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思春期)
: 봄을 생각하는 시기
나에게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함께해온 친동생 같은 남자아이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한 우리는 언제나 붙어있고 언제나 함께였다. 아직까지 그 수식은 변하지 않는다.
1.
8살의 전정국와 14살의 나.
친구들과 간만에 늦게까지 놀다 들어가는 날이었다. 그래봤자 중학교 1학년이라는 타이틀 앞에서는 늦어도 9시까지는 들어갔어야 했다. 시간을 보니 아슬아슬해 급하게 뛰어가고 있을 쯤 웬 어두컴컴한 건물에서 사람의 형태를 발견했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무서워서 쳐다보지 않고 지나갔을 나였지만 왠지 전혀 겁이 나지 않고 호기심이 넘쳐나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막상 건물에 들어오자마자 겁이 나 나가려는 찰나 작은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져 갈 쯤 사람의 형태를 알 수 있었다. 아주 작은 남자아이가 계단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행이 귀신이 아니라는 생각에 남자아이 앞에 쭈그려 앉았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
“..."
“누나 나쁜 사람 아니야! 무슨 일인지 알려주면 안 될까?”
내 말에 남자아이는 큰 눈을 몇 번 깜빡이다 입을 열었다.
“학원 끝나서 집 가야하는데 열쇠를 놓고 왔어요.”
꽤나 또박또박 말하는 남자아이가 대견스러워 남자아이를 보고 웃었다.
“집이 어디야?”
“저기에 있는 아파트...”
작은 손가락으로 가리킨 아파트는 정말 우연인지 내가 아는 아파트와 동일했다. 괜히 반가운 마음에 남자아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누나도 저기에 사는데! 누나 집에서 기다렸다가 갈래?”
“모르는 사람 따라가는 거 아니랬어요.”
너무나도 당연한 말에 나는 잠깐 벙찐 표정을 짓다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아이의 입장에서는 내가 납치범으로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잠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저기 놀이터에서 앉아 있으면 엄마 오는데...”
말끝을 흐리며 남자아이가 내 눈치를 보며 말한다. 말의 의도를 대충 알 것 같아 쭈그려 앉았던 몸을 일으킨다.
“아! 나는 놀이터에서 조금 놀다 들어가야겠다.”
놀이터라는 내 말이 들려오자 남자아이는 놀란 듯 몇 번 눈을 깜빡였다. 그런 모습이 귀여워 몰래 웃고 남자아이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다시 말을 했다.
“근데 혼자여서 놀아줄 사람이 없네. 같이 놀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내 말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남자아이가 보여 웃음이 났다. 건물 밖을 나서려는 듯 몸을 돌리자 아주 작은 힘으로 내 옷을 잡는 느낌이 들어 돌아봤다. 역시나 남자아이가 내 옷을 잡은 채 올려다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내가 놀아줄까?”
“진짜?”
“응!”
“그래! 가자!”
아이에게 손을 내밀자 아이가 방긋 웃으면서 내 손을 잡는다. 작은 손이 따뜻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름이 뭐야?
전정국이요.
정국이? 이름도 예쁘다. 몇 살이야?
8살...
누나는 14살인데! 이름은 김여주야.
여주누나...
응! 그렇게 부르면 돼.
2.
내가 막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정국이랑은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보는 사이가 되었고 누나, 누나 부르며 잘 따르게 되었다. 가끔 친구들이랑 재밌게 노는지 온 몸이 시커멓게 변해서 인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친동생을 보는 기분이라 즐겁게 정국이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에게 봄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1학년. 남자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그런 나이. 주변 친구들의 부추김에 남자를 소개받을 수 있었고 흔히 말하는 썸남을 만들 수 있었다.
“윤기야!”
“어, 왔어?”
썸남인 윤기와 만나기로 한 날. 윤기가 집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윤기를 보자마자 뛰어나갔다. 나를 보면서 웃는 저 얼굴에 안 빠질 사람이 있을까? 달려가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해버렸다.
“천천히 와도 되는데.”
윤기의 앞에 가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윤기가 웃으면서 말해줬다. 너를 더 빨리 보고 싶어서 뛰어온 거라고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어색하게 웃었다.
“갈까?”
어느 정도 숨을 고르자 윤기가 가자며 먼저 걷기 시작했다. 금세 윤기 옆으로 가서 나란히 걸었다. 그래, 이런 게 바로 썸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간질간질 그런 분,
“누나!”
위기? 갑작스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정국이가 손을 흔들면서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윤기도 멈춘 나 때문에 같이 고개를 돌려 정국이를 봤다.
“아는 애야?”
“응. 친한 동생이야.”
정국이 웃으면서 달려오다 갑자기 천천히 걸으면서 내가 아닌 윤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국이의 행동이 이상해 정국이를 불렀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누나 보여서...”
말끝을 흐리면서도 정국이의 시선은 내가 아닌 윤기에게 향해있었다. 윤기가 기다리는 게 조금은 미안해져 정국이의 말에 급하게 대답을 했다.
“아, 그랬어? 근데 누나가 지금 약속이 있는데 어떡하지?”
“... 이 형아랑?”
“응. 나중에 누나랑 정국이한테 갈게. 알았지?”
정국이는 대답을 하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뒤돌아서 뛰어갔다. 처음 보는 반응에 조금 당황하려는 찰나 옆에 윤기가 나를 불러준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귀엽게 생겼네.”
“응? 아, 그렇지? 귀여운 이웃 동생이야.”
내 말에 윤기는 아~ 감탄사를 내뱉다가 웃었다. 윤기가 왜 웃는지 모르지만 따라 웃었더니 윤기가 나를 향해 묻는다.
“내가 왜 웃는지 알아?”
“어? 글쎄?”
“라이벌이네, 라이벌이야.”
윤기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응? 되물어봤지만 돌아오는 건 웃음뿐이었다.
그렇게 윤기와의 하루를 다 보내고 집에 가면서 윤기와 있었던 일을 되짚으며 행복해하고 있을 쯤 윤기의 생각에서 나를 꺼낸 건 또 정국이었다.
“누나.”
놀이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놀이터에서 정국이가 오는 모습이 보였다.
“안 들어가고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시간 늦었는데.”
“누나는? 그 형아랑 다 놀았어?”
“어? 응. 이제 집 들어가야지.”
내 대답에 정국은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 정국이에게 시선을 맞추며 몸을 조금 숙이니 정국이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왜? 누나 얼굴에 뭐 묻었어?”
내 물음에 정국이는 고개를 젓다 푹 숙인다. 그러더니 정국이의 몸이 떨리는 게 보였다. 설마 우는 건가 싶어서 정국이의 양 볼을 잡고 고개를 올리니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있는 게 보인다.
“정국아, 왜 울어!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내 물음에도 정국이는 아무런 대답 없이 눈물만 방울방울 맺힌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놀란 나는 정국이를 안으며 토닥였다.
“정국이가 무슨 일 있나? 왜 울지. 누나 마음 아프게.”
내 품에서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는 게 느껴져 정국이를 좀 더 토닥였다. 그러자 어느정도 진정이 되는 것 같아서 정국이를 떼어내 눈을 맞추며 물었다. 그 짧은 사이에 눈물을 쏟은 것인지 눈가도 코도 빨갛게 변해 있었다. 우는 애 앞에서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그것마저도 귀엽다고 생각했다.
“누나. 그 형아랑 결혼해?”
“형? 누구?”
“아까, 만난 그 형아.”
히끅대면서 정국이의 질문은 이어져갔다. 어렵지 않게 정국이가 말하는 형이 윤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귀여운 질문에 웃음이 터졌다.
“누나가 그 형이랑 결혼할 것 같아?”
정국이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정국이가 귀여워 볼을 살살 꼬집었다.
“아직 그 형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고 결혼도 안 할 걸?”
내 대답에 정국이는 훌쩍거리다 눈물을 닦고 나를 쳐다본다.
“진짜? 그 형아랑 결혼 안 해?”
“응! 안 해.”
“그럼 나랑 해.”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과 결혼을 하자는 정국이가 귀여워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이랑 결혼 해야겠네.”
내 대답에 정국이는 금세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주망이입니다!
귀여운 정국이가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결국 적었네요.
오탈자 지적은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