편할텐데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집을 나간다. 하나 다른 것이 평소처럼 무표정이긴 했으나 미묘하게 얼굴에는 불안함이 섞여있는 듯 했다.
“먀.”
“참아.”
그리고 내가 사고당했던 사거리를 지날 즈음, 무의식으로 울음소리를 내자 윤기는 손으로 내 얼굴을 가리곤 미안하다는 말투로 중얼거린다. 무언가 알고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너는.
25.
윤기는 작업에 들어가면 그것에만 몰두했다. 처음에는 서툰 일기장에 써있는 것처럼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봤는데 성격에 맞지 않아 금방 포기하고 방해되지않게 침대 위에 자리를 잡곤 잠을 청했다. 자주 일어나 그가 잘 하는지, 밥은 제대로 챙겨먹는지 감시도 했는데 요즘은 윤기가 나를 감시하는 듯 했다. 시선이 느껴져 눈을 뜨고 바라보면 곡 작업하다가도 나를 빤히 보는 모습이라던가 화장실을 가기위해 그리고 물을 먹고 자리에 돌아오기 전에 침대 앞에 쪼그려 앉아 아무 말도 하지않고 관찰하듯 나를 바라봤다.
그 때부터 내가 작업하는데 신경쓰여 그러나 싶어 자리를 쇼파로 옮겨봤지만 자고 일어나면 항상 침대였기 때문에 그건 아닌 것 같아 답답함만 늘어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눈을 뜨니 윤기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어서 작업하러 가라는 뜻으로 너의 볼 위에 발을 툭, 올렸다.
“너 방해 아니야.”
“...”
“숨기는 것은 좋은데.”
“...”
“그게 더 신경쓰인다. 나는.”
유독 다른 사람보다 하얗다고 생각한 손이 내 손을 잡았다. 윤기야 나는 내 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너에게 무슨 말을 해.
그는 말 없이 내 머리를 쓰담으며 작은 목소리로 그냥 너의 이야기를 듣고싶다는 소리였어. 라고 속삭였다. 내 손을 잡았던 손이 멀어진다. 윤기는 다시 자리에 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그런 윤기를 한 없이 바라보다 겨우 잠에 들었다.
그 날은 창 밖에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꿈을 꿨다. 원래 내 모습으로.
있잖아. |
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뿌연 유리창에 이름을 쓰고 파도가 푸른 날이면 하얀 백사장에 이름을 쓰고 홀로 깊은 밤이면 빈 가슴에 이름을 쓴다. 세상에 많고 많은 이름 중에 오직 하나 밖의 이름 /눈물 나게 널 사랑해, 이채 |
더보기 |
사랑합니다.
슈가소리, 복쭈앙, 요랑이, 챠이잉, 피망피망파프리카, 이브, 삐삐까, 돼냥이, 종이심장 달보드레, 밍슈, 오월, 자몽, 내윤기, 단아한사과, 꿀돼★, 초코에 빠진 커피, 망개똥, 토이, 덮빱 전벅지, 설날, 제티♥, 뉸뉴냔냐냔☆, 뀩, 방소, 뷔밀병기, 매직핸드, 윈다, 토깽이, 빨주노초파남보라 침쁘, 인연, 태태야여기봐꾸꾸, 유루, 햄찌, 초코에몽, 또비또비, MM, 달달한비, 명탐정 코코, 황민현, 너구리, Remiel, 야꾸, 시나몬, 열려라 참깨라면, 연서, 청보리청, 콘칩, 뜌, 윤기야옹, 자몽주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