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동거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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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따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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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보다 어느새 꽤나 길어진 해가 점차 검은 물결에 떠내려 사라질 그 때
창문을 훤히 열어 놨지만 초여름 날의 꿉꿉한 습기가 빠지지 않는 반지하집에서의 첫 날
내 고막을 때려버린 다섯 글자는,
여느 초등학교에 있는 동상마냥 떡하니 굳게 만들었다.
"야, 같이 살자"
*
카드는 주겠지만 성이름이는 못 믿는다는, 아니 안 믿는다는 권순영의 고집에 결국 '니 알아서해!!!!!'라는 호통만 지른 채 권순영에게 오늘의 저녁 장보기를 맡겼다.
권순영이 나가니 한결 넓어진 내 보금자리에 드디어 완전히 나 혼자만이 이 집에 남았다.
앞으로 혼자 밥이나 제대로 챙겨먹고 다닐려나 걱정도 잠시 했지만
오늘 새벽부터 짐을 나르고 힘들었던 내 자신에게 수고 했다며, 권순영이 누워있던 자리에 내 몸을 뉘였다.
아 가만 보자 저번 달 알바비 월급이 얼마 남았더라.
옷장은 안 가져왔으니까 행거가 필요하고 또 음, 아 자취생한테 침대는 사치인가?
아니야 그래도 침대는 있어야 돼 침대 아니라도 매트리스는 사야겠다.
근데 나 이지훈한테 돈도 갚아야하네 어휴 시발 세상아! 아. 아니구나 이석민이 내 돈 빌려갔었지 그래
술 먹는데 돈안가지고온 이석민이 멍청해 그럼 이지훈한테 빌린 돈은 그걸로 퉁치고..음
따위의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다, 한숨이 푹 나왔다.
주말알바로는 생활비하기 벅차겠지? 평일알바도 구해야하나..
자취는 안 된다고, 내 말은 들은 체도 안하던 아빠와
옆에서 절레절레 고개만 젓고 있던 최승철탓에 나는,
'생활비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보증금이랑 허락만 해줘 제발'이라는 커다란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래 보증금은 내주셨지만 월세,수도세,전기세,가스비,식비 이런건 대체 어떻게 충당하라는 거야 정말
대학교 다니면서 저 돈들 다 내는 건 너무 서럽잖아...
그나마, 오늘 짐을 싸고 집을 나서던 나를 불러 세워 쿨하게 '매달 이십만원 용돈' 이라며 속삭인
최승철 덕분에 덜 서럽네. 아 최승철아니라 오빠님, 오빠님으로 너무 오빠님의 멋짐이 표현되지 않으니까
갓승철오빠님이라고 저장해야겠네. (이름 뒤에 (물주)는 빔1)
그러면 월세 15만원은 오빠가 준 돈에서 해결하고...하아.....
아 괜히 나왔어!!!!!!!!! 악!!!!!!!!!!!!!!!
하루 종일 뽈뽈대며 집에서부터 이 곳 까지 권순영과 투닥투닥 싸우면서 온 탓에, 안 그래도 힘든데 누구때문에 4배는 더 몸이 축축 처져왔다. 아무리 그래도 운전면허 따고 첫 운전을 어떻게 오늘 할 생각을 한거지, 뭐 고등학교 3학년 생일이 지나자마자 운전면허 따겠다고 학원을 다니던 권순영덕분에 오늘 짐도 나를 수 있었으니까 다행인건가? 라는 물음에 나는 금새 고개를 절레 저으며 '아냐 걔 때문에 내가 오늘 얼마나 심장을 붙잡으면서 차를 탔는데, 아까 우회전 한 번 못해서 당황한 나머지 갑자기 브레이크 잡았을 때 진짜 어휴' 속으로 한숨만 곱씹었다.
그래도 권순영네 아버지차라서 나름 조심히 운전한다고 운전 한거겠지. 다시는 권순영이 운전하는 차는 안타겠다고 다짐한 나는, 오늘의 피로를 내 집 방바닥에 맡긴 채 창 밖으로 간간히 들려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자장가로 삼으며 스르륵 두 눈을 감았다.
*
킁킁-
잠을 청한지 꽤 시간이 흘렀을까. 퀘퀘한 공기와 무엇인가 격렬하게 타는 듯한, 건강에 해로울 것만 같은 냄새에 감았던 두 눈을 서서히 올리려던 순간이었다.
쨍그랑-
"..오 .. 미친"
내 귀를 찢어지도록 울리는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2초간의 정적후 낮은 목소리로 울리던 욕을 듣는 그 순간 나는 자다 깨서 한껏 잠겨진 목소리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권순영 개새끼 .."
정신이 없어 내가 한 말을 못들은 것일까? 눈알을 도르륵 굴려 권순영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온갖 박스들과 옷가지 등을 담아놓은 봉투들 사이로 자욱한 검은 연기와 함께,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권순영이 보였다. 무언가를 깼지만 수습은 해야겠고 당황은되고, 그와중에 저렇게 연기가 나면 가스불이라도 꺼야지 가스레인지 위의 불분명한 물체는 머리위로 연기만 연신 내뿜으며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이러다간 하루 만에 집 다 타겠네.'
일어나서 가스 불을 끄고 권순영에게 호되게 매질을 해주려고 일어서는데, 부스럭- 응?
왜 일어나려는데 부스럭 소리가 나는 거지, 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누가 봐도 권순영이 덮어놓은, 아니 덮어놓았다고 볼 수도 없다 이건. 내 위에 얹어놓은 신문지 몇 장이 보였다. 지금 이걸 이불이라고 깔아준거야? 입꼬리가 씰룩대며 웃음이 나오려던것을 겨우 참고, 안 깨운걸 다행으로 생각해야하나, 아니지 날 깨웠으면 저 상황은 안 일어 났을거야라고 생각을 하고선, 신문지를 대충 옆에 개어놓고 거실 겸 부엌에서 혼자 서있는 권순영을 향해 다가갔다.
"야."
"오우야...."
안절부절 당황한 탓에 내가 오는 소리도 못들은 것인지 권순영의 허리께를 검지손가락으로 콩 찍으며 부르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고무장갑을 낀 손에는 내 카카오프렌즈 귀염둥이 무지가 프린팅 되어있는 컵이 손잡이만 달린 채 권순영에게 잡혀있었다.
"야 설명해봐, 이유가 타당하면 봐주는데, 아니면 너 저기 타고 있는 물체옆에 너도 올려줄테니까"
말을 마치고 급하게 가스 불을 끄니, 연기가 순간 확 퍼져 올랐다가 휘익 휘익- 손짓 몇번에 희미하게나마 검정덩어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응 그래 역시 고기였어..
내 표정을 슬그머니 훔쳐보다 나와 눈이 딱 마주치자마자 그냥 멋쩍은 웃음을 짓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니 나는 그냥 설거지하다가~ 격하게 막 하다가 이 컵이 밥그릇이랑 부딪혀버렸네?"
(빡침)
"근데 밥그릇보다 이 컵이 약했나봐 컵이 깨져버렸네??!"
"미친 자식... 그냥 상이나 펴"
애써 화가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권순영에게 상이나 차리라고 말한 뒤 프라이팬에 담겨있던 얼마전까지만해도 삼겹살2줄이었을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달궈진 프라이팬을 흐르는 물에 갖다 대는데, 취이이이익 하며 기름들이 사방팔방 튀었다. "앗 따가" 따갑단 소리를 들은 것인지 기본 옵션으로 딸려온 냉장고 앞에서 넣어둔 술을 꺼내며 "바보냐 당연히 튀지 조심좀해" 라며 권순영이 쓸데없는 참견을 했다. 뉘예뉘예 알게쯥니다~~~~ 제가 바보라서요~~~~~
*
내가 덮고 있었던 신문지 몇장을 바닥에 깔아두고, 다시 구운 삼겹살들과 쌈장, 마트에서 급하게 공수해온 김치
그리고 소주와 사이다를 그 위에 곱게 올려놓았다. 그리곤 띠 띠 띠 전자레인지에서 나는 3초를 알리는 소리에 권순영이 급하게 일어나 햇반 두개를 꺼내왔다. 아뜨아뜨하면서.
" 야 권순영 많이 먹어 다음엔 내가 진짜 밥사드림 인정?"
생각해보니 고기도 권순영돈으로 샀지, 일은 더 벌렸지만 그래도 날 도와준 권순영에 나답지 않게 살가운 말을 뱉었다.
그러자 입에 한가득 고기를 꾸역꾸역 넣던 권순영은 노노 밥은 무슨ㅎ 돼쎃돼쎃ㅎ! 라며 왠지 모르겠지만 웃음기
가득한 말투로 내 호의를 거절했다. 니가 거절했다 흥
"자~~ 오늘 성이름이사축하기념으로 짠 한번 가야지"
갑자기 고기를 씹다 말고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소주를 집어들곤 권순영이 말했다.
한손으로 소주병의 목 부분을 잡고 현란하게 아홉시 세시 아홉시를 그리고선 "회오리 회오리!" 라며 보여주곤, 한심하게 쳐다보는 나를 향해 헤헤 웃으면서 병의 뒷부분을 딱딱 팔꿈치로 쳐냈다.
"야 멍들어 그거 하지 마"
신나서 술 까다가 저 짓때문에 자고 일어나서 팔꿈치를 확인하면 멍이든 게 한두번이 아니었지.
"원래 소오주는 이렇게 따는 거야 이름아"
그러곤 자기 종이소주잔에 꼬로록 소주를 따라내었다. 그런 모습에 나도 달라며 소주 컵을 들이밀었지만 어이없다며 바람빠진 웃음을 짓는 권순영에게 삐진척을하며 옆에 있던 사이다를 그냥 컵에 콸콸 따라 부었다.
"너가 분명히 술 안먹는다했다?? 그래서 사이다 사온 거다??"
"알아"
괜히 퉁명스럽게 대답 을하고는 젓가락으로 콩콩 신문지만 찍어댔다.
"형아가 너 술 먹이면 죽는대"
최승철이? 어휴 최승철때문에 스무 살이 술도 못먹고... 아부지! 날 보고 있다면! 술잔을 내려줘!
아 취소 갓승철님한테 내가 무슨짓을 오빠 미안. 술 좀만 먹자 헤헤
"최승철이 어떻게 알아 내가 술 먹는지 안 먹는지!!!! 그니까 따아악~ 한잔만 먹자"
"술도 못 먹으면서"
"아 너도잖아! 도찐개찐! 도토리 키 재기!!"
권순영이랑 술을 먹었을 때 말이지. 스무 살이 되고 처음 둘이서 술집을 갔는데 얼마나 긴장되던지. 카운터에서 당당히 민증을 보여주고 착석을 했는데 둘다 안주만 퍼 먹다 보다 못한 내가 술먹자고 조르고 졸라 술을 마셨더랬지. 근데 나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세잔만에 훅 가버렸고, 맞은편에서 세잔만에 꽐라가 된 나를 본 권순영은 혼자 마시다가 의자에서 잠들었다지. 근데 우리 그때 후레시 한 병만 시킨걸로 기억하는데. 한병으로 성인 남녀 두명이 다 꽐라가 되어버린 그런 기상천외한 상황에 최승철이 와서 우리 둘다 집으로 보내줬었지. 어떻게 온지는 기억도 안 나지만 헤헤.
"이 오빠가 성이름 너보단 잘먹잖냐 아무튼 안 돼."
"한 병도 못 먹으면서... 나눠 먹자고!!!!!!!"
내 소리침에 못이기겠다는듯이 한숨을 푹 쉬면서 진짜 그럼 마지막잔이다 이거. 그리고 형아한테는 절대 비밀 알지?라며 조용히 내 앞에 종이 소주잔을 내밀어주는 권순영, 나는 신나서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고 맞은편 권순영이 '퉁' 이라며 소주잔을 검지손가락으로 톡 쳐주었다.
서로의 잔을 가볍게 툭 치고는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입안에 남은 쓴 맛과 함께 목구멍이 타들어가는것만 같다.
으 오늘 술 겁나 안받는가보다. 개써! 쓴 맛을 달래려 삼겹살을 급하게 집어 입안에 욱여넣고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 모습을 본 권순영은 나을 흘끗 보더니 사이다뚜껑을 열어 사이다를 따라주었다. "맛없지? 이제 먹지마."
괜히 자존심이 붙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 완전 술 잘 받는데? 그냥 거의 꿀물수준." 이라고 되도 않는 말을 날리자 "사이다가 맛있어 술이 맛있어" 라며 권순영이 물어온다. 물음에 대답은 안하고 고기만 집어먹었다.
사이다가 더 맛있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을 안했다.
"사이다나 많이 먹으세요~"
저 새끼 일부러 비꼬면서 말하는 거야. 으 짜증나 권순영!!! 그러는 지도 한 병도 채 못마시면서
그러곤 자기 잔에 술을 더 따르는 권순영에 "야 잠깐!!" 하며 따르던 팔을 멈추게 했다.
"너 운전은 어떻게 하게?"
아니 미친놈이 술을 왜먹어 술을!!! 아버지 차 끌고 다시 우리동네 가야될거아냐!!! 버스타면 두 시간이라고 게다가 죄석버스밖에 없어서 표끊어야될텐데?
"운전안해"
무심하게 말을 내뱉곤 다시금 고기에 젓가락을 가져다 대는 권순영. 아니 그러면 걸어서 가시게요? 미친놈아?!?! 내가 한껏 의아한 표정을 짓고 권순영을 쳐다보자 고기를 입에 넣고는 날 쳐다보며 한번 피식 웃어보였다.
"너 자취하는 거 허락 왜 해주셨는지 알아?"
음.. 아빠가 자취는 절대 안 된다고 했으면서 갑자기 방알아보라고했었지. 그냥 내가 찡찡대는게 안쓰러워서 허락해준거 아니야?! 우리 아빠 짱짱맨! 아니면 음... 최승철의 입김이 들어갔다던가. 근데 쟤가 저걸 왜 물어보는 거지?
"뭐 하나밖에 없는 딸이 힘들다는데 허락해주신거겠지"
"나도 이 동네에 자취방 얻었다고 했어 형아한테"
"그래서 허락해주신거야?그럼 잘 됐네. 빨리 밥먹고 너네집으로 훠이훠이-"
귀찮다는 듯이 쳐다보지도 않고 고기만을 집으면서 나머지 왼손으로 훠이훠이 가버리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근데 왜 이사한 거 말안해줘 서운하게 개짜증나 권순영. 나랑 절교하자 그냥.
"근데 그게 뻥이야"
헤실헤실 웃으면서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권순영 덕분에 집은 고기를 툭하고 떨어트려버렸다.
나니고레? 왜 그런 거짓말을 친 건데 대체?!
"아니 미쳤어??? 그거 거짓말이라고 하면 우리 아빠나 최승철 성격에 다시 집오라고 할거 뻔한데..."
"거짓말이라고 안하면 되지. 그치 성이름?"
"그러면 어떻게 할껀데-... 나 통학하기 싫다고 멍충아..."
다시 통학을 시작할 생각에 우울해서 한껏 말꼬리를 늘리며 말을 하는데 그 다음에 권순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야, 같이 살자"
말로 표현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충공깽이었다. 충격과 공포다 그지 깽깽이들아!!!!!!!!!!!! 뭐?! 내가 뭐 하러 쟤랑 같이 살아 미쳤다고 진짜!!! 아까도 봤지 후라이팬 다 태우고 컵 다 깨뿌시고!!!! 어!!! 그리고 아무리 쟤랑 나랑 초등학생 때부터 맨날 붙어 지냈어도 같이 사는건 아니잖아 그치? 응? 역시 넌 날 실망 시키지 않는 미친놈이야!
할 말이 많은데 정리가 잘 안 돼 도와줘 SOS...
충격발언을 들은 나는 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어떤 쌍욕부터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다.
"우리 회사도 이쪽에서 가는게 훨씬 더 가깝더라구 헤헤-"
"....명치 개 쎄게 맞아볼래? 절대 안 돼 진짜. 우리집에 내가 친구들 데려왔는데 웬 시커먼 남자애가 처 자고 있다던가 하면 어?! 나 순식간에 동거녀로 만들 셈이야 응?? 안그래도 남자친구 없어서 서러운데!! 아 맞아 내가 남자친구 생기면 이건 어떻게 설명할건데 응!? 나 평생 시집 못가게 하려고 작정을 했지 아주그냥?"
"...뭐 너가 첫 번째로 말한거는 너 학교 끝나는 시간보다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는 시간이 더 늦을게 뻔하고, 두 번째는 어차피 남자친구 못 만드니까 상관없지? 끝!!"
아니, 권순영 너 인생 오늘로 끝.
"아 그리고 너가 집제공 해주니까 매 달 30만원 줄게 응? 아 성이름 10년친구 개 무시할거냐 진짜 그럼 서운하다- 어차피 방도 두ㄱ.."
"콜"
"응?"
"30만원 콜이라고."
아싸 평일알바 안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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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조절에 실패했습니다 끄앙 ㅇ<-<
평일 내내 야근에 치이다가 하루 꼬박 반납하고 글 써올려요!!! 근데 왜 때문에 똥글,,?
읽어주셔서 넘 감사함당 빨리 오지는 못하겠지만 다음번에 또 만나요!!! 사랑합니다♥
< ♥암호닉♥ >
호시부인 밍구쓰버거 우리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