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몰라…”
“윤기 씨…”
"오빠 믿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입술이 내 입술 위로 닿는다. 깍지를 낀 손에 힘이 들어간다. 풀색 머리카락이 내 목덜미를 스친다. 이토록 유혹적인 민트라니. 나는 조금 감격한다. 용기를 내어 입술을 벌린다. 하아, 밭은 숨을 내쉬며 잠시 시선을 나누는데,
…탄…어, 나…
응?
김탄…일…잖아-!
오빠, 뭐라고?
누가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이 중요한 순간에-! 짜증스럽게 고개를 흔들며 눈을 뜨자마자 익숙한 천장과 함께 짜증나는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좀 일어나라고! 전날 처먹은 치킨에 수면제를 탔나…”
남사스러울 정도로 새빨간 팬티 한장만 입고 있는 김태형이다. 씨발, 그러니까 아까 그거, 꿈?
처음으로 꿈에 민윤기가 나왔는데, 타이밍 졸라 구린 새끼. 투덜대며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물론, 한번 깬 잠은 다시 오지 않는다. 다시 잠든다 하더라도 레어템인 민윤기가 꿈에 다시 나올 리도 없다. 울컥. 꿈에라도 만난 님을 더듬어보지도 못했다. 애써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잠재우고 눈을 다시 감는데 이불이 살포시 들춰지는 느낌과 함께 항공모함 같은 발이 들어온다. 존나 무자비하게 내 옆구리를 찔러댄다.
“아, 하지 말라고 또라이 새끼야!!!”
“이열~ 까칠한데, 우리 돼지. 아침부터 지랄인 걸 보니 또 남자한테 차인 거?”
“간땡이 붓는 약 드링킹하셨나 봐여? 저번처럼 부랄을 한번 차 줘야 정신 차리나?”
발끈하며 이불을 젖히고 일어났더니 김태형이 씨익, 특유의 ‘걸려들었다’는 듯한 미소를 짓는다. 어째 불안하다. 눈꼽도 떼지 못한 눈을 손등으로 비비며 원수같은 놈을 노려보자, 한 손에 후랑크 소시지를 들고 있던 김태형이 두 팔을 벌리며 눈을 감는다.
눈을 감는…?
부와아앙-
“…”
“…”
뿌우, 북.
“가스발사. 헿”
“아 개더러워 미친 새끼야!!! 시발, 진짜 보자보자 했더니-!”
“꺄하하하핡!!!”
뭘 쳐먹었길래 저런 냄새가 나지. 방 한가운데 똥을 싸질러놓은 듯한 고약한 악취를 배출해 놓고 내 미니 소파를 뛰어넘어가는 꼬라지가 아주 광인이 따로 없다. 마음 같아서는 멱살을 붙잡아 저 차림 그대로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당장은 숨 쉬는 게 급했다. 손을 부들부들 떨며 창문을 열자 방문 앞에 기대 선 김태형이 눈을 찡긋거리며 윙크를 날린다. 저걸 좋다고 따라다니는 기집애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머리를 대충 묶으며 애새끼 같이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태형에게 베게를 집어던졌다.
2.
“탄이 너, 어째 요즘 갈수록 늦게 일어나는 것 같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가 봐.”
소시지 볶음을 내 쪽으로 밀어주는 큰오빠의 걱정 섞인 시선에,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꾸했다. 물론 이 말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내 오른쪽에는 김태형이 앉아 있으니까.
“형 저거 개구라, 개구라. 쟤 맨날 동아리실에 들어앉아서 술 처먹-읍.”
“하하, 김태형 너 어디 아파?”
“김탄, 너 공부 안하고 술 먹니?”
“그럴 리가요, 오라버니.”
큰오빠의 의심어린 시선이 내 얼굴 위로 닿고, 분노에 찬 내 주먹은 식탁 밑을 통해 김태형의 허벅지에 닿고.
“아아아! 혀엉! 김탄소가 주먹으로 내 허벅지 격파했어!”
“아, 아깝다. 다리에 구멍 뚫어줄 수 있었는데.”
“들었어? 들었어? 우리 집안에 이런 폭력사건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 줄 알앍!!!!”
“아침부터 소세지를 잘못 쳐먹었나, 우리 태형이가 왜 또 헛소릴까.”
“...그만 좀 싸워라, 이것들아.”
3.
“야, 막내야. 솔직히 말해봐. 형이 화장해도 저거보다는 낫지 않냐?”
“봐줄 때 싸물어라.”
“어디가서 쟤랑 나랑 쌍둥이라고 그러기 쪽팔리다니까. 하, 이 우월한 유전자를 어쩜 좋아.”
친구들이랑 축구한다고 현관에서 신발 신는 정국이를 끌어서 내 방에 데려다 놓고 하는 소리라는 게 저렇다. 저게 씨발 오빠라고, 빡쳤지만 아이라인을 그리는 중이라 참는다. 나는 김태형이 쳐다보는 거울에 대고 시원한 뻐큐를 날려주었다.
“아 형, 나 애들이랑 축구하러 가야 돼. 늦었어.”
“야야, 그러니까 이 질문에만 답을 해줘봐. 형이 잘생겼냐, 저-기 저 호박 얼굴에 줄 긋는 김탄이 잘생겼냐.”
“난 안 잘생겼음. 존나 예쁠 뿐이지.”
“우웩.”
“…누나 자꾸 이딴 식으로 나오면 막내 형 고를 거야.”
이 집구석에 내 편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