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 마흔살 아저씨 짝사랑하기
w.1억
두사람은 서로 아무말도 없었다. 정적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석구였다.
"만나는 사람 생겼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제 네 옆에서 네 병수발하는 거 못해. 그러니까. 부모님이랑 연락 좀 하고 이제."
"……."
"언제까지 나한테 의지하고 살래."
석구의 말에 혜선은 자세를 고쳐 앉아서 석구를 한참 바라보다가 눈물을 참고선 말했다.
"내가 지금은 굉장히 멀쩡해보여도. 갑자기 아파."
"……."
"3개월 남았어."
"……."
"그 잠깐을 못참아? 다 죽어가는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는 게 맞아?"
"……."
"그래. 여자친구 생겨도. 나 죽을 때까지는 모르게 했어야지. 내가 큰 걸 바랬어? 그냥 죽기 전까지만 옆에 있어달라고 한 거잖아."
"그게 싫어."
"…뭐?"
"그런 건 사랑하는 사람한테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
"네가 곧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이유로 사람 가지고 멋대로 하고싶다면 나 말고 다른 사람 찾아라. 네가 그랬지. 마지막이 코 앞인데 사랑하는 시늉이라도 해달라고."
"……."
"난 못해. 척. 척하는 걸 세상에서 제일 못해."
"……."
"그런 사람이야. 내가."
"…하아.."
"아프다는 거 알면서도 그만하자고 했던 나한테 뭘 바라냐. 넌."
"……."
흥분한 듯 숨을 거칠게 쉬던 혜선은 일어나 자신을 내려다보는 석구의 앞에 서서 석구의 손을 붙잡고선 말했다.
"…내가 큰 걸 바란 게 아니잖아. 나 혼자 죽는 거 무서워서.. 그냥.. 그때까지만 옆에 있어달라는 거잖아."
"넌 사랑이 아니라 동정 가지고 네 옆에 있는 사람한테 고맙다고 느낄 수 있냐."
"……."
"난 싫을 것 같은데."
혜선의 손을 잡고선 놓은 석구는 뒤돌아 혜선의 집에서 나왔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면서 석구는 무표정으로 있다가 1층에 도착하면 그제서야 한숨을 내쉰다.
늦은 시간이었다. 11시쯤 됐나.. 아저씨는 자려나.. 자는지 안 자는지 알 수도 없네.
하품이나 하며 자려고 누웠을까. 아저씨에게 전화가 오기에 양반은 못된다는 생각에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아저씨 생각하고 있었는데!"
- 내 생각은 왜 해.
"그냥 자나? 안 자나? 근데 안 자네요. 근데 아저씨도 내 생각했으니까 전화한 거 아니에요?"
- 응.
"오?"
- 굉장히.
"…뭐예요. 갑자기..? 그런 소리도 할 줄 알아요?"
- 창문 열고 밖에 좀 볼래.
"…응?"
급히 일어나 문을 열고 보면 아저씨가 서있었다. 어라?
- …….
"뭐예요? 말도 없이 찾아와요.. 왜..! 나 생얼인데..."
- 그냥 그러고 있어.
"……."
- 이러고 잠깐 얘기 좀 하고 갈게.
"……."
- 전에 만나던 친구랑 끝내고 왔어.
"……."
- 너한테 제일 먼저 알리고 싶었다.
"……."
- 괜찮은 척해도 불안하잖아.
"…어떻게 그렇게 날 잘 알아요."
- 괜찮아지라고는 말 안 해. 그냥. 걱정 조금 덜어놓았으면 해서.
"…고마워요."
- …….
"난 아저씨랑 연애하기 전 모습을 몰라서 잘 모르겠는데. 많이 노력하고 있는 거죠?"
- …어.
"……."
- 굉장히.
"굉~장히?"
- 그래. 굉~장히.
"의심 안 해요. 이제."
- …….
"아저씨가 나 생각해서 찾아오고 그렇게 말해주니까. 이제 하나도 안 미워요."
- 자라.
"아저씨도 집 가서 얼른 자요. 피곤할 텐데."
- 내일 저녁 먹자.
"좋아요."
- 내일 보자.
"아저씨."
- 응.
"고마워요."
- 뭐가.
"뭐든지."
- ㅋ
"뭐야 비웃은 것 같은데?"
결국 우리 둘은 웃음이 터져버렸다. 사실 그렇게 웃긴 대화도 아니었고, 그런 상황도 아니었는데. 이런 간지러움이 좋았다.
[오늘 일 끝나고 잠깐 볼 수 있어?]
황인엽에게 연락이 왔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답장을 했을 내가, 바로 무시를 했다. 그래놓고 신경은 또 쓰이지만 답장을 할 생각은 없다.
나는 아저씨랑 연애를 하고있으니까. 전 애인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서림 씨 부탁한 거 아직도 안 했어?"
5분 전에 부탁한 일을 와서는 안 했냐고 하는데.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팀장이란 사람은 늘 나를 저렇게 괴롭혔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이만하면 됐지. 사람이 참 유치하고 찌질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라서 처음엔 슬퍼서 집가서 울었는데.
왜, 어렸을 때 따돌림 당했을 때도 익숙해지니까 견딜만했는데. 지금도 그런 기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 힘든 건 아니고.. 참을만해.
"……."
"……"
"야."
"어!? 뭐야.. 아저씨 왜 여기 있어요...??"
"뭔 생각을 하길래 앞에 있는데 못봐."
"…핳.. 다른 생각 좀 하고있었어요.. 연락 없어서 집에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와있을 줄 몰랐죠..!"
"뭔 생각."
"팀장 어떻게 조질까?"
"오늘도 그래?"
"맨날 그래요."
"한 번만 더 그러면 말해."
"헤에에~? 왜요? 혼내주기라도 하게요? 완전 든든한뒈???"
"내가 욕 엄청 잘하거든."
"욕? 뭐...음.."
"반응이 왜 그래."
"딱 봐도 뭔가 그럴 것 같기는 한데. 들어본 적이 없네?"
"존나 잘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존나랰ㅋㅋㅋ."
"욕 먹어서 배부를 텐데. 저녁 먹을 수 있겠냐."
"욕 배랑 음식 배랑 따로 있거든요???"
"잘 안 먹던데."
"…엄청 잘 먹어요. 그거 다 내숭이거든요... 저 집에 혼자 있으면 진짜 야무지게 먹어요. 입이 심심한 걸 배고프다고 착각하고 하루에 다섯끼를 먹는 사람인데."
"참나."
"ㅎㅎㅎ 먹는 게 제일 좋은 사람인데..."
"… 뭐 먹고싶어?"
"음.. 라면!?"
아저씨가 고갤 끄덕이며 앞장서 걸었고, 아저씨와 똑같이 따라 걸었다. 괜히 또 팀장이, 황인엽이 떠올라서 멍하니 있으면 아저씨가 내게 조용히 묻는다.
"평소에 면 좋아하나."
"…응? 왜요?"
"어제는 우동. 오늘은 라면."
"아~ 좋아해요! 밥보다 면을 더! 초딩 입맛이라 그런가?"
"안경 끼고 뜨거운 라면 먹으면 안경에 김서림?"
"…아."
"……."
"아저씨 완전 짜증나는 거 알아요? ㅋㅋㅋㅋ."
"……."
"어이없어 진짜 ㅋㅋ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그러니까 더 어이없어요."
"더운데 시켜먹을까. 집에서."
"말 돌리네?"
아저씨 집에서 라면을 끓여서 먹는데 이 상황이 좋으면서도 웃겼다.
아저씨가 라면 먹으니까 안 어울려.. 파스타 만드는 모습만 보다가 라면을 끓이다니.
"지금은 어때."
"네?"
"섹스할 때 말고 평소에도 사랑 받는 것 같냐고."
너무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너무 놀라서 벙쪄서 아저씨를 바라보게 되었다.
젓가락으로 라면 한 번 크게 들었는데... 먹지도 못하고 아저씨를 바라보면, 아저씨가 날 보고 픽- 하고 웃는다.
"…아니 갑자기 밥 먹다가 그런 걸 물어봐요??"
"궁금했어."
"…느끼는 것 같아요."
"느껴?"
"아, 아니! 막 그런 거.. 말고.... 사랑 받는다고 느끼는 것 같다구요.."
"……."
"그냥.. 아저씨가 앞에 서있기만 해도 위로가 되고, 안정이 돼요."
"……."
"아저씨는 이런 감정 느껴본 적 없겠지만.."
"난."
"……."
"힘들면 네가 생각 나"
"……."
"힘든 게 싫어서 늘 필사적으로 피하던 사람인데."
"……."
"요즘은 힘든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뭐라고."
"……."
"이렇게 좋아해주는 거예요?"
"김서림."
"에?."
"뭐긴 뭐야. 너지."
"…치."
"안식처같아."
"……."
"널 보면. 쉬고 있다는 걸 느껴."
"……."
"하는 짓도 웃기고."
"아씨."
"ㅋㅋㅋㅋㅋ."
"일단 아저씨! 그건 웃긴 게 아니라 귀여운 거예요. 예쁘다는 건 안 바라고! 귀여운 건 인정해요."
"예뻐, 너."
숨이 턱 막혀왔다. 이 아저씨는 내게 특별한 사람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사람을 본 적도 없다.
어떻게 이렇게 무심하게 툭툭- 이상한 말들을 쏟아낼까.
"너 옷에 국물 튀었다."
"에!?!?! 미친..!!!!!!!! 아니!! 어제 산 건데!!!!!!!!!!"
"……."
"왜요..."
"하나 사줄게."
"……."
"호들갑은."
"…치.. 됐거든요. 저도 돈 있어요!"
"그럼 나 차 좀 사줘라."
"알겠으니까 그럼 10년만 기다려줄래요?"
"10년이면 50인데."
"…새삼 아저씨 나이 많네요. 늙었어."
"…허."
"난 10년 뒤면~ 아직도 30대 후반인데."
"부럽네."
"ㅎㅎ부럽죠? 아저씨 맥주 한캔씩 할까요? 갑자기 맥주 마시고싶다."
"왜. 사랑 받고싶어?"
"아니.............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니거든요. 절 무슨 변태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 막! 그런 사람 아니에요. 진짜;;"
"변태는 맞지 않나. 평소랑 다르던데."
"…차암나.."
-
-
뾰옹 ! >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