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사는 고양이가 사람 같은데요. 07
36.
컴퓨터로 메시지를 전한 후에 그것을 계속 이용하지는 않았다. 평소처럼 녀석은 온 집안을 이유 없이 돌아다니거나 작업하는 나를 빤히 보다가 잠들거나, 해가 좋게 뜬 날이면 거실 베란다 창 근처에 가만히 밖을 내다보고 창을 열어주면 그제야 고맙다고 작게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다. 예전에는 사람 같다, 하는 생각이 주를 이루었지만 요즘은 고양이 같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저 녀석에게 너무 익숙해졌나 싶었고 고양이인 녀석에게 고양이 같다는 생각을 하는 나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요즘은 네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정말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먀.”
“왜.”
조금 겁도 든다. 그렇다고 진짜 탄이가 싫다는건 아닌데, 만약 돌아가게 된다면.
37.
“형!”
“박지민, 생활비 내라니까 안 오냐?”
“저 요즘 바쁜 남자라 그래요”
“바쁜 남잔가...?”
“아, 형!”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핸드폰을 타고 흘렀다. 재잘재잘 떠드는 지민이의 목소리를 듣다가 오랜만에 꼬맹이가 술자리에 나온다고 하는데 나도 나오지 않겠냐는 말에 슬쩍 녀석을 바라봤다. 잠든 척하는거 모를 줄 알고, 저렇게 뻔히 귀가 쫑긋거리는데. 두어번 헛기침을 내뱉곤 모른 척 다시 되물었다
“왠일로 꼬맹이가 나온다고 하냐.”
“형이 많이 힘든가봐요.”
생각보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컸고 너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느리게 흔들리는 꼬리를 보며 통화 볼륨을 제일 낮게 낮췄다.
“알았어, 갈게. 누구누구 나오는데?”
“원년 멤버 다!”
“그럼 이따 보자.”
“제가 문자로 시간이랑 장소 보내놓을게요.”
탄이한테 지민이 오빠가 많이 보고싶다고 전해주세요!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아직도 고개를 돌리고 있으려나, 하고 너를 바라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커다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고 지민이가 너 많이 보고 싶다는데, 하고 말하니 느릿하게 하품을 하며 꼬리를 크게 흔들었다.
38.
“누나가 예전에 그랬거든요. 현실도피가 절실하다고, 지금 누워있는 모습 보면 그래요. 그 때 해줬던 말이 계속 생각나서.”
술도 약한 놈들이 좋다고 그렇게 퍼마시다가 테이블에 하나 둘 쓰러져있다. 소주인 줄 알고 물을 서로 소주잔에 따라주며 마시고 있는 김태형과 박지민이라던가, 졸리다며 서로 머리를 맞대고 졸고 있는 정호석과 김남준이라던가, 우리 막내 우쭈쭈 하면서 계속 과자 안주를 입에 넣어주는 석진 형과 그걸 또 다 받아먹는 전정국까지. 난장판 사이에 그나마 멀쩡한 나와 꼬맹이만 서로 제대로 된 술을 주고 받아 마시고 있었다.
“아시잖아요, 저희 부모님이 아들 더 생각하시는거”
“아, 들은 적 있어. 너 서울에 올라가는거 걱정된다고 부모님이 누나랑 같이 서울 올라가라 했다고 했잖아.”
“맞아요, 그래서 학교도 휴학하고 저 뒷바라지 해준다고 일하다가, 출근하다가 그렇게 된건데.”
“너 잘못이라고 생각하냐?”
“어쩌든 궁극적인 이유는 저잖아요.”
“그건 맞아.”
“언제나 가차없네요, 형은.”
“너 항상 부모님 못 이긴다고 부모님께 누나에 대해서 강하게 어필한 적 없던 것 같은데.”
“...”
“그거부터 해. 너도 누나가 자기 하고싶은 일 했으면 하잖아.”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역시 좋은 사람이예요, 그 말에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술 취했으니 그렇겠지. 싶어 그냥 넘어갔다.
“너희 누나, 원래 잘 숨기냐?”
“뭘요?”
“상황이나 감정이나.”
“아, 맞아요. 자기 사정 말 안하려고 해요. 사고 당하고 기절하기 직전에 목격자한테 가족들한테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했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학교 들어갔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자기도 걱정 끼치면 안된다고 하면서. 술을 마시는 녀석의 속도가 빨라졌다. 너에 대해 더 알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듣자고. 아주 나중에라도 말해주는 너에게 실례라는 생각을 하며 꼬맹이의 속도에 맞춰 같이 술을 부었다.
39.
들키면 큰일난다, 하는 조건이 없음에 불구하고 괜히 혼자 눈치가 보였다. 내가 남동생에 대해 아는 것이 뭐가 있었지? 알고 있는 주변 사람이라곤 집에 자주 놀러오던 정국이와 동생 주변 사람들이 이름 대신 주로 ‘꼬맹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는 것 뿐이였다. 저번에 윤기가 얼핏 통화를 하면서 ‘꼬맹이’라는 단어를 말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내 동생을 가리킨 것일 줄은 몰랐으니까, 못 알아챌 수도 있는거야 하고 괜히 현실을 회피하고 본다.
지금 윤기와 통화하는 지민이의 목소리에서 계속 동생의 별명이 불리는 것이 신경쓰였다. 무슨 말일까 자는 척을 하며 귀를 쫑긋 세우다가 ‘많이 힘든가봐요.’ 하는 말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려진다. 머리 속에서 힘들어하는 동생이 그려졌지만 그것마저 회피했다. 나는 현실이 너무나 힘들었고 사실 지금 이 생활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도 했으니까.
스스로 마음의 죄를 만들어가는 상태였다.
잡생각에 잡혀들어갈 즈음 윤기의 헛기침에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다시 너에게 옮겼다. 음량을 줄였는지 이제는 지민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가만히 너를 바라보다 통화를 끝맺은 윤기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내왔고 그 소리에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끼며 나른한 하품을 뱉어냈다.
40.
하늘은 어두워질 만큼 어두워졌고 집 안에 불빛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창 밖에서 새어들어오는 옅은 빛 말고는 없었지만 고양이라 그런지 시야가 생각보다 자유로워서 여태 익숙해질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지금 이 시간까지 술을 먹고 있는건지, 걱정은 몰려오지만 너에게 전화를 걸 수도 문자를 할 수도 없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마냥 기다리는 것이였고 마음을 다 잡고 몇 분이 지나자 너가 술 냄새를 풍기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예쁜아.”
“먀.”
“이리와.”
평소처럼 이름이 아닌 조금 생소한 예쁜이라는 단어를 뱉으며 너는 현관 신발장에 기대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마나 많이 마신건지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너에게 다가갔고 비틀거리는 손길로 나를 품에 데려간 민윤기는 평소보다는 많이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솔직히 말해서 이기적인거 알고있는데”
“먀.”
“너가 계속 내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거든.”
“...”
“하지만 그건 진짜 탄이에게도 너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도 실례인거 알고.”
“...”
“내 맘대로 잡을 수 없는거 알아.”
“먀아.”
“만약 너가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면 돌아가기 전에 말해줘.”
“...”
“그러기가 힘들면.”
“...”
“나중에 내가 너를 찾아갔을 때, 약속 지켜줘서 고맙다고.”
“...”
평소보다 뜨거운 너의 손이 내 몸을 감싼다. 그리고 너의 이마가 내 이마에 콩, 하고 부딪혀 온가와 온기가 닿아 묘한 따뜻함을 느끼게 했고
“날 잊지 않았다고, 내민 손 잡아줘.”
너의 말에 내 목소리가 닿길 바라며 간절하게 약속하겠다고 여러번 마음 속에서 웅얼거렸다.
알아. |
너는 날아갈 것이다. 날아가지 마. /새, 심보선 |
반갑습니다. |
늦어서 죄송합니다. 여름 감기, 독하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소중한 저의 조각들.
BGM 관련 문의가 들어왔었는데 완결 후 정리해서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답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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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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