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영 사범님이 좋아요, 아니 싫어요
"돌려차기 하나!"
"이얍!"
"둘!"
"이얍!"
늦은 저녁시간임에도 체육관 안은 관원들의 기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여러 명의 학생들이 2인 1조를 이루어 미트를 잡고 발차기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남학생들 사이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한 여학생이 있었다. 홍일점이라 돋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원래 그 나이대 여자아이라면 머리를 청순하게 푸르고 얼굴에 옅게라도 화장기가 깔려있을 법한데 머리를 하나로 질끈 올려 묶고 그 흔한 림밥 흔적도 하나 없는 얼굴로 남학생들과 같이 쉴 틈 없이 기합에 맞춰 수련을 하고 있어 여자 아이의 모습이 더 돋보였다. 여자아이의 허리에는 '최여주' 라고 쓰인 검정띠가 매여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합 소리가 이어진 지 십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잠깐 쉬었다가 하자는 사범님의 말에 모든 학생들이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숨을 돌렸다. 아무래도 여자인지라 남자애들에 비해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여주는 아예 바닥에 드러누운채로 숨을 돌리고 있었다.
"아이고 최여주,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이세요?"
"하아, 하. 힘들어서,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후, 아니 사범님은 어떻게 발차기만 20분 내내 시킵니까? 이건 관원 학대아닙니까?"
"그래서 불만이라고? 그럼 지금 일어나서 수련 다시 할까?"
"아닙니다! 저희를 훌륭한 인재로 만들기 위한 사범님의 큰 뜻을 제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아이 착하다."
누워있는 여주의 다리를 발로 아프지 않게 툭툭 치며 말을 거는 남자의 허리에는 여주와 마찬가지로 '권순영' 이라고 쓰인 검정띠가 매여있었다. 사범님이라고 불린 순영이 누워있는 여주를 보고 타박하자 발끈한 여주가 억울하다는 듯이 채 돌리지 못한 숨을 헉헉거리며 투정을 부렸지만 일개 관원이 악랄한 사범님의 권력을 넘지 못하고 조용히 짜질 수밖에 없었다.
여주는 권력에 짜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는 순영을 보고 '내가 저 인간한테 맨날 당하는 게 억울해서라도 체육관을 때려치든가 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체육관 한 구석에 있는 자신의 가방에 있을 물통을 찾았다. 그런데 왜 아무리 찾아도 물통이 안 나오는거지…. 여주는 한참을 가방을 뒤적거렸지만 이내 집에서 나오기 전 신발을 신으면서 현관에 물통을 고이 놓고 온 게 떠올라 신경질적이게 가방을 다시 바닥에 던져두었다. 안 그래도 저 사범님이 사람 약올리는데 하필 왜 물도 안 챙겨와서 이렇게 목이 말라야 하는건지 여주는 속으로 불평을 곱씹었다. 제 옆에서 서로 물병을 돌려 마시고 있는 남학생들을 보면서 왜 자신은 혼자 여자라서 저 물도 못 얻어먹는건지 스스로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여주의 앞으로 물병 하나가 내밀어졌다.
물병을 내미는 손을 눈으로 따라가자 그 끝에는 아까까지 여주를 신명나게 타박하던 순영이 있었다. 여주는 순영이 내민 물병을 보고 아마 마시라고 내민 것 같지만 선뜻 받자니 쑥쓰러운 느낌에 받지도, 거절하지도 못하고 쭈뼛거렸다. 그러자 순영이 물병의 뚜껑을 열어서 다시 내밀며 "내가 뚜껑까지 따다 바쳐야겠냐?" 라고 말해서 여주는그 물병을 받아 들었다. 오늘 체육관 와서 물 한 모금도 못 마셔서 그런지 물이 꿀맛 같아서 물을 마시고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자 순영이 여주의 표정을 보고 바보 같다며 또 놀렸다. 여주가 혈압이 오르는 기분에 물병으로 때리려는 제스처를 취하자 순영은 그런 여주의 손을 피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힘들면 더 쉬다가 들어와. 알겠지?"
순영은 그 말과 함께 여주의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주고는 다른 쪽에서 쉬고 있던 남학생들 틈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주는 두 손으로 순영이 준 물병을 소중하다는 듯이쥐고 남자애들 틈에서 장난치며 웃고 있는 순영을 멍하니 계속 눈으로 쫓았다. 평소에는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라 여주를 화를 돋궈 투닥거리는 사람이었지만, 가끔 저렇게 사람을 설레게 스트레이트로 훅 치고 들어오는 순영 때문에 여주는 마음한켠이 무거웠다. 저렇게 가끔 설레게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순영은 자기에게 마음이 없고 자신은 순영을 좋아했으니까. 이미 그 괴리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여주는 그저 좋아한다는 마음만 가지는 것도 불편했다.
"우와 여자다. 칙칙한 우리 체육관에도 드디어 빛이 드는건가. 꼬맹이, 몇 살이야?"
처음 체육관에 들어왔던 날 봤던 순영의 미소가 아직까지 잊히지 않고 여주의 마음 속에선 아직도 선명하게 그려졌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허무맹랑하게 생각했던 여주의 생각이 무색하게 순영은 여주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았었다. 처음엔 순영의 그 해맑은 미소가 예뻐서 관심을 가졌었는데 배려심 있는 순영의 행동에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젖어들었다.
하지만 조금씩 젖어가던 마음이 이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지만 여주는 순영이 자신을 여자로 보는 마음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순영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여주는 비록 순영과 자신과 관계의 끝이 마지막까지도 사범님과 관원으로 끝난다 해도 어차피 가망도 없는 관계, 지금과 같은 관계도 유지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순영은 그런 여주의 마음도 모르는지 방금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잔잔한 호수 같던 여주의 마음에 돌을 던져 파장을 만들고는 했다. 그럴때마다 여주는 마음이 간질거리면서도 항상 무언가 얹힌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기에 여주는 순영이 좋았다. 아니 싫었다.
* * *
안녕하세요. 인스티즈에서 처음으로 인사드리게 된 여름눈꽃입니다.
앞으로 권사범님과 여주의 이야기를 써나갈 예정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쓰는 작품이라 제가 되게 애착이 많은 작품이에요.
애착이 많은만큼 더 노력해서 쓰도록 할테니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
암호닉은 자유로 신청해주세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그리고 작품에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지적 받고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