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집은 바로 앞이면서 맨날 배달시키고 지랄이야. "
사장이 듣지 못할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머리에 헬멧을 쓰던 윤기는 멀리서 " 가까운 곳 가면 오토바이 타지 마, 이 새끼야! " 라며 성화를 내는 사장의 목소리에 헬멧을 벗어던지고는 " 예. " 라는 대답을 하고 치킨집을 빠져나왔다. 그럴 거면 지가 배달 하든가. 푹푹 찌는 날씨에 짜증이 더 솟구쳤다. 아오, 씨발! 길거리라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 하고 속으로 욕을 하며 머리를 헝크리는 윤기였다. 가다가 바닥에 돌이라도 있으면 그 돌을 발로 차며 화를 식히는 윤기는 어느새 도착한 106호에 발걸음을 멈췄다. 집 인에서 들려오는 여자 비명소리에 " 무슨 티비 소리를 저렇게 크게 해놓냐. 잘못 들으면 오해하겠네. " 라며 윤기가 혼자 중얼거리다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누르자 여자 비명 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조용해진 집에 윤기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빨리 치킨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초인종을 한 번 더 눌렀다.
띵동-.
아무도 나오지 않자 짜증이 난 윤기가 문을 두드렸다. 더워죽겠네.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하던 윤기는 나올때까지 기다리자는 심보로 문 옆에 기대섰다.
" 치킨 다 식었다고 지랄하기만 해 봐라. "
윤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열리는 문에 윤기가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꼿꼿이 세웠다.
" 죄송합니다. "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숨긴 채 나온 남자가 처음 한 말이였다. 집에서 뭘 하길래 저러고 있어. 속으로 남자를 이상하게 생각하다가도 사장한테 한소리 들을까 남자에게 가격을 말했다.
" 27, 000원입니다. "
" 여기, "
" .. 도와주세요. "
집 안에서 들리는 희미한 여자 목소리에 남자와 윤기 둘다 조용해졌다. 가만 보니깐 피 냄새도 나는 것 같은데. 윤기가 남자를 바라봤다. 윤기가 남자의 몸을 훑어봤다. 남자의 와이셔츠 손목에 묻어있는 피가 눈에 들어왔다. 윤기가 남자의 손목을 잡으려 하자 남자가 윤기에게 5만원짜리 지폐한장을 건넸다.
" 잔돈 필요없어요. 그냥 가세요. "
" 저기요. "
" 안녕히 가세요. "
" 아니, 잠시만! "
큰 소리를 내며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윤기는 손에 있는 5만원짜리 지폐를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 아파트 단지를 나왔다.
" 그래, 뭐 별 일이야 있겠어. 괜히 나서서 큰 일 만들지 말자. "
그저 스쳐지나가는 자신의 삶의 일부라고 생각을 마친 윤기는 약간 무거운 발걸음으로 치킨집으로 향했다.
***
" 안녕하, 아, 깜짝이야. 왜 물건을 던지고 그래요. "
출근 시간을 딱 맞춰 왔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맘에 안 든다는 듯이 씩씩거리며 윤기에게 휴지를 던지며 소리를 지르는 사장이였다. 자신이 던진 휴지들을 이리저리 잘도 피하는 윤기가 맘에 안 들었는지 얼굴까지 붉어져 윤기에게 쿵쾅거리며 다가온 사장은 다짜고짜 윤기의 머리를 때렸다. 윤기가 인상을 찌푸렸다.
" 왜 때려요. "
" 너 이 새끼, 어제 106호 가서 무슨 짓을 한거야?! "
" 무슨 짓을 하긴 무슨 짓을 해요. 그냥 치킨 배달하고 왔지. "
" 배달원이 잔돈도 제대로 안 주고 갔다고 방금 항의 전화 왔어, 이 놈아! "
사장의 마지막 말에 윤기가 콧방귀를 꼈다. 분명 어제 잔돈 필요없다고 그랬는데. 윤기가 억울함에 사장에게 뭐라 말하려 입을 열자 사장이 윤기에게 치킨을 건넸다.
" 그거 들고 가서 사과하고 와! 그 치킨 값은 니 월급에서 깎을 거니깐 알아서 해. 뭘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어? 뭐해, 얼른 안 가?! "
" ..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
" 뭐?! "
"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녀오겠습니다. "
애써 화나는 걸 숨기고 나왔건만 문을 열고 닫는 윤기의 행동이 " 나 화났어요. " 라고 말 하고 있었다. 안에서 사장의 한숨소리와 함께 윤기를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윤기가 사장이 안 보는 틈을 타 가게 앞에 침을 뱉고 106호로 향했다. 진짜 드러워서 못 해 먹겠네. 머리를 잔뜩 헝크리던 윤기가 뭔가 생각 났다는 듯 봉지 안에 있던 콜라를 꺼내 있는 힘껏 흔들었다. 소심한 복수였다. 이번에도 몇분 안 돼 도착한 집에 윤기가 발걸음을 멈추고 초인종을 눌렀다.
" .. 누구세요. "
집 안에서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에 윤기가 집을 잘 못 찾아왔나 하고 주위를 두리번 거렸지만 집 대문에 떡하니 붙어 있는 106이라는 숫자에 윤기가 이상하다며 혼자 중얼거리다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렀다.
덜컹, 하고 열린 문과 함께 나온 사람은 윤기가 평소에 보던 남자가 아니였다. 처음보는 여자였다. 여기 원래 여자가 살았었나? 여자의 얼굴을 보자 왠지 모르게 화가 났던 마음이 누그러지는 느낌이 든 윤기였다.
여자는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긴 팔, 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 얼굴 곳곳에 난 생채기와 군데군데 있는 피딱지에 윤기가 멍하니 여자를 바라봤다. 가만히 윤기와 눈을 마주하던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 .. 지금 아저씨 없는데-. "
" 네? "
" ... "
" 아, 아니, 그 어제 제가 잔돈을 제대로 안 남겨주고 가서 죄송해서 치킨 한마리 튀겨왔어요. 드세요. 여기 잔돈. "
" .. 감사합니다. "
여자가 조그만한 손으로 잔돈과 치킨을 건네 받고는 윤기에게 " 수고하세요. " 라는 말을 하며 문을 닫으려 하자 윤기가 급히 손으로 문 턱을 잡았다. 여자가 놀라 윤기를 바라봤다. 고등학생때 좋아하던 여자애한테서나 느껴보던 감정을 느끼기는 실로 오랜만이였다. 게다가 처음 보는 여자한테 이런 떨림을 느낀 윤기는 첫 눈에 반했다는게 어떤 느낌인지 이제서야 알게 됐다.
정적 속에서 윤기가 입을 달싹였다. 여자는 윤기가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 채고 윤기가 말할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한참동안 바보처럼 입만 벙긋거리던 윤기가 드디어 말을 했다.
" 번호 좀 주세요. "
힘겹게 입을 연 윤기의 귀가 붉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윤기의 용기를 처참히 짓밟는 여자의 대답이였다.
" 핸드폰 없어요, 저. "
힘 없이 닫히는 문을 가만히 바라보던 윤기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머리를 쥐어 뜯었다.
쪽팔리게, 진짜.
***
간만에 쉬는 날이라 집에서 뒹굴거리던 윤기는 석진의 연락에 짜증을 내며 몸을 일으켰다. 대충 옷만 갈아입고 석진이 부탁한 서류 봉투 하나만 챙겨 집을 나와 경찰서로 향하던 윤기는 어제 봤던 여자가 생각나 경찰서가 아닌 아파트로 향했다. 정확히 언제 오라곤 안 했으니깐 상관없겠지. 아까 전 석진의 급한 목소리를 잊은 건지 윤기는 경찰서가 아닌 아파트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도 집에 있을까. 아파트 단지에서 기웃거리며 집 앞에 찾아갈까, 말까 고민을 하던 윤기는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어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자신의 가슴팍에 부딪혀 엎어진 여자덕에 놀란 윤기가 여자를 일으켰다.
" 괜찮으세요? "
" .. 도와주세요. "
" 네? "
" 도와주세요, 저 좀, 저 좀 숨겨주세요. "
영문도 모른 채 여자의 손을 잡고 무작정 뛰어 숨을 곳을 찾던 윤기의 눈에 캐리어가 들어왔다. 누군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갔다주면 돼니깐. 윤기가 캐리어를 가리키며 여자에게 말했다.
" 저기 들어갈 수 있겠어요? "
" ... "
" 지금 많이 급한 거 아니에요? 손톱 물어 뜯지 말고 대답해봐요. "
여자가 불안 한 듯 손톱을 물어뜯자 윤기가 여자의 손을 잡아주며 여자를 타일렀다. 도와줄게요. 윤기의 말에 여자가 윤기와 눈을 마주했다. 윤기가 여자를 바라보며 캐리어를 가리키자 여자가 못 들어 간다며 고개를 저었다.
" 씨발 년, 잡히기만 해 봐라. "
" .. 아, 빨리, 숨을 곳-. "
근처에서 들려오는 욕짓거리에 윤기가 인상을 찌푸리며 여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 나 믿어요. "
여자가 윤기의 말에 망설이다 캐리어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질끈 감은 여자를 보던 윤기가 금방 꺼내줄테니 안심하라며 여자를 달래주었다. 자크까지 확실하게 잠군 윤기가 캐리어를 끌로 아파트 단지를 지나쳐 나왔다.
" 어디로 도망간거야. "
윤기의 옆을 지나쳐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한 윤기는 캐리어를 끌고 급히 근처 곤중화장실로 향했다. 다행히도 남녀공용이였다. 윤기가 캐리어를 열어 여자를 꺼내주자 여자가 윤기의 손을 붙잡았다.
" 미안해요, 답답했죠? "
" ... "
" 혹시 어디 다쳤어요? "
윤기의 말에 여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얼굴에 윤기는 그저 가만히 여자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다가 뭐가 그렇게 슬픈지 윤기에게 안겨 우는 여자였다. 잠시 멈칫한 윤기가 여자의 등에 손을 올려 토닥여줬다.
" 괜찮아요. 울지마요. "
그저 스쳐지나가는 윤기의 삶의 일부일줄만 알았던 여자가 서서히 윤기의 삶을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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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