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와르, 조직물 전정국 조각 ;
추적추적 내리며 내 귀를 자극하는 빗소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핸드폰의 홀드 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하니
시간은 새벽 세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쉬는 날이기에 저녁 일찍부터 잠을 잔 까닭일까, 머리에 희미하게 두통이 느껴졌다.
다시 자기엔 이미 틀린 것 같아서 침대 옆에 놓여있던 담배와 검은색 카디건을 꺼내들고 베란다로 나섰다. 비는 꽤나 많이 내리고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베란다를 통해 바깥을 바라보았다. 방충망을 통해 살짝살짝 튀기는 빗물이 내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다.
괜히 담배를 피웠나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담배를 끊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빗 소리는 나쁘지 않았다. 세상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져있는 기분이었다. 비. 그날도 비가 존나게 많이 내리던 날이었는데.
* * * * * * *
" 누나, 우리 일 처리 존나 못 한 거 알죠. "
" ...... "
" 누나가 실패할 정도면 그 새끼들 얼마나 실력이 좋은 거야. 아니면 누나, 요즘 감 떨어졌어요? "
" 너 지금 나 놀리니? "
" 허, 누나 생각해서 얘기해 줘도 지랄이세요. 똑바로 하라고요. 이러다 누나 다칠 것 같은데. "
" 내 생각을 네가 왜 해, 씨발. "
1. 이게 그 녀석과 나의 첫 대화였다. 전정국과 나는 같은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다. 몇 년 동안 훈련을 받으면서 많이 봐왔기 때문에
얼굴은 이미 질릴 정도로 익숙해져있었다. 어쩌다 한 번 눈이 마주치면 내게 씨익 하고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워낙 사내에서 남자와 여자가 대화를 하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전정국과 온전한 대화를 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엄격했다. 남녀 간의 연애면 더더욱.
개인 훈련을 마치고 담배를 피우러 나왔을 때 그를 마주쳐도, 우리는 아무 말없이 나란히 서서 담배만을 태울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그다음의 대화는 성립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 번, 말이 트였다. 그게 바로 저 대화였다. 건방진 새끼, 하면서 욕이 앞서 나왔지만 더 이상의 말은 삼켰다. 전정국이 나보다 실력이 좋은 것은 사실이니까.
더 이상 한 마디라도 말하면 나만 비참해질 것 같아서 말을 아꼈다.
2. 조직 내 여자 저격수. 그게 나였다.
조직 내에는 여자 저격수가 있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했던가. 나는 일처리를 하면서 단 한 번도 타깃으로 삼은 대상을 죽이지 못한 적이 없었다.
무조건 성공, 물론 상처도 없이. 속도 계산과 직감은 조직 내에서 꿀리지 않았다.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나는 칼을 잘 다루었기 때문에
스나이퍼가 질릴 때쯤이면 칼을 사용하곤 했다. 전정국이 나한테 말을 걸었을 저 시점은 처음으로 일을 하다가 실패했을 때였다. 처음 하는 실패였기 때문에
느껴지는 상실감과 고통은 컸다. 한 번도 죽이지 못한 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집중이 되지 않는 하루였다.
3. 전정국은 나보다 더 늦게 합류, 그리고 나이가 어렸음에도 소름이 돋을 정도의 일처리 실력에 머리 회전이 빠르고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모습에 조직 내 중요한 존재였다.
그런 전정국이 좆같았지만, 나를 보는 전정국의 눈빛을 보면 현혹될 것 같아서 일부러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이 더 좆같았다.
4. 저번에 맛본 실패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감각이 무뎌진 것 같아 더 많은 개인 훈련을 받았고,
나 혼자 더 많은 종류의 총기를 만지고, 다루는 일을 더 많이 하곤 했다. 실력은 전보다 늘었지만 한 가지 걸림돌이 있다면, 그건 단연 전정국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어려워졌다. 아무 계기가 없다는 것이 더 짜증이 났다.
내가 미쳤나 하는 생각에 담배를 입에 무는 일이 잦아졌다. 확실히 피우는 양이 전보다 늘긴 했다. 요즘에 스트레스가 많아졌나, 처리해야 할 일이 많긴 하다.
아니면 내가 전정국을 좋아하나, 그가 밉진 않다.
5. 꽤 중요한 임무를 받았던 날이었다. 그날은 비가 꽤 많이 내렸다. 현장에 투입되었던 멤버는 나와 전정국을 포함해서 6명.
중요한 임무였음에도 적은 인원이 투입되었다. 그만큼 보스는 우리의 실력을 믿어서일까. 각자 위치에 진입했다.
우리는 무전기를 통해 대화했다. 간간이 무전기에선 멤버들의 욕지거리도 빠짐없이 다 들렸다.
" 5층 진입. "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마찬가지로 임무를 수행했다. 이번 일은 중요하다고 했는데,
의외로 쉽게 끝난 것 같았다. 내가 맡은 구역만이 이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총을 잡고 대기하기를 몇 분, 상대방을 처리하기까지의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상외로 너무 빨리 끝나버린 임무에 시시함을 느끼며 검은색 마스크를 벗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무전기를 들었다.
" 임무 완료 했습니다. "
바깥 상황을 살피며 리더의 무전이 올 때까지 옆에 있는 기둥에 몸을 기대어 쉬고 있을 때쯤, 무전이 왔다. 치지 직 거리는 소리 때문에
정확하게 알아듣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 스나이퍼, 1층 투, 입. 가서 전, 정국. 도와. "
치지 직 거리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음에도 전정국이라는 소리는 정확하게 들렸다. 차라리 무전기가 고장 나길 바랐다.
그럼, 고장 났다는 핑계로 다른 멤버가 가게 하면 되는데. 다른 멤버들은 각자 임무 수행하기 바쁜 것 같았다. 별 수가 있나, 어쩔 수 없이 내가 가야지.
걱정되는 것은 내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을까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점은 전정국을 도와주라니, 천하의 전정국을. 중요한 임무라는 것이
이제야 느껴졌다. 전정국이 딸릴 정도면.
6. 마스크를 다시 쓰고 1층으로 향했다. 1층에 도착했을 때는 전정국은 없고 피 냄새를 풍기는 시체 밖에 없었다.
신발에 피가 묻는 느낌에 기분이 나빠 욕을 내뱉었다. 씨발, 신발에 피 묻는 게 제일 좆같아. 기분 나쁘게.
눈앞에 전정국이 보이지 않았지만 전정국을 찾지 않았다. 그냥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쯤,
누군가 쳐다보고 있다는 직감에 곧바로 뒤를 돌렸다. 뒤에 위치한 기둥 뒤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권총을 꺼내 그 기둥으로 향했고, 조용히 사살했다. 총보다는 칼이 나은데. 아, 총에 소음기를 달 걸 그랬나. 좀 조용히 할걸.
이제 다시 몰려오겠지. 전정국은 어디 갔을까. 그렇게 전정국을 부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을 때 누군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어 그의 품에 안아 넣었다.
나는 외지고 구석자리에 들어오게 되었다.
" 쉿. "
그의 얼굴을 확인하니, 전정국이었다. 한참을 뒤에서 나를 안고 놓지 않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니 그는 나를 보며 픽 하고 웃더니 말을 꺼냈다.
" 뭘 봐요. "
" 정국아, 너 이번에 일처리 존나 못하고 있는 거 알지. "
" ...... "
" 감 떨어졌어? "
내 말에 전정국은 웃음만 보일 뿐이었다. 아무 말을 않기에 한마디 덧붙였다.
" 너나 나나 똑같아. "
" 그렇네요. "
7. 전부터 누나랑 저랑 많이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좋아.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그대로 키스했다.
(+) 항상 생각은 하다가 글은 처음 써 봅니다..
조각글에서 프롤로그로 수정했어요!
오래 봐요 우리 ^ㅁ^
암호닉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