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부 주장 박지민 B
w. 멜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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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부는 말 그대로 남자 밭이었다. 여자 축구부도 있었지만, 학생이 너무 없어 폐지했다고 한다. 나 혼자 여자라서, 이게 공평한 경기인지도 모르겠고 상식적으로 내가 여기 낄 수준도 아니었다. 남자들은 홍일점이 생겼다며, 땀 냄새를 정화 시켜줄 여자가 생겼다며 좋아했지만 내가 페브리즈니.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실력도 형편 없어서 창피했지만 축구부 남자 애들은 다 학교에서 아이돌 수준으로 인기가 많은 애들이었기에 여자 애들의 시선이 껄끄러울 정도로 따가워졌다. 내가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온 건 아니었지만 난 이 남정네들이랑 접촉도 없는데 괜히 욕 먹는 게 억울했다. 한 학기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임했지만 서러운 건 서러운 거였다. 학교가 끝나고 훈련은 2시간. 나는 할 일도 없어서 공 몇 번 차다가 그늘에 앉아있었다. 난 왜 이렇게 운동 신경이 안 좋을까, 생각하면서.
“포카리 마실래? 짱 차갑다!”
“어…, 고마워.”
“홍일점 된 소감은?”
“음… 딱히 기쁘진 않네.”
친화력 갑인 박지민이 살얼음 낀 포카리 스웨트를 하나 따서 건넸다. 주니까 마셔야지, 하고 냉큼 받아마시는데 박지민이 홍일점 된 소감이 어떻냐고 물었다. 딱히 기쁘진 않다며 꼬아 말하자 특유의 웃음을 흘렸다. 친하지도 않은데 대화하는 게 어색해서 빨리 가서 축구나 하라고 하자 칫, 너나 해라. 하면서 뛰어가는데 저런 게 뭐가 좋다고 여자 애들이 난린지 영 모르겠다. 축구는 확실히 잘하던데, 하긴 축구로 유명하니까. 축구는 제일 못하는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이렇게 쉬고 있나 싶어서 다시 운동장으로 갔지만, 누군가가 찬 공을 머리에 정확히 얻어맞고 그냥 잠자코 있기로 했다.
맞을 땐 쪽팔려서 못 느꼈는데, 집에 와서 보니 거대한 혹이 생겼더라. 또 서러워졌지만 울지는 않았다. 뭔가… 울면 더 슬퍼지는 것 같아서.
*
어제 한참을 속상해하다가 잠들었는데, 묘하게 이상한 꿈을 꿨다. 분명 꿈에서 내가 본 건 박지민이었는데 내가 왜 박지민을 꿈에서까지 만나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 의미 부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딱히 좋은 스토리는 아니었는지 기억도 안 났고 무엇보다 앞으로 일주일은 축구부로부터 해방이니까 행복한 나날을 만끽해야만 했다.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어서 혼자 매점에 갔는데, 축구부 무리들이 온 건지 매점이 가득 차 터지기 5초 전이었다. 여자 애들 꺅꺅대는 소리부터 번호 좀 달라는 소리까지 다양했는데, 난 일단 배고팠기 때문에 굳이 끼어들어가서 초코우유와 바나나킥을 들고 계산대에 줄을 섰다. 살 것도 없으면서 쟤네 보려고 온 건가. 배고파서 얼른 계산하고 가고 싶은데, 이미 꽤나 기다린지라 지금 나가기는 아깝고 앞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냥 이따 점심이나 먹어야겠다, 하고 도로 줄을 빠져나가는데 내 귀로 낯선 이름이 들렸다.
“어, 김탄소 아니야?”
“……!”
“안녕! 여기서 보니까 새롭다.”
“어…, 안녕. 어어… 좀 나갈게요, 잠시만요….”
“야! 너도 나 보러 왔던 거 아니었어? 뭐야….”
아니야, 아니야! 못 들은 척 그냥 가려고 했지만 친화력 갑 박지민은 굳이 나를 쫓아와서 인사를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안녕! 여기서 보니까 새롭다,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주위 여자 애들의 시선이 모두 나한테 날카롭게 꽂혀있는데 혹시 그거 아니. 난 네가 지금 너무 싫어. 얼떨떨하게 웃으며 박지민에게 소심한 인사를 한 후에서야 미안한데 좀 나갈게요- 하고 줄을 뚫었다. 박지민은 야! 너도 나 보러 왔던 거 아니었어? 하면서 외쳤지만 진짜 아니거든. 겨우겨우 밖에 나와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남들의 시선이 너무 싫어서, 특히 그렇게 차가운 시선은 너무 아파서. 어릴 때부터 이런 성격 때문에 친구 하나 없었던 난데 고등학교 생활은 이제 박지민 덕분에 끝난 것 같다. 여자 애들 쑥덕거리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결국 어제부터 텅 비어있던 속으로 꾸르륵 소리를 막아가며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잠깐 엎드려 졸 참이었는데 옆 반 여자 애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 앞에 섰다. 혹시 막 다구리라던가 뭐, 그런 거 당하는 거야 이제? 겁이 났지만 고개를 들었다.
“네가 김탄소야?”
“어… 맞아.”
“지민이랑 친해보이길래. 우리한테는 말 절대 안 거는데 너한테는 걸길래 신기해서, 뭐 악의 갖고 온 건 아니구.”
“아… 같은 동아리라서 그런 거 아닐까…? 친한 사이는 아니야….”
“같은 동아리? 너 축구부라고?”
다행히 짧은 치마와 짙은 화장과는 다르게 악의를 가지고 나한테 온 건 아니라고 했다. 묘하게 날 선 시선을 여전히 느꼈지만, 드라마 같은 일은 안 일어나는구나 싶어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박지민이랑 내가 친해보였다니. 그 쪽이 일방적으로 인사를 걸어온 거지, 내가 같이 해맑게 안녀엉~ 한 건 아니었잖아.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버릇 없이 까분다며 한 소리를 들을 것 같아 꾹 삼켰다. 같은 동아리라서 그런 거 아닐까? 친한 사이는 아니야, 하고 둘러대니 눈이 동그래지며 축구부냐고 묻는다. 신청서를 늦게 내서 억지로 끌려간 거라는 말은 안 해도 되는 거겠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니 대박사건이라며 표정을 바꿨다. 한 5년 즈음 된 친구가 지어줄 법한 표정으로 그래? 그럼 이따 또 보자, 하고 사라졌다. 뭘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랬는데, 점심 시간에 드디어 무너질 것 같은 배를 잡고 급식실로 내려가려고 할 때 아까 그 무리가 다시 와서 나에게 과자를 비롯해 이것저것 먹거리가 가득한 거대한 봉지를 쥐어주었다. 영문을 몰라 멍하니 있었더니, 탄소야, 우리 이제 친하게 지내는 거다. 축구부원이라니, 진짜 존경스럽다- 라며 처음 보는 사이에 어깨를 토닥이며 힘내고, 급식 먹을 때 우리 자리로 와. 알았지? 하며 다시 사라졌다. 폭풍이 쓸고 간 것처럼 순식간에 4명이 내게 다가오려고 한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박지민 때문에 나한테 온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친구가 생길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싶어 설레는 것 같기도 했다. 급식은 안에 든 바나나킥으로 대신했다. 아직은 혼자가 편해서.
*
“또 혼자네, 김탄소는.”
“아, 깜짝이야….”
“왜 놀라. 나 이상한 사람 아닌데.”
“…….”
“근데 어디 가? 너 저기 살잖아.”
이상한 사람 아닌 건 알아, 쓸데없이 친한 척하니까 어색해서 그렇지. 혼자만의 시간은 방해 됐지만 어쩌다보니 또 하교 길을 함께 하게 됐다. 누군가 보기라도 하면 좀 심각해지겠지. 얼른 집 가서 공부해야 하는데, 누군가가 볼까 두려워 또 내가 먼저 피하기로 했다. 내가 다른 길로 빠지려고 하자 어디 가? 너 저기 살잖아, 하며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묻는 박지민을 서둘러 피해야 할 것 같아 그냥, 집 안 가. 하고 얼버무렸다. 진짜 학교 앞에서 이렇게 같이 있으면 죄책감 마저 느껴진단 말이야. 자기 인기 모르는 것도 아니고 왜 나 같은 애한테 자꾸 붙는 건지.
“너 왜 나 피해.”
“……?”
“아까 매점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들킬까봐 무섭다는 말을 어떻게 해, 우리가 사귀는 것도 아니고. 둘러댈 이유가 없어서 손톱을 잘근잘근 씹자 박지민이 내 손을 입에서 뺐다. 손톱 물지 마, 아파. 라고 말하면서. 순식간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어릴 때부터 지켜온 습관인데, 불안하거나 초조할 때 자꾸만 손톱을 물고는 했다. 깨물어 뜯는 게 아니라 아프지는 않은데. 할 말이 없어서 자꾸만 시선을 피하자 박지민이 특유의 웃음 소리를 흘렸다. 푸후훗, 하는 새침한 소리. 이러다가 들키면 나만 곤란해지는데- 할 말이 없으니 그냥 가버려야겠다. 말 없이 가는 내가 어이가 없었는지 박지민이 야 너 어디 가냐, 하며 나를 졸졸 쫓았다. 아니 왜 따라와?
“왜 따라와…?”
“나도 내 갈 길 가는 거라니까. 내가 스토커냐.”
“너네 집 저기잖아.”
“말 잘하네.”
“……?”
이제 우물쭈물 하지 말고 그렇게 예쁘게 말해, 알았지. 하고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가는 박지민에게 아주 조금은, 설렜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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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은 이야기라 훅훅 진행될 거예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엮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툭툭 일이 많이 터진 것 같아요 TㅅT
저는 꽤나 오래 쓴 글인데 막상 읽어보면 분량이 적어서 고민이에요 더 늘려야 하는데 8ㅅ8 너무 훅 끝나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네요...!
앗 참 이건 축알못이 쓰는 글입니다 용어 같은 걸 쓸 일도 없는 흔한 로맨스 글이지만 오류나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은 알려주세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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