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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금 은성이는 소파 등받이에 턱을 괸 채 자신을 보며 배시시 웃어 보이는 택운에 홀린 듯 정신이 혼미해.
영혼이라도 가출한 듯 멍- 하니 입을 벌리고 택운을 쳐다보는 은성과
그걸 마주 보며 좀처럼 보기 힘든 눈웃음을 뽐내는 택운에 학연은 속으로 단 웃음을 삼켜.
못된 건지 착한 건지 도무지 모르겠는 우리의 잘생쁨의 대명사 큐피드는 이 상황의 반전이 문득 즐거워.
학연은 몰래 나쁜 웃음을 삼키며 모르는 척을 하고, 그제야 정신이 든 은성이는 고개를 좌우로 휘저으며 눈을 빠르게 깜빡여.
아- 정말 견디기 힘든 남자라고 은성이는 생각해. 택운은, 그의 웃음은 참 견디기가 힘들다고.
결혼식장에서 그랬듯, 호텔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랬듯, 그리고 지금도, 너무너무 견디기 힘들다고.
이렇게 가슴을 때리는 웃음을 어떻게 그녀가 견딜 수 있을까?
한참을 빙긋빙긋 웃음만 날리던 택운이 발개진 볼로 일어나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움직여.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이내 휘청- 하고 몸이 기울어져.
그걸 본 은성이는 놀라서는 어버버버- 짧은 소리를 내며 택운에게 달려가.
"어어어어--! 넘어져요. 넘어져"
"우...으..."
"택운씨 괜찮아요?"
"으응"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소파 아래로 떨어질 뻔한 택운의 어깨를 꼭 잡으며 은성이 물어.
택운은 축- 늘어진 몸으로 간신히 바르게 앉아서 고개를 푹- 숙여.
얼마나 마셨는지 알싸한 알코올 향이 몸에 배어서는 곁에 있는 사람도 취할 것만 같아.
은성이 고개를 숙인 택운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택운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얼굴을 보여줄 생각을 하지 않아.
"학연씨- 도대체 얼마나 마셨길래 사람이 이래요-"
"그... 그러니까 아주 많이?"
"나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문득 울상이 된 은성이 이야기해. "택운씨 취한 거 처음 봐요"
"내가 미안해요. 진짜 진짜" 학연이 중얼거리며 말을 얼버무려.
"야..ㅎ...."
도리도리 고갯짓을 하고 있던 택운이 움직임을 뚝- 멈추고는 낮게 중얼거려.
은성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의 말을 들으려 귀를 기울여.
"응? 택운씨 뭐라고요?"
"흐아..... 하지..말...라고"
"뭘... 뭘 하지 말까요?"
택운은 얼굴을 찌푸리며 제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고,
은성이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물어.
문득 바 테이블에 올려진 택운의 전화기 진동소리가 들려.
은성이는 고개를 들고 택운의 핸드폰을 찾으려 두리번 거리고,
학연은 그녀가 일어나기 전에 얼른 달려가 택운의 핸드폰은 손에 쥐고는 액정을 쳐다봐.
'문현아' 그 이름이 선명하게 빛나는 것을 학연은 바라보다가 아무도 모르게 전원 버튼을 꾹- 눌러버려.
은성이는 그런 학연의 움직임을 보지 못 했는지 "전화 왔어요?"하며 그에게 물어.
"아니 아니 안 왔어요. 꺼지는 소리에요. 배터리 나갔나 봐"
거짓말하는 학연의 목소리에 약간의 당황스러움이 묻어 나와.
은성이 차마 그것에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귓가를 때리는 택운의 목소리가 그녀의 주의를 돌려.
그 모습을 보며 학연은 안심이라는 듯 낮은 숨을 몰래 뱉어내며 가슴을 쓸어내려.
"하지 말라니까-ㅅ"
"그러니까 뭘... 으앗!"
은성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택운이 큰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움켜줘.
은성이는 놀라서 말을 잃고는 눈만 끔뻑거리고, 택운은 감았던 눈을 스르륵- 뜨며 그녀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가져다 대.
꾹- 제 볼살을 누르는 택운의 손에, 그리고 지긋이 눈을 바라보며 이마를 맞대는 그의 행동에 은성이는 얼이 빠진 채로 숨을 참아.
택운은 미쳐 날뛰는 그녀의 심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봐.
그의 이마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그녀의 피부에 닿고 야릇한 눈매가 날카롭게 그녀를 파고들어.
제 아랫입술을 한 번 꼭- 깨문 택운이 이내 천천히, 아주 느릿느릿하게 그녀에게 속삭여.
"쟤랑 얘기하지 마-"
"으...에...네?"
"차-학--여언이랑 얘기하지 말라구우-"
그렇게 말하며 택운은 그녀의 얼굴을 놓아줘.
그러고는 긴 팔을 뻗어 은성이의 목을 감더니 제 얼굴을 그녀의 어깨와 목 사이에 푹- 파묻어.
"차학연이랑 얘기하지 말고- 이홍빈이랑도 얘기하지 마-"
"......??" 은성이는 그가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팔을 벌린 채로 제 품 속으로 파고드는 커다란 그를 어색하게 맞이해.
"그리고 그 뭐야아- 카톡- 카톡 보내는 놈..."
"카톡??"
"그래 카톡-"
소파 쪽으로 그녀를 끌어당기는 택운에 은성이의 몸이 기울어져.
최대의 압출률을 자랑하며 은성이의 몸을 감싸 안는 택운에 그녀는 숨이 막혀.
꽉- 잡고는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 택운을 눈을 꼭- 감아.
뭐가 그리 억울한 지 한껏 찌푸린 미간을 펴질 생각도 하지 않아.
다만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녀의 쇄골에 제 볼을 부빌 뿐이야.
"카톡 보내는 놈... 이...이..."
"이재환??"
"씨-"
"윽! 택운씨 숨 막혀요-"
"....걔랑도 놀지 마"
"그게 무슨 어린애 같은 말이에요-? 나 진짜 갑갑해, 이제 그만 놔줘요"
"......"
"택운씨?"
"싫어"
"참 학연씨도 있는데 그만해요. 평소답지 않게 정말..."
"그치만-"
"그치만...?"
"네가 나랑은 안 놀아 주잖아"
"....네?"
"...나랑만 놀아 이제-"
"아 저기 잠깐만요...."
"딴 놈들이랑 놀지 말고, 응?"
"잠깐만요 택운씨 나 너무 숨 막혀"
"흐....어"
마지막 탄식이 그녀의 그녀의 귓속을 야릇하게 파고들어.
짧은 숨을 뱉어낸 택운의 몸이 기우뚱 한 쪽으로 기울어.
은성이는 그에게 꼭- 묶인 채로 옆으로 풀썩- 쓰러져.
마침내 그녀가 낑낑대며 그의 팔을 억지로 풀더니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넘기며 푸- 한숨을 내뱉어.
택운은 벌러덩 천장을 보고 누워서는 잠에 빠져버렸는지 살짝 벌린 입술 사이로 연신 들숨 날숨을 교환하고 있어.
은성이는 어느새 잘 익은 사과처럼 달아올라서는 그런 그를 쳐다보다가 문득 풋- 소리 나게 웃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기나 하고 얘기하는 건지 은성이는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어.
그러다가도 술을 쏟아부은 후에야 이렇게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달콤한 말들을 내뱉는 그가 괜히 괘씸해서 볼 이라도 쭉- 잡아당기고 싶어져.
평소에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통통 차오르는 괘씸함과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는 택운의 진심에 그녀는 속이 배배 꼬일 것만 같아.
'취중진담이라 했었나? 아니, 취중진담이 어디 있어, 술 먹고 하는 말들은 다- 믿을 거 하나 없는 주사일 뿐인걸'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슬슬 말려올라가는 입꼬리를 은성이는 참을 수 없어.
'아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구나 당신은-'하는 생각이 물처럼 차오르자 은성이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어.
차갑고, 유치하고, 나쁜 이 사람에게 홀려도 단단히 홀렸구나 하고.
은성이는 택운을 추궁하고 싶은 짓궂음을 억지로 밀어 넣고는 내심 기분 좋아진 얼굴로 벌떡 일어나서 학연을 불러.
학연은 여전히 택운의 전화기를 손에 쥔 채로 얼른 은성을 돌아봐.
"학연씨! 술 너무 많이 마시게 하면 어떡해요!! 좀 말리지-"
"아- 나는 그냥 진실게임 한 번 하고 싶었던 건데... 절대! 결단코! 제수씨 곤란하게 할 생각을 없었어요"
"진실게임요?"
"네..? 네??" 궁금하다는 듯 물어오는 은성에 학연은 조금 당황한 얼굴이 되어서는 말을 더듬어.
"진.실.게.임. 방금 학연씨가 말했잖아요" 은성이는 봐줄 생각 없다는 듯 또박또박 학연에게 물어.
"어 그 그게" 학연은 그녀의 물음에 두뇌를 풀가동시켜서는 반짝! 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입에 올려. "그 우리 둘이 술 마시면 하는 게임!"
"둘이서 진실게임을 한다고요? 학연씨랑 택운씨랑?" 은성이 수상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떠.
"그렇다니까요! 옛날부터! 우린 평생지기니까 비밀은 없다!"
"...흠...." 그녀가 천천히 눈을 돌려 소파에 뻗어 푸- 푸- 숨을 내뱉는 택운을 바라보다 빙긋- 미소를 지어. "그래서 알아낸 진실이 뭐예요?"
"진실?"
"네, 이렇게 많이 마셨을 정도면 엄청난 걸 알아낸 것 같은데..." 은성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학연을 바라봐.
미소 지으며 궁금하다는 듯 물어오는 은성이의 두 눈동자를 학연은 가만히 마주해.
어떻게 그리 까만지 밤바다의 끝자락 같은 그녀의 눈동자에 학연은 조용히 숨을 삼켜.
참- 바보 같은 제 친구의 무늬만 와이프가 생각보다 매력적이라는 걸 학연은 알 수 있어.
봐봐, 창피한 듯 달아오른 얼굴과 상반되는 저 견고한 눈동자.
이상하다는 말이 딱 잘 어울리는 차은성이의 담담함과 수줍음의 공존.
속물은 싫고, 순수는 의외의 즐거움을 주는 요소라 생각하는 학연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야.
그리고 생각보다 할 말 다 하는 당당한 여자라는 것도!
"뭐 엄청난 걸 알아내긴 했죠"
"그게 뭐예요?" 반짝반짝 진짜 궁금하다는 눈으로 은성이 학연에게 물어.
"그건" 문득 뜸 들이는 듯 학연이 말꼬리를 늘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뱉어. "은성씨도 이미 알 텐데?"
"제가 안다고요?"
"네!"
"자... 잘 모르겠는데"
"왜 몰라요! 여태 정택운이 제 입으로 제수씨 귓가에 속삭여줬고만"
"같이... 놀자고...?"
그녀의 심사숙고한 한 마디에 학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은성이는 그게 진실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듯한 얼굴로 눈을 끔뻑이다가,
문득 무언가 깨달았는지 불 붙인 선처럼 화르륵- 달아올라.
그 모습이 너무 적나라해서 학연은 웃음을 참지 못해.
"딴 놈들하고 놀지 말고 자기랑만 놀자면 말 다 했지 뭐!"
*
택시를 불러 차에 탄 은성이에게 학연은 택운의 핸드폰을 건네.
택운은 여전히 축- 늘어진 채로 택시 구석에 몸을 한껏 웅크리고는 끙- 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어.
은성이는 택운을 부축하는 게 힘들었는지 기진맥진이 되어서는 깊은 숨을 내쉬며 차에 올라타.
학연이 건네는 택운의 핸드폰을 받아들다 은성이는 문득 발갛게 생채기가 난 학연의 손을 바라봐.
"학연씨 여기 손 왜 그래요?"
"아- 이거요?" 학연이 인상을 팍- 구기며 이야기해. "물렸어요"
"물려요? 뭐한테 물려요?" 은성이 놀라 그에게 물어.
"은성씨 남편이요" 제 손등을 만지작거리며 학연이 픽- 웃어.
"...농담하지 마세요-"
"진짠데..." 은성이에게 손을 쭉- 내밀며 학연이 말해. "봐봐요! 완전 이빨 자국이잖아"
"....지..진짜네??"
"거봐요 내가 저거 미친놈이라고 했죠? 은성씨도 조심해요 가다가 물릴라"
학연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은성을 보며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이야기해.
은성이는 조금 울상이 되어서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택운과 학연을 번갈아 바라봐.
학연이 이내 부드럽게 차 문을 닫고 배웅하듯 손을 흔들어.
은성이는 그런 그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 숙이고 이내 택시가 서서히 출발해.
가로등 불빛이 노랗게 빛나는 밤이야.
괜히 얼굴이 달아올라 발갛게 보이는 건 취중 주사로 치부해야 할지
아니면 취중진담으로 치부해야 할지 모르겠는 택운의 말 때문이기도 하고,
처음 보는 풀어져 무방비한 그의 모습이 신기했기 때문이기도 해.
은성이는 고개를 돌려 가만히 택운을 바라봐.
술기운에 빨갛게 익어버린 얼굴이 마냥 귀엽게만 느껴지는 건 병일 거라 생각하면서도
불편하게 딱딱한 차 문에 기댄 택운이 안쓰러워 그녀는 부드럽게 손을 뻗어.
끙- 소리를 내며 은성이는 그를 끌어당겨 제 어깨에 기대게 하고,
택운은 자신보다 한참 작은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는 새액새액- 가는 숨을 내쉬어.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쇄골을 간지럽혀.
".....으으...."
얼마나 달렸을까 웅얼웅얼 그의 목소리가 문득 그녀의 귓가에 들려.
택운은 은성이의 어깨에 기댄 채로 눈을 가늘게 뜨더니 천천히 깜빡여.
그러고는 "으어-" 탄식을 뱉으며 마른 세수를 해.
"택운씨 불편해요...?"
"머리 아파...."
"많이 아파?"
"...으응..."
"조금 있으면 집에 도착해요. 불편해도 잠시만 이러고 있어요. 방에 잘 들어보내 줄게 나한테 더 기대고 있어도 돼요"
꽤나 매너 있는 남자친구 같은 은성이의 한 마디에 택운이 풋- 하고 웃어.
그러고는 슬쩍 제 고개를 그녀 쪽으로 돌려.
그의 곧은 콧대가 가볍게 은성이의 목 언저리를 스치고 지나가.
간지러움에 은성이 콧등을 찡그려.
"바-보 같은 소리" 여전히 취한 듯한 택운이 잔뜩 뭉개진 발음으로 중얼거려.
"내가 바보 같다고요?"
은성이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물어.
진짜 취해도 징하게 취했다고 은성이는 생각해.
"으으응"
"내가 왜 바보예요? 취해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택운씨가 바보지"
"한 마디도 안 지기는..."
택운의 불평 어린 중얼거림에 은성이는 가벼운 미소를 지어.
택운은 자동차 에어컨 바람이 조금 추웠는지 "츄워.." 한 마디 뱉어내더니 몸을 잔뜩 웅크리고,
은성이는 그런 그를 신기하게 바라보다 집에 다 도착했나 창밖을 확인해.
"...있잖아...너어"
그리고 문득 다시 들려오는 그의 가는 목소리.
새벽을 타고 넘어오는 취기 가득 어린 미성의 간지러움.
"...안 물리게 조심해-"
그의 낮은 웃음소리.
*
습격 같았어요, 맨 처음 그대를 보았을 때
[조정인 / 불꽃에 관한 한 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