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아리는 10
-쵸코-
나는 모순적이다.
죽는 게 두렵지 않다고 말해왔지만 사실 죽는 게 두렵다.
[우리 동아리는 10]
이틀이나 더 병원 신세를 진 뒤, 드디어 환자복을 벗을 수 있게 됐다.
짐을 급하게 챙기는 나를 도와주던 호석이가 얕게 웃으며 내 짐가방을 대신 들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좋아? 아주 짐을 급하게 챙기네."
"음, 병원에서 나갈 수 있다는 거에 좋다기보단..."
사실 나는 병원에서 가만히 누워있는 게 훨씬 좋았다. 밖으로 나가면 신경 써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니까.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서둘러서 병원을 나가려고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애들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박지민이랑 김태형. 그 둘 때문에.
저절로 내 기억은 그때 그 끔찍한 시간으로 다시 돌아갔다.
민윤기랑 약속을 하며 대화를 나눈 게 기억이 나는데 내가 정신을 놓고 다시 잔 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제 잠든 것인지 희미한 의식 속에서 내 병실이 요란스러운 거에 의문을 느껴 천천히 눈을 떴는데 바로 눈앞으로 보이는 김태형의 얼굴에 놀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악!!! 뭐야!!!"
내가 비명을 지르자 김태형이 씩 웃으며 자신의 얼굴에 꽃받침을 하더니 선물이라며 실없는 소리를 해댔다.
그런 김태형의 뒤통수를 자신의 손바닥으로 내리친 전정국이 몸은 좀 괜찮냐며 내게 물어왔다.
너희 때문에 전혀 괜찮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꾹 누르며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아, 다시 골이 아파지는 것 같아. 갑자기 산만해진 분위기에 한숨을 내쉬며 한쪽 손으로 이마를 짚었는데 그런 내 손을 꼭 붙잡는 다른 손이 있었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박지민이 눈두덩이가 시뻘게진 체로 울먹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얜 또 왜 이래...
"...괜찮아? 나 너가 안 일어나서 큰일 난 줄 알았어."
"그냥 머리만 조금 찢어진 거야. 걱정하지 마."
"뭐?! 찢어지기까지 했어?!"
내 말에 박지민이 울먹거리더니 울기 시작했다. 그런 위험한 곳에 자기랑 같이 갔어야지 왜 혼자 갔냐며 울면서 소리치는 박지민에 할 말을 잃었다.
박지민을 데리고 가나 마나 똑같을 것 같은데. 차라리 전정국이 더 듬직하겠다. 이렇게 여려서야. 나중에 어떡하려고.
순간 스쳐 지나가는 안 좋은 생각을 빠르게 지워냈다. 그래, 지금은 지금에만 집중하자. 우는 박지민을 뒤로하고 민윤기를 찾아보니 이런 상황이 될 줄 알고 내뺐나 보다.
민윤기가 서둘러 나가는 모습이 눈에 훤했다. 이래서 얘가 나를 빨리 재운 건가? 아니, 가만. 김남준도 없잖아.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가만히 있자 호석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내 이마를 자신의 손으로 짚어보았다.
"아직도 머리 많이 아파? 의사 선생님 불러줄까?"
"...아니. 괜찮아."
다행이다. 따듯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는 호석이에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여기에 호석이마저 없었더라면 나는 이 병실을 당장 뛰쳐나갔을 것이다.
너무 시끄러우면 다른 병실에 피해가 간다는 호석이의 말로 인해 애들이 겨우 진정을 하고 조용해졌다.
우리가 너무 요란을 떨었는지 병실 문에 달린 유리 너머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힐끔거렸다. 분명 무슨 죽을병에 걸린 사람의 병실일 거라고 생각하겠지.
사람들의 안쓰러워하는 표정이 정통으로 보이는 나는 매우 쪽팔렸다. 진정된 분위기 속에서 박지민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타이밍 좋게 민윤기가 병실로 들어왔고 민윤기가 들어오자마자 나는 있는 힘껏 민윤기를 노려봤다.
그러자 민윤기가 내 시선의 의미를 눈치챘는지 얄밉게 웃으며 입 모양으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왔다.
민윤기 딴에는 그냥 웃은 거 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매우 얄미워보였다.
"야, 김탄소 자야 해."
민윤기가 애들을 향해 말했고 나는 제발 나가달라는 눈빛을 쏴댔다. 정말로. 간절하게.
내 눈빛을 받은 박지민은 내가 불안해 한다고 생각했는지 너무 울어서 부어버린 눈으로 민윤기를 향해 소리쳤다.
"우리가 나갔는데 탄소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해!!"
"...나 괜찮아. 지민아."
"그래도 안 돼. 불안하단 말이야."
오, 맙소사. 얘는 꼭 이상한 부분에서 집착하는 게 있는 것 같다. 특히 누군가 다쳤을 때 더 심해진다.
끌고 나가달라며 부탁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박지민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가 계속 울 것 같았다.
그랬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방법을 쓰기로 했다. 정말로 싫은 방법이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럼 내일 또 오든가."
내 말에 그제야 박지민의 얼굴이 환해지더니 알겠다며 오늘 꼭 조심히 있으라고 소리쳤고 먼저 병실 밖으로 나갔다.
뒤를 이어 김태형도 내일 또 올 거라며 떼를 썼고 그 떼에 못 이겨 알겠다고 허락해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지옥을 맛봤다. 분명 내가 괜찮다는 걸 어제 확인했을 텐데 요란스럽게 들어온 박지민과 김태형이 내가 다친 곳은 없는지 이곳저곳을 살폈다.
두 팔도 들어보고 다리도 한번 들어보고. 머리카락은 왜 들춰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또, 링거를 갈러 오신 간호사 언니께 그거 맞으면 더 아픈거 아니냐 병원에 더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수술을 해봐야 하는거 아니냐며 수도 없이 질문을 했다. 이쯤 되면 일부러 나를 엿먹이려고 이러는 것 같았다.
쪽팔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전정국이 얼굴을 가리고 욕을 낮게 내뱉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안내 데스크에서도 한바탕했다고 하소연을 하며 내 옆에 붙어있는 박지민과 김태형을 떼어냈다. 그런데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김석진이 안 보였다. 김석진이 있어야 애들이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되는데.
"근데 김석진은 왜 안 와?"
"아, 집에 불려갔어."
궁금증에 못 이겨 전정국에게 물어보니 집에 불려갔단다. 집이라니. 전에 김석진이 아버지에 대해 잠깐 얘기했던 게 떠올랐다.
호석이는? 알바. 민윤기랑 김남준은? 이어지는 내 물음에 애들이 어디에 갔는지 잘 말해주던 전정국이 멈칫했다.
걔네는 위에 불려갔어. 위? 위라면 보스에게 불려갔다는 얘긴가. 덜컥,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됐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그곳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까. 민윤기와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
아무 힘이 없는 내가 함부로 설치면 짐이 될 게 뻔하니 나를 뒷받침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했다.
그 누군가를 곰곰이 생각하는데 언제 나갔다 들어온 건지 김태형이 침대 위에 식탁을 설치한 뒤 그 위에다가 병원 밥을 올려놓고 씩 웃었다.
수저를 들고 방실 웃고 있는 모습을 보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설마, 먹여준다거나 그런 말은 하지 않겠지.
"뭐야, 이거?"
"너 환자니까 병원 밥 먹어야지! 내가 먹여줄게!"
팔을 다친 것도 아닌데 밥 정도는 스스로 먹을 수 있거든? 아니 그것보다. 머리만 다쳐서 온 건데 병원 밥을 먹어야 하다니.
전에 먹어 본 적 있는 병원 밥은 정말로 맛이 없었다. 내 썩은 표정을 본 전정국이 보조 의자에서 일어났다.
의아한 눈으로 전정국을 올려다보자 전정국이 김태형의 손에 들린 수저와 함께 병원 밥을 가로챘다.
"뭐 먹고 싶어?"
"어? 나?"
"그럼 너지. 누구겠냐."
"...음. 떡볶이랑 김밥."
"야!! 그건 왜 가지고 가는데!"
고개를 살짝 끄덕인 전정국이 병실 밖으로 나갔고 김태형은 뭐하는 짓이냐며 전정국의 뒤를 따라 나갔다.
오우, 김태형 한명이 나가니까 병실이 이렇게나 조용해지다니. 아 그러고보니. 쟤네 둘은 오늘 그곳에 안가나.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겨있는데 구석에서 보이는 형체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김태형이 너무 치대서 박지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ㅇ,야. 너 왜 그러고 있어?"
"윤기가 그랬는데 너무 시끄럽게 하면 너가 다시 아프데."
민윤기 나이스. 그래서 아까 들어올때만 난리치고 그 뒤로는 조용했구나? 내일 민윤기를 만나면 칭찬 해줘야겠다.
근데 박지민의 표정을 보아하니 입이 근질거리나보다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앉지도 못하고.
그걸 보고 결국 내가 백기를 들었다. 음, 귀여우니까 봐줘야지. 박지민을 불러 보조 의자에 앉힌 뒤, 민윤기의 말은 다 거짓말이였다고 말했다.
그제야 박지민이 입에 모터가 단 듯 내 옆에서 쫑알거리며 다시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렇게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기뻤다.
.
.
.
내 표정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걸 본 호석이가 웃더니 다 이해한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마. 머리 아프면 나한테나 옆에 있는 애들한테 바로 말해. 알겠지?"
"응. 알겠어."
호석이가 민윤기네 집까지 나를 데려다줬고 오늘 푹쉬고 내일 학교에서 보자며 인사를 한 뒤, 뒤를 돌아 걸어갔다.
멀어져가는 호석이의 등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집으로 들어가자 정장을 입은 체 방에서 나오는 민윤기와 정통으로 마주쳤다.
나와 마주칠 줄 몰랐는지 멈칫하는 민윤기에 쇼파에다가 짐을 내려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넌지시 물었다.
"또 거기에 가는 거야?"
"...응. 오늘은 빨리 올게. 배고파?"
"아니. 아직."
"조금만 기다려. 갔다와서 퇴원기념으로 맛있는 거 해줄게. 먹고싶은거 문자로 보내놔."
얕게 고개를 끄덕이자 민윤기가 희미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나랑 약속은 했지만 만일 위에서 또 살인을 시키면 민윤기는 다시 피를 뭍혀야겠지. 거절하면 그때처럼 누군가가 죽을테니까. 그래, 그 사람이라면.
나는 다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 서둘러 그곳으로 갔다.
.
.
.
"민윤기가 어제 나가서 안 들어왔다고?"
"응."
어제 민윤기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봐도 연락은커녕 문자 한 통도 없었다.
걱정돼서 전화를 걸어봤지만,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안내음성뿐 민윤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결국, 밤을 새버렸고 해가 뜨자마자 교복으로 갈아입은 뒤, 제일 먼저 동아리실에 도착했다.
혼자 불안감에 다리를 덜덜 떨며 애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얼마 안 있어 김태형이 콧노래를 부르며 동아리실로 들어오다가 나를 보고 입을 떡하니 벌렸다.
왜 하필 김태형이 먼저 왔는지 불만스러웠지만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자 김태형에게 민윤기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어제의 일을 말했다.
나를 내려다보며 내 얘기를 듣던 김태형의 표정이 짐짓 심각해졌다가 곧 풀렸다.
"어제 김남준도 연락 두절이던데."
"뭐? 정말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근데 괜찮을 거야. 전에도 이런 적 있었거든. 그냥 기다려봐."
"......"
말을 마친 김태형이 의자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은 기분. 전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느낌이 아주 쎄했다.
다리 떨지 마. 점점 커지는 불안감에 나도 모르게 다리를 계속 떨었나 보다. 김태형이 게임을 하다 말고 내 다리를 자신의 손으로 내리눌렀다.
아 미안, 머쓱하게 웃자 김태형이 나를 빤히 바라보다 손을 치우고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김탄소."
"어?"
"허튼짓 하지 마."
"무슨 소리야?"
나를 나지막하게 부르는 김태형을 쳐다보자 김태형이 무표정으로 게임을 계속하면서 내게 경고를 했다.
그에 내 표정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굳어졌다.
"말 그대로야. 괜히 오지랖 부려서 험한 일 당하지 말라는 뜻이야."
"......"
"요번에도 그러다가 머리 찢어졌잖아."
"......"
위험한 일에 사서 끼어들지 말고 가만히 있어. 멍청하게 굴지 마. 그 말을 끝으로 우리 둘의 사이에 오가는 말은 없었다.
한순간 게임 소리가 윙윙거리며 작게 들려왔다. 멍청하게 굴지 말라니. 진심으로 나를 비웃는 듯이 말했다.
내가 삐뚤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알면 알수록 뭐가 진심이고 뭐가 진심이 아닌지 모르겠다. 속을 전혀 알 수가 없어.
"어디가?"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계속 나를 보고 있었던 건지 김태형이 내 팔목을 잡아왔다.
그런 김태형을 바라보며 이번에는 내가 경고했다.
"멍청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행동할 거야."
"......"
"있잖아, 그렇게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후회해. 너."
"......"
김태형의 손을 뿌리치고 동아리실을 나섰다. 그리고 휴대폰에 저장해놨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교문을 나서자 수업종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곧 신호음이 끊겼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전데요. 지금 이쪽으로 빨리 와주세요. 뭔가, 불안하거든요."
.
.
.
일단 민윤기랑 김남준의 조직에 도착을 했긴 했는데 이제 뭘 해야 하지.
빠르게 조직 건물에 도착했는데 그 후가 문제였다. 도착하자 보이는 정장을 입은 우락부락한 남자들에 건물 옆 벽으로 몸을 숨겼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본 결과, 건물에 들어가려면 암호가 필요한가 보다.
"혹시 김탄소씨인가요?"
발만 동동 구르며 어떻게 들어갈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누군가가 나를 봤다는 거에 놀라 경계를 하며 뒤를 돌아보는데 정장을 입은 여자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데요?"
한껏 날카롭게 대답하자 여자가 사무적이게 웃더니 내 옆에 있는 문을 열었다.
분명 잠겨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앞문으로 들어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손쉽게 열리는 문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마 이 문으로 여자가 나왔나 보다.
"보스가 뵙자고 하십니다. 따라오시죠."
여자가 먼저 문 안으로 들어갔고 가만히 서 있다가 그 뒤를 따라갔다.
내가 이렇게 겁 없이 행동하는 것은 죽는 게 두렵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기서 죽는다면 죽는 거겠지. 곧 여자가 걸음을 멈췄고 세 번 노크를 한 뒤, 문을 열었다.
열린 문으로 그 안을 보자 민윤기와 김남준이 피떡이 된 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김남준! 민윤기!"
"시발, 돌겠네 진짜."
"민윤기. 설마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겠지."
"야! 괜찮아?!"
"...맞네."
놀라서 그 둘에게 뛰어가자 대뜸 욕을 내뱉는 민윤기와 달려오는 나를 보고 힘겹게 자신의 손을 들어 눈을 가리는 김남준이었다.
엎드려서 계속 욕을 내뱉는 민윤기를 뒤로하고 조금은 말이 통할 것 같은 김남준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켰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한숨을 쉬는 김남준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려 할 때,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쪽이군. 얘들이 싸고돌았던 여자가."
"......."
"한번 보고 싶었어. 궁금했거든."
"......"
"쟤들이 왜 저렇게 된 줄 아나? 그냥 그쪽 사진 보여주니까 반항을 하더라고. 그래서 벌 좀 줬지."
애들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하는 남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일단 화를 삭히고 애들을 일으켜 세운 다음 그 사람이 앉아있는 곳으로 당당히 걸어갔다.
뒤에서 미쳤냐며 당장 여기서 나가라는 민윤기의 외침이 들렸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내가 이곳 소속이 아니니까 보스라고 부를 필요는 없을 테고. 이봐요."
"......"
"지금 그렇게 웃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내 말에 눈썹을 찌푸린 남자가 다시 여유롭게 웃었고 그런 남자에 나도 같이 웃으며 내 품에서 종이를 꺼내 그 앞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내가 내민 종이를 읽는 남자의 표정이 점점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니년이 이걸..."
"이 조직에 중요한 정보를 다른 회사에 팔아넘기셨던데 그래서 돈은 많이 버셨어요?"
아, 그래서 내가 일할 때마다 맨날 다른 조직 조무래기들이 떴구나? 그제야 그때의 상황이 이해됐는지 민윤기가 허탈하다는 듯이 웃었다.
김남준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덤덤한 표정을 지은 체 말없이 남자를 쳐다봤다.
"뭔가 이 상황 익숙하지 않아요?"
"......"
"그때랑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김남준처럼 대답을 듣지 않고 이미 뿌렸다는 거?"
"이게!!!!!"
남자가 책상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고 빠르게 총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그걸 보고 김남준과 민윤기가 내 팔을 잡아 나를 자신들의 등 뒤에 숨겼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정신이 없었지만 이거 하나는 제대로 느꼈다.
방금 찰나였지만 총이 내 이마에 닿았었다는 거. 그 소름끼치는 감각을.
"비켜."
"싫습니다."
"지금 내 명령에 반항하는 건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죠. 얘만 다시 내보내주세요."
"싫다면 어쩔 텐가."
"보스와 싸우겠습니다."
죽는 게 무섭지 않다고 당당히 말했지만 막상 총이 나를 향해 있을 때 솔직히 많이 무서웠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민윤기와 김남준의 어깨너머로 남자를 보자 아직도 나를 노려보며 총을 들고 있었다.
김남준과 남자가 계속 기 싸움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민윤기가 어깨를 들썩이며 크게 웃었다.
둘의 기에 눌려 숨도 못 쉬고 있었는데 민윤기의 웃음소리에 참았던 숨을 뱉어냈다.
"뭐가 우습지. 웃을 상황이 아닐 텐데."
"아니, 이 상황이 너무 개 같아서."
"......"
"역시 너는 그런 새끼였지. 뭐만 하면 총구를 들이밀면서 협박했잖아."
민윤기의 말에 남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시 숨 막히는 정적이 이어졌고 나는 둘의 등 뒤에서 마른 침을 삼켰다.
남자가 총을 장전했고 그 소리에 침묵이 깨졌다. 장전하는 소리를 듣자 민윤기와 김남준이 내가 남자에게 아예 안 보이게끔 더 붙어섰다.
"...우리 조직에 대한 반란인가."
"설마. 너에 대한 반란이지."
가짜주제에. 민윤기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자가 화에 못 이겨 떨리는 손으로 총을 쐈고 그 순간 민윤기가 재빨리 김남준을 옆으로 밀치고 나를 감싸 안았다.
연속으로 총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에 귀를 막는데 눈앞으로 피가 튀는 장면이 슬로우모션으로 펼쳐졌다.
민윤기!!! 놀라서 소리치자 민윤기가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나를 보며 살짝 웃었다.
"와, 더럽게 아프네."
"ㄴ,너. 피가...!"
"야, 너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ㅇ,윤기야...너 피,"
"내가 너 때문에 미치겠다."
민윤기가 장난스럽게 표정을 찌푸리며 내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디에 총을 맞았는지 살펴보는데 다행히도 총알이 팔에 스치기만 했나보다. 팔에만 피가 날 뿐 다른 곳은 멀쩡했다.
야!!!!!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에 놀란 마음을 추스리는데 옆에서 김남준의 고함이 들려왔다.
옆을 보니 김남준이 화가 난 얼굴로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민윤기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너도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내가 안 밀었으면 너가 죽었어. 새꺄."
"아오. 저 무식한 놈!"
김남준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히스테리를 부렸다. 저 새끼가 손이 떨린 체로 총을 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다면 다 죽었을 거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여기서 죽을 순 없다고 같이 죽기로 했으니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우리에게 훈계를 놓던 김남준이 곧 남자를 날카롭게 쳐다봤다.
내가 김남준을 처음 봤을 때 봤던 그 눈빛이었다. 사람 숨 통을 조여오는 눈빛.
"내 사람들을 건드렸으니 저도 가만히 손이나 빨면서 보고 있지 않을 겁니다."
"하! 아무것도 없는 너가 어떻게 할 건데?"
"과연 아무것도 없을까요?"
김남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장을 입은 조직원들이 문을 박차며 들어왔다.
김남준이 여기 오기 전에 수를 써놨나 보다. 수많은 조직원에 남자가 이성을 잃고 미친놈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 총을 쏘려고 하는데 누군가의 총소리가 들리더니 남자가 팔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누가 쐈냐는 김남준의 날카로운 말에 조직원들이 당황하며 서로가 안 그랬다고 말해왔다.
"내가 쐈다. 시끄러운 벌레 새끼 때문에 참을 수가 있어야지."
"...보스...?"
"여기는 어떻게..."
우왕좌왕하는 조직원들 사이에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은 김남준과 민윤기의 눈이 저절로 커졌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아는 나는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런 내 행동에 김남준과 민윤기의 눈이 더 커졌다.
"아저씨 와줘서 고마워요."
"내 애들이 이런 일을 당하고 있다는 걸 알려줘서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아직도 넋을 놓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둘에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그런 내 행동에 웃던 아저씨가 남자에게 다가가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니가 한 짓 다 들었다. 내가 그런 짓을 하라고 너한테 권한을 넘겨준 게 아닐 텐데."
"...ㅈ,죄송합니다."
아저씨가 차갑게 남자를 쳐다보다가 총을 다시 장전하고 남자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그런 아저씨의 행동에 민윤기가 그 팔을 붙잡고 자신의 총을 장전 시켰지만 아저씨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민윤기를 말렸다.
"더러운 피를 묻혀서 뭐하려고. 나는 너한테 그런 걸 시키고 싶지 않다."
"ㅅ,살려주세요!!"
살려달라고 비는 남자를 김남준의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아저씨 옆으로 다가갔다.
위험하다고 노발대발하며 소리치는 김남준에게 괜찮다고 엄지를 들어 올린 뒤 쓰러져있는 남자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때와 똑같이. 최대한 얄밉게 웃으면서.
"그러게 왜 그랬어."
내 말에 김남준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고 민윤기가 아저씨 옆에 있는 나를 잡아 끌어 내 시야를 가렸다. 총소리가 공간을 울렸고 이렇게 상황은 종료됐다.
조직원들이 상황을 정리하고 있을 때 아저씨가 민윤기의 어깨를 토닥이며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고 고생 많았다며. 그러자 민윤기가 울었다. 정말 어린애같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민윤기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여줬다. 항상 묵묵히 있길래 민윤기가 나와 같은 나이라는 걸 까먹고 있었다.
민윤기는 늘 어른인 척 해왔던거다. 이제 다 끝났다고 계속 위로를 해주며 애써 나오는 눈물을 참았다.
"너한테도 미안하구나."
"아니요. 보스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잖아요."
아저씨가 김남준에게도 사과하자 김남준이 씁쓸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
김남준의 머리를 푹 눌러 쓰다듬은 아저씨가 김남준에게 보스 직을 넘겼다.
처음에 당황하며 거절하던 김남준이 뜻을 굽히지 않고 계속 권유하는 아저씨에 결국 보스 직을 받아들였다.
내가 손녀딸 같다며 자주 놀러 오라는 아저씨의 말을 끝으로 커다란 일이 하나 일단락되었다.
"너도 울고싶으면 울어. 내가 위로해줄게."
"...아직은 아냐. 아직."
"그게 뭐야. 쪽팔려서 그러는거야?"
"나중에 내가 울 때, 그때 민윤기처럼 위로 해줘라."
살짝 웃던 김남준이 집에 가자며 나를 이끌고 차문을 열어줬다. 아직이라니. 의미심장한 말이었지만 그냥 넘겼다.
편하게 차를 얻어타며 가는 도중 민윤기와 김남준이 내게 아저씨를 어떻게 불렀냐며 물어봤다. 그에 나는 다시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에필로그]
내가 집을 빠르게 나가서 도착한 곳은 그곳이었다. 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그곳.
물론, 그곳 바로 뒤에 있는 골목이지만 나한테는 여기까지 온 것조차 고역이었다.
민윤기를 처음 만났을 때 들어갔던 골목에 숨어서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켜봤다.
마담이나 다른 직원들에게 들킬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민윤기랑 김남준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가 없었다.
제발, 오늘이 이곳을 찾는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점점 손바닥에 땀이 차기 시작했고 그 땀을 옷에 대충 닦고 있는데 내가 찾는 사람이 입구에서 나왔다.
그 사람을 보자마자 골목에서 나와 그 앞에 섰다. 그 사람이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고 나는 급하게 그 사람을 이끌며 그곳을 벗어났다.
그곳을 벗어나자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구부렸던 몸을 바르게 폈다.
"넌..."
"그래, 나 기억하지?"
내가 찾았던 사람은 바로 조직과 연줄이 있는 사람이었다. 전에 그곳에서 일 할 때 술을 따라주러 방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알게 된 인연이었다.
서비스 술을 주니 고맙다고 술이 마음에 든다며 나중에 술값을 꼭 갚겠다고 했던 인상 깊은 손님이었다.
사실 나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 않아 내 마음에도 든 손님이었는데 이 사람에게서 종종 조직 얘기를 듣곤 했었다.
"당연하지. 오랜만이네? 이 일에서는 이제 손 땐 건가?"
"...도망쳤어."
"오, 그래서 요즘 분위기가 살벌했군."
서로의 안부와 그동안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있는데 곧 내게 무슨 일로 자신을 끌고 왔냐고 물어오는 질문에 내 목적이 떠올랐다.
"전에 술값 꼭 갚겠다는 말 기억하지? 그거 지금 갚아줘."
"돈이 필요해? 알겠,"
"아니. 조직의 정보가 필요해."
"......"
"넌 할 수 있잖아 그치?"
처음에 그건 곤란하며 안된다고 했던 사람이 내가 간곡하게 부탁하며 눈물을 글썽이자 마지못해 알겠다고 허락했다.
이렇게 해서 김남준과 민윤기의 조직에 대해 알게 됐고 그 보스라는 놈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자세히 알게 됐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최악인 인간이었다. 전 보스는 지금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혹시 그 회사에 찾아가려고?"
"응, 그러려고. 정말 고마워."
"별말씀을. 근데 보기 좋네."
"뭐가?"
"술집에서 너 처음 봤을 때, 눈에 초점이 없었는데 지금은 달라서."
나도 내가 점점 변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는데 그걸 다른 사람에게서 직접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무 말 없이 살짝 웃고 정보를 얻은 회사로 발걸음을 돌렸다. 뒤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서든 마담을 설득하겠다고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
회사 앞에 도착하자 갑자기 드는 막연함에 잠시 멈칫했다. 어떻게 회사 안으로 들어가고 어떻게 그 사람을 설득하지.
그러나 이러한 내 걱정은 안내 데스크에 들어가서 말을 꺼내자마자 깨져버렸다.
모 아니면 도다. 이렇게 생각을 마친 뒤, 당당히 들어가 회장님을 만나러 왔다고 말을 꺼내자 들려오는 대답은 예약하고 오셨냐는 거였다.
그에 아니라고 하지만 중요한 일이라고 사정을 하자 잠깐 전화를 하던 안내원 언니가 곧 나에게 회장실을 안내해주셨다.
원래 이렇게 쉽게 되는 건가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 회장실에 도착했고 회장님이 나를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패기로운 젊은 사람이 누군가 궁금해서 들여보내라고 했는데 예상 밖인걸?"
"...아, 저 안녕하세요."
"그래, 이쪽에 앉게.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지?"
"그... 회장님. 아니, ㅂ,보스?"
"내가 조직의 전 보스라는 걸 알고 있군. 편하게 아저씨라고 불러줘."
조직의 전 보스라고 해서 엄청 무섭고 우락부락할 줄 알았는데 상상과는 많이 달라서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지금의 상황을 말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눈빛이 날카로워진 아저씨가 한숨을 깊게 내쉬고 눈을 감았다.
그제야 왜 아저씨가 전 보스인지 이해가 됐다. 순간 아저씨의 기가 무섭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아저씨가 나를 찬찬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위험한 일에 뛰어들려고 하는지 궁금하군."
"저를 바뀌게 해준 친구들에게 보답하고 싶어서요."
"그게 누군가."
"김남준이랑 민윤기요."
"그놈들은 내가 예전에도 아껴 하던 놈들이었지."
곧 아저씨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래서 애인은 누구냐고 물어봤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얼굴이 빨개져서 둘 다 아니라고 소리치자 아저씨가 웃으며 도와준다고 흔쾌히 말했다.
이렇게 나는 뭔가 손쉽게 든든한 지원군을 얻게 됐다. 내가 애들을 그곳에서 구해줄 것이다.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줬던 친구들이니까. 이제 내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 차례다.
[작가 주저리]
10화네요. 남준이랑 윤기의 과거. 둘의 일이 이렇게 끝났습니다.
뭔가 내용이 산으로 가지만 저는 그래도 계속 쓸겁니다 하ㅏ하하하ㅏㅏ하.........
(울적)
제가 너무 텀도 느리고 내용도 노잼이라서 이래서 암호닉을 안받았던거였는데......
암호닉을 받고 나서도 후회했지만 암호닉을 신청하시는 분들이 꽤 있길래 기뻤습니다.
긍데 이제 댓글이 1도...1도!!!!!!!!!!! 흥렁르으르으ㅓ어어어ㅓㅓ어엉
하지만 괜찮아요 저는 그래도 제 만족으로 글을 쓸겁니다...
다음에 낼 새작은 인기가 많았으면 크흐븡랑람으므을므읆ㅂ
다들 설레는 걸 좋아하시나?ㅠㅠㅠㅠㅠㅠ후ㅠ휴휴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가끔 1분 인기글에 제 글이 올라올 때마다 기뻐서 캡쳐합니다 헤헿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 거니까요!
읽어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