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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쌍용] 미도리빛 트라우마 1
완연한 봄의 날씨는 따스했다. 열일곱, 소년과 청년의 사이 속 변화의 끝자락에 머무는 시기의 왕성한 고등학생들의 혈기는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성용이 있었다. 이마와 머리카락을 흠뻑 적신 땀들은 안중에도 없는 건지 움직이는 두 다리는 멈출 기세가 없었다. 키큰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도 머리 반통은 더 앞선 성용이었기에 자철의 눈에 쉽게 들어왔다. 단정한 교복 차림에 흐트러짐 하나 없는 깔끔한 매무새, 그런 자철에게는 땀에 젖어 축구공을 차기에 혈안이 올려진 남자아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철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상한 애다.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점심시간 축구경기를 보더니 이내 표정이 바뀌어 진지하게 경기를 관람하는 그들에 대한 동경이 깃든 자철의 모습을 본 청용은 그에 관심을 기울이던 것도 잠시 깔끔하게 자철에 대해 제 주관을 결정짓곤 숨을 헐떡이며 스탠드로 돌아오는 성용에게 손을 쥐고 있던 음료수를 내밀었다. 성용아 먹어.
"오글거리게 음료수도 사다주고 아주 사귀지들 그러냐?"
"뭐래. 청용이 갈구지마 병신새꺄."
주영의 발언에 잠시 심장이 저릿한 청용이었다. 또 나름 자신을 챙겨주는 성용이지만 그 모습에 또 씁쓸했다. 바보같게도 성용은 몇년간 자신을 쫓아다니는 청용을 의심하지도 하려 들지도 않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애석하게도 청용은 성용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했다. 둘은 중학교 때 만나 지금까지 줄곤 '친구'라는 두 글자로 얽매여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끝나가는 수업 시간 종소리를 기점으로 청용은 운동장 모래 묻은 바지를 털곤 일어났다. 먼저 가는 성용의 뒷모습이 눈에 밟혔다. 우선 제 눈 앞에만 있어 주면은 되었다. 청용은 체념했다. 쫄래 쫄래 따라가는 청용을 알아주기라도 한 모양인지 성용은 보폭을 줄이곤 뒤를 돌아 봤다. 그러곤 청용이 제 옆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 빨리 좀 와, 타박하는 목소리엔 짜증 대신 다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이렇기에 자신이 더욱이 제 맘을 정리하지 못하는 것임을 성용은 알까. 아니, 절대로 모른다. 청용은 생각했다.
축구 경기를 끝낸 성용은 와이셔츠를 팔락 거리며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진동하는 땀냄새도 일상 다반사인 남고에서 늘 비어 있는 제 옆자리를 보며 성용은 혀를 찼다. 제 인생 지 스스로 말아 먹는 놈 하나 더 있구나. 그렇게 수업에 집중하려던 것도 잠시 갑자기 제 옆에 생긴 하나의 둥글둥글한 머리통에 고개를 팍 돌려 제 옆의 자철과 마주한 성용이었다.
심한 감기에 걸리는 통에 학교를 못 온 딱 하루 자신의 반에 전학 온 자철은 병치레가 자주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교실에서 성용의 눈에 보인 적이 없었다. 온갖 소문만 무성하기에 청용마냥 희고 얇을 줄 알았더니 대충 어림 잡아 보이는 체격은 개인적으로 운동을 꽤 한데다가 구릿빛 피부가 떡 하니 자리 잡아 있자 꽤 놀란 성용이었다.
[뭘 봐.]
교복만큼이나 깔끔한 교과서 모퉁이에 글씨를 적어 넣어 뾰루퉁한 표정으로 자철이 성용에게 내민 쪽지는 한참동안 자신에게 열렬한 시선을 보내던 성용에 대한 일종의 따짐일 것이다. 보이는 글씨체가 뭔가 자철답다. 늘 수업시간에는 잠을 자느라 멀리했던 연필을 손에 쥔 성용은 입을 헤쭉 벌리고선 꾹꾹 글자를 써 내려갔다.
[너 이름 뭐냐?]
동문 서답인 대답에 자철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만 보라고." 자철은 직접 말을 하곤 더 이상 말을 섞기 싫은 모양인지 고개를 푹 숙여 잠을 자는 자세를 취했다. 그런 그 둘 덕에 애꿎게 마음 여려 혼내지도 못하는 수학 선생만 골치였다. 답 없는 자철을 마냥 바라보던 성용은 손가락으로 자철의 머리를 툭툭 쳤다. 야, 야.
금새 잠이 드는 모양인지 자철은 답이 없었다 그런 둥그런 머리통을 보며 성용은 선생님께 들리지 않게 자철에게 가까이 숙여 속삭였다.
"난 기성용."
"어쩌라고."
안 자네?
..씨발
그래서 넌 이름이 뭔데
이상한 애다.
다시는 저 오지랖 넓은 듯한 성용이 제게 말을 걸어 주지 않기를 바라며 눈을 꾹 내리 감곤 고개까지 틀어버려 말이 없는 자철을 보며 성용은 생각했다. 하지만 청용과 그를 본 다른 사람들처럼 쉽게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성용은 자철에게 그저 판단이 아닌 호기심이 들었다. 그간 성용에게 존재했던 부류 중 전혀 새로운 존재였다. 자철의 갈색빛으로 탄 목이 흰 와이셔츠와 묘하게 어울린다 생각하는 성용이었다. 그렇게 성용도 자철을 따라 엎드려 잠에 취했다.
왜 전 내용과 내용이 다르시냐 하시면 이번 편은 자철과 성용 청용 셋의 첫만남부터 자철과 헤어지게 된 경위까지 과거편의 시작입니다. 덕분에 프롤로그만 두개인 듯한 이 느낌..^^; 글잡에 올리는 첫 글인데 덧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한 감동.. 그리고 짧은 내용 죄송합니다ㅜ 0편의 우중충한 분위기가 과거편이라 그런지 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암호닉 신청해 주신 담님 냉면님 감사합니다^^~ 신알신 해주신 다른 독자분도 감사해요ㅎㅎ각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