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일찍 와요? "
" 응 칼퇴근이고.. 끝나자마자 달려올 거고! "
" 다녀와요 "
쪽-
결혼한 지 이제 겨우 1년 6개월. 어렸을 때 잘생기고 멋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며 현모양처를 꿈꿨던 어린아이의 자그마한 소원은 이루어져 지금 넥타이를 정리해주곤 남편과 수줍어하며 뽀뽀를 하고 있다. 6살. 자그마치 6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까지 성공한 우리는 아주 알콩달콩.. 그래 열심히 1년 6개월을 달리고 있다. 파릇한 신혼이니 만큼 경제적으로 안정되지는 않았지만 남부럽지 않게 먹고살 만한 가정이다. 아기는 아직... 내 남편의 미모를 말로 설명하자면 100년 만에 금속에서 태어난 영국 왕자님을 뺨칠 정도로 잘생겼다. 1초 만의 아이컨택으로 여럿 여자를 꼬시기에 아주 제격인 얼굴인 셈이다. 내가 어려서 그런지 성격도 좋은 우리 남편은 나를 항상 배려해줬다. 지금도 그렇고 말이다. 가끔은 너무 순진하고 순수해서 내가 너무 음마(?)가 꼈다고 생각한 적도 여럿 있었다. 물론 내가 변태는 아니다. 키스도 사귄 지 2년 만에 겨우 했기 때문이다. 매번 아침마다 뽀뽀하는 지금은 매우 기적같은 일이다.
" 아 맞아 오늘 저녁 먹지 말고 있어. 오랜만에 밖에서 먹자 "
" 정말요?? 그럼 나 이쁘게 하고 있을게요 "
" 지금도 예쁜데 얼마나 더 이뻐지려고 "
더 이상 대화를 하면 지각을 할 듯해 겨우 남편을 문 밖으로 보내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내 남편은 어깨가 참 넓은데 소위 말해 어깨 깡패라고 한다. 나는 몸 얼굴 성격 목소리 등 하나도 못난 게 없는 내 남편이 항상 뿌듯했다. 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과분한 사람이지만 사랑에 이런 것이 뭐가 중요하리.
노는 걸 좋아하고 청소하는 건 질색했던 내가 지금은 앞치마를 하고선 손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고 있다. 이게 결혼의 힘인가?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결혼을 했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나서 제대로 놀아본 적은 없다. 아이가 생기면 지금보다 더 바빠질 것이고 정말 성인이 되니 연락할 사람은 남고 아닌 사람은 떠났기에 연애만 했던 나는 주변에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집안일에 열중했고 남편이 없는 이 시간이 매우 따분하고 지루했다. 나는 신속히 설거지를 다 끝내 고무장갑을 내팽개치고는 소파 위에 불가사리처럼 털썩 누웠다. 남편의 연락이 아닌 다른 이유로 핸드폰을 잡은 나는 잠금 화면을 해제했다.
" 으음... "
오늘은 밖에서 밥을 먹기 때문에 사실 장을 보지 않아도 되지만 왜 하필 오늘 같은 날에 특별 세일을 하는지..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곧 죽어도 이건 사야 해하는 심보로 말이다. 내일 먹을 거 미리 사두고 좋지 뭐~ 나는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장을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화장실에 가서 대충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머리도 부스스하지 않게만 똥 머리로 올려 묶었다. 시간을 보니 시곗바늘은 9시 40분을 향하고 있었다. 11시에 표고버섯이 1kg에 무려 단돈 2천 원으로 파는 파워타임도 있기 때문에 얼른 서둘러야 한다. 카드, 핸드폰.. 다 챙겼겠지? 나는 설레는 발걸음으로 집 밖을 나와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12.... 9..... 7...... 3... 1....
1........... 9........... 12......
12.......
뭐야? 장난해? 13층인 우리 집을 놀리듯이 엘리베이터는 몇 분째 12층에 멈춰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황소처럼 씩씩거리며 버튼을 연속으로 눌렀다. 나 바쁜 여자라고!!! 진짜 장난하나!!! 나는 몇 분을 채 기다리지 못하고 곧장 12층으로 내려갔다. 가서 욕을 한 바가지 해줘야지 하고 입에 시동을 걸며 계단을 내려가는데 12층에 도착한 나는 시동이 꺼져버리고 말았다.
" ........ "
아재나 아지매면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지는 못해도 나의 카리스마(?)로 기선제압을 하려고 했지만 꼬맹이도 아닌 그것도 건장한 성인도 아닌.. 응? 건장한 성인.... 나는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12층 안으로 다가갔다.
" 저.. 저기 "
모르는 사람이니까 최대한 경계하며, 하지만 화났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내 말을 들은 남자는 옮기던 상자를 내려놓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큰 키에 무서운 얼굴에 나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는지 한걸음 뒷걸음질 쳤다.
" 무슨 일이세요? "
아.. 이걸 뭐라고 했더라.. 어.. 음.. 아 그래 온도차? 이 남자는 첫인상의 무서운 얼굴과는 다르게 지금은 굉장히 바보 같은 웃음을 짓고 있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다... 아 맞아 표고버섯!!!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남자를 째려봤다.
" 저기요..! 제가... 크흠... 바쁜데!! 그.. 그쪽이 엘리베이터를 몇 분이나 잡고 있어서 지금 차질이 생겼다고요...!! "
남자는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숙여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피식 웃더니 다시 나를 쳐다봤다. 아 왜 자꾸 부담스럽게 쳐다보는 거야!!! 처음엔 생글생글 웃는 이 남자가 나름 귀여웠기도 했지만 지금은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혼자 마음으로 궁시렁거리고 있는데 남자가 말을 열었다.
" 제가 이사를 와서.. 죄송합니다.. 어디 가시는 길이신데요? "
" ....마트... 요 "
" 아 저 앞에 빅마트요? "
" ..예 "
" 태워다 드릴까요? "
순간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이거 지금 모르는 사람이 과자 사줄 테니 따라올래 하는 건가? 하지만 이 사람은 우리 집 밑으로 이사 온 사람이고 아마 미안해서 태워다 주는 것 같은데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까... 내 팔 기장을 훨씬 넘는 가디건을 조물거리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디서 열쇠 소리가 들렸다.
" 안 가요? "
" ..예..에? "
나와는 다르게 남자는 아주 태연하게 한 손가락으로 열쇠를 돌리고 있었다. 그래 뭐 죽기야 하겠어?
" 이번에 뽑은 차라 깨끗해요 "
" 아.. 예... "
어쩌라고.. 내가 자동차 문을 열기 남자는 전 자신이 먼저 열어주더니 문을 닫으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도 자동차에 탑승했다. 차는 좋긴 좋네. 나도 모르게 숨을 꼴깍 삼켰다. 그런데 남자는 시동을 걸지 않고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 .... "
" 엄마야! "
남자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상체를 내 몸 위로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감았다. 아 망했다.. 그냥 따라오지 말걸...
" 됐다 "
시동이 걸리고 내비게이션에서는 경쾌한 음악과 함께 안내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 안전벨트 착용하셨나요? 그럼 고고씽~! "
" 헤헤 귀엽죠? 우리 허니예요 "
" 아..예.. "
안전벨트를 뭐 이렇게 덮치듯이 매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