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 마흔살 아저씨 짝사랑하기
w.1억
"2차 같이 가자. 같이 가요~!"
애들이 아저씨에게 같이 가자고 했고, 아저씨는 대답을 하지 않고서 다른 곳을 보았다.
아저씨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는데 하나 아는 건 있다.
대답할 가치가 없으면 시선을 주지 않는다.
"일하고 와서 피곤하기도 하고.. 내일 아침 일찍 일 있거든.. 그래서 못 가..!"
"……."
"그만 가볼게..! 얘들아 나중에 보자."
차에 타서 안전벨트를 매면서까지 표정관리를 했다. 애들이 멀어져 안 보이길래 그제서야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힐끔 아저씨를 보면, 아저씨는 여전히 내게 시선조차 안 준다. 잠시 신호가 걸리고, 이제 말을 할 타이밍인 것 같아서 입을 천천히 열었다.
"안 오시는 줄 알았는데.."
"……."
"되게 좋은 차인가봐요. 애들이 차 보고 엄청 놀라던데. 애들 표정 봤어요?"
"……."
"그리고 돈은 왜 내셨어요..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치.. 대답도 안 해. 어차피 잘해줄 거였으면서.. 도와줄 거였으면서 좋게 좀 대해주면 안 되나.
"얼마 나왔어요..? 보내드릴게요. 오늘 감사한 것까지 해서.."
여전히 내 말에 대답이 없다. 무슨 화가 나기라도한 사람 처럼 운전에만 집중을 하는 아저씨에 풀이 죽어서 나도 창밖을 보았다.
이렇게 기분 좋은 날에.. 이왕 잘해줄 거 더 잘해주면 안 되는 건가.. 언제 본 사람이라고 이렇게까지 서운해하나.
가게 앞에 주차를 해놓고 이렇게 우린 끝인가보다. 그래도 잠깐 연인인 척도 했는데.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걸 상상했던 내가 등신인가보다..
불꺼진 가게에 볼 일이라도 있는지 가게로 가려고 하는 아저씨를 불렀다. 이렇게 끝이면 안 되지.
"아저씨."
"……."
"돈 보내드릴 테니까.. 번호 좀 알려주세요."
"필요없으니까. 낮에 밥 먹으러 와."
"…낮에요? 왜 낮이에요..?"
"내가 없으니까."
"그럼 올 필요가 없잖아요. 전 아저씨한테 밥 사주고싶은데요."
"귀찮으니까. 나 없을 때 와서 먹고 가라고."
"오늘은 시간 없어요?"
"……."
"밥 사줄게요. 너무 고마우니까.."
"먹었어."
"……."
"밥."
"…아. 그럼 내일은요? 일요일인데.."
"가라."
진짜 세상 쿨하네. 나도 사람인지라 상처는 받았다만 이상하게 아저씨한테는 원래 내가 하던 행동들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정말 이상하게 뻔뻔해지고 솔직해졌다.
"밥 먹으러 올게요."
역시나 기대도 안 했지만 내 말을 듣는 척도 안 하고 그냥 가버리는 아저씨에 잠시 웃으며 택시 정류장으로 향하는 나다.
그래. 내가 귀찮겠지. 갑자기 남자친구인 척을 해달라고 하지를않나.. 불쌍한 척을 다 하지를않나.. 그럴 수 있어.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를 도와줬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질 뿐이다. 내가 정말로 싫다면 들어주지도 않았을 거잖아. 그럼 희망이 있는 거 아닌가?
어떻게 마흔살이 저렇게 까리해? 아저씨랑 만난다는 썰만 봐도 욕부터 하던 내가 아저씨한테 반해서 이러고있냐. 진짜 참.. 어이가 없어서.
"……."
일이 빨리 끝나서 잠깐 수영이가 일하는 곳에 왔다. 사촌 언니랑 편하게 카페 차려서 일하는 수영이가 처음엔 부러웠는데.
눈치주는 사촌 언니를 옆에서 보고있자니 조금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도 내 팔자랑 다른게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잠시 언니한테 허락 받고선 나랑 같이 앉아서 커피 한잔 하는데.
"근데 너 어제 생일파티에 남자친구 데려갔다며. 애들 완전 난리던데? 궁금해 죽겠는데 어제는 왜 연락 안 받았어!?"
"어제 피곤해서 좀 잤어..! 아, 어제.."
"술값도 내주고, 차도 좋은 차 끌고왔다면서. 뭐야? 너 남자친구 생겼어?"
"…아냐. 그런 거."
"그럼??"
"그냥.. 남자친구인 척.. 해준 사람이야. 그때 황인엽도 있고 그래서.. 있는 척 좀 해보고싶었어."
"에? 남자친구인 척...? 누군데?"
"나도 잘 몰라. 안 지 얼마 안 된 사람인데. 그냥.. 어쩌다가 그렇게 됐어."
"…황인엽 땅 치고 울려고 만들기에 딱 좋긴했다. 얼마나 배 아팠을까? 나같았으면 어깨가 막 하늘에 닿았을 듯."
"응. 나 어제 어깨 하늘까지 닿았다까."
"대박.. 완전 인소같아 뭐야앙~"
내 팔까지 팍팍 쳐가면서 좋아하는 널 보니 나도 웃음이 나왔다. 근데 내가 그 아저씨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때도 지금과 반응이 똑같을까.
"근데 13살 차이 나는 사람 만나는 건 별로나?"
"13살..? 13살이면 마흔인데??"
"좀 그런가..?"
"나라면 안 만나래. 너무 아저씨잖아. 또래를 만나야지.. 늙은 사람 만나서 좋을 거 하나도 없다?"
예상은 했다. 그래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역시.. 그냥 말 안 하는게 나을 듯...ㅎ..
"왜? 너 아저씨 좋아하냐 설마?"
"아니. 그런 거 아니고 그냥."
"근데.. 공유.. 정도라면 괜찮을 듯? 잘생겼지~ 돈도 많지~ 미래가 딱! 보이잖아."
그래.. 뭔가 그럴 것 같았어. 근데 그게 연예인이니까 가능한 거 아니겠냐.. 친구야..
허허허허 하고 수영이랑 같이 어색하게 웃다가 결국 사촌 언니한테 혼나고 일을 하러 가는 수영이를 보며 웃었다.
수영이도 원래 연애 없으면 못살았는데. 요즘엔 귀찮은지 연애를 안 하네..
근데 생각해보면 다 맞는 소리기는 해. 누가 스물일곱살이 마흔살을 좋아해.
완전 아저씨지.. 13살 차이면.. 내 친구가 그런다고하면 욕했을 거야. 근데 내가 여태까지 본 마흔살 중에(팀장님이라던가..) 저렇게 잘생기고 분위기 깡패인 사람은 또 처음보니까.
뭐랄까 마흔살 같지가 않다고나 할까..?
9시 반에 음식점에 도착했다. 일부러 늦게 온 건 아니었다. 갑자기 고민이 있다는 친구 만나서 얘기 들어주다보니까.. 시간이 이렇게 됐다.
생각해보니까 파스타 맛집이고만?~ 흐음.. 자리에 앉아서 가게를 제대로 둘러보았다. 그때는 제대로 못봤으니까.
"저기 혹시.."
선결제를 하고선 직원에게 주문을 하기는 했는데. 직원이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뒤늦게 엇.. 하고 나를 보고 입을 벌리고 있길래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사장님이 직접 요리하시는 거예요..?"
"…아, 넵^^."
"아..네에..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직접 해주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니.
민폐인 거 안다. 파스타를 먹는 동안에 아저씨 모습을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 천천히 먹다보니 다들 마감 준비를 하는 것 같고..
원래 늦게 먹다보니까 나도 불안해서 막 급하게 먹으려고하는데.
아저씨가 주방에서 나오고, 직원들 두명은 퇴근을 하는 듯 가게에서 나간다.
"낮에 오라니까."
"일 때문에 낮에는 못 와요."
"넌 주말이 없냐."
"주말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
"빨리 먹을게요. 금방 먹어요. 양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한입에 왕창 넣어 양볼에 가득 채웠다. 분명 얼굴 보러 온 거 맞는데. 정말 이렇게 양이 많을 줄 몰랐지.. 후딱 먹고 나가려고 했는데.
너무 급하게 먹었나 사레 걸려서 기침을 하며 물을 마셨더니, 아저씨가 말 없이 나를 보다가 드디어 입을 연다.
"왜 찾아오는 거야. 이제 내가 해줄 건 없지않나."
"…그냥 궁금해서 왔어요."
"뭐가 궁금한데."
"아저씨가 뭐하는지."
"그게 왜 궁금해. 잘 살고 있던 사람 귀찮게했고, 그거 해결해줬으니 이제 볼 일 없고. 이제 네 인생 살아."
"아저씨는 저한테 아무런 감정 안 들어요?"
"안 들어."
"왜요?"
"왜 들어야 되는데."
"…저 위해서 돈도 썼고, 시간도 썼잖아요. 왜 그랬는데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어서 그런 거 아니였어요?"
"넌 내가 너 도와줄 때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길 바래서 부탁한 거냐."
"……."
"불쌍해서 그랬다."
"……."
"한심해서."
"……."
"남들 시선에 목 매는 사람들 보면 불쌍해 그냥. 어떻게 살아왔길래 남이 자기 조금만 이상하게 봐도 자존심 상해서 발악을 하는지. 내가 안 도와주면 나 죽도록 미워하고 몇년을 아니 죽기 전까지 씹어먹을까봐.
씹어먹으면서 또 지금처럼 자존심 상해할까봐. 그거 좀 덜어주려고."
"……."
"넌 이게 마음이 있어서 하는 짓 같냐. 내 생각엔 그냥 동정 그런 거 같은데."
"…아저씨도 그러네요."
"……."
"나이 좀 있고, 세상 더 살아본 사람은 그래도 나를 다르게 봐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저는 별 거 아닌 진상일 뿐인가봐요. 다들 그래요."
"……."
"내 뒷통수 쳤던 애가 다시 와서 미안하다고 봐달라고하면 그 사람이랑 좋았던 순간들이 떠올라서 또 한 번 잘지낼 수 있겠지 싶어서 잘 지내요. 근데 사람들은 내가 한심하고 답답하대. 언제 또 뒷통수 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나도 내가 답답하고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저씨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말이 없어보여서. 다 그냥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 그럴 것 같아서. 그래서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인가보네요. 그냥 다 내가 문제였던 거지."
도망치듯이 나와버렸다. 나는 늘 그런다. 내 단점을 알아버린 사람에게서는 늘 도망이 가고싶다.
근데 무슨깡인지 다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서 울면서 아저씨에게 말했다.
"그래도. 자존심 상해서 구질구질한 모습 보인 사람한테 한심하다 뭐다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
"내가 한심하고싶어서 한심해요? 난 그래도 남들이 다 한심하다고 했을 때.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서 살려고 다짐했어요. 근데 아저씨가 다 망쳤어요. 아저씨 때문에 자존감만 더 낮아졌다고요."
"……."
"저 처음보는 사람한테 한심하다는 소리 들을 만큼 그렇게 만만한 사람 아니거든요. 아무리 내가 아저씨 존재만으로 잠시 위로를 받았다고 해도.. 그래도 난 아저씨한테 그런 대접 받을 필요 없어요."
집까지 걸어서 1시간인데 1시간을 걸어가면서 미친년처럼 울었다.
최대한 다른 사람처럼 멋있어보이려고 뻔뻔해졌었는데. 연기는 진짜 힘들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이상하게 보았다. 무슨 차인 사람처럼 우는데 이상하게 안 쳐다보는 게 더 이상하지.
"지갑 두고왔어 진짜 짜증나."
주말까지 버텼다가 낮에 받아 올 생각이었다. 근데 하루 없다고 이렇게 불편할 수가.. 카드가 없으니 뭘 할 수가 없다.
결국엔 친구에게 돈을 빌리고 평일에 지내다가 주말이 되어서 낮시간이 되자마자 가게로 향했다.
계산대로 향해서 직원이랑 눈이 마주치자 너무 뻘쭘해서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월요일에 지갑을 두고 갔는데요. 검은색 지갑인데.."
"아, 김서림 씨 맞으시죠?"
"네."
"여기요^^."
"감사합니다."
"저기 잠시만요."
"네?"
잠깐만 기다리라더니 어딘가로 사라지는 직원에 나는 바보처럼 우두커니 서서 직원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내가 뭘 두고갔나.. 없는데.
곧 주방에서 아저씨가 나왔고,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때도 도망갔는데. 지금도 도망가면 더 쪽팔리잖아.
왜 나한테 화라도 났나. 왜 직원이 저 아저씨를 불러오지.
"…나와."
"…네?"
"밥 먹게."
저거.. 나한테 하는 말 맞지? 너무 당황스러워서 나가는 아저씨를 하염없이 보기만하면, 이미 밖에 나간 아저씨가 날 보더니 턱짓으로 나오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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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옹 내일 봐!요우!헤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