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 마흔살 아저씨 짝사랑하기
w.1억
회사에 가기 전에 처음으로 아저씨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 처음..이라는 건. 연애를 시작하고 처음이라는 거.
"…출근했어요?"
- 응.
"…오늘 완전 덥대요."
- 그렇다더라.
"……."
- 잘다녀와.
"…내가 그 말 듣고싶어서 전화한 거 어떻게 알았대요.."
- 마음 불편할 거 아니야.
"……."
- 잘하려고 노력했는데도 그래도 힘들면 나한테 푸념해.
"…알겠어요."
고맙다고 하고싶은데 난 늘 표현이 서툴러서 이런 말들을 하는 게 힘들다. 근데 아저씨는 이상하게
- 고마우면 저녁에 잠깐 봐. 오늘은 갈 곳이 있어서.
"…알겠어요!"
내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다 알고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랑 대충 인사를 하고선 앉아서 생각을 했다.
미안하다면 나한테 미안하다고하지.. 왜 그랬지. 생각을 하다가도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친구가 내게 다가와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고, 나는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그래.
친구랑 같이 마주보고 앉아서 밥을 시켰는데. 너무 어색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런 얘기 다 했는데. 갑자기 어색해지다니.
내가 먼저 말을 꺼내야되나.. 고민을 하고있었을까. 친구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어제 남자친구분 가게에서 포장해서 집에서 먹었거든. 엄마가 엄청 맛있대."
"응. 들었어!.."
"…어제는 미안했어."
"……."
"솔직히 황인엽이랑 많이 얘기하다 보니까 둘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조금 들었어.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지만.."
"……."
"네가 기분 나쁠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 나도 생각이 짧았던 거지.. 너한테 미안하다고 하고싶었는데. 네가 화내는 걸 처음봐서 그런가.. 조금.. 용기가 안 나더라고.
남자친구분한테도 미안하고.. 그래서 지나가는 길에 포장도 할겸.. 들렀어."
"……."
"그것도 기분 나빴을 수도 있는데..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아냐. 기분 나쁘긴.. 고마웠어. 난 또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 싶었거든."
"……."
"남자친구가.. 좀 많이 무뚝뚝해서.. 네가 불편했으면 어쩌지 싶었기도 했어."
"응? 아니야..!"
"…응?"
"되게 좋은분 같았어. 정말."
"……?"
"어제.."
"……."
"딱 봐도 무뚝뚝하시잖아. 그래서 주고 나오려고 했거든. 생각보다 겁이 나더라고.. 후회도 했어. 그냥 너랑 대화할 걸..
뭔 깡으로 네 남자친구분한테 찾아갔을까. 내가 주문하고 계산하면서 선물 주는데 아무말도 안 할 것 같던 사람이 나한테 말을 걸더라."
'직접 주시지. 왜.'
"예의상 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묻는 것 같았어. 잠깐 벙쪘다? 나 원래 말 엄청 잘하는 거 알지? 근데 그 사람 앞에서는 얼어버리는 거야. 완전 바보같이 보였을 거야 ㅋㅋㅋㅋ"
'…아, 서림이가.. 저한테 화가난 것 같아서요.. 용기가 안 나서..'
'전해는 주겠는데.'
'…….'
'미안하다 이런 사과보다는 먼저 아무렇지않게 말 걸어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
'화난다고 해서 사람 쳐내는 정 없고 못된 애는 아니고, 사과 하고도 또 사과할 일 생길 것 같으면 사과하지 마요. 걔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사람한테 골머리 썩는 건 질색이라.'
"조금 무섭기도 했는데. 맞는 소리 해주니까 할말이 없더라.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어."
"……."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나를 위해서 누군가를 혼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잖아."
친구에게 얘기를 듣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친구가 내게 나쁜 마음이 없다는 것과, 아저씨가 친구에게 그런 얘기를 해줬다는 얘기가 이렇게 좋은 걸까.
그리고 내가 너무 방어적이고 이기적이었던 걸까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오해하고 의심하고.. 나를 피해자로 몰아가기만 했던 것 같기도하고. 대화 한 번도 안 해봤으면서.
회사가 끝나고 집에 와서는 노래를 들으면서 아저씨를 떠올렸다.
친구한테 그런 말들을 해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다니..
아저씨도 참.. 특이하다니까. 나같으면 자랑했을 건데 말이지..
[모레 선주 생일인데 여자끼리 모인대! 서림이 너도 올래?]
실습하는 친구가 나에게 카톡을 보냈고, 나는 한참 고민했다.
그 애들은 다 샤랄라 예쁜 옷도 입고, 성숙하게 다니고.. 자신을 꾸미는 애들인데.
나는 그런 거 할 줄도 모르는데. 내가 가도 되나. 고민을 했다.
[애들이 너 보고싶대! 작년에 못봐서 ㅠㅠ]
어쩔 수 없지. 간다고는 했는데.. 괜히 간다고했나 싶다.
아저씨 일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가게 옆에 숨어있다가 아저씨 나오자마자 워! 하고 놀래켜도 아저씨는 반응이 없다. 오히려.
"집에서 기다리지."
"…심심해서 일찍 나왔어요. 왜 안 놀래요?"
"놀랠만한 얼굴은 아니잖아."
"…엑.."
"……."
"왜요? 그럼 무슨 얼굴인데요? 너무 예쁜가?????"
"야."
"네?"
"……."
"…왜요! 왜 비웃어요."
"너는 겸손이 어울린다."
"…에?"
"뻔뻔하니까 재수없어."
"…뻔뻔하다는 건? 그럼 진짜 예쁘기는 하다는 건가?"
"걷자."
"치.."
아저씨랑 공원을 걸었다. 술에 취한 사람도 있고, 운동하는 사람도 있고.. 아저씨랑 둘이서 이렇게 나란히 걸은 적이 있나? 아, 잠깐 있기는 했지.
그때 그.. 전애인이라고 했나..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조금 걸었었구나. 그나저나 그 사람은 어떻게 됐지.. 아픈 사람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미련까지 남는다고 그랬었잖아.
근데.. 나한테 이렇게 마음을 줘도 되나? 싶다가도 생각을 접기로 다짐했다.
아저씨는 늘 하던대로 알아서 잘 하겠지. 나 혼자 또 의심하고 오해하면 이건 또 내가 싫어하는 행동이잖아.
"어디 가요? 왜 잠깐 보자고 했어요?"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아."
"……."
"친한 친구예요?"
"그랬었지."
"…으음."
아저씨랑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이나 하고 있었을까. 아저씨가 먼저 정적을 깼다.
"오늘 무슨 일 없었냐."
"…오늘!"
"……."
"실습하는 친구랑 잘 풀었구요. 그 친구가 소개시켜줬던 친구들이랑 내일 모레 만나기로 했거든요?근데 간다고한 거 후회중."
"왜."
"다들 엄청 잘났거든요. sns 보면 맨날 명품 자랑에.. 운동 자랑에.. 자격증 자랑.. 돈 자랑.. 자랑 자랑.. 자랑만 하면 그냥 어우 부러워! 할텐데. 자기 자신도 엄청 잘꾸미고, 성격도 좋아요. 다들.. 예쁘기도 하다?
명품 자랑하는 거 솔직히 너무 꼴볼견이고 나는 이해도 안 가요. 그 돈으로 맛있는 걸 사먹지 뭐하러 돈을 써? 명품백보다 예쁜 싼 가방이 훨씬 낫고 이해도 안 가."
"……."
"근데 또 그렇게 노력하는 애들 사이에 껴있으면 기도 빨리고, 현타도 오니까.그래서 작년에도 만나자고한 거 안 만났었거든요? 근데 또 나도 바보같이 그 친구들이 나한테 잘해줬으니까. 그 기억이 떠올라서.
궁금하니까 또 보고싶어서 가겠다고 한 거예요. 근데 생각할 수록 내가 거기 가면 엄청 작아질 것 같아. 한없이 작아져서 개미들이랑 친구라도 될 것 같다니까."
"안 꾸미고, 자기 잘난 거 티 안 내고 다니는 애들이 더 멋있어. 겉은 꼬질꼬질한데 속은 꽉 차있는 사람. 반전 있는 거."
"……."
"난 그렇던데."
되게 짧은 말인데도 날 위로해줬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매력있잖아."
"……."
"바나나도 껍질은 노랗고 쓴데 까면 하얗고 단 것처럼."
"……."
"나도 봐. 큰 것 같은데. 깠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커."
"…와."
"……."
"아저씨 진짜 그런 농담도..."
"…별로야?"
"와 진짜 저 소름돋았어요. 근데 아저씨가 겸손하라면서요 아저씨는 왜 안 겸손해요?"
"그거랑 이거랑 다르지."
"안 다른데."
"잘 생각해봐."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데??"
이런 말들을 황인엽과 수영이에게 하면 둘을 나에게 늘 그랬다. 자격지심이다. 남들을 신경을 쓰지 마라.
근데 아저씨는 늘 그런 애들과 달랐다. 예상했던 것들과 항상 틀리게 대답하는 아저씨가 대단하면서도 좋았다.
다음 날엔 아저씨가 바쁘다고해서 얼굴을 못봤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벌써 친구들을 보는 날이다.
아저씨가 위로는 해줬지만.. 한 번에 진정을 될 리가 없다. 긴장을 할 수밖에.
친구를 만나려고 준비를 다 하고 나왔을까. 여전히 나는 허전하다. 오늘까지 바쁜 아저씨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을 했다.
참 아저씨도 귀신같아라. 이렇게 고민을 하고있는데 아저씨한테 처음으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약속 시간 다 됐는데.
"아, 네. 거의 다 왔어요."
- 어딘데?
"음.. 저희 옆동네예요. 새로 생긴 술집. 되게 유명한데."
- 비온대. 우산은.
"못챙겼어요.. 편의점에서 대충 사야지 뭐. 집에 쌓인 투명 우산 많아서 아깝기는 한데..."
아저씨랑 할 것도 없이 조용히 물 흘러가듯이 통화를 한 건 처음이었다.
여태 통화를 두세 번 했는데. 용건만 말하고 끊었었단 말이야.
"저 도착해서요.. 다 놀고 연락할게요!"
- 잠깐만 건너와.
"네?"
뒤를 돌아보면 아저씨가 차에서 내려 내게 손을 흔들었다. 뭐지..? 옆에서 차가 오나 확인을 하고선 급히 총총 아저씨에게 뛰어가면 아저씨가 차 뒷좌석에서 무언가 꺼내 내게 건넨다.
"뭐야..! 헐! 아니야! 이게 뭐예요..!"
한 번도 내 손에 쥐어본 적 없는 명품백이었다. 설마 어제 내가 그 얘기해서 나한테 이런 걸 선물해주는 건가 싶어서 너무 불편했다. 급히 고개를 저으며 안 받으려고 했을까.
"그냥 주는 거 아니야."
"……."
"나중에 네가 초라해보이지 않을 때. 네가 그 애들이 부럽지않은 순간에 팔아버려."
"……."
"그리고 그걸로 맛있는 거 사먹자."
"……."
"급하게 나온 거라. 가봐야 돼."
"……."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해."
-
-
-
-
끄악
담엔 좀 길게 와보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