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 마흔살 아저씨 짝사랑하기
w.1억
아저씨랑 마주보고 앉아서 맥주 한캔씩 마시는데 대부분은 내가 말했다.
늘 그랬다. 나는 말하고, 아저씨는 들어주고.. 물론 가끔 대답을 하기는 한다.
한캔 밖에 안 마셨는데 둘 다 얼굴이 빨개져서는.. 웃겨서 먼저 웃으니, 아저씨도 작게 웃는다.
"뭐 시원한 거 없나~~?"
중얼거리며 자연스럽게 일어나 냉장고를 뒤지다가 음료수가 있길래 들고 오면, 아저씨가 날 보고 말한다.
"들어와서 살래?"
"…에!?"
"자연스러워서."
"아.. 냉장고... 아..기분 나빴으면 죄송해요.."
"아니. 기분 나쁜 게 아니라."
"……."
"자연스럽게 내 집을 돌아다니는 게 잘어울려서 한 소리야."
"…뭐야."
"……."
"아저씨 나랑 결혼하고싶어요?"
"……."
"아, 막 흔한 커플처럼 결혼 안 한다고 그러면 화내고 삐지고 그런 거 안 해요. 그냥 단순하게 궁금했어요. 내가 보기에 아저씨는 그냥 연애하려고 만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나이 신경썼었잖아요. 거짓말 안 하고 솔직히 나이 차이가 나기는 나니까."
"넌 하고싶냐 나랑?"
"…솔직하게?"
"응."
"음.. 말 많고 오락가락하는 나를 그래도 좋아해준다면?"
"나도."
"……."
"지금같은 나를 계속 좋아해준다면."
"치.. 뭐예요. 왜 따라해."
"뭘 따라해."
"따라했잖아요 ㅡㅡ."
"ㅋㅋ자고 갈래?"
"흐음..."
"왜 고민하지?"
"출근 하니까!?"
"내가 아침에 데려다주면 되는데."
"그럼.. 자고갈까?"
"나한테 물어 왜?"
"아니 그냥 혼자.. 어우..!"
"씻고 나와. 늦었어. 자야지."
먼저 씻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고 있었을까. 아저씨가 편하게 입으라고 준 반팔티가 어찌나 크던지. 불편한 바지는 그대로 입고 자야된다니 조금 슬프기는 한데..
소파에 앉아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아저씨 핸드폰으로 전화가 오길래 나도 모르게 화면을 봐버렸다. 남자네.. 나도 모르게 안심을 하고있는 게 웃겼다.
갑자기 욕실 문이 열리고..
"핸드폰 좀 갖다줄래."
"…아! 네!"
머리 감다말고 문 빼꼼 열고 핸드폰을 달라는 아저씨에 살짝 당황했다가도 아저씨가 내가 편한가보다..하고 안심이 또 됐다.
천천히 다가가 손을 멀리서 뻗어 핸드폰만 주려고하고 고개를 조금 돌리면, 아저씨가 픽- 웃으며 말했다.
"못볼 거 봤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문을 덜 닫고선 전화를 받길래 나는 엿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지도 않고 서서 듣고있다.
"지금 못나가."
"……."
"여자친구랑 있어."
"…!!"
"다음에 내가 연락 줄게. 어."
내가 여자친구래... 그래! 맞는데. 왜 인정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다 좋지?
들킬까봐 총총 방으로 빠르게 들어가 침대에 누워서 베개에 얼굴을 묻고 계속 웃음을 참았다.
시간이 좀 지났을까. 아저씨가 아예 윗옷은 입지도 않고서 내게 와 옆자리에 눕길래 나도 모르게 경계를 하며 옆으로 피하고선 아저씨를 보자, 아저씨가 묻는다.
"왜 피하냐."
"…왜 옷 벗었어요?"
"……?"
어두운데도 아저씨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너무 잘 알겠어서 살짝 웃음이 나올 뻔했다.
"야."
"……."
"내가 너랑 섹스하겠다고 벗었다고 생각하냐."
"……."
"나 원래 잘 때 윗옷 벗고 자."
"……."
"아주 머리에 야한 생각만 가득 차서."
"…아니."
참나- 아저씨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고갤 돌렸다가도 한참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네."
"……."
"변태 같아서 막 옆으로 피했냐?"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놀래서 그런 거예요."
"다 벗었을 땐 놀란 시늉도 안 하더니."
"…아니이."
난 애교가 없는 사람이다. 근데 이상하게 아저씨한테는 하게 된다.
옆으로 돌아 누워 아저씨를 끌어안고선 말했다.
"변태여도 상관 없어요. 왕자병이어도 괜찮아."
"…ㅋ."
"ㅎㅋ.."
"변태라는 거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저씨를 끌어안고서 둘이 계속 웃기 바쁘다. 그러다 술도 마시고 피곤했는지 아마도 내가 먼저 잠들었을 거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저씨를 꼭 끌어안고 자던 나는 심한 아마도 잠꼬대로 인해 구석에 코를 박고 있다.
알람 소리 덕분에 깼고, 혹시라도 아저씨가 깰까봐 급히 끄기는 했는데...
"…엇.. 깼어요?"
"응."
"더 자요! 저 혼자 가도 되는데.."
"…아냐. 일어나야지."
아침부터 섹시한 아저씨를 보고있자니 너무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아저씨를 바라보고 있다가
아저씨랑 눈이 마주쳐서 정색을 하고 씻으러 거실로 나온다.
"……."
아저씨가 면도하는 걸 문에 서서 구경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나중에 제가 해줘도 돼요?"
"면도?"
"네. 해보고싶어요."
"그래."
"면도하는 것도 어쩜 그렇게 섹시하게 하는지."
"허."
아저씨가 면도를 다 하고선 나오려고 내 앞으로 다가왔고, 내가 안 비켜주고 가만히 올려다보니.. 아저씨가 날 내려다보며 말한다.
"왜."
"뽀뽀.."
"……."
"한 번만 해주면 안 돼요?"
너무 뜬금 없었나. 아저씨가 아무 표정도 없이 나를 내려다보다가 곧 고갤 틀어 내 볼에 한 번, 입술에 한 번 입을 짧게 맞추고선 떨어졌다.
얼굴이 붉어져서는 옆으로 길을 비켜주면, 아저씨가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날 지나쳤다. 뽀뽀 한 번에 이렇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을 수가 있나.
기분은 하루종일 좋았다. 팀장만 아니면 정말 완벽한 드라마였을 거야.
완벽하게 일을 끝내고 아저씨랑 같이 저녁 먹을 생각에 신나있었는데.
"서림 씨 나랑 얘기할 거 없어?"
팀장이 다 망쳤다.
"현철이한테 연락했어?"
"네?아니요. 번호도 없어요."
"현철이한테 제발 부탁인데. 연락 하지도 말고, 생각나게끔 만들지도 마. 어떤 짓을 했길래 너 잘지내냐고 물어봐? 그것도 나한테?"
"……."
"그렇게 애인있는 남자랑 만나고싶어?"
"…저기 저는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래. 모르겠지. 앞으로도 계속 모를 예정이겠지."
"……."
"일이라도 잘하던가."
휴게실에서 대화를 마치고 밖에 나왔을까. 회사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봤다.
아마도 팀장이 내 소문을 안 좋게 낸 것 같았다. 예상은 했다.
내가 싫으니까. 그래야만 했겠지. 그래. 내가 너보다 젊고 일도 잘하니까. 근데.
"……."
이렇게까지 해야 돼?
아저씨랑 전시회를 다녀왔다. 사실 난 집에만 틀어박혀 사는 인간이라 데이트도 항상 집에서만 즐겼는데.
아저씨를 만나고나서 뭔가 안 해본 것들도 해보고싶어서 전시회에 가자고 한 거다.
전시회에 갔다가 저녁 뭐 먹을지 고민이나 하는데..
"아저씨 떡볶이 좋아해요!?"
"먹지."
"떡볶이 먹으러 갈래요?"
"예약해둔 곳 있어. 내일 먹자."
"헐.. 진짜요? 언제 예약했대..!"
어제 전화했던 형이 레스토랑을 하는데 룸까지 잡아줬다는 것이다.
여자친구랑 같이 먹으러 오라고 했다고 한다. 듣자마자 감동이었지만 부담도 컸다. 아저씨 지인이면.. 잘 보여야 되는데.
다행인가. 바쁜 탓에 직접 룸 안으로 오지는 못한다고 해서 우리끼리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음식 오기를 기다리면서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저씨 사진 한 번만 찍어요!"
"그래."
셀카도 찍고, 찍어주기도 하고. 처음으로 찍는 사진에 기분이 좋아졌다.
핸드폰 배경화면 해야지.. 벌써부터 행복해하면서 기대에 찬 표정으로 자리에 앉으면, 아저씨가 날 보고 작게 웃었다.
"오늘 전시회에 사람 많아서 별로였죠."
"나쁘지않았어."
"처음 가봤어요 전..! 아저씨는요?"
"나도."
"ㅎㅎㅎ..."
"오늘은 뭔 일 없었냐."
"……."
힘든 티를 내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 없었냐고 묻는 아저씨가 신기했다.
"왜요?"
"그냥."
"……."
"있을까 싶어서 물어봤어."
"…촉이 좋네."
"……."
"팀장이 저보고 자기 남자친구 좀 건들지 말래요. 전혀 그런 사이도 아닌데 자꾸 혼자 의심을 해요. 그러더니 회사에 소문까지 냈더라고요."
"……."
"안 그래도 아저씨한테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나 회사 그만두려고요."
"왜."
"내가 멘탈이 약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대접 받으면서 회사 다니기 싫어요. 답답하죠. 답답할 거예요.. 그냥 버티고 다니면 되는데."
"안 답답해."
"……."
"힘들다는데 답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이상한 거지."
"……."
"욕 하러 가야겠네."
"……."
"팀장 이름이 뭐야."
"한주희요! 욕해줘요. 빨리!"
"ㅋㅋㅋ."
아저씨가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저렇게라도 말해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오히려 좋았다. 내가 이렇게 누구 욕을 하면.. 오버스럽게 맞장구 쳐주는 것보다. 이렇게 조용히 받아쳐주는 게 나아.
아저씨랑 밥을 먹는데 자꾸만 황인엽에게 전화가 왔다.
무시해도 세 번이나 더 오는 전화에 핸드폰을 꺼버리자, 아저씨가 내게 조용히 말했다.
"누군데 안 받아."
"……"
"……."
"전남자친구요."
"왜."
"…그냥."
"……."
"다시 만나고싶은가봐요. 그러기 싫어서 안 받는 건데.. 오해다 뭐다 말 많은 것도 싫고.."
"얘기하고 와."
"…네?"
"기다릴 수 있으니까. 갔다오라고."
"……."
기분이 상했다. 전남자친구한테 갔다오라는 말을 저렇게 해줄 수 있나? 나는 시한부라는 전여친한테 갔다온 것도 사실은 좀 싫었는데.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또 의심이 들었다. 난 정말 성격 참 병신같다. 좋다가도 한순간에 의심을 해버려.
기분이 상해버렸다. 같이 있는 시간이 좋다면 날 보내지 않았겠지. 사랑한다면 안 보내겠지. 일어서서 가방을 챙겨 나가려고 했을까.
"김서림."
"……."
"혼자 다 먹었다고 그냥 가냐. 나 덜 먹었어."
"……."
"같이 가야지. 혼자 가려고?"
"…왜요?"
"정에 약한 거 알고. 아무리 싫었던 관계였어도 마무리가 잘 되지않으면 평생을 신경쓸 거잖아. 깔끔하게 좋게 끝내러 가자고."
"……."
"네 뒤에서 기다릴게. 그럼 적어도 그 녀석한테 정 주지는 않을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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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