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
포근했던 그 사람의 품. 나를 바라보던 사랑스런 눈빛. 아찔하게 또 애틋하게 사랑했던 기억.
그 기억을 꺼내보고 그 추억 속에 사로잡혀 그리워하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지금 내 맘은 너무 외롭고 쓸쓸하다.
만약 너도 그렇다면, 김한빈.
우리 사랑하자.
Episode2. 우리가 친구가 된 이유
늘 그렇듯이 5월은 바쁘다.
개인 혹은 조별과제로 정신없게 마감을 하고나면
곧 축제기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잠시 쉴 겨를 없이 바로 축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학생회 일원으로서
과 주점의 요리를 담당하게 되었다.
물론 김한빈과 함께.
사실 이건 예정에도 없던 일이었다.
이번 축제는 편하게 집에 일찍 들어가 과제로 밤샌 지친 몸을 쉬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주점 요리를 맡게 된 것은
순전히 김한빈 때문이었다,
일주일 전
"드디어 내 요리 실력을 보여줄 때가 온 것 같군"
"할 줄 아는 건?"
"계란말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해맑은 미소를 아낌없이 보여주는 김한빈을 보며
동기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 그들은 문득 멀찍이 서있던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내게 한 두명씩 스물스물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내 손을 덥썩 잡았다.
"여주야, 소문 들었어~"
"응? 무슨 소문?"
"너가 그렇게 요리를 잘한다며~?"
왜 나는 처음 듣는 소문일까.
게다가 이 아이들은 별로 친하지도 않은 동기들인데.
"너 이번 유망주라고 소문이 자자해~"
"대체 누가 그런?"
"흐히히히히힣"
김한빈을 일제히 쳐다보는 동기들.
그리고 해맑은 표정으로 이 쪽을 바라보는 김한빈.
하, 범인이 저기 있군 그래.
애써 내 눈을 피하며 머쩍은 웃음을 보이는 김한빈을 보며
나는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이리 얼른 오라는 손짓을 하였다.
뻘쭘거리는 몸짓으로 내게 가까이 다가온 김한빈은
지도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미묘한 공기가 흐른 뒤,
나는 동기들을 피해 구석진 곳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죽을래?"
"왜 또!!!"
뭐야, 저 뻔뻔한 태도는.
김한빈은 자신은 잘못한 게 하나 없다는 표정으로 오히려 짜증을 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 저 태도에 오히려 헛웃음이 나는 나였다.
"나 고생시키고 싶어 안달났어?"
"아, 왜. 너 요리 잘하잖아. 이번 기회에 드러내봐. 너 내가 지금 얘들에게 잘 보일 기회 준거라고!"
"지랄하네. 너 이거 어떻게 수습할 거야"
요리 잘한다고 소문이 나면
축제 기간 내내 과 주점에 잡혀 축제를 즐기지도 못한 채
주구장창 요리만 하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기에
나는 최대한 조용히 지내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며칠을 버텼다.
나에겐 작년 축제 때 우리 과 주점을 홍보하기 위해
양갈래 머리에 토끼띠를 하며 폴짝폴짝 주점 앞을 뛰어댕긴 전적이 있다.
그렇기에 사실 이번 년도는 학생회 일원이라 해도 난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헌데 김한빈 이 새끼가 다 망쳤어.
"빨리 수습해! 나 요리 못한다고! 그냥 해본 말이라고 말하란 말이야!!"
"맞잖아"
뻔뻔하게 대답하는 김한빈의 태도에
잠시 넋이 나갔다.
뭘 알아. 너에게 한 번도 요리 해준 적이 없는데.
"너가 뭘 알아. 내가 만든 음식 한번 먹어본 적 없으면서!"
"지난 번에 너가 싸갖고 온 도시락 먹었는데, 맛있던데?"
"....너가 범인이구나"
.
.
.
.
.
이 일은 작년 1학년 초 첫 엠티에서 생긴 일이었다.
도시락을 집에서 각자 싸와 함께 도시락을 나눠먹는 점심 활동이 있었다.
익명이기에 누구의 도시락인지 알지도 못한 채,
번호만 적혀서 사람들에게 먼저 도시락만 공개한 뒤 제비뽑기를 통해 나눠먹는 활동이었다.
나는 꽤 요리를 하는 편이여서 이 날 새벽부터 알차게 도시락을 싸왔다.
그리고 엠티에서 익명으로 도시락을 공개할 때
보기에도 좋은 도시락이 맛있다고.
내 것이 나왔을 때 사람들에게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훗. 마음 속으로 뿌듯함이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서로 교환하는 타임에서
이상하게도 내 도시락은 번호가 적힌 쪽지만 남긴 채 꼴랑 사라져버렸다.
'어? 아까 그 5단 도시락 없어졌어!!!'
'아, 뭐야. 제일 맛있어보였는데'
아이들은 제일 구성이 알차고 맛있어보이는 도시락이 없어졌다며 슬퍼했지만,
사실 상실감이 가장 컸던 건 다름아닌 나였다.
내가 그 걸 만들기 위해 새벽부터 무슨 고생을 했는데!
누구에게도 맛 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사라지다니,
첫 엠티라 기대도 많이 하고 설렘으로 가득했는데,
도시락이 없어지는 바람에 기분만 잡치고 왔던 기억이 있다.
.
.
.
.
.
그런데 그 범인이 김한빈이라니!
아니, 그것보다 대체 어떻게 그 도시락이 내 껀지 알았지?
"너...어떻게 알았어? 아무한테도 말 안했는데"
"나는 너의 소울메이트니깐? 그 때부터 우린 통한거지"
"지랄 말고, 어떻게 알았냐니깐"
"도시락통 맨 밑에 네임펜으로 조그맣게 쓴 글씨 있던데.
3학년 6반 최여주"
생각지 못헀다.
맞아, 그거 내가 소풍갈 때마다 들고 다니던 도시락 통이었어.
김한빈이 내 도시락을 훔쳐간 이유. 참 단순하다.
김한빈은 맛없는 도시락에 걸려서 점심을 굶어야 하나 망설이는 차에,
내 도시락이 눈에 들어왔댄다.
그래서 숨겼댄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져가서 혼자 숨어먹었댄다, 하.
도시락을 훔쳐간 범인을 찾으면 반쯤 죽여 놓을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화장실에 들어가 쪼그려 앉아 먹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왠지 짠해
한숨만 크게 내쉬기로 했다.
이런 내 모습에 김한빈은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날부터였을껄"
".....?"
"너랑 친구되고 싶었던 이유"
"....뭐야"
"너랑 친구면 최소한 밥은 안 굶겠다 싶어서"
김한빈이 유일하게 친한 여자애가 나인데,
왜 내게 먼저 다가왔는지
그리고 그 한 명뿐인 여자사람친구가 왜 나일까 늘 궁금했는데,
이게 그 이유였구나.
"...근데 막상 친구가 됬는데 어쨰 내게 한 번도 요리 해준 적이 없냐"
"야, 너가 해달라고 안 했잖아"
"그러게. 왜 안했을까? 참 이상하네"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 김한빈.
하긴 고작 내가 만든 도시락이 맛있다며 친구가 되어놓고
한번도 요리해달라고 말한 적이 없는지
그게 나도 참 의문이다.
"하여간 나랑 같이 주점 맡는거지?"
왜 얘기가 그렇게 흘러가는지.
결국 그 날 이후 자연스레 우리 과 주점의 요리사가 된 나였다.
그리고 김한빈은 또 언제 소문을 쫙 낸 건지
일주일 사이 작년 엠티 때 일등 도시락이 최여주 것이었다는 소문도 퍼지게 되었다.
"여주야~ 그 도시락! 너가 만든 거였다며~?"
"아...응"
"왜 안 말했어~ 이번 주점 잘 부탁해~"
내 어깨에 고생이란 짐과 함께
부담감이라는 짐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축제 날.
여섯시가 넘어서 서서히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주점은 왁자지껄 사람들이 찾아들었고,
이에 내 손은 바빠졌다.
"여주야! 여기 제육볶음 두 개 부탁해!!"
"여주야!! 계란말이도 같이!!!"
"김한ㅂ.....아니다...최여주!!! 여기 김치전도 하나!!"
"여주언니!!! 이거 하나 더 주세요!!"
"여주야여주야!!!!!!!"
"여주...ㅇ!!!"
"여ㅈ!!!!!!"
온통 내 이름을 불러대는 사람들.
이미 두 손은 부리나케 요리를 하고 있는데,
주문을 외우랴 이에 한 명 한명 날 부르는 소리에 대답해주랴
정신없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옆에서 내 보조로 계란말이나 말고 있던 김한빈은
나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미안한 듯 내 등을 툭툭 치며 귓속말로 중얼거렸다.
"미안. 이렇게 바쁠 지 몰랐어"
"됐어. 빨리 요리나 해."
"끝나고 이따가 술 사줄게. 최여주, 힘내"
"그건 당연한 거지. 야야, 계란말이 하나 더 달래"
그리고 새벽 네시쯤.
드디어 주점이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여주야, 수고했어!!!!"
"진짜 다들 우리 과 안주 왜 이렇게 맛있냐며, 극찬에 극찬을 아주!!!!!"
"이번에 사람 진짜 많았잖아. 다 여주 덕분이야"
"언니! 아까 두 손으로 후라이팬 돌리는데 걸크러쉬 짱!!!!!"
나를 향한 과 사람들의 칭찬과 환호.
참 바쁘고 고됐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몸 이곳저곳이 다 쑤시고
계속 불 앞에 있던 차에 얼굴은 화끈화끈거렸지만
뿌듯함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김한빈은
계속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학생회 사람들과 헤어지고
김한빈과 둘 만의 회식을 위해 포차로 향하던 길.
시끄럽게 힘들다고 중얼거려야 할 김한빈이
내 옆에서 웬일로 조용하게 걷고 있었다.
뭔가 풀이 죽은 거 같아,
괜히 김한빈의 눈치를 보며 툴툴거렸다.
"야, 아파죽겠어. 후라이팬을 몇 시간을 잡고 있었더니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뻐근하고 또..."
"...여기?"
김한빈은 별 말없이 내 말을 듣고 있다가 내 어깨 한 쪽을 가볍게 주물어주었다.
안마해달라고 말한 거 아닌데.
괜찮다고 너도 힘들다며 하지말라고 했는데도
김한빈은 꿋꿋이 내 어깨를 계속 주물렀다.
"그래, 아유~시원하다. 너도 네가 잘못한 거 알겠지? 고생한다 했지?"
"응"
저렇게 당황해하며 대답하면 내가 뻘쭘해지잖아.
사실 좀 힘들었지만 나름 좋았는데.
아니, 정말 정말 좋았는데. 지금 너무 기분 날아갈 것만 같은데.
"야, 아니야. 그래도 너 덕분에 내가 꽤 쓸만한 인물인지 알게 됐어. 너 들었어?!!!!"
"뭘?"
"오늘 우리 주점에 온 사람들! 안주 맛있었다고 난리였대! 제육볶음도 맛있고, 김치전도 맛있고, 또......"
"........."
"뭐야...왜 실실 웃어?"
"그냥. 뿌듯해하니깐 다행이라"
생각해보면 김한빈 진짜 소심하단 말야.
내가 좋다고 하니깐 그제서야 슬며시 웃는 김한빈.
이렇게 맘 약해서 세상 어떻게 살아갈까 몰라.
하긴 이렇게 유리심장이라 모쏠이겠지만.
"그럼 김한빈!!! 우리 이제 우리끼리의 축제를 즐기러 가볼까!!!!! 가자!!! 코니포차로!!!!!!"
"렛츠 고우~"
너가 먼저 다가와줘서 고마워.
너가 다가오지 않았다면 믿고 의지할 친구 한 명 없었을 것 같아.
너가 있어서 대학 생활이 참 즐겁고,
뿐만 아니라 내 일상도 너무 즐거워.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너가 계속 솔로였음 좋겠다.
계속 내 제일 친한 친구로 남아줬음 좋겠다.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만.
Episode 2 마침.
+
사담
안녕하세요. 이틀이나 걸렸네요.
글을 쓸 시간이 새벽 밖에는 안 되네요...또륵
쓰면서 느끼는 건데 점점 자전적 소설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축제 때 학생회 일원으로 과 주점 요리를 맡았거든요.
물론 요리는 잘하는 편이 아니었지만요 ㅎㅎㅎㅎ
구독료는 아직 받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제 소설을 읽고 공감해주시는 것만으로도 벅차답니다.
댓글 달아주시면 엄청나게 힘이 되요.
이번 댓글이 10개가 넘으면(제 답글 제외) 자동으로
다음 편에 이번 편, 김한빈 번외로 들고 오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제 글을 읽어주시는 소수의 독자님들, 애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