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惡緣) : 나쁜 인연>
살면서 잊고 싶은 기억이 몇 가지 있다.
첫번째는 술에 취한 아버지가 엄마를 죽였을 때. 두번째는 변백현에게 고백했다 차였을 때.
마지막은, 김종인이라는 존재 자체.
Ill-fated Relationship |
내 청춘이라고 해봤자 딱히 특별한 점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냥 여느 애들처럼 밥먹고 축구하고, 공부하고. 그게 끝이었다.
그런 내 인생에 오점을 남긴 사람이 김종인이었다. 처음엔 그냥 같은 반인 애, 그 중에서도 건드리고 싶지 않은 조금 노는 애. 그게 전부였다. 내가 뭘 했다고 그 애 눈에 띄었는지는 사실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건, 김종인은 나를 품길 원했다는 것이었다.
* * *
그 날도 어김없이 축구를 마치고 수돗가로 향하고 있었다. 땀을 닦은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데 어깨에 남은 미약한 축축함과 무게가 사라졌다. 고개를 돌리면 언제나 내 시선 끝에 자리한, 변백현이 있었다.
"남자 새끼가 맨날 수건가지고 다니는거 안 불편하냐" "그러는 너는 왜 내 수건 쓰는데?" "좋은 냄새 나니깐. 여기서 도경수 냄새난다."
괜히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아 수건을 뺏어 등을 한대 치곤 걸음을 빨리했다. 축구를 한 탓에, 얼굴이 계속 붉어져있었다는 사실이 고맙기만할 따름이었다.
대충 세수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려고 몸을 틀었을 때 여전히 낯선, 담배를 문 변백현이 김종인과 함께 담벼락에 자리하고 있었다. 얄쌍한 얼굴과 손이, 입에 물린 말보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멍하니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다 문득, 시선이 마주쳤다. 늘 그렇듯 아무 표정 없는 김종인과, 나를 보곤 샐쭉 웃으며 담배를 지지는 변백현.
"들어가자 경수야" "………." "야, 김종인 먼저 들어간다."
어깨에 손을 올리며 대충 김종인에게 손짓한 변백현에게선 알싸한 담배 냄새가 났다. 늘 그의 옷에서 나는 특유의 향과 섞여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또 다시 온 몸이 달아오르는 기분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칫하고 말았다.
무슨 용기가 어디서 어떻게 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조용히 살았던 인생, 한 방 저질러버리고 보자는 심산이었을지도 모른다.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변백현에게, 늘 내 시선 끝에 머물고만 있던 변백현에게, 지금 이 순간 마저도 온화하기만 한 너에게,
"백현아" "응?" "좋아해"
숨겨 놓았던 마음을 풀어버렸고 그 순간 모든게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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