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몽의 어린신부]
w. 푸른 구름
햇빛이 쨍하게 내리쬐었다.
탁탁-
선생님의 거친 나무 매가 교탁에 내려쳐졌다.
“자 이제부터 자는 사람은 수행평가 감점시킨다. 빨리 일어나!”
여기저기서 짜증 섞인 소리가 들렸고 아이들은 일제히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순간 움찔한 나 또한 이미 선생님한테 고정돼있던 눈을 더욱 또렷이 떴다. 창문을 통해 느껴지는 바람이 시원하다.
반복되는 일상이 평온하다.
내 자리는 운동장 쪽 창문 옆자린데 맨 뒷자리다. 수업에 좀 더 나은 집중을 위해 앞자리를 선호하는 편인 나는 지금 자리가 그다지 맘에 들진 않는다. 그래도 선생님 눈치 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자리인 건 좋지만.
수업을 들으며 열심히 필기를 하던 중 시계를 보니 시곗바늘은 5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분명 한 5분쯤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 예상은 산산이 깨져버렸고 실망감이 밀려왔다. 우리가 칠판에 판서돼있는 글씨를 각자의 공책에 옮겨 적는 것을 기다리던 선생님은 뜬금없이 인생 얘기를 하기 시작하셨고 그 말들은 쩍쩍 갈라져 있던 두뇌 속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졌다. 초롱초롱하게 눈이 떠지며 귀가 뜨였다.
“잘 들어,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게 뭘까.
“첫 번째는 거울을 딱 봤을 때 막 장동건, 김태희가 있어! 그러면 공부? 안 해도돼~그냥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졸업만 해”
그렇지. 그래도 되지.
“두 번째는 자기 부모님이 CEO다! 이러면 공부 안 해도 된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그래도 괜찮고 아무튼 자기 패밀리 중에 CEO가 있다, 작은 회사라도 중소나. 이렇게 되면 공부 안 해도 된다고.”
그럼 마지막은...
“마지막은 뭐냐 하면... 뭐겠냐. 이 1,2번이 아닌 사람들이야.”
움찔했다. 순간.
역시 난 이 길 밖엔 없는 건가. 공부. 1년 뒤 수험생이 될 앞날이,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이 점차 커져갔다. 선생님을 탓했다. 괜히 우울해지게시리 .
“이 사람들은 어떡해야 되겠냐. 공부를 해야 돼. 안 그러면 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가 없어. 내가 보기엔 여기 대부분은 3번인 거 같은데.”
아이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고,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아 물론 부모님이 CEO인 얘들이 있을 수 있겠지 여기에. 근데 그렇다 해도 3분의 2는 공부를 해야 된다는 거야. 듣고 보니까 정말 우울하지? 그래도 몇 년만 있으면 졸업이다.”
졸업... 빨리 졸업하고 싶다. 곧이어 선생님은 몇 마디를 더 하셨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띠리리~~~~
스피커에선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정신을 차린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협의 실로 급히 걸어갔다. 살며시 협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 좌측에 보이는 담임선생님에게로 걸어갔다. 잠시 심호흡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선생님...”
최대한 힘이 없어 보이도록.
퇴근할 준비를 하고 계셨는지 선생님의 책상은 깔끔했다.
“응? 탄소야 왜?
“저 조퇴... 좀 하려고요"
“조퇴? 어디 아파?"
선생님은 내 안색을 살피며 물으셨다. 난 당황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답했다.
그럼 뭐 때문이냐는 듯한 선생님의 표정에 머뭇거리다 작게 웅얼거렸다.
“ㄱ.. 그게 터져가지고요..”
“아...”
선생님은 끄덕거리며 이해한다는 분위기로 알았다고 조퇴 종이에 내 이름과 학번을 적어내렸다. 애써 웃으며 조퇴증을 움켜 받아진 나는 반으로 돌아와 가방을 메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어? 탄소야, 가?”
“응 조퇴했어”
반 친구의 부럽다는 시선을 받으며 교실을 빠져나왔다. 신발을 꺼내며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진짜 좋다. 빨리 집 가야지.
문득 마음이 찔렸다. 생리가 터진 건 맞지만 그리 심각하진 않은 정도였고 생리대만 찬다면 충분히 야자를 해도 무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난 생리통도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야자를 해도 아무런 성과가 없을 거다. 적어도 나에겐.
오늘은 흔히들 말하는 불타는 금요일이니깐.
집에 가서 할 많은 일들을 생각하며 신발을 신었다.
날 밝은 날 교문을 지나쳐가는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예 야자가 없으면 좋으련만.
고개를 들어 얼굴을 하늘에 마주하니 주황색으로 진하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어폰을 꺼내서 귀에 꽂았다. 요즘 좋아하는 노래들을 재생목록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렇게 좋은 날에 좋은 음악이라니. 정말이지 지금만큼은 행복하다.
그 누구도 지금의 날 방해할 수 없다. 이 분위기를 깨뜨린다면 몇 시간 동안은 그 사람을 미워할 것 같아. 설령 그게 사람이 아닐지라도.
푸른색으로 바뀌는 신호등. 앞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횡단보도를 건넌 뒤 인도가 따로 없는 한적한 도로가를 걸어갔다. 그것도 잠시 뒤에서 툭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내 시야에 웬 사내 두 명이 잡혔다. 한 명은 머리가 주황색, 다른 한 명은 검은색이다. 둘 다 옷은 평범한데 얼굴이 평범하지가 않다. 내 18년 인생에 저렇게 생긴 사람은 처음 본다. 눈이 제멋대로 그 두 사람을 위아래로 스캔했다. 잠깐 멍을 때리다 무심코 옮긴 시선에 그 검정 머리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놀라 눈을 피하며 고개를 바닥에 꽂았다. 그제야 땅에 떨어진 처량한 내 학생증이 보인다.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학생증으로 얼른 손을 뻗으려고 했다. 했는데. 내가 손을 뻗으려고 했던 찰나에 주황 머리 남자가 재빨리 학생증을 집어 든다. 둘이서 유심히 그것을 쳐다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져 나와 그 학생증을 번갈아 보다 자기네들끼리 속닥속닥 거린다. 이제는 휴대폰 속 화면과 학생증을 번갈아 본다. 아주 나는 안중에도 없다. 슬슬 짜증이 났다.
“정말... 정말 이름이 김탄소 맞아요?”
주황 머리가 말했다. 당황스러웠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누구세요..?”
“와. 이렇게 찾을 줄이야”
검정 머리와 주황 머리는 서로 마주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제일 어이없는 사람은 나인데... 머리가 복잡해진 나에게 검정 머리가 다시 물어왔다.
“혹시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저기 맞아요?”
그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고 있는 물체는 나에겐 너무도 익숙한 형태의 주택이었다.
뭐야 이 사람들 정말 안되겠네.
내 표정이 한껏 구겨진 것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저기요. 도대체 누구신데요? 지금 생판 남인 사람한테 무슨-’
“네? 저기 저 집이 그쪽 집이 맞냐고요, 그리고 생일하고 부모님 성함도 알려줄 수 있어요?”
마음대로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상황에서 소리 내어 따지지도 못하는 내가 한심하다. 실상은 늘 다른 사람의 틀에 맞춰주며 날 억지로 그 틀에 끼워 넣는다.
“.... 맞는데... 누구신데요..?”
“그럼 같이 좀 가요”
“ㄴ.. 네??”
뭐야? 이 사람들... 신종 수법인가..? 머릿속은 핸드폰으로 112번호를 치라며 독촉하고 있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도대체 뭐야 이 남자들. 멈춰있던 눈동자가 흐려져 있던 초점을 바로잡으며 그 주황 머리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주황? 아니 근데 요즘에는 저런 주황색 렌즈도 끼고 그러나...보통 사람들이 끼고 다닐만한 그런 옅은 색이 아니었다. 오늘 보았던 붉은 노을 해만큼이나 타오르는 주황이었다.
안녕하세요?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정말 죄송해요 제목이 맛보기인 만큼 분량이 감자칩 같죠?
제가 다 쓰지도 못하고 올려서... 그냥 제가 자기만족으로 쓰는 글인 만큼 연재도 느릴 거예요... 이 글을 읽어주실 분이 계실는지는 모르겠지만요... 흡...
그럼 잘 자요!